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9


 
 

제 1 장

9

 

자기를 대하는 리극로의 소홀한 태도에 홍준걸은 마음이 무거웠다. 자기에 대한 홀시라기보다 혁명사업을 등한히 여기는것으로 느껴졌던것이다.

(총독놈의 오그랑수에 우리 사람들이 서로 의심을 품는구나-)

그렇게 짐작하면서도 오늘따라 자기를 소원하게 대하던 리극로의 속심을 알수없어 안타까왔다.

리극로가 총독부의 귀빈이 되였다고 언죽번죽 야유하던 서대석은 행패라도 부릴것같더니 오손도손 오래동안 얘기하다가 고형근이 나타나는바람에 일어서나갔다. 나가면서도 고형근이와의 극적인 상봉에 비틀린 너털웃음을 남기였었다.

리극로가 과연 서대석의 견해에 설복되였는가? 모든 합법적인 가능성을 리용해야 한다는 립장을 그리도 쉽게 버렸단 말인가···.

홍준걸은 진상을 밝히고싶었다. 꼭 밝혀야만 했다. 허나 그럴 경황이 없었다. 고형근이 하숙하던 아들까지 데리고 사라지니 리극로는 실망에 싸여 자기에 대해서는 망각해버린듯 했다. 그들의 사이가 벌어진 모양이였다.

아래층에 내려왔을 때 우연히 엿들은 리극로부부의 대화에서 지원의 길이 끊어지고 끼니를 이어갈 방도마저 궁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지성이 높고 의지가 강한 애국지사로 존경해오던 리극로가 먹고 살일이 암담해졌다 해서 지조를 굽히고 반일의 길을 버리겠는가···

그렇지않다면 어째서 공작원인 자기를 도외시한단 말인가.···

홍준걸은 그 까닭을 알고싶었다.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동안에 생활이 온통 뒤집히고 궁지에 빠져 의기소침해진 선생을 굳이 찾아서 이일저일 파고드는것이 온당치 않을상 싶었다.

홍준걸은 그 일로 속을 썩이면서도 당장은 어떻게든 리극로의 생활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문제를 의논해보려고 력사교원이며 지하조직원인 김시형을 찾아갔다.

(이런때 전명석동무가 서울에 있으면 좋을텐데···)

김시형은 하신정 뒤거리의 작은 단층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있었다. 언제나 아들의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웃방에 들어선 홍준걸은 책읽기에 정신이 팔린 김시형을 굽어보며 말을 뗐다.

《무슨 재미있는 책인 모양이군.》

그제사 방안에 들어선 사람을 알아본 김시형은

《흥!》

하고 코웃음치면서 읽던 책을 접어 동댕이쳤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엮어댄 거짓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들춰보던 참이네. 썩박대가리 식충같은 반역의 탕아들이라니까. 력사를 위조해도 푼수가 있지. 우리 나라 력사를 온통 일본놈의 시조에다 얽어매다니··· 량심도 도리도 없는 저런 사이비학자들은 만장중에 총을 쏘아 죽여야 해!》

홍준걸이 책표지를 들여다보니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찍어낸 《조선사》였다.

《그까짓 넝마지적같은 학자들의 처리는 후날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비단결같은 애국지정을 지닌 학자님을 도울 방도부터 의논하자구.》

홍준걸이 심중하게 한 말에 젊은 력사학자도 진중해졌다. 홍준걸은 리극로선생을 찾아갔던 사연을 상세히 말하고나서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당장은 변변치 않은 우리들의 월급봉투에 얼마큼 더 보태여가지고 자네가 직접 리극로에게 가져다드리는게 좋을것 같네. 적당한 구실을 붙여서 말이네.》

《그게 좋겠군, <목장주인>도 솔선 호응할거네.》

《목장주인》이란 제국대학중퇴생으로 교외에서 몇마리의 염소를 기르면서 우유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가는 그들의 지하조직성원이였다. 홍준걸은 장차 그 목장을 확장하고 산밑에 사료저장고, 우유저장고를 깊숙이 파서 유사시에 밀영을 꾸리며 시내에 우유를 배달판매하는 체계를 련락망으로 리용할 구상을 무르익히고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자기계획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있었다.

