제2장 12


 
 

제 2 장

12

 

낮게 드리운 하늘밑에서 겨울을 몰아올듯 찬바람이 불어쳤다. 춥고 으시시한 날씨였다. 떠나가는 계절에 하직을 고하듯 비방울이 떨어졌다. 비살은 초막의 새초나래를 두드리며 설렁거리다가 락엽을 흩날리는 바람결에 불린듯 즘즛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시던 신문을 거두고 초막을 나서시였다. 높이 뻗어오른 분비나무밑에서 흘러가는 구름장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두 경위대원이 그이쪽에 돌아서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헐벗은 수림속에서는 물기가 번들거리는 가랑잎들이 펄럭거렸다.

《중국본토에서의 일본군의 공세》, 《일본 제××군 인도지나반도 북부국경지대에서 봉쇄작전》, 《히틀러공군 영국본토를 대폭격》,《일미무역교섭》, 《어업권에 관한 일쏘회담》, 《이딸리아군 발칸반도에 진입》···

세계는 개선행진하는 《대일본제국》의 발구름소리로 뒤덮인듯 싶었다. 오만한 섬나라사람들의 특질인 허장성세가 판을 치는 소식들이였다. 건덕지가 없으면 동맹자인 히틀러군과 무쏠리니군의 전과까지 대서특필하여 보도하면서 자기네의 위용을 과시하는 판이였다.

그이께서는 《세계최강》을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면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수탈이 그 어느때보다도 가혹해지는 이 엄혹한 환경을 혁명에 유리하게 전변시킬 방도를 생각하시였다. 조선청년들을 날이 갈수록 더많이 징병에 끌어가는 형편에서 일본군부대안에 조선인병정들로 반일비밀결사를 조직하며 조선의 로동자, 농민, 학생들이 무리로 끌려가는 일본의 탄광, 광산, 군수공장들에도 혁명군소조나 공작원들과 련결된 반일조직을 더많이 꾸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사령관동지, 무슨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락엽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그이의 뒤에서 동안을 두고 따라오던 김명산이 말하는것이였다. 아래쪽에서 강준이 뛰여올라오고있었다. 가까이 오면서 숨을 톺아쉬고나서 보고했다.

《사령관동지, 기지에서 림춘추동지가 왔습니다.》

그이께서는 뜻밖의 소식에 놀라 무엇인가 물으려다가 아래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였다. 경사진 비탈로 도시풍의 회색스키모를 쓰고 낡은 춘추외투를 입은 림춘추와 사복차림을 한 두 대원이 올라오고있었다. 얼굴이 볕에 타고 살이 빠져 광대뼈가 두드러져보이지만 기쁨과 행복감에 빛나는 림춘추를 여겨보시는 그이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넘치고있었다.

《그 먼데서··· 무슨 일이요?》

대원들까지 따뜻이 손잡아주시고는 림춘추에게 물으시였다. 저쪽은 자세를 바로했다.

《원동에서 국제당이 주최하는 조, 중, 쏘 3군대표들의 회의통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

방금전에 일본본토에까지 반일조직을 꾸릴 방도를 탐구하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제기된 문제를 두고 생각하시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진작 연구를 하셨던터이지만 초청통지를 받은 마당에서는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두 대원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피곤할텐데 동무들은 병실에 내려가 쉬시오. 내가 림춘추동무를 만나는 동안···》

그이께서는 수림속을 내려가다가 돌아보고 웃으며 그리웠던 정을 보내는 두 대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화답하시였다.

《수천리길을 달려오고도 피곤해하는 기색이 없구만.》

《동무들을 만나 사령관동지께서 건강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기운이 솟구칩니다.》

사령부초막을 향해 걸음들을 옮겼다.

《국제당 동방국에서 련락원들을 파견하겠다는걸 우리가 대신 나왔습니다. 기지에서의 사업보고도 할겸··· 또 우리가 잘 아는 지대가 아닙니까!》

림춘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령관동지의 안녕이 걱정되여 나와보지 않고는 안심할수 없었던 심정을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지 않았으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심정을 뜨겁게 느끼고계시였다. 가까이 있으나 멀리에 가있으나 사령부의 안녕을 념려하여 마음놓지 못하는 동지들···

굶주리고 쓰러지고 피투성이된 부대를 이끌고 적을 유인하여 소멸하면서 사령부를 보위한 지휘관들, 대오의 후위에서 철수를 지휘하는 사령관을 옹위하여 제몸으로 적탄을 막고 쓰러진 대원들··· 신성한 위업을 위해 사상과 의리로 굳게 뭉쳐진 동지들의 심정을 그이께서는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나도 동무들이 그리웠소. 기지에 간 동무들은 모두 잘 있소?》

림춘추는 가슴이 따뜻해져 벙긋이 웃었다.

