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5


 
 

제 1 장

5

 

한강을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에 풀잎들이 흐느적거린다.

웃동을 벗은채 곽지를 지팽이처럼 옮겨짚으며 낮은 언덕우에 오른 미나미총독은 《전투모》의 채양을 이마우에 올려밀고 손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도시의 전경을 굽어보았다.

서쪽으로 기울어진 가을해가 국방색꼬창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가죽장화를 신은 중키에 몸집이 육중한 퇴역륙군대장의 둥그스름한 얼굴을 엇비듬히 내려비치고있다.

상전의 저고리를 왼팔에 정중히 걸고 뒤따라온 백테안경을 낀 서기관이 동안을 두고 멈추어서자 경무국 국장이하 여러 국장들과 중추원 참의들이 삽과 괭이를 짚거나 혹은 든채로 들쑹날쑹 멎어섰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없는 늙은 총독의 주름잡힌 뒤덜미며 한손을 허리에 얹은 권력자다운 자세며 그의 눈길이 더듬고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들은 오늘 이 언덕아래에서 《호국신사》가 들어앉을 터전을 닦았던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걸음에 총독은 자기가 살고있는 식민지의 수부를 관망하고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이 언덕에 오른것이다.

전차들이 불꽃을 튕기며 달려가고 달려오는 큰 거리 량편에는 창문을 번쩍이며 다층건물들이 늘어서있다. 그것은 일본이 끌어들인 문명의 산물이다.

도시의 구역마다에서 중심가의 뒤쪽에 검푸른 파도처럼 물결쳐간 기와집들의 바다는 민족의 색채가 력연한 이 나라 사람들의 세계였다. 그는 비록 이 나라의 통치자이지만 기와얹은 담장까지 둘러쳐 속내를 알수 없는 그 세계에 대해서는 의혹과 불신을 품고있었다.

미나미는 한강기슭에 이르면서 더 넓게 펼쳐지는 가느다란 구새통이 수풀처럼 솟아오른 빈민들의 주택지구도 더듬어보았다.

생존방식과 생활형편이 여하하든간에 지금 눈앞에 펼쳐진 90만인구의 도회는 자기가 최고권력자로 군림하는 이 나라의 중심지이다.

멀리서도 뚜렷한 공간을 이룬 정원과 후원에 둘러싸여 확연히 나타나는 왕궁들이 여기저기 바라보이는 이 력사유구한 나라에서 비록 한정된 임기로나마 최고권력자로 군림한다는것은 일생일대의 광영이며 자랑인것이다.

바로 이러한 권력자가 되려고 그는 어렸을적에 명패 하나만을 목에 걸고 고향을 떠나 도꾜에 올라가 사관학교를 거쳐 륙군대학을 나왔으며 또한 필마우에서 장검을 휘두르며 중대를 이끌고 로일전쟁의 포연속으로 달려나갔었다.

바로 그것을 위해 군직에 전념하여 륙군대신으로까지 출세하여 만몽의 정벌도 지휘했으며 칠순을 바라보는 오늘도 식민지의 백성들에게 《신국》일본의 넋을 심어주려고 《신사》의 건축을 구상하고 그 터전닦기에 앞장서나섰던것이다.

《각하, 여기가 어느모로 보나 명당자리입니다.》

등뒤에 다가온 경무국장이 터전을 잡은 총독의 탁견에 경탄하며 한마디 괴여올리자 미나미는 여기저기에 바위가 두드러져보이는 산세를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위치가 좋을뿐더러 시기 또한 적절하니 일각도 미루어서는 안될 때이다.》

경무국장의 굳어진 모습을 일별한 미나미는 그 뒤에 둘러선 관리들도 들으라는듯 위엄있게 말했다.

《중국과의 전쟁이 벌써 4년째에 접어드는데 만저우(만주)에 쳐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형세를 보이고있다. 지금은 벌써 무력전중심의 단계를 지나 사상전, 경제전중심으로 이행하였고 국가의 총력을 기울여 사생을 결단하는 전면전쟁으로 번져가고있다. 이런 때에 만저우에서 출몰하는 김일성공산군이 일중전선의 배후를 불안하게 하고있으니 중국본토에서 싸우는 황군은 앞뒤에서 협격을 받는 처지에 있다.

통수부에서는 지금 만저우의 반일무장부대들을 진압하고 추방하는 한편 그 세력이 반도에 흘러들지 못하게 각방으로 진력하고있다.···》

경무국장도 그밖의 관리들도 총독의 말에 새삼스럽게 생각이 깊어지는듯 머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미나미가 비록 말을 다 하지는 않았지만 국내의 형편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알고있었다.

