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4


 
 

제 1 장

4

 

림춘추가 인솔하는 대오가 떠난 뒤의 멍쟈산(맹가산)일대는 텅비여 버린듯 조용했다.

이틀이 지난 저녁무렵에 경위중대 정치지도원 강준이 사령부천막에 올라와 한영옥이 어떤 낯모를 사람과 함께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흥분을 자제하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다부지게 생기고 눈이 새별같이 반짝이는 젊은이지?》

강준은 너부죽한 량미간에 주름을 짓고 주저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수수한 양복차림이지만 풍채가 좋은, 삼십이 훨씬 지나보이는 사람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안색이 흐리여져 묵묵히 서계시다가

《한영옥동무를 올려보내시오.》 하고 이르시였다. 그리고는 천막밖에 나가 무거운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거니시였다.

잠시후에 농촌아가씨차림을 한 한영옥이 올라오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쪽으로 마주 걸어가시였다.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소. 부모님들은 다 무고하시오?》

한영옥은 저녁바람에 나붓기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방긋이 웃었다.

《무고하십니다. 아버지는 장군님덕분으로 늘그막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이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굴에 주름도 적어지고 이전보다 더 정정해졌습니다.》

《살림이 어려울거요.》

《어머니는 집안일을 돌보면서 손님이 오면 담배를 팔아주고 아버지는 산에 가서 농사를 짓고··· 걱정없습니다.》

한영옥이 사령관동지를 안심시키려고 명랑하게 말씀드렸지만 그이께서는 늙은이들의 살림을 은근히 걱정하시였다.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늙은이가 산판에서 농사를 지으려니 헐치 않을거요.》

한영옥이 왕바버즈마을형편과 그 주변 적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돌아간뒤에 홈스판으로 지은 수수한 양복을 입은 떡 벌어진 풍신좋은 장정이 성큼성큼 올라왔다.

천막앞에 서계시던 사령관동지께서 마주가시자 저쪽은 색날은 암갈색중절모를 벗어들고 허리굽혀 인사드리면서 격한 심정을 터쳤다.

《장군님, 어찌 이렇게 상하셨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믿음어린 눈길로 마주보면서

《조봉길동무, 내 건강은 아무일 없소. 그동안 수고많았소.》 하고 뜨겁게 그의 손을 잡으시였다.

한동안 가슴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그이의 안색이 흐려있음을 일별한 조봉길은 눈길을 숙이고 마른침을 삼키더니 서두르지 않고 말을 뗐다.

《전명석동무를 부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만··· 전혀 뜻하지 않게··· 그 동무는 잘못됐습니다.》

《전명석이··· 희생되였다?···》

그이께서는 억이 막혀 굳어진듯 그 자리에 서계실뿐이였다. 불안한 예감을 느꼈지만 그렇듯 총명하고 대담하던 명석이가 전사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으셨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터질듯 한 가슴을 안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하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하고 물으신 그이께서는 고개를 숙이고 천막쪽으로 돌아서면서 갈린 목소리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기요.》

천막안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조봉길이 따라선것도 잊으신듯 출입구를 등지고 오래동안 말없이 서계시다가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앉소. 앉아서 얘기하오.》

그렇게 권하시고도 그냥 서계시다가 비감에 싸여 천천히 걸상에 앉으시였다. 한동안이 지나 조봉길이 입을 열었다.

《전명석동무는 얼마전에 전사했습니다.···

여름에 한번 <지엔다오(간도)반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제방에 잠간 들려 국내에 상품구입하러 갔다오겠다는 말을 하고 떠난뒤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 어떤 큰 장사군이 운송회사에 짐찾으로 갔다가 경찰에 잡혀갔다는 소문이 떠돌기에 안타까와서 두루 알아봤습니다. 잡혀갔다는건 경찰측에서 돌린 요언같습니다. 회사에서 나오다가 자살한걸 경찰이 병원에 실어갔답니다.

