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1


 
 

제 2 장

11

 

통신원의 전달을 받고 만수툰을 떠난 지영갑이 사령부밀영에 도착했을 때는 고형근이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영갑이를 불러 혁명군의 지휘관이 된 조카와 이전날 그에게 애국심을 키워준 고모부와의 상봉을 마련해주려고 했었는데 발이 맞지 않아 아쉽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이제 고모부가 가져올 지원물자를 받으러가라고 임무를 주시였다.

《···영갑동무의 고모부는 좋은분이요.

애국지정을 깊이 간직하고있는 의로운분이였소. 고모부를 만나면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리고 지원물자를 받으면 혁명군의 이름으로 나의 인사를 잘하시오.》

사복차림을 한 네명의 대원을 인솔하고 약속된 지점으로 가는 지영갑의 가슴은 행복감으로 설레였다.

친일파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고모부를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만나주시였을뿐아니라 높이 평가해주시였던것이다.

그들은 허옇게 눈이 덮인 천보산 높은 봉을 바라보면서 동북간으로 방향을 잡고 벌판에 나섰다. 적들이 사방에서 싸다니므로 조심해야 했다.

망위에거우(명월구)에서 뻗어오는 길은 로도구를 시오리앞에 두고 구부러들면서 소잔등같이 펑퍼짐한 야산을 넘어가는데 길이 굽이돌아간 그 어름에서 정오에 접선하게 되여있었다.

큰길 굽인돌이가 내다보이는 등성이에 도착한 그들은 해빛이 포근하게 비쳐드는 숲속의 웅뎅이에서 쉬였다.

척박한 땅에 가둑나무숲이 엉성했다. 등성마루에는 구부러진 소나무가 몇대 서있을뿐 곡식밭도 없고 나무하러 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한낮때가 되여오자 도로에는 행인들도 없었다. 이따금 자동차들이 두세대씩 몰려서 지나가면 구름같이 휘말려오른 흙먼지가 바람결을 따라 부옇게 흩어질뿐이다.

해가 높이 솟아오르면서 날씨는 한결 따뜻해졌다.

지영갑은 웅뎅이에 내려앉아 가슴을 설레이면서 나무가지들사이로 앞을 내다보고있었다.

만저우(만주)에 들어와 고모네 집에서 학교다닐 때 고모부는 언제나 엄하면서도 다정하게 돌봐주었고 세상사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쳐주었었다.···

행군하다 수림속에 누워쉴 때나 눈에 덮힌 숙영지의 천막안에서 추위에 떨 때면 배부르게 먹고 편안하게 지내던 고모네 집에서의 생활을 자주 회상했었다. 그럴 때면 상념이 나래쳐 광복된 조국땅에서 혁명가의 보람을 누리게 될 생활도 그려보았고 늙은 고모부를 잘 모시며 도와줄 공상도 했었다.···

철이 지난 잠자리 한마리가 나무가지끝에서 맥없이 떠돌았다.

지영갑은 늦가을의 한산한 벌판에 뻗어간 도로를 긴장하게 바라보고있었다.

멀리서부터 완두콩같이 작은 물건이 구을러오면서 꼬리에 명주필마냥 먼지발을 휘말려올린다. 그 형체가 시시각각 뚜렷해지더니 굽을 안고 달리는 쌍두마차에서 마부의 채찍 휘두르는 모습까지 우렷이 가까와진다.

지영갑은 도로를 향해 나갔다. 투닥거리며 평보로 달려오던 말들이 길굽이에 멎어서자 의젓하게 생긴 풍신좋은 장정이 차문을 열고 내려서며 묻는다.

《여기서 옌지(연길)까지 몇리나 됩니까?》

《글쎄요. 우리는 로두구에 가는 사람들이오다.》

암호가 통하자 저쪽은 마차안에서 상등포장을 한 큼직한 지함과 양철초롱퉁구리를 내리운다.

《빨리 날라가시오.》

《고선생을 만나게 해주시오.》

하고 지영갑은 조급하게 부탁했다.

조봉길이 마차안에 대고 말하자 춘추외투를 입은 고형근이 문간에 나타났다. 흥분한 지영갑은 두손을 쳐들고 부르짖었다.

《고모부, 영갑입니다-》

고형근은 물러설듯이 흠칫 놀라며 중절모밑으로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살피다가 서둘러 발판을 내려섰다.

《아-니 이거!》

두사람은 서로 손목을 으스러지게 감아쥐고 격동과 감개가 뒤엉킨 얼굴을 마주보고있었다. 조봉길은 불안을 느끼면서 고형근에게로 다가갔다.

《사장님, 저쪽에 가 앉아서 회포를 나누십시오.···동무들은 빨리 이걸 날라가오.》

지영갑은 고모부와 함께 마차에서 초간히 떨어진 풀밭으로 걸어갔다.

《장군님께서는 고모부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황송하구만···》

고형근은 눈길을 들고 밀영에서 만나뵈온 장군님의 영상을 눈앞에 그려보다가 한 대원이 들고가는 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마분지통에 포장한 물품은 장군님께 드리는 애양피로 지은 외투고 이쪽 초롱의것은 몸보신을 위해 드리는 산꿀이다. 요전에 그곳에 가서 입고계시는 군복이 너무 얇은걸 보고 생각이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망위에거우(명월구)의 한 상회에 들려 상등품으로 한벌 맞추었다. 물건은 대단치 않지만 장군님께 드리는 진정으로 알고 받아주셨으면 하는 소원이다.》

《고맙습니다. 우리도 늘 걱정하댔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혁명군 전체 성원들의 이름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고모부가 만족해하자 지영갑이도 기뻤다. 고모부가 자랑스러웠다.