해마다 계속되는 가물과 홍수로 인한 흉작, 황페화된 농촌, 전쟁으로 인한 물자의 결핍, 공급부족으로 증대되는 생활난과 비등되는 민중의 불만··· 이 모든것이 확연하게 반일감정으로 번져가고있으며 이런 속에서 반일책동이 우심해지고있다.

미나미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것은 만저우에서 활동하는 김일성무장부대의 영향력이였다. 관동군사령관으로 만저우에 군림하던 시절에 겨루어보았던것이다.

하여 미나미는 조선총독으로 부임되여온 첫날부터 그 세력이 국내에 흘러들지 못하게 방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이미 흘러든 분자들을 색출소멸하기에 심혈을 기울였던것이다.

《각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무우밑둥같이 길둥근 얼굴에 백테안경을 건 비서관이 귀띔하자 미나미는 《근로봉사대》가 바글거리는 언덕아래를 휘돌아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도로에서는 승용차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 모자의 턱걸이를 내리운 경찰들이 일매지게 박아놓은 검은 말뚝마냥 길가에 늘어서있었다.

승용차의 행렬은 남산기슭을 에돌고 광화문통을 지나 총독부정문으로 흘러들었다. 다른 차들은 모두 주차장으로 향했으나 총독의 차만은 넓은 후원을 바라보며 분수의 물안개속에 솟은 화려한 정각앞에 이르렀다.

차에서 내린 총독이 구름다리에 들어서자 정각안에서 기다리고있던 십여명의 기자들이 우줄우줄 일어서서 웃음을 흘리며 인사들을 건넨다. 《전투모》의 채양에 손을 올려 응대하며 다가가던 미나미는 그들속에 이제 한두달후이면 페간될 《조광》, 《시사평》 등 조선말잡지의 출입기자들도 끼여있음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페간시킨데 이어 조선글로 찍히는 신문이나 잡지는 모조리 페간시키려는 때에 그런 조치를 알고있으면서도 그 매체의 대표들이 자기 비위를 맞추려고 서두르는 정상을 보니 《백성이란 양떼와 같아서 채찍으로 갈기면서 몰아가면 된다.》는 통치리념이 떠올랐던것이다.

자리를 잡은 총독이 어루만지듯이 온화한 미소를 띄우고 래방자들을 둘러보자 기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년로한 총독각하가 《신성한 곽지》를 메고 근로봉사에 나선것은 새 국책수행을 위한 실천적인 모범이고 국민이 할바를 가리키는 말없는 계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나미는 과찬과 아부에 면구스러워하지 않을뿐더러 당연하게 받는 대접인듯 웃고있었다. 사실 그네들의 입을 빌어 그런 찬양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다망한 사무처리를 뒤로 미루면서 습관되지 않은 로동에 나서지도 않았을것이다.

정당정치를 초월한 익찬운동, 전민단합에 기초한 국방국가체계의 수립이 일본의 장래를 위해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틀에 박힌 장황한 해설을 늘어놓았고 이번에 정부가 제정한 국책에 따라 조선에서는 어떤 시책이 실시되느냐는 물음에는 이제 곧 총독부의 명의로 발표될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국책수행을 위해 가일층의 분발을 요한다고 넘겨버렸다.

기자들은 경제분야의 여러 문제에 관심했고 총독은 주인의 안목으로 고찰하며 대답했다.

《반도의 민중은 모두 근로에 힘써 국가의 부강에 이바지해야 하오. 지금 유럽에서 도이췰란드가 련전련승하는것은 바로 훈련된 국민이 훈련을 태만한 국민에게 어떤 위세를 떨쳐보이는가, 바꾸어말하면 신질서를 세우기 위해 매진한 국가가 현상유지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국가를 어떻게 압도하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으로 되고있소.

우리는 마땅히 도이췰란드의 모범을 따라배워야 하오.》

일찌기 중일전쟁발발을 전후한 시기, 즉 일본통치층내부에서 친영세력이 우세를 보이던시기부터 미나미 지로는 반영친도로선을 주장했으므로 영국과의 리해관계가 첨예하고 대립되고 승승장구하는 도이췰란드와의 동맹이 현실화된 오늘날에 와서는 누구나가 그의 선견지명을 찬탄해마지 않는다. 하여 그는 조선총독으로 있으면서도 정부와 군부의 상층들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었으며 천황도 그를 국가중신으로 정중하게 대하는터였다.