현공소 서무계장이 저하고 면목이 있는 조선사람이여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그자는 경찰서 밑도리에 친구들이 있어 비밀을 좀 알고있었습니다. 장사군이 운송회사에서 나올 때 매복했던 경찰들이 체포하려고 했으나 독약을 삼키고 자살했기때문에 병원에 실어갔답니다. 살려보자고 했지만 실패했답니다. 공책과 문방구라고 명세를 밝힌 화물속에 광목과 압착한 목화솜이 꽉 들어차있었답니다.

명석동무가 어디서 꼬리가 밟혔는지 아직 밝히지 못했습니다. 운송회사에서도 직원들이나 로동자들은 전혀 모릅니다. 사장은 알음직한데 의심을 살가봐 제가 타진해보지 못했습니다. 명석동무가 큰짐들을 부쳐가지고 다닌걸 보면 사장과의 교제는 좋았던 모양입니다.

물론 자기 정체는 숨겼을겁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괴로운 심정을 안고 묵묵히 듣고계시였다. 출입구로 흘러든 저녁해살이 나무걸상이 박혀있는 천막안을 밝게 비치고있었으나 땅바닥을 굽어보시는 그이의 눈에는 이슬기가 번지고있었다.

《운송회사사장이라ㅡ 전명석동무와는 이전부터 련계가 있은 사람이지···》

비분속에서도 의문을 품고 그렇게 외우신 그이께서는 나직이 한숨을 지으시였다. 전명석이를 만나면 그 사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보려고 하시였는데··· 희생되다니···

사령관동께서 그 사장에게 관심을 가지셨던것은 그가 일본인고관들과도 련계가 많은 명망이 높은 조선사람이라는 점이였고 또한 그 인물이 과연 8련대 소대장인 지영갑의 고모부가 확실한가 한것을 알고싶어서였다.

《그 사람이 이전에 반일운동을 하던 사람이 아니요?》

《그런 경력도 있는것 같습니다. 일본에 가서 대학도 다닌 지식인이고 재산도 있는 고형근이라는 사람입니다. 놈들의 어용단체인 <개척민>후원회회장이고 옌지(연길)시내 학교조합 조합장이라는 간판도 가지고있습니다. 만저우(만주)에 들어와 퉁화(통화)성쪽에 있다가 지엔다오에 왔답니다.》

그이께서는 알만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지영갑의 고모부가 틀림없는것 같았다.

지난 여름에 부대들이 분산활동을 맹렬하게 벌리던 때에 물자를 싣고 황거우령(황구령)쪽으로 넘어오는 자동차를 기습하고 안도 근처의 다리건설장에서 일한다는 토목기사 두명을 포로한 일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적정과 지방실정을 료해하는 과정에 지엔다오일대의 조선인유력자인 운송회사사장에 대한 자료도 나왔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때 그가 전명석이와도 관계가 있는 인물이여서 상세히 물으시였다.

고형근이라는 운송회사사장은 성장이나 성경찰청장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개척민》후원회 회장직도 가지고 《개척민》부락 토성락성식에도 참가하군 하는 큰 인물이라는것이였다.

포로들을 돌려보낸뒤에 심문과정을 기록하고있던 지영갑이 사령관동지앞에서 그 사람이 꼭 자기 고모부같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이께서는 의아해하시였다. 너무도 우연한 일이여서 꼭 꾸며서 하는 소리같이 들렸던것이다. 하지만 지영갑은 침울한 얼굴로 뜨직뜨직 고모부의 래력을 말했었다.

고모부는 원래 조선에서 반일운동을 했고 만저우에 들어와서도 류하지방에서 독립군들을 성실하게 도와주면서 조선인학교설립에 힘을 기울이다가 5. 30폭동때 피해를 입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려서 아버지마저 잃은 지영갑이 고향을 떠나 만저우에 들어온것도 고모네집에 의탁하기 위해서였고 중학생이던 자기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을 키워준 사람도 고모부였는데 십년이 지난 오늘 그 사람이 친일파로 되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진상을 알아보고 반일의 길에 돌려세우든지 그럴수 없는 경우엔 단호히 제거해버리겠다면서 자기를 시내공작에 파견해달라고 제기했었다.

