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7


 
 

제 1 장

7

 

찌뿌둥하니 흐리고 바람이 부는 아침에 차석진은 하숙집을 나섰다.

《공일인데 쉬지 않수?··· 홍선생은 언제나 부지런하셔···》

집주인이 뇌이는 칭찬비슷한 말에는 싱긋이 사람좋게 웃어보였을뿐이다. 거리에서는 전차의 종소리가 땡땡 울렸지만 사람들의 왕래는 여느때처럼 많지 않았다. 가로수들에서 락엽이 흩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어깨를 움츠리고 뛰여다니는 소년에게서 오늘호신문을 사들고 정류소에 온 그는 큼직한 표제들에 눈을 주었다.

《류언비어의 경계, 관민이 협력하여 배제함이 긴요. 총독부 국자회의에서 미나미총독이 거듭 강조》

요즘 가는곳마다에서 《방첩, 방공》에 열을 올리며 떠들어대는 총독의 몰골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경찰의 승급기간을 단축하는 조치 실시》

《법위반자들을 엄격히 단속!》···

전차가 멎어서자 차석진은 천천히 오르면서 벼르고 떠난 오늘일이 성사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랬다.···

장백의 밀영에서 사령관동지로부터 직접 임무를 받고 국내에 침투한지도 3년, 서울시내의 량정중학교 서무계에 취직하여 홍준걸이라는 가명으로 사람들을 사귀고 생활터전을 닦았었다.

그동안에 그는 같은 학교의 력사교원이 지도하는 비밀독서회에 가담하여 그것을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으로 만들었으며 룡산역 보선구의 철도로동자들속에 《반일회》를 꾸렸고 마포의 광산기계공장을 비롯한 몇몇 공장 로동계급들속에 반일비밀결사를 조직했었다.

그렇게 한해반쯤 세월이 흘렀을 때 서울을 떠나게 된 전명석의 소개로 조선어학회 간사인 리극로와 알게 되였으며 어학회의 서너명되는 상무성원으로 조직된 《조국광복회》하부조직의 지도를 맡아하고있었다.

어학회에는 경향각지의 어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으므로 드물게 경각성있게 찾아가군 했다. 찾아가서도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왼심을 썼으며 쓸데없는 교제를 피했다.

나이도 많고 지식도 많은 지식인들을 지도한다는것이 거북해서 어학에 관심하는 학도의 행색으로 대하군 했으며 아래층에 살고있는 리극로의 가족들과도 인사나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리극로와는 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군 했다. 학회의 활동과 어학자들의 동향을 료해하면서 조직을 확대하고 반일활동을 벌릴 방도를 토론했다.

리극로는 언제나 홍준걸을 례절겹게, 정중하게 대하였고 모든 형편을 아는대로 허심하게 털어놓으면서도 비밀조직을 확대하자는데 대해서는 서둘지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군 했다. 중국전선에서 일본군의 전과가 커지고 일본의 위력이 강성해지는데 따라 조선말과 조선글에 대한 탄압이 우심해지는 형세여서 사람들의 진속을 알기 어렵다는것이였다. 더구나 생활환경과 교우관계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각 지방의 어학자들을 반일조직에 망라시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이였다.

홍준걸은 탄압이 심해질수록 조선사람들의 반항심과 반일감정이 더 높아지는 이런 때에 반일조직을 더 확대해야 하며 특히 어학회를 통해서도 반일조직선을 지방에까지 뻗칠수 있는 유리한 가능성을 리용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설복했으나 농민형으로 둥그스름한 얼굴에 잔등이 실팍한 리극로는 무겁게 틀고앉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로동자들속에서는 형님, 동생으로, 혹은 친구로 통하면서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는 과정에 반일조직을 꾸리고 확대해가는데 조직이 꾸려져있는 어학회와의 사업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홍준걸은 자기가 어학회의 조직을 지내 믿고 노력을 덜 기울인것을 괴롭게 후회하면서 리극로에 대해 생각했다.

전명석의 말에 의하면 리극로는 반일사상으로 마음이 통하자 속에 있는 소리를 다 털어놓으면서 년령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대하더라는것이였다.

국내외를 격동시킨 보천보전투소식이 전해졌을 때에도 누구보다 흥분하고 기뻐한 사람이 리극로였다.

《내가 젊어서부터 구국투쟁에 뜻을 두고 찾아헤매던 조선의 령도자를 오늘에야 알게 되였소.