《고모랑··· 모두 잘 있습니까?》

《다들 잘 있다. 고모는 늘 네 걱정을 한다. 어디 가서 지내는지 소식조차 몰라 안타깝다구.》

지영갑은 일찌기 어머니를 여읜 자기를 친자식처럼 위해주던 마음좋은 고모를 눈앞에 그려보며 가슴이 쩌릿해져서 한숨을 쉬였다.

《고모한테 제 소식을 알려주십시오. 혁명군지휘관이 되였더라구··· 이제 일본놈들이 망하구 반갑게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십시오.》

고형근은 먼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쓸쓸하게 뇌였다.

《그렇게 됐으면 오죽이나 좋겠냐.》

《청민이는 어떻게 지냅니까?》

하고 지영갑은 남달리 정의감이 강하던 고모사촌동생에 대해 물었다.

《서울 나가서 제국대학에 다닌다.》

《제국대학··· 대단하군요.》

선망에 싸여 미소를 짓고 그렇게 뇌인 지영갑은 혁명군대원이라는 자부와 형님다운 아량으로 친근하게 말했다.

《청민이도 반일사상이 강할겁니다.》

《중학때부터 학생사건에 휩쓸려 경찰에 끌려다녔다.》

《청년들이 반일투쟁에서 선구자가 되여야지요.》

호기있게 말하면서 짐을 날라가는 동무들을 살피던 지영갑이 물었다.

《고모부, 군복천은 없습니까?》

《저 뒤에 가는 사람이 들고가는 두루말이가 옷천인데 많지 못하다.》

지영갑은 크지 않은 짐짝을 여겨보며 서글프게 웃었다. 미안쩍어하다가 조카의 유감스러워하는 표정을 눈치챈 고형근이 량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어줍어했다.

《군영에 보내는 옷감으로는 너무 약소한줄을 나도 안다. 물건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통제가 심해져서 큰 마음을 쓰지 못했다. 경제경찰이 수판을 튕겨가면서 파고드는 판이다.》

지영갑은 고모부가 여전히 예민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천필이 크지 않다고 마음속으로나마 유감스러워 한것을 후회했다.

《충분히 리해됩니다.

아무튼 고모부가 정말 큰 일을 했습니다. 저만하면 대단합니다.》

갑자기 너그러워지는 조카의 평가에 고형근은 엄엄해지면서 비난하듯 명백하게 속심을 밝혔다.

《큰일은 못된다. 그저 내 진정을 비쳤을뿐이지···》

《아닙니다. 물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지요.》

조카의 새삼스러운 칭찬에 고모부는 입을 다물었으나 지영갑은 자기 말에 무게를 실으려는듯 호기있게 계속했다.

《장군님께서는 저를 남달리 믿고 사랑하십니다. 이번에도 먼곳에 나가있는 저를 모처럼 불러서 고모부를 만나보라고 여기에 보내주셨습니다. 고모부는 애국지정을 귀중히 간직하고있는 훌륭한분이라고 하시면서···》

《가슴에 새겨둘 일이다!》

고형근은 감격하여 한마디 했을뿐 자기 심정을 더 어떻게 표현할길이 없어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털어놓고 말하면 저는 고모부가 여러가지 직책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일본고관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친일파가 되였는가 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장군님의 높은 신임을 받고있다는걸 알고는 자랑스럽고 행복했습니다. 과연 고모부가 비범한 인물이구나 하고···》

《난 비범한 인물이 못된다. 범속한 존재지.》

고형근은 터무니없어 허구프게 웃었다. 자기를 과찬하는 조카와 더불어 자신의 범속함을 개탄하는 웃음이였다.

《좌우간 앞으로도 우리 혁명군을 잘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어려운 때에 혁명군을 성원한 사람들을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알았다-》

하고 고형근은 조카의 뒤말을 눌렀다.

《심정이 우러나와 한 일이지 후날을 바래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는 거북해지는 자리를 피하려는듯 외투자락을 털면서 일어섰다. 말들에 엉걸이를 바로 걸어준 조봉길이 이쪽으로 오는걸 보고 마지막인사삼아 조카에게 한마디했다.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는 군사로서 의롭고 진중해야 한다. 난 가겠다.》

눈길을 마차쪽으로 돌리고는 조카를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가까이 온 조봉길은 너그럽게 웃으며 지영갑에게 말했다.

《자 이젠 헤여집시다. 사령관동지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였다고 말씀드려주시오. 그럼 안녕히!》

채찍소리가 울리고 마차가 떠나자 지영갑이도 동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의 기분도 흐리여있었으니 불쾌감을 누르고 서둘러가버리던 고모부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늘을 던졌던것이다.

밀영에 돌아온 지영갑은 사령관동지앞에서 접선의 전말을 상세하게 보고드리면서도 고모부와의 어성버성했던 작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불만스러워하던 고모부의 마지막말들에서 깊이없고 무게없는 자기의 사람됨을 어렴풋이 느꼈기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