당돌한 제기를 받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계시다가 대답해주시였다. 우선 그 사람이 과연 영갑동무의 고모부인가를 알아봐야 한다. 사람들속에 동성동명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이 영갑동무의 고모부라 해도 군중공작에서 개인사정이나 사사로운 감정이 작용하면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없다고 깨우쳐주면서 고모부가 설혹 친일파로 변했다해도 혁명가인 지영갑이 책임질수 없으니 마음놓고 혁명에 충실하라고 따뜻이 고무해주시였다.

그렇게 거듭하여 기억에 새겨졌던 인물이 오늘 귀중한 동지의 죽음과 관련되여 다시 등장했던것이다···

《그 사람이 전명석동무의 사망과 어떤 관련이 있을것 같소?》 하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전명석동무의 정체를 알았거나 눈치챘다면 경찰에 밀고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워낙 공산주의자들이나 유격대의 활동에 관심도 없었고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명석동무가 그자앞에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았을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단서를 잡지 못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

전명석은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했으며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키려고 했을가··· 그 사람을 자기공작에 리용하기만 했겠는가···

《지엔다오지구의 일반형편을 들어봅시다.》 하고 그이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자 조봉길은 자세를 바로잡고 대답을 드렸다.

《요즘 놈들이 길림에 있던 <토벌사령부>를 지엔다오의 중심소재지에 옮겨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정부나 현공소들이 있는 시가뿐아니라 지엔다오성도처에 일본군이 쫙ㅡ 깔렸습니다.》

조봉길은 손에 들고있던 모자안에서 땀받이에 묘하게 접어넣은 미농지를 꺼내여 그이께 드렸다.

《3호련락소에서 며칠전에 받은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농지를 펼쳐들고 깨알같이 박아쓴 글줄들을 훑어보시였다.

 

노조에토벌사령부 추계작전명령 제4호

노조에토벌대 명령

10월 9일 15시

옌지(연길)사령부

1. 토벌사령부는 북 및 서지구토벌대의 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2. 북 및 서지구토벌대장은 제2 및 제6 군관구에서 증파되는 아래의 병력을 각각 자기휘하에 편입하고 토벌을 일층 강화할것이다.

북지구

 

 

서지구

미나끼부대

···

···

데라까네부대

···

···

편입의 세부에 관해서는 제2 및 제6 군관구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해당 부대장들이 집행할것이다.

3. 나의 위치는 옌지(연길)사령부

토벌대사령관 노조에소장

 

김일성동지께서는 관동군작전명령 (갑 제378호)에 근거한 《토벌》부대들의 재편성과 지구별배치에 대한 《토벌사령부》명령 제5호와 그 별책에 주의를 돌리시였다. 거기에는 《토벌》요강으로

제1 비정

제2 토벌방침

제3 토벌중점

제4 임무 및 기타

제5 이동 및 지휘관계 전이의 요령

제6 통신계통요도

등이 서술되였는데 《토벌》중점은 《김일성비단》이라고 강조되여있었다. 부대배치는 《별책송부》로 첨부되였으나 복사한 사람이 미농지에 그대로 계속해서 기입하고있었다.

* 군사극비

노조에토벌사령부 추계작전명령 제5호 별책

군대구분

지엔다오지구토벌대

장 제4독립수비대장 야마사끼 소장

제4독립수비대

독립수비보병 제19대대

유선전신 9개분대

동소지구토벌대

장 독립수비보병 제21대대장 이또 대좌

독립수비보병 제21대대

제3군관구 혼성려단

···

동북소지구토벌대

장 독립수비보병 제9대대장 고바야시대좌

···

서북소지구토벌대

장 독립수비보병 제20대대장···

···

···

비고; 기타는 노조에토벌사령부 하계작전명령 제19호 별책과 같음,

···

사령관동지께서는 미농지를 지도우에 놓고 혼자소리로 외우시였다.