내 나이 조금만 더 젊었어도 만사를 버리고 김일성장군을 찾아가 그분밑에서 싸우겠는데···》

격동되여 뇌이는 리극로의 말에 충격을 받은 전명석은 며칠후에 슬그머니 서울을 떠나 지엔다오(간도)에 들어갔고 유격대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공작원이 되여 다시 나타났었다. 존경하는 스승을 중심으로 어학회에 비밀조직을 꾸리고 활동하다가 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홍준걸에게 공작을 넘겨주고 떠났던것이다.···

전명석이 있을 때에는 그처럼 열정적으로 나서던 리극로가 이즈음엔 왜 적극적으로 활동하려 하지 않는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기때문이겠는가.

홍준걸은 이 문제를 두고 많이 생각했다. 전명석이와 자기와는 리극로를 알고지낸 동기와 경위부터가 달랐다. 전명석은 이 시대의 조선청년으로 갈길을 찾아헤매다가 만난 스승이 리극로였으나 자기는 비밀조직을 지도할 과업을 받고 만난 대상이 리극로였다.

그러한 차이가 사람들의 호상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인것으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자기에게 결함이 있음을 깨달은 홍준걸은 장차로는 더욱 대담하게 진취적으로 활동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이무렵에 조선글로 된 출판물페간조치가 예고되고 조선말과 글에 대한 사용금지령이 떨어져 조선어학회의 존재자체가 불안해졌다. 총독부는 벼르고있은듯이 각가지 징발과 동원으로 사람들을 들볶았다. 량정중학교도 학업을 전페하고 시외의 비행장건설에 끌려나갔고 교직원, 학생들은 뙤약볕에 타고 찬비에 떨면서 고역에 시달렸다. 홍준걸은 공사장에서 일하면서도 공작임무수행에 대해 한시도 망각하지 않았는데 철수하기전의 어느날 놀라운 소식에 접했다. 미나미총독이 리극로를 접견하고 인정겨운 담화를 하면서 그의 평생소원인 《조선어사전》편찬사업을 구애없이 진척시키며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각방으로 보장해주겠다고 각별한 은정을 베풀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던것이다.

조선어로 된 3류급의 출판물까지 페간시키는 총독의 처사로는 너무나도 뜻밖의 사변이였다.

홍준걸은 서무계의 일을 빙자하여 한발 먼저 시내에 들어왔다.

각계각층의 조선사람들속에서 일어나는 리극로에 대한 비난과 규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비밀조직의 확대와 활동에 오히려 유리하리라고 인정했다.

그는 리극로를 만나 어학회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비난에 구애됨이 없이 총독이 요구하는 《총력련맹》에 가입하라고 권고할 생각이였다.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리극로도 집에 있을것이였다.

가회동 뒤동리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하늘색뼁끼칠이 퇴색하고 볼모양없이 된 널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휑뎅그렁한 마당에서 오동나무의 락엽들이 굴러다니고있었다.

현관앞에 다가가서 주인을 찾았다. 아래층 창문으로 살림집 웃방이 들여다보이고 책상앞에 사람이 앉아있는데도 대답은 없었다. 홍준걸은 그 방에 하숙생이 있다는걸 알고있었다.

다시 주인을 찾으니 아래방에서 나온 여나문살되는 소년이 아버지는 웃층 사무실에 계신다고 알려주고는 들어가버린다. 홍준걸은 현관에 들어서서 가파로운 널층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오른편의 넓은 사무실은 텅 비여있었다. 왼편으로 작은 방들이 있는데 앞쪽방에서 주인이 문을 열고 침울한 표정으로 래방자를 내다본다.

홍준걸이 고개숙여 인사를 하니 그제야 알아보고 어설프게 웃었다.

《홍선생이 오셨구만.》

처음 대면했을 때부터 젊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지만 선생이라는 말이 오늘 따라 더욱 마음에 걸렸다. 선생이라고 부를 때마다 친근감이 아니라 거리감이 느껴졌던것이다.

《선생님의 기분이 무거운걸보니 총독과의 접견때문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시는것 같습니다.》

주인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면서 건넨 말이였다. 리극로는 관골이 두드러진 둥그스름한 얼굴에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접견인지 뭔지··· 신문에는 크게 냈지만 실상은 호출령을 받고 가서 기다리다가 총감인지 누군지하고 잠간 마주 앉았을뿐이외다. 총독님이 오랜지기로 친근하게 여긴다면서 총독부의 시정에 어떻게 응하느냐, 무슨 어려운 일은 없느냐 하고 묻더니 어학회를 그냥 두겠으니 새로 발족한 총력련맹에 가입해야 한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건설에 조선의 지식인들도 떨쳐나서야 한다.··· 하고 훈계를 하더군.