《그 서대석이라는 인물은 도처에서 말썽을 일으킨단 말이야.》

홍준걸이 근심스럽게 중얼거리자 김시형이 싱글싱글 웃었다.

《나도 한때 그 사람을 영웅으로 우러러 봤댔어··· 지금 제국대학 도서관에 뿌리를 둔 비밀독서회는 고스란히 서대석의 영향하에 있네.》

《마포구에 있는 광산기계공장에도 손을 뻗쳤더군, 거기 로조책임자를 휘여잡구 용금계의 직공들을 파업에로 부추긴다는거요. 탄압과 검거가 뻔히 내다보이는 길로 로동자들을 내몰려하거든···》

《그 사람을 제거해버려야 되네.》

력사교원이 결연히 말했으나 홍준걸은 응대없이 침묵을 끌다가 말했다.

《좀 더 두구보자구. 당장은 리극로선생의 생활을 도와줘야겠네. 자네는 어디까지나 제자로서 스승을 도와나선 형식을 취해야 하네.》

《그러지.》

이날밤 홍준걸은 길가의 도랑창에 오수가 흐르는 룡산구막바지의 철도로동자사택마을을 찾아갔다. 그곳 보선구의 로동자들로 꾸려진 지하조직의 책임자와는 《형님》, 《아우》로 통하는 사이였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변변치 않은 널바자를 둘러친 작은집 뜨락에 들어서니 《형님》은 마시진 풍로를 손질하고있었다.

두사람은 책시렁밑에 망치며 쇠줄타래가 딩구는 좁은 웃방구석에서 불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여기서는 횡포하게 구는 일본인보선구장에게 말대답질하다가 주먹싸움을 벌린 젊은 보선공이 철도검찰에 끌려갔다가 해고당한 사건이 있었다. 해고당한 로동자는 원쑤를 갚겠다면서 보선구장을 벼르고있고 동료들은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여 렬차탈선사고를 일으키자고 쑤셔댄다는것이였다.

홍준걸은 심중해져서 《형님》에게 물었다.

《해고당한 젊은이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

《영등포 보선구에 있는 그 사람 친형이 자기네 기관구에 일자리가 있으니 오라고 하는데 당자는 아직껏 가지 않고 두루 지냅니다.》

《렬차탈선사고를 꾸미자는 의견을 형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탈선사고가 나면 큰 소동이 벌어질텐데··· 좀 생각해보자고 했수다. 아우님이 올 때를 기다렸지요.》

홍준걸은 조직성원들의 생활형편을 상세히 료해하고나서 의견을 주었다.

《보선구장이 악독한놈이지만 개인적인 복수에 열을 올릴것이 아니라 일제를 반대하는 조직적인 투쟁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해고당한 청년을 잘 타일러서 영등포쪽에 옮겨가 그의 형과 힘을 합쳐 기관구나 보선구에 반일조직을 꾸리게 하십시오. 그게 진정한 복수의 길입니다.

렬차탈선사고를 꾸미는 문제는 형님이 생각을 잘했습니다. 지금같은 형편에서 그런 사고가 생기면 수배대상이 빤드름하기때문에 피해만 당합니다. 탈선이나 렬차전복같은 공작은 큰 효과를 노리는 경우에 단행해야 합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지하조직을 든든히 꾸리고 확대해가야 합니다.》

이날밤 홍준걸은 생활처지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선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남모르는 공헌을 하고있는 어학회의 형편을 알려주고 철도로동계급이 몇푼씩이라도 모아 지원사업을 하자고 호소했다. 《형님》이 그의 말에 공감해나서자 지원금이 모아지면 로동자대표들이 어학회에 찾아가 리극로에게 전하라는 의견을 주고 돌아왔다.