《이놈들이 굉장히 들이밀었군.》

《지금 지엔다오의 도처에서 일본군이 무리를 지어 돌아치고있습니다.

저는 이 정보를 받아쥐였을 때 가슴이 떨리고 이가 갈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부대들을 기동기재까지 받쳐서 들이미니 우리 동지들이 얼마나 피를 흘리고 어떻게 견디여내겠는가 하고 절망에 싸였댔습니다. 그러다가 영옥동무를 만나 샤오하얼바령(소할바령)회의소식을 들었습니다. 벌써 소부대들이 편성되여 땅속에 잦아든것처럼 각지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장군님께서는 앞일을 내다보셨구나ㅡ 하고 감격해서··· 정말···》

조봉길은 후련하게 숨을 내쉬고 눈을 슴벅거리며 뒤끝을 맺지 못했다.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하기가 거북했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슴이 쩌릿해져서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주력부대의 움직임에 큰 기대를 걸고 관심하는 정상이 절절하게 느껴지셨던것이다.

조봉길은 지방형편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군수기업의 개발과 확장을 위해 끌어들이는 징용자들로 인한 인구의 증대, 《통제경제》시책에 의해 밀려난 상공업자들과 쓸어드는 류랑민 등으로 하여 불어나는 실업자들, 경제의 전시체제화에 따르는 필수품의 결핍, 식량난, 제반배급제도의 문란, 밀매, 모리행위의 성행, 관권에 의한 탄압, 흉흉해지는 민심, 탄압에 기인하는 호상불신과 불화···

그러한 사회풍조로 하여 조선사람 이웃끼리도 곁을 주지 않고 속을 터놓지 않아 군중공작을 하기가 어렵고 조직을 확대하는 사업도 간고한 실정이였다.

《···농민들도 갖가지로 쪼들리고있는데 조선에서 <개척민>들까지 밀려들어 땅을 떼우고 집을 떼우고 심한 경우에는 부락이 통채로 밀려나 사방에서 헤매고있습니다. <개척민>들도 가난한 농사군들인데 땅을 대여해주고 말치레로나마 농사자금을 대부해주고, 조선총독부에서 발급한 만저우이주민증만 내대면 아무데 가서나 변변치 않은 혜택을 받게 되여있으므로 만저우땅에 와서 한살림 이룰것처럼 어리석게 굽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일제가 바로 그것을 노리고있소. 총독놈은 령락할대로 령락한 조선농민들을 <개척민>으로 들이밀면서 반일세력을 막기 위한 보루로 만들려고 책동하고있소.···

민족내부에 알륵과 대립을 조장하여 뭉치지 못하게 하는것이 남의 나라를 강점하고 다스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수법이요.

그러기에 우리는 일제의 악선전에 기만당하고 리용당하는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면서 인민들을 반일전선에 광범하게 묶어세워야 하오.》

조봉길은 눈길을 숙이고있다가 미간에 주름이 가득해지면서 조용히 말했다.

《<개척민>들의 경우엔 토성을 둘러친 집단부락에서 사니 접촉하기부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당국자들말고도 그네들을 비호해주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속에서 대표적인 자가 아까 말씀드린 고형근이라는 사람입니다. 만리타향에 살길을 찾아온 동포들을 돌보아주자고 하면서 토성을 쌓고 집을 지을 때부터 자기네 회사의 자동차를 내서 이사짐을 실어다 준다, 재목을 운반해 준다, 처식은행에 자금이 딸려 농사자금을 대부해주지 못하면 자기 회사돈까지 밀어넣으면서 도와주었습니다.

<개척민>들은 그 사람을 하내비처럼 여깁니다.

