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


 
 

제 1 장

2

 

높은 산봉우리들은 단풍이 들어 불그레하고 골짜기에서는 허옇게 물살을 번지며 개울이 주절거렸다. 바람이 불어지나면서 수림이 설레이고 락엽이 날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길을 걸으면서 워이정민(위증민)이 간절하게 부탁하던 난만(남만)혁명에 대해 생각하시였다. 그리고 이제 맹가산지구에 가서 일부 대원들을 원동의 훈련기지에 들여보낼 일도 생각하시였다.···

《사령관동지, 이 골안을 나서서 들판을 건너서면 고개에 이릅니다. 박중돈동무가 거기서 기다릴겁니다.》

최성택이 걸어가면서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중돈동무가 여기 와서도 싸움이랑 잘했는데··· 속은 썩였습니다. 사령관동지곁에서 떠나온걸 누구나 다 섭섭해했지만 중돈동무가 남달리 섭섭해했습니다. 저한테 제기도 했습니다.

사령관동지 가까이에 가서 자기가 떳떳한 유격대원이라는걸 보여드리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타일렀습니다.

누가 동무를 의심하는가,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를 믿어주셨고 따뜻하게 돌봐주셨는데 믿음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면 그래서 더 가고 싶다는겁니다. 그건 진심인것 같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수긍되는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시였다.

《나도 박중돈의 생각을 많이 했소.》

가슴이 뭉클해진 최성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걸음만 옮겼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더 말씀이 없으시였다.

걸으면서 이전날의 일들을 더듬으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열하원정과정에 적들에게 포위된 항일련군 제1군을 구출하기 위해 통화계선으로 행군해가던 여름의 일이였다.

전투임무를 수행하고 뒤늦게 출발한 부대가 주력부대와 떨어져 허룽(화룡), 옌지(연길)현경을 지날 때 식량공작이 제기되였다. 그러자 박중돈이 자진해나섰다. 그 근처에 자기가 친형처럼 여기는 박창술이라는 농민이 있으니 식량을 얻어올수 있다는것이였다. 그 농민으로 말하면 박중돈이 고향을 떠나 막벌이군으로 돌아다니다가 지엔다오(간도)에 들어올 때 해저무는 두만강나루에서 만나 낯설은 이국의 길을 함께 걸은 류랑민인데 성씨까지 같은 박가여서 친형처럼 의지하여 지내던 잊지 못할 사람이라는것이였다.

중대장은 박중돈을 믿고 대원 한명을 붙여 떠나보냈다. 허나 그들은 약속한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행처를 알아보기 위해 파견되였던 정치지도원이 신문 한장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거기에는 옌지지방에서 자위단이 공산비적 두명을 체포하여 호송하던 도중 한명은 탈출하였고 다른 한명은 총살했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온 부대가 실망하고 통분해하며 행군하던 어느날 박중돈이 나타났다.

과연 그가 하는 말도 신문기사와 비슷했다.

박창술이를 집에 가서 반갑게 만났으며 끼니를 대접받고 보리쌀 한짐씩을 지고 떠나는 때에 그 집에 자주 놀러다닌다는 장정이 나타났다. 살길을 찾아 지엔다오에 들어왔으나 일자리가 없어 가족도 못데려왔다는 사람이였다. 그 사람이 돌아간뒤에 그 집에서 나왔다. 산에 붙어 고개를 넘다가 자위단원들의 추격을 받았다. 동지가 부상당하니 박중돈은 그를 업고 피신하여 산밭머리의 감자움에서 밤을 새웠다. 피를 많이 흘린 부상자는 자기를 버려두고 부대에 돌아가라고 당부했으나 박중돈은 듣지 않았다. 상처를 처치해주고 물뜨러 나가다가 주변을 수색하던 적들과 조우하여 격투를 벌렸다. 홀몸으로 당할수가 없어 얻어맞고 짓밟히다가 동지와 함께 포승에 묶이워 현성으로 압송되는 신세가 되였다. 《정예》를 자랑하는 일본군과 맞서서도 용맹을 떨치던 박중돈은 자위단놈들에게 붙잡힌것이 원통했다. 분노에 치를 떨던 그는 말달구지가 벼랑턱을 돌아갈 때 결사의 각오로 뛰여내려 벼랑에서 굴렀다. 찢기고 터진 몸으로 어두워진 수풀속에 숨어있다가 포승을 끊어버리고 떠났다. 고생하며 산속을 헤메던 그는 한달만에 간신히 부대를 찾아왔다.

반가와하는 분위기속에서 비난의 기분도 느껴졌다. 혼자 살아온것으로 하여 량심의 가책을 느끼고있던 박중돈은 신경이 팽팽했다.