그런데 글쎄 그 신문이 나가자 어학회마당안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편찬사업을 맡아하던 동료들도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그려.》

괴로운 하소연이였다. 홍준걸은 그의 심정을 리해할수 있었다.

《편찬사업을 하던분들은 지하조직성원들인데 그들이 나오지 않는건 주위의 분위기때문일겁니다.

선생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분위기를 보아가며 나오도록 해야지요.》

《···》

《총독놈은 지금 어학회가 하고있는 사전편찬이 한두해사이에 끝날일이 아니라는걸 내다보고 선심을 쓰는척 하면서 명망있는 인사들을 낚아서 민심을 끌어보려고 꾀하는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기회에 총독의 장단에 춤을 추는척 하면서 제볼장을 봐야 합니다.

<총력련맹>에 가입하십시오. 그놈들이 하라는대로 신사참배도 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도 외웁시다.

사전편찬을 하면서 그 그늘밑에서 반일조직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번에 지방학자들이 올라오면 파악있는분들을 조직에 받읍시다.》

책상에 의지하여 주먹으로 관자노리를 고이고 앉아있던 리극로가 탄식하듯 말했다.

《지방사람들은 고사하고 시내에 있는 사람들도 머리를 내밀지 않는데 어떻게 새 사람들을 받아들인단 말이요! 지금 같은 형편에서는 사전편찬도 못할것 같습니다.》

《사전편찬은 해야 합니다. 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을 찾아다닙시다. 필요하다면 평양, 함흥, 대전, 부산 등지에 찾아갑시다.

사전편찬도 하면서 반일조직을 확대해야 합니다.》

《···》

리극로는 가슴이 답답한듯 아무 응대도 없었다.

《총독부에서는 어학회에 혜택을 베푸는척 할겁니다. 그러루한 얘기는 없습디까?》

무거운 분위기를 가시려고 홍준걸이 웃으며 물었다.

《두루 암시는 합디다.···

만저우(만주)에 있는 김일성공산군을 무력으로 진멸하는 한편 쏘만국경밖으로 추방해버렸다는 말도 하고··· 》

《흥, 제놈들이 신문에 보도하지 않으면 조선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줄 아는 모양이군! 어리석기두··· 》

총독부가 하는짓들이 가소로와 코웃음쳤으나 리극로는 눈길을 숙이고 방바닥만 굽어보고있을뿐이였다.

홍준걸은 그저 요즘 리극로의 기분이 언짢아서 그러려니 하고 더 다르게는 생각지 않았다.

흥심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코트를 걸친 퉁퉁한 중년사나이가 대문께서 밖으로 나가던 하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청년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다.

《서대석선생이구만.》

리극로가 뇌이자 홍준걸은 일어섰다.

《앉아계시오. 일없습니다.···

만저우(만주)에 가서 활동하다가 공산당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사람인데 꺾이지 않고 여전히 그 운동을 하는것 같습니다.

홍선생을 여기 다니는 어학도로 인사시키지요.》

《아닙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저 사람과 낯을 익히지 않겠습니다. 좀 피해있겠으니 되도록 빨리 돌려보내십시오.》

리극로는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행패하러 온것 같은데 곁에 사람까지 없으면 야단이군.》

리극로는 문을 열고나와 복도건너편의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서류장에서 원고뭉테기를 꺼내놓고 말했다.

《여기 앉아 일하는척 하십시오.》

리극로가 나간 뒤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마당에서 얘기하던 두사람이 헤여졌다.

(저 청년은 어디로 가는걸가?)

홍준걸은 제국대학의 사각모를 쓴 청년이 골목길로 총총히 걸어가는 모습을 내다보다가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다 올라서더니 호걸스러운 걸걸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리극로선생, 집에 계셨구만. 난 또 총독님이 차린 오찬회에 초청돼 갔을줄 알았는데···》

리극로가 복도에 서서 기다린 모양으로 무엇이라 낮은 소리로 대답하며 방으로 들어가니 래방자는 서둘지 않고 따라들어가면서 떠들었다.

《영광이 온 삼천리에 진동합니다!》

비난의 뜻이 력력한 호언이였다.

홍준걸은 책상앞에 앉아 귀를 기울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소리만 웅얼거릴뿐 무슨 말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래방자는 복도에서와는 달리 낮은 소리로 말하고있었다. 리극로의 목소리가 도간도간 들리더니 어성을 낮추어 손님이 무슨 얘기를 늘어놓는것이였다.

(무슨 일로 왔을가?)