원주민들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변농촌들에 조선아이들을 위한 간이학교도 세우고 조선인 보통학교들이 총독부의 교육보조금을 받게하려고 활동도 했습니다. 조선사람들의 생활과 교육의 진흥을 위해 노력한다는겁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그 지방 조선사람들속에서 인망은 있겠구만.》

《그런축입니다. 성장이나 경찰청장과도 거래하는 인물이고 국내인사들속에도 련계를 가지고있어 영향력이 있습니다.》

수림속에 저녁그늘이 퍼지면서 천막안에 찬바람이 쓸어들고있었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추위도 잊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오랜 침묵끝에 그이께서 허리를 펴고 조봉길을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동무는 그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그 사람과의 공작을 어떻게 하려고 했소?》

조봉길은 나직이 한숨을 쉬고나서 소견을 밝혔다.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조선사람들의 고통을 위안하고 민심을 무마하고 안정시키는데로 움직이고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놈들이 바라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반일감정, 반일사상을 고취하고 인민들을 반일의 길에 묶어세우는데 결정적인 저애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리없이 제거해버릴가 하는 궁리도 했습니다만 민중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가봐 고려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전명석동무의 피해사건까지 겪고보니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 지하조직성원들과도 토론해보았고 이번에 사령부에 오는 길에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자를 감쪽같이 유인해서 깊은 산속에 끌어다놓고 정체를 밝혀보자는겁니다. 이번 사건의 전말로부터 시작해서 경찰들과의 내통관계, 국내인물들과의 련계 등을 속속들이 따져보고 속이 썩은 놈이면 처단해버리고 정 험하지 않은 경우엔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아주자는겁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봉길이 그런 인물에게 접근하지 않았을뿐더러 사상동향을 깊이 파악하지 않고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친일파로 락인하는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시였다.

조봉길은 한때 광산주의 서기로 잠복해있었고 지금은 《지엔다오반점》주인의 신분으로 시내의 지하조직을 지도하는 인물이였다. 그의 활동이 혁명정세의 요구에 따라서지 못한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샤오하얼바령회의사상으로 교양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그 사람이 공산주의자들을 미워하는것은 5. 30폭동때 봉변을 당했기때문일거요.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수 없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바로 잡아주는데서는 우리가 책임을 느껴야 하오.

지금 국내에는 고형근이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소.

일제의 탄압이 우심해지니 반일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일부는 굴함없이 투쟁의 길을 찾거나 해외로 망명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투항과 변절, 기회주의에로 굴러떨어지고있소.

지난날 <실력배양>이요 <민족혁신>이요 하고 부르짖던자들이 <민족개조론>까지 들고나왔는데 그것은 민족주의자인 안창호가 제창하던 케케묵은 반동사상이요. 고형근이라는 인물도 그런 사상에 물젖어 지엔다오땅에서나마 자기 뜻을 이루어보자고 돌아치는것 같소.》

《그 사람이 바로 몇해전에 안창호사망부고를 받고 장례에 참가하려고 서울에 다녀오기까지 했습니다.》

《고형근이 과연 전명석동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자라면 우리는 용서할수 없소.

이 점에서는 조봉길동무의 견해가 옳소.》

《···》

《그러나 사람들의 운명처리에서는 심중해야 하오.》

조봉길은 머리를 숙이고 심중하게 듣고있었다.

《새 전략을 관철하자면 사람들을 심중하게 평가해야 하며 친일경향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대담하게 접근하여 아량있게 포섭해야 하오.

<조국광복회 10대강령>에 밝혀진 사상에 기초하여 군중공작을 더 적극적으로 벌려야 하오.

무엇보다 먼저 영향력있는 인물인 고형근이와의 사업을 잘 해야겠소. 겉으로 나타나는 생활은 그렇다고 하고 본심은 무엇인가?··· 사상동향을 깊이 파악해야겠소. 그 사람 마음속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이 있고 일제를 미워하는 감정이 있다면 적극 고무하면서 반일의 길에 확고히 세워야 하오.