물질적인 성원보다도 정신적인 고무를 의도한 어학회에 대한 지원사업이 속속 이루어진뒤의 어느날 홍준걸은 다시 리극로를 찾아갔다.

여러모로 형세가 어려워지지만 어학회를 유지하여 《총력련맹》의 기발을 메고 다니면서 그 그늘밑에서 《조국광복회》하부조직을 확대하고 반일활동을 폭넓게 맹렬하게 벌리자는 일관한 취지에서였다.

음산한 가을날씨때문인지 십여일전보다 더 한산해보이는 뜨락에서 수척해진 여나문살되는 소년이 삼태기에 락엽을 그러담다가 래방자를 서름하게 쳐다보는것이였다. 아버지는 웃층 서재에 계신다는 대답에 홍준걸은 한가닥 안도감을 느꼈다.

2층에 올라가 책상앞에 앉아 원고를 집필하고있는 리극로의 모습을 본 그는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문턱을 넘어섰다. 생활난에 쫓겨 거리에 나앉지 않은것이 못내 다행스러웠다. 저쪽은 방안에 들어선 사람을 일별하자 랭담하고 무심한 눈길을 방바닥에 드리운채 말이 없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의 처지를 걱정하여 남모르게 뛰여다닌 그저간의 사연을 모른다해도 손님을 이다지도 박정하게 대할 사람이 아니였던것이다.

홍준걸은 긴장해지는 마음을 어설픈 미소로 가리우며 권하지도 않는 의자에 다가가서 앉았다.

《저는 선생님과 맺어진 인연을 저버릴수 없는 처지여서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리극로는 마지 못해 의자를 움직이며 엇비듬히 돌아앉았다. 목깃이 반들거리는 양복저고리우에 팔굽이 빠지고 섶도리가 볼모양없이 늘어난 낡은 쟈케트를 덧입은 탓인지 관골이 두드러지고 농사군처럼 둥그스름하던 그의 얼굴은 거무데데해지고 십년이나 겉늙어보였다.

홍준걸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었다.

《요전날, 서대석선생은 무슨 일로 오셨댔습니까?》

《조선어학회가 <총력련맹>에 들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조언을 주려고 왔댔소.》 하고 리극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애국을 지향하던 학회가 총독부의 어용단체에 망라되는것은 선량한 조선사람들을 친일의 길로 떠미는 행위라고 오금을 박습디다. 자기 한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모든 인사들과 민중들이 그렇게 인정한다는거요. 내가 그냥 잠자코 있으니 이런저런 실례를 들어나가다가 나중에는 만저우(만주)에서 일본군을 쳐부시는 김일성장군님도 바로 그런 로선을 견지하신다는거요.》

홍준걸은 어이없어 웃고말았다.

《서대석선생은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광복로선과 전략전술을 모릅니다. 오래동안 감옥살이를 하다나니 조선이나 만저우(만주)의 실정도 모릅니다. 지금 폭압이 심해져서 시위나 폭동은 고사하고 태업을 하거나 불평을 부려도 잡아족치고 감옥에 처넣는판인데 합법적인 수단들을 배제하면 지하투쟁을 어떻게 벌려나갑니까!

로선도 모르고 지도받는데도 없이 제멋대로 하는 소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을 자기편에 끌기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총력련맹>에 든다는건 심각한 문제요. 친일파가 된다는거나 같은거지요.》

《그래도 조직을 살리고 확대하자면 어학회를 보존하는것이 유리하고 어학회를 보존하자면 <총력련맹>에 들어야 합니다.》

홍준걸은 확고하게 말했다. 했으나 리극로는 무엇을 우려하는듯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

《서대석선생은 자기 말을 믿으라고 력설하면서 여태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비밀을 털어놓았소.