홍준걸은 신경을 도사리고있었다. 서대석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청년지식인들인 조직성원들에게서도 광산기계공장 용금계 로동자들에게서도 들어서 알고있었다. 제국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젊은 누이동생을 연줄로 청년학생들속에 비밀독서회를 조직했으며 몇몇 공장로조일군들과 련계를 취하면서 비밀조직을 꾸리고 《서울콩크릅》이나 《북풍회》같은 파벌에 속했던 인물들과 더불어 공산당재건운동을 벌린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서울시내의 청년학생들속에는 그를 두고 이름있는 공산주의자로, 대혁명가로 숭배하는 축들도 있는데 한때는 리극로한테도 다니다가 이쪽에서 반가와하지 않는 기색을 알고 발길을 끊었던 사람이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는데도 불청객은 돌아가지 않고 수군수군 이야기를 계속하고있었다. 홍준걸은 초조했으나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걸음을 내짚었던만큼 리극로와 하던 이야기를 아퀴지어야만 했다.

밖에서는 줄금줄금 비가 내렸다.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리극로를 고무하여 어학회의 반일조직을 확대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문득 골목길에 나타난 우산을 쓴 두사람을 발견했다. 이 집으로 오는 사람들이였다. 춘추외투를 입고 중절모를 쓴 중키의 신사와 함께 검은 대학생제복에 사각모를 쓰고 우산을 받쳐든 아까 나가던 청년이였다.

(형사가 아닐가?)

긴장하게 지켜보다가 책상앞에 자리를 잡고 낱말풀이를 한 원고들을 읽기 시작했다. 현관문이 열리더니 두사람이 들어서서 발소리를 죽이며 층계를 올라오는것이였다. 뒤에선 사람은 서둘지 않고 한계단 한계단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홍준걸은 심장이 두근거렸으나 지그시 마음을 다잡았다. 먼저 올라온 사람이 저쪽 사무실문밖에서 손기척을 울리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실례합니다. 저의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그러자 놀라며 벌떡 일어선듯 한 리극로의 목소리.

《아니, 그게 웬 소린가 선통도 없이!》

《무슨 큰 인물이라구 선통을 하고 다니겠소!》

목소리는 잔잔했으나 웃음기도 반가움도 느껴지지 않는 랭담한 말소리가 복도에서 울렸다. 했으나 리극로는 흥분을 드러내며 손님을 반겼다.

《청송! 이 사람, 어서 들어오게나, 어서!··· 이분은 서대석선생이라고 인망이 높은 활동가네. 인사들하게.》

열려진 문을 사이두고 마주선 사람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방금전에 놀라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던 방안과 복도에 침묵이 서리고 사람들은 모두 굳어져버린듯 했다. 살기가 뻗친듯 한 정적을 헤치고 걸걸하면서도 조소가 어린듯 한 서대석의 말소리가 울렸다.

《리극로선생, 그럼 난 가보겠소이다.》

뚜벅뚜벅 위엄있게 옮겨놓는 발자욱소리가 복도를 거쳐 층계를 쿵쿵 울렸다. 서대석이 아래층까지 다 내려갔을 때 넋 나간듯 조용히 서있던 청년이 《선생님ㅡ》 하고 아래를 향해 부르면서 콩콩 층계를 내려가는것이였다. 그러자 여태껏 방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래방자가 《청민아, 어딜가니?》

하고 불러세운뒤 나직이, 드틸수 없이 오금을 박았다.

《올라오너라!》

위엄있는 어조에 도전이라도 하듯 현관문이 삐거덕 열렸다가 쾅ㅡ 하고 닫기면서 드르릉ㅡ 떨렸다. 했으나 래방자는 아랑곳없이 아들을 향해 소리치는것이였다.

《너 저사람이 누군줄 알고 따라다니느냐!···

우리가 퉁화(통화)에서 살 때, 십년전 단오날에 꽹가리를 치고 폭죽을 터치면서 폭동군중을 이끌고 다니던 놈이다. 우리 집에 달려들어 문짝들을 부시고 가산을 적몰한다면서 몽치를 휘두르던 공산당패거리의 우두머리질 하던 놈이야.》

그러나 아들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버지, 서대석선생은 십년이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도 굴복하지 않고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대혁명가입니다.》

《듣기 싫다! 저런자를 따라다녀서는 얻을것이 없을뿐더러 신세를 망친다. 너 아직 정신이 덜든 모양이구나··· 좌우간··· 방에 내려가있거라. 내 곧 내려갈테니.》

그리고는 모두가 어정쩡해 서있는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청년이 층계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는 집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 집이 오늘 꽤 소란스럽군.)

홍준걸은 근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지엔다오(간도)에서 산다는 이 신사는 왜 왔을가 하고 불안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