조봉길동무네 지하조직도 이 사업에 주목을 돌리시오. 우리도 여기서 공작원들을 파견하겠소.》

지금 주변에는 사령부의 기동예비대라고 할수 있는 오백룡소부대가 남아있을뿐이였다. 부대의 겨울식량을 확보하여 저장할 임무를 오백룡소부대에 맡겨야하겠지만 성시공작에도 준비된 공작원을 파견해야만 했다. 한동안 사색에 잠겨있던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당장 오백룡련대장을 그 공작에 파견해야겠소.》

조봉길은 눈길을 숙이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치레없이 뚝뚝해보이고 함경도농사군들처럼 텁텁하게 말하고 독이 오르면 울뚝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던 근거지시절의 그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한소대에 있으면서 그는 가까운 동무인 오백룡에게 《배짱군》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오백룡은 조봉길이 느리고 질기다 해서 《떡판》이라 불렀다. 그는 속이 깊고 인정미있는 오백룡의 성품을 잘 알고있었을뿐더러 그의 지식도 유격대에 입대해서야 문맹을 퇴치한 정도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오래 같이 지내느라면 총명하고 웅심깊은 그의 인간미에 탄복할수 있겠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공작이고 더군다나 대상자가 유산계급출신의 지식분자로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는 도고한 인물이였다.

반응이 없는 조봉길의 표정을 여겨보면서 그의 마음속생각을 짐작하신 사령관동지께서 미소를 짓고 말씀하시였다.

《대상자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만.》

《사령관동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걱정스럽습니다.》

《걱정하는 심정은 리해할만 하오. 그렇지만 지금 군중공작을 적극적으로 벌려야 할 때인데 상대방이 쳐다보인다고 해서 혁명군련대장이 거기에 눌리겠소? 혁명군대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군중공작에 나가는 때인데 련대장이 솔선해서 어려운 공작에 나가야지.》

《알겠습니다. 오백룡동무가 공작에 나가기전에 제가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해주겠습니다.》

《좋은 일이요. 우리가 속성강습을 줍시다.》

그렇게 아퀴를 지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여러해동안 지하공작에만 파묻혀있는 조봉길에게 신심을 주려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대상자의 경력이나 학력, 재산정도나 사회적지위에 위축되여서는 안되오.

지금 서울에서는 반일투쟁경력도 있고 외국류학도 한 명망높은 인사를 젊은 공작원이 지도하고있소. 그 공작원은 서울시내의 이름있는 인사들과 청년지식인들, 로동계급들속에서 활동하고있소. 물론 난관과 고충이 한두가지 아닐거요.》

사령관동지께서는 지엔다오지방형편을 이것저것 알아보시다가 시내에 공작대상으로 삼을만한 인물이 또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조봉길은 잠시 더듬어보고 대답했다.

《현공소 서무계장이 조선사람이지만 시원치 못합니다.

이전에 김정숙동무가 지방공작을 할 때 촌장질을 하면서 혁명사업을 도와주던 인물인데 최근에는 아주 변질되여 버렸습니다. 처남이 일본놈들을 미워한다고 집에서 내쫓은 위인입니다.

그 처남이 우리 조직의 련락원인데 매부에 대해서는 치를 떱니다. 친일파가 다 되였다고···》

《조봉길동무, 아까도 말했지만 일본놈들의 탄압에 굽어든다고 해서 사람들을 함부로 적의 편이라고 보아서는 안되오. 지금 일본의 통치배들은 조선사람들사이에 불신과 반감의 씨를 뿌리고 리간과 분렬을 조장하는 한편 선정을 베푸는듯이 잔꾀를 부리고있소.

조선사람들이 자기들을 반대하여 뭉치지 못하게 각방으로 책동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편에 끌어붙이려고 획책하고있소.···

군중공작이 얼마나 심각한 전투인가 하는걸 명심해야 하오.》

그이의 어조는 시종 진지하고 부드러웠으나 자기의 편벽된 관념때문에 거듭하여 말씀을 듣게 되는 조봉길의 얼굴은 자책감으로 하여 팽팽하게 굳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