자기는 한때 지린(길림)에서 김일성장군님과 아래웃집에서 같이 지낸 막연한 사이인데 공산주의운동도 반일투쟁도 같이 했기때문에 장군님의 로선이나 전략전술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합디다. 감옥에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유격투쟁도 같이 했을거라면서···》

홍준걸은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서대석이라는 인간의 전모가 그 말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듯 했다. 여태까지 들은 소문, 일부 지식청년들속에 조장된 《대혁명가》라는 환상, 얼마전에 이 집에서 띄여본 실체··· 작은 키에 바라진 체구, 틀진 걸음걸이, 호방함을 드러내보이는듯 한 걸걸한 목소리, 자존심을 자극받았을 때의 비틀린 웃음과 만사를 굽어보는듯 한 조소어린 거만한 눈길···

더군다나 김일성장군님의 명성이 날을 따라 드높아지니 그 후광이라도 얻어 자기를 돋보이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여겼다.

《선생님, 생각해보십시오.》

홍준걸은 흥분을 누르며 말했다.

《우리 장군님의 년세가 어떻게 되길래 그 사람과 막역한 사이라는겁니까! 또 감옥살이를 십년이나 한 사람이 장군님의 로선과 전략전술을 어떻게 안답니까!

일반적인 견지에서 보아도 통치체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그 제도의 합법적수단을 널리 리용한다는거야 상식이 아닙니까 ?》

리극로는 침묵을 지키다가 의자에 바로 앉으면서 조용조용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댔소.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사람의 말이 근거없는 소리같지는 않습디다.

지린에서 가까이 지낼 때 자기는 직업적혁명가였지만 장군님께서는 육문중학교를 다니면서 혁명활동을 했답니다. 년소하셨지만 그때에도 벌써 비범한 기품이 드러나보였고 지린일대와 만저우천지에 명성이 드날렸답니다. 투쟁방도도 같이 모색하고 론쟁도 많이 했답니다.》

그렇게 말한 리극로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묻는것이였다.

《홍선생은 장군님을 모시고 싸웠다니··· 장군님이 어디 태생이며 선친들이 어떤분들인지를 아십니까. 그리고 본래의 관명이 무엇인지를?》

홍준걸은 사령관동지의 고향이 평양 만경대이며 부모님들도 애국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정에서 태여나 반일혁명의 길에서 순직하였음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지금 장군님께서 친히 파견하신 공작원인 자기의 신분을 의심하면서 그이의 래력과 신변사를 묻는다는것을 느끼자 분하다기보다 억이 막혀 입을 다물고있었다.

《서대석선생은 많은걸 알고있습디다. 장군님의 고향과 가족, 친척관계도 알고 삼촌 한분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사실도 알고있습니다. 장군님의 원래의 관명은 김성주랍니다.》

끓어오르는 의분을 누르며 홍준걸은 쓸쓸하게 웃었다. 서대석이 말했다는 그런 자료는 항간이나 감옥안에서 풍문으로 들을수도 있으며 어쩌면 일본경찰도 잘 알고있을것이였다.

떠도는 소문으로 알게된 자료를 큰 밑천으로 삼아 몸값을 올리는 《대혁명가》도 한심한 인물이지만 그의 말을 믿고 그편으로 기울어지는 리극로 또한 답답하게 생각되였다.

《장군님의 가계를 알고 기왕에 장군님과 막연한 사이였다해서 투쟁이 심각해지는 오늘날 장군님의 투쟁로선을 잘 안다고 할수 없으며 그 로선을 받들고 싸운다고는 더욱 말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홍준걸의 의젓한 반박에 리극로도 수긍은 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지난날 반일투쟁도 하셨고 동서방을 다 돌아다니면서 세상사를 환히 알고계시는 이름있는 학자선생이 어찌 떠도는 말이나 듣고 자기를 내세우는 서대석이 같은 사람의 견해에 기울어져 대사를 포기하려 하십니까. 선생님은 총독부의 요구에 응하는척 하면서 사전편찬을 진척시켜야 하며 그런 간판뒤에서 우리가 련계를 맺고 반일투쟁을 적극 벌려야 합니다.》