중대장이 그와 이야기를 하면서 탈출경위를 따져물었을 때 의심스러워하는 기분을 느끼고 박중돈이 분통을 터뜨렸다.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사람을 의심한다고 불평했고 그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중대장은 알아보는게 무슨 잘못인가··· 동무가 무얼 잘했다고 떠들어대는가 하고 준절하게 추궁했다. 그무렵 악전고투를 계속하던 항일련군 1군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배후타격으로 돌파구가 열려 포위환을 뚫고나왔으나 1사사장이 부대를 끌고 적에게 투항한 사실이 알려져 혁명군부대들을 격동시켰었다. 대오안에서 경계심이 날카로와지고 배신자들에 대한 증오가 이글거리던 때였으나 박중돈은 그때 그런 형편을 알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1군구출작전을 끝내신 다음 국내의 지하조직들을 지도하려고 진출하신뒤였다. 형편을 보고받은 련대장이 박중돈을 불러 울뚝거리며 제멋대로 밸을 쓰는, 자각성없고 자제력이 없는 혁명가답지 못한 품성을 엄격히 비판하고 멀지 않은곳에 전개하고있던 후방병원에 가서 일하라고 제재를 가했다.

모욕감을 느끼면서 억울해 하던 박중돈은 그무렵에 병원을 책임지고 사업하던 림춘추를 만나 사정을 털어놓고 동정을 구했다. 허나 림춘추도 박중돈이 영웅심에 들떠 옳지 못하게 처신했다고 책망했다. 중대장도 알아볼 필요가 있어서 물었겠는데 밸을 쓰면 되는가, 비판이 가혹하다 해도 근거가 있는 이상 허심하게 접수하고 고쳐야 한다, 혁명가는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해야 한다고 타이르면서 성실하게 생활하라고 타일렀다.

거듭되는 충고에 박중돈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른 모든 비판은 리해되고 수긍되였으나 중대장이 자기를 의심한데 대해서는 참을수 없었다. 전투부대에 있다가 밀영병원에서 일하게 된것이 불만스러웠는데 병원에는 유격대생활과정에 은근히 친하게 되였던 처녀가 있어 더욱 괴로웠다. 박중돈은 한영옥이를 조용히 만나 자기의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은 다 믿지 않는다 해도 영옥이만은 나를 믿으라고···

진작 사연을 알고있었던 녀대원은 분하고 가슴아파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그를 비난했다. 동무의 말을 믿는다 해도 혁명동지를 죽을 길에 내버리고 어찌 혼자서 살길을 찾았느냐, 동지를 구출하기 위해 싸울 생각은 왜 못했느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것이 우리의 맹약이고 의리가 아니냐! 하고 애통하게 부르짖었다. 박중돈은 억이 막혀 말을 못하다가

《형편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하는군. 두구 보오.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걸 알게 될거요!》 하고 결심을 다졌고 한영옥은 한영옥이대로 흥분해서 《알만큼 알았으니 다시는 저를 찾아다니지 마세요.》 하고 쏘아붙였었다. 속이 불끈했으나 박중돈은 돌아섰다.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다시는 한영옥이를 만나지 않았다.

그무렵에 국내진출에서 돌아오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사태의 전말을 상세히 료해하고 지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선 중대장이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고 못내 유감스러워 하시였다. 박중돈의 성격과 준비정도를 잘 알고 계시는 그이께서는 지휘관이 혁명적경각성을 가지고 사건을 해명하려고 한 의도는 좋지만 잘못을 저지른 대원의 개성과 의식정도를 고려하여 믿음을 주면서 너그럽게 교양하려고 하지 못한것이 잘못이였다고 지적하시였다.

적들에게 잡혔다가 탈출했다는 행동이 용감한 행위이긴 하지만 중대장의 립장에서 보면 대원의 말을 그대로 믿을수 없는 심각한 문제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돌아온 그 자리에서 의심을 앞세우며 따져물으니 천신만고끝에 부대를 찾아온 대원으로서는 반발심이 생길수도 있다. 이런 경우엔 다른 지휘관, 정치일군들과 협의하여 방도를 세우고 투쟁과정을 통해 그 대원을 검열하고 일깨워주면서 과오를 시정할수 있게 동지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박중돈동무는 혁명적세련이 부족하고 성미가 거칠어 심정이 우러나는대로 내닫는 제한성도 있지만 그렇다고하여 변절자가 되여 우리 대오에 기여들 인간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지휘관, 정치일군들은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함께 넘으면서 싸우는 동지들을 믿고 사랑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

준비되지 못한 대원이 일시적감정으로 반발한다 해서 내려누르고 화를 내면 엄중한 후과를 빚어내게 된다.···

사령관동지의 따뜻한 말씀에 자신을 깊이 뉘우친 중대장은 자기에게 혁명군지휘성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지휘원들도 모두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련대장이 박중돈에게 제재를 가한데 대해서는 탓하지 않으시였다. 다만 제재를 가하는것으로 끊치지 말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를 개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원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는 수림을 헤치고 행군하는 간고한 로정에서도 밀영병원의 짐들을 무겁게 꾸려지고 걸어가는 박중돈을 자주 만나주시고 함께 걷기도 하시면서 다정하고 심중하게 깨우쳐주시였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는 동안 박중돈은 자기를 여러모로 깊이 뉘우치게 되였다. 군중공작에 나가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해이됐던 일이며 추격에 걸렸을 때 침착하게 정황을 판단하고 머리를 써서 적들에게 골탕을 먹이며 빠지려고 할대신 한곬으로 뛰기만 했던 일, 적들에게 잡혀 호송되던 때에 동지를 생각하고 도와줄 궁리는 하지 않고 제한몸의 탈출에만 골몰했던 자기 본위, 부대에 돌아와서는 자신을 뉘우치며 반성할 대신 억울하다고 중대장에게 반발해나섰던 어리석은 태도···

만용을 부리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던 세련되지 못한 성품을 의식하고 수양을 쌓으면서 모자를 제쳐쓰고 다니던 버릇까지 고쳤다.