《예, 모두 밀영건설에 떨쳐나섰습니다. 병실과 식당, 훈련장같은걸 건설하면서도 모두들 전구에 계시는 사령관동지를 생각합니다.》

대답은 평범했으나 말끝은 애상에 떨렸다. 멀리에 있는 동지들의 절절한 심정이 파동쳤던것이다. 로동과 훈련의 여가에 모여앉아 나누던 이야기며 그이를 흠모하는 동지들의 심정을 이루다 표현할수 없었다.

《기지로 들어갈 때 다른 일은 없었소?》

하고 그이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국경가까이에서 적들과 조우전을 했습니다. 우리 동무들 두명이 부상당했지만 중상은 아니였습니다. 현지에서 제가 처치하고 들어가서 치료를 했는데 한두달사이에 완치될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림춘추가 늘 소중하게 간수해가지고 다니는 치료가방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이번에 나오면서 베이만(북만)에 들려 항일련군 간부들에게도 회의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전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걸음을 옮기시였다. 초막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나무걸상에 자리를 잡고 림춘추에게 맞은켠 자리를 권하시였다. 림춘추는 초막안을 둘러보더니 바닥에 불피운 자리가 없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젠 불을 피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견딜수 있소. 어서 베이만에 들렸던 이야기를 계속하오.》

조선혁명의 앙양을 위해서도, 다른 두 나라 혁명군의 지향을 보아서도 원동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국제적련합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베이만항일련군 간부들의 립장이 커다란 관심사였다.

《항일련군 간부들은 참가하지 않겠답니다.

주보중군장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회의에 가서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절대로 쏘련의 원동군에 편입될수 없다, 그래서 이전에도 두번에 걸친 회의가 결렬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럴줄 알고 참가하지도 않으셨다, 이번도 가시지 않을거다, 회의가 결렬될건 뻔하다··· 하는 견해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감스러워하시였다.

《우리가 지난번의 회의들에 가지 않았던것은 회의가 결렬되리라는걸 예견했기때문이 아니요. 일제의 새로운 대공세에 드센 반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였고 또한 그때로서는 련합문제가 절박하지도 않았소.

하지만 지금은 국제정세가 더욱 심각해졌소. 동서방의 파쑈국가들이 련합하여 다른 나라들을 제멋대로 집어삼키는 판이니 동방에서 일제와 대결하고있는 우리 세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건 너무도 명백한 진리요. 민족적리익이나 자존심만 내세울것이 아니라 방도를 탐구해서 힘을 합쳐야 하오.

우리는 이번 회의에 가겠소.》

말씀의 여운은 널직한 초막안에 무겁게 떠돌았다. 림춘추는 감명깊은 그 여운에 귀를 기울이고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김책동지는 사령관동지를 몹시 만나뵙고싶어합디다. 이번에 회의에 가면 만나뵈올수 있으리라고 큰 기대를 가지고있었답니다. 그런데 주보중군장이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시지 않을거다, 우리도 가지 않겠다.··· 라고 견해를 표명하자 다른 말없이 잠자코 있습디다.》

《나도 김책동무를 만나보고싶소.》

초막의 벽을 향한 그이의 눈길에 오래동안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한 혁명동지를 그리는 정이 그윽하게 어리는것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가슴에 흘러드는 사사로운 감정을 눌러버리려는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초막안을 거니시였다. 오로지 당면하게 나서는 혁명군들의 련합을 생각하시였다. 무엇보다도 대표들이 모여앉아야 한다고 인정하시였다. 정적을 깨뜨리기 저어하며 림춘추가 조용히 계속했다.

《베이만에서는 소부대활동방침도 먹어들어가지 않아 김책동지가 안타까와합디다.

얼마전에 산다오허(산도하)에 대한 대부대공격이 상정되였을 때 적의 병력을 고려하여 최석천동지랑 참모부성원들이 그만두자고 제기했지만 론의하던 끝에 군장들의 주장대로 작전을 단행했답니다. 그 전투에서 전과도 있었지만 적들이 비행대까지 출동시키는 바람에 우리측 손실도 적지 않았답니다. 그 전투에서 오재영동무가 전사했습니다.》

《오재영이··· 전사했다구?》

놀라고 비통해하시는 그이의 목소리, 림춘추는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끌끌한 네 아들을 혁명에 내세운 오로인의 막내아들이여서 그이께서 남달리 아끼고 사랑하시던 오재영이···

지난 여름, 선들바람에 새초가 나붓기는 소할바령의 고개에서 소부대활동의 성과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래년에 꼭 다시 오겠다고 하며 떠나가던 오재영이···

그이께서는 비통한 심정을 안고 말씀이 없으시였다.