《사전편찬은 조선의 넋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필생의 과업으로 내세운 사업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사람들의 원망과 배척을 받으면서 민심을 등지고까지 그 일을 할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비밀결사로 말하면 힘을 뭉치는것이요 활동을 전제로 하는것인데 어느 한 고리라도 튀는 날이면 사슬처럼 다 끌려나오기 마련이니··· 주저들 합니다.》

홍준걸은 이전날 서울에 자리를 잡고 홍수로 인한 피해보수공사에 일공인부로 채용되여 보선구의 철도로동자들과 사귀던 때를 회상했다. 고된 로동과 구차한 살림에 대한 불평과 분풀이를 아무데서나 터뜨리군 하는 사람들에게 뜻이 있는 사람은 한때의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다, 억압에 항거하자면 뭉쳐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말로써 깨우치며 이끌어 반일조직을 꾸리기에 이르렀던것이다. 의식화되기만 하면 로동계급은 역시 혁명적이였다. 그러나 리극로는 생각이 많은 지식인이다.···

유감스러워하는 홍준걸의 심정을 느끼고 부득이한 자기 처지를 변명하려는듯 리극로가 말을 이었다.

《요즘은 지엔다오(간도)일판에 일본군이 꽉 들어찼다오. 뚱땅거리던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김일성장군부대는 종적이 없어졌답니다. 강성해진 일본군과 대적할수가 없어 쏘련경내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으니 누구를 믿고 반일조직을 확대하겠소.!》

홍준걸은 속이 섬찍했으나 태연한 웃음을 짓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일제가 퍼뜨리는 요언입니다.

장군님께서 반일투쟁을 그만두었다는 소리는 하늘에 해가 뜨지 않는다는것과 같은 허튼 소리입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은 싸우고 계십니다.》

홍준걸은 열정적으로 말했으나 상대는 입을 다물고있다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여기 앉아서야 진상을 어찌 알겠소. 나도 총독부에서 그런 소리를 떠벌일적엔 터무니없게 여겼지만 며칠전에 지엔다오에서 나온 친구까지 그렇게 말하는걸 보니 무근거한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소.》

홍준걸은 태연한 자세였으나 마음은 괴로왔다.

(과연 혁명군이 다른 곳으로 갔을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지금 어디게 계시는지···)

웃고계시는 장군님의 름름한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안겨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가? 우리 동지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있을가?)

리극로의 말에는 완강하게 거부의 태도를 취했으나 허전해진 가슴에 의혹이 짙어 안정할수가 없었다. 어학회를 《총력련맹》에 들라고 한것도 자기의 주관적인 주장이 아닐가, 그는 침착하게 일어서서 후에 다시 오겠노라는 인사를 남기고 그 집을 나섰다.

맑은 하늘이 시커멓게 어두워지고 눈앞이 휘청거려 걸음을 옮겨짚을수가 없었다. 매지구름처럼 커지는 의혹에 가슴이 답답해졌으나 자신을 다잡으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아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장군님께서는 부대를 이끌고 멀리 베이만(북만)이나 난만(남만)에 원정하셨을수도 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자주 있었던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기 생각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한갖 소원에 불과함을 느끼자 끓어오르던 피가 식어버린듯 기운이 빠지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굽이 쓰리게 눈물이 맺히는것이였다.···

홍준걸은 사령부를 찾아떠나기로 결심했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이께서 몸성히 계심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일도 손에 잡을수가 없었다.

(장군님의 전사인 내 심정이 이럴진대 장군님을 만나뵈온적도 없이 그이의 명성을 우러러받들며 반일활동에 나섰던 리극로가 지금같은 환경에서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가야 한다. 그이계시는 곳에 찾아가 이곳 형편을 상세히 보고드리고 다시 일떠나 더욱 폭넓은 활동을 벌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않고는 정세가 복잡해지는 때에 독자적으로 확신성있게 투쟁을 할수가 없다.···

이틀이 지나 홍준걸은 사령부를 찾아 길을 떠났다. 근무하는 학교에는 말미를 받아 고향인 풍산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렬차에 올라 동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