하여 초겨울에 잡아들어 첫눈이 내리는 어느날 침착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부대에 돌아갔었다.

그해도 다 저물어가는 12월초에 엄중한 손실을 당한 1군을 추켜세우기 위해 친솔부대였던 최성택련대를 새 전구로 떠나보낼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에 서서 가다가는 다시, 또다시 뒤돌아보군 하는 박중돈을 향해 손을 쳐들어보이며 전투를 축복했었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이 길에서 박중돈을 만나게 된다니 난파이쯔(남패자)에서 보았던 말없이 침착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감회가 새로와지시였다.

일행이 고개밑에 이르니 릉선우에 서있다가 달려내려오는 대원이 있었다. 박중돈이였다.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옷차림도 단정하고 모자도 바로 쓴 박중돈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셨다.

《사령관동지.ㅡ》

환희에 싸여 거쉰 소리로 웨치는 박중돈의 부름에 격정이 끓어오른 그이께서는 다가온 대원을 와락 그러안고 그리움에 목이 메여 부르시였다.

《중돈이!》

박중돈은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으며 흐느껴울었다.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대원을 굽어보시였다.

볕에 타서 더욱 검스레해진 칼칼한 얼굴을 숙이고 흥분을 참으려고 안깐힘을 쓰며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눈물을 훔치는 거동에서는 헤여져있는 동안에 참아오던 격정을 애써 누르고있는 심정과 의지력이 느껴져 가슴이 쩌릿해지시였다.

《난만(남만)부대에서 잘 싸웠다는 말을 들었소.》

그이께서는 목소리가 잠겨들어 말씀을 더 하지 못하시였다. 박중돈이도 말이 없었다.

《···》

그이께서는 박중돈의 지난날을 더듬어보다가 문득 한영옥을 생각하시였다. 그 처녀는 행군할 때나 숙영지에서 힘이 약한 동무들을 남먼저 도와주군 하는 투박하면서도 가식이 없는 박중돈의 인정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동무들앞에서는 퉁을 주고 웃어대군 하다가 은연중에 애정을 품게 되였었다. 허나 박중돈이 밀영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랭담해져서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지냈다는 사연을 그이께서는 그무렵의 엄혹한 사변들을 치르고난 썩 후에 다른 대원들을 통해 들으시였다.

투쟁의 길에서 맺어졌으나 인간의 사상과 본성이 온통 드러나는 준엄한 시련의 고비에서 갈라져버린 사랑···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음고생을 많이 한 박중돈을 위로하고 고무하고 싶으시였다. 이태전에 벌써 자기의 거치른 성미를 알고 각오를 든든하게 다졌으며 다른 전구에 가있는 동안에도 자기를 꾸준하게 수양해온 박중돈을 혁명에 충직한, 의젓한 대원으로 내세워주고 싶으시였다.

《중돈동무, 지금은 인민들속에서의 군중공작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나서는 때요. 그런 일에서는 중돈동무가 많이 분발해야겠소.》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으나 박중돈은 심중해졌다.

《사령관동지, 혁명의 요구라면 군중공작을 배우겠습니다. 더욱 분발해서 군중공작에서도 모범이 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대견해하시였다.

《옳소. 배워야 하오. 우리 혁명이 지금 그걸 요구하고있소. 군중공작을 광범하게 벌려 인민들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지 않고서는 조선혁명을 전진시킬수 없고 전민항쟁을 준비할수가 없소.》

박중돈은 고개를 들고 그이의 말씀을 귀담아듣고있었다.

《새 전략을 관철하자면 모든 유격대원들이 인민들속에 깊이 침투해야 하며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면서 유능한 조직자, 선전자로 되여야 하오. 그러자면 혁명군대원들자신부터 사상의식수준이 높아야 하고 인민적인 작풍과 방법도 배워야 하오.》

박중돈에게 투쟁전망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기다리는 대원들을 돌아보고나서 미소를 지으시였다.

《워이정민동지가 동무를 우리한테 보내고 싶어해서 내가 동의했소.

최성택련대장도 같은 심정이고 ···우리와 함께 가기요. 가서 본때있게 싸워보기요.》

박중돈은 칼칼해보이는 얼굴을 쳐들고 눈을 번쩍이며 좁은 어깨를 쭈욱 폈다.

《사령관동지, 제가 그동안 내내··· 속으로 안타깝게 바라던 일입니다. 고맙습니다.사령관동지의 신임에 보답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생각이 깊어지는듯 은근한 미소를 짓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알았소. 우리 가면서 얘기를 하기요.》

고개마루에 올라 한동안 휴식하고 최성택련대장이 이끌고 온 호위대원들을 돌려보낸 뒤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길을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