비감이 무겁게 드리운 정적을 깨뜨리기 저어하며 림춘추가 말을 이었다.

《산다오허에 대한 공격문제가 론의될 때 주보중군장이 나서서 손실이 두렵고 희생이 두려워서 적극적인 투쟁을 벌리지 못하겠는가! 지금 관내에서는 로농홍군뿐아니라 국민당군대까지도 일제침략을 반대해서 싸우는데 반일투쟁의 기치를 누구보다 먼저 들었던 동북의 혁명가들이 일본군의 무장이나 기동력을 두려워해서야 되겠는가!

조선동지들은 제나라 땅이 아니여서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베이만에 우수한 지휘관, 대원들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그들이 항일련군안에서 군장들을 무시하고 군사민주주의를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을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가 부탁만 하면 친히 부대를 이끌고 원정을 하면서까지 베이만혁명을 도와주셨다!

하고 노성을 터뜨렸답니다.

그래서 김책동지가 조선동지들만 모인 자리에서 처신을 잘못하면 중국동지들과의 사상의지적통일에 지장을 주고 협애한 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나아가서는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권위를 훼손할수 있다, 신중하게 처신해야겠다!

하고 얘기해주었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오재영동무가 일어서서 김일성장군님의 권위에 손상되는 사소한 일도 참을수가 없다, 우리가 비겁한 사람들인가, 산다오허를 치자, 우리 교도대가 앞장에 서겠다하고 열을 올렸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작전이 벌어졌는데 야간공격에서는 크게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날이 밝은 뒤에 기마대형으로 철수하는 과정에 적의 비행대가 날아오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부터 증원부대가 기동해오는 바람에 손실을 많이 보았답니다.

오재영동무는 교도대를 이끌고 방차대에 나가 포병들로 증강된 적들을 끝까지 견제하다가 포탄에 중상을 당했답니다. 반돌격하는 전투대의 앞장에서 달려나가다가 쓰러졌는데 말에 실려 부대에까지 돌아와서 그만···》

괴로운 침묵이 오래도록 초막안에 떠돌았다.

네번째아들까지 잃은 어버이의 가슴찢어지는듯 한 고통을 느끼며 주먹을 부르쥔 김일성동지의 눈앞에 소할바령에서 떠나가던 오재영의 름름한 모습과 더불어 소박하고 꿋꿋한 오로인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어리는것이였다.

베이만원정의 길에서 사령부전령병인 재영이와 함께 그의 부모들이 사는 산간마을에 찾아갔을 때 비탈밭머리에 나와 하직인사를 하던 로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아프시였다.

그이의 무거운 기분을 가슴가득히 느끼며 마음을 다잡고있던 림춘추가 마른 침을 삼키고나서 설분하듯이 말했다.

《제가 원동에서 떠나올 때 국제당에서 일하는 동지들도 주보중군장이 완고하고 주견이 세서 회의에 오지 않을수 있는데 다른 군장들과 정치위원들은 꼭 참가하도록 잘 말하라고 부탁합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잠자코 계시다가 갈린 목소리로 무겁게 말씀을 떼시였다.

《림춘추동무, 돌아가는 길에 수고스럽지만 베이만을 거쳐가야겠소. 2로군 군부에 들려 주보중군장을 만나 나의 인사를 전해주오.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분이니 정중하게 대하면서 우리의 의사를 잘 해설해드리오.

국제정세가 험악해지는 환경에서 동북의 항일무장력대표들끼리 만나서 토론할 문제들이 있고 또 국제당이 주관하는 회의에서도 흉금을 털어놓고 론의할 문제들이 있으니 같이 들어가서 마주앉고싶다고 말해주오.

아무일에서나 모여앉을 사람들이 다 모여야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는거요.

그리고 3로군 군부에 들려 김책동무를 만나 주보중군장을 기어코 모시고 들어오라는 나의 의사를 전해주오. 이번 걸음에 김책동무를 꼭 만나고싶소.》

《알겠습니다.》

림춘추는 심중하게 대답하고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베이만을 거쳐가자면 시일이 걸릴터인데 우리는 오늘밤에 당장 떠나겠습니다.》

《그러지는 마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만류하듯 림춘추의 손을 넘겨잡았으나 비감에 젖은 그이의 얼굴에 다른 표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먼길을 왔는데 하루라도 푹 쉬고 떠나시오. 나도 당장 바쁜 일들이 있지만 동무와 함께 있으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더 듣고싶소.》

《···》

《돌아가는 길이 촉박하므로 기차를 리용하시오. 대석두역에 나가면 동무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소.

위만군장교로 있으면서 <토벌사령부>의 비밀을 우리한테 전하는 련락원이요.》

그이의 너그러운 도량과 뜨거운 인정에 감격한 림춘추는 고개를 숙이고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