일본일간지의 특파원뿐아니라 조선에서 발행되는 각 신문의 총독부출입기자쯤 되면 이러루한 사정을 휑하니 알고있는터여서 되도록 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면서 총독의 치적이 두드러지는 분야에로 화제를 이끌어가는것이였다. 화기에 넘친 회견이 바야흐로 끝나가는 무렵에 한 조선인기자가 최근에 총독부안에서 조선인관리들을 거의 내보낸 인사처리에 대해 소견을 피력해달라는 요청을 하자 총독은 안장코아래의 다보록한 코밑수염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덤덤히 말이 없었다. 처음엔 모두들 가는귀가 먹은 총독님이 묻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것으로 여겼다. 사실 미나미는 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마흔살때에 륙군참모장으로 천거되였으나 가는귀가 먹은것이 흠으로 치부되여 물의를 일으켰었다.

허지만 결국 근무에 지장이 없다는것으로 락착되여 새 직책에 임명되였던것이다. 가는귀가 먹었지만 미나미는 그 부족점을 처신에 유리하게 써먹고있었으니 자기에게 리롭지 못한 말이면 못들은척 흘러버렸었다.

지금도 그는 코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내선일체》의 본심을 예리하게 찌르는 그 질문을 못들은척 해버릴가 하고 잠시 궁리했던것이다. 《내선일체》에 《동조동근》까지 표방하면서 민족의 혈통을 끊고 조선사람으로서의 넋을 온통 뽑아버리는 마당에서 총독부 각 부서의 말석이나 차지하던 조선인관리 몇명을 내보냈다는것은 하치않은 일이였다. 하지만 조선에서 친일파중에서도 상친일파인 총독부근무에 나섰던 사람들까지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적대시하는가를 명백히 보여준 증거였다. 그러므로 미나미는 이 문제를 두고 말썽많은 뭇기자들앞에서 움츠러들것이 아니라 도리여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아야겠다고 작정했다.

코밑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손으로 아래턱을 푸들히 내려쓸고나자 총독의 표정은 저으기 엄엄해졌다.

《사회여론의 대변자인 기자가 사회의 여론일수 없는 랑설에 귀를 기울이는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요.

반도민중의 치안을 확보하고 지도를 바로잡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수뇌부의 인사처리에 무책임한 역설, 비난을 일삼는자는 국책이 여하한 방향으로 나가는가를 모르는 무지각한 국민이고 반도민중의 선량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온당치 못한 인물이요.》

살벌해진 분위기속에서 회견을 마친 미나미는 위엄있게 걸음을 옮겨 정각층계를 내려갔다.

(명색이 총독부 출입기자라고 하는 놈팽이들속에도 저런 못된 놈이 있군!) 하고 그는 불쾌하게 생각했다.

국책을 쇄신하면서 조선에 대한 전면수탈을 강행하는 때인만큼 더욱 민심을 무마하고 민중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터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얼마전에도 정부의 시책에 충실한 경향각지의 하급관리들과 영향력있는 부인회원들로 《성지참배단》을 무어 일본에 건너가 신궁들을 찾아다니게 했으며 일본군대에 나가 죽은 조선청년들의 유골을 《야스구니진쟈에 안치하는 황은이 베풀어지도록》 조치를 취하는 등 갖가지 활약을 했던것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도 만저우개척과 건설을 위해 떠나가는 《근로봉사청년개척단》의 결성식이 총독부앞마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였었다.

워낙은 그 결성식을 경성역근처의 어느 중학교교정에서 하기로 되여있었으나 미나미가 계획을 수정하여 총독부앞마당에서 하라고 지시했던것이다.

《총독부는 보통 사람들이 출입못하는 신성엄숙한 기관이지만 제국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광석을 캐며 만저우땅에 뼈를 묻으려는 각오까지 가지고 떠나는 조선청년들에게 깊은 사명감을 새겨주기 위해서 빈 마당쯤은 빌려주는것이 좋다. 그네들의 자부심을 북돋아줄것이다.···》

그리하여 배낭을 등에 진 수백명의 조선청년들이 총독부앞마당에서 《국가》를 합창하고 궁성요배를 했으며 《정부》지시문을 전달받고 《황국신민의 서사》 제창, 봉사대의 강령 합독후 만세 3창을 웨치고 떠났던것이다.···

노예로 부리고 대포밥으로 써먹는 조선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유골을 《영예롭게》 건사하거나 신성한 마당을 빌려주는 등의 은총과 아량은 베풀수 있지만 조선통치의 중추기관인 총독부안에는 비록 신원이 명백한 친일분자라 해도 또한 하급관리의 직책에나마 조선사람을 쓰지 않으려는것이 미나미의 본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