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1


 
 

제 1 장

11

 

긴장한 경계태세속에 밤이 깊어갔다.

날 밝을무렵에 골짜기아래에서 인적기가 난다는 신호가 왔다.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강준이 대원 두명을 데리고 내려갔다.

아래쪽에서 말소리가 들리더니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가가보니 전혀 뜻밖에도 박중돈이였다. 모두들 의아해서 어정쩡하니 지켜볼뿐이였다. 대원들의 초막앞에까지 내려오신 사령관동지께서도 놀라와하시였다.

지금쯤 천리밖에 가있어야 할 박중돈이 여기에 나타나다니···

그이께서는 짐을 내려놓고 앞에 온 박중돈에게 물으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박중돈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둔화(돈화)-투먼(도문)>철도선을 넘어서 닷새째 되는 날 저녁때에 산속으로 행군해가다가 메돼지무리를 만났습니다. 스무마리 더 되는 메돼지들이 가랑잎이 덮인 참나무밭으로 올라오다가 우리를 보더니 덤비고 몰키면서 골안쪽으로 우욱- 밀려갔습니다.

모두 어정쩡해있다가 정신을 차리구 총을 벗어들었습니다.

그때 림서기동지가 두손을 쳐들구 소리칩디다.

<가만- 적들이 들어두 방향을 모르게 한방만 쏴야 한다.>

그러구는 다섯명을 지명해서 목표를 잡게 하구 하나, 둘, 셋으로 사격구령을 쳤습니다. 총소리가 터진 후에 메돼지 세마리가 너부러지구 두마리는 빗맞아 비틀거렸습니다. 그 두마리까지 쫓아가서 끌어왔습니다.

소같은 메돼지를 다섯마리나 모아놓으니 모두 기뻐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분해서 말한마디 없었습니다. 사령부생각이 나고 동지들생각이 나니 마음이 무거워집디다. 림서기동지도 오래 생각하다가 모두 모여선 앞에서 말했습니다. 제일 큰 돼지는 각을 뜨구 살을 저며서 사령부에 보내자고 한다, 박중돈동무에게 지워보내자고 하는데··· 의견이 있는가?

모두 소리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누구 한사람이 떨어지겠다고 하면 저마다 떨어지겠다고 제기할 형세였는데 그때에는 아무도 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중돈이 가든 다른 누가 가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량식이 떨어졌을 사령부에 어서 보내기만을 바라는 심정들이였습니다. 그렇게 돼서 제가 저걸 지고왔습니다.》

《수고했소, 중돈동무.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수백리 산길을 걸어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소. 수고많았소.》

그이의 치하에 박중돈은 싱글벙글 웃었다.

《사령관동지, 어째 그런지··· 힘들지 않습디다. 무겁지두 않구··· 발이 씽씽 나갑디다.》

《수고했소. 수고많았소. 다섯마리나 잡았단 말이지.··· 다섯마리라.···》

사령관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겨 거닐며 그렇게 외우시다가 천천히 돌아서서 다가오시는 거동이 사뭇 신중하시였다. 박중돈의 앞에 와서 걸음을 멈추고 그의 표정을 여겨보며 엄숙하게 물으시였다.

《단꺼번에 다섯마리를 잡았다는게 사실이요?》

《···》

《한마리를 통채로 사령부에 보내면서 꾸며낸 소리가 아니요?》

그이께서 심중하게 물으시는 바람에 얼떠름해진 박중돈은 눈섭을 세우고 눈만 꺼벅거리다가 더듬더듬 섬겨댔다.

《저··· 사령관동지, 이자 말씀드렸지만 제가 글쎄··· 우리는 메돼지무리를 만났습니다. 가을메돼지무리를··· 소같이 큰 놈들인데··· 새끼들두 있었습니다.··· 잘 먹어서 투실투실한것들이···》

여기에 무슨 다른 설명이 필요한지 알수 없다는듯 박중돈은 눈을 껌벅거리며 그이를 쳐다보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여유를 주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고 진지하게 말씀하시였다.

《깊은 산속에서 메돼지무리를 만날수 있지.··· 그런데 다섯마리를 잡았다는게 사실이요? 대원들은 뼈를 우린 국물이나 마시고 고기는 저며서 사령부에 보내지 않았는가 말이요. 중돈동무,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오.》

모여든 대원들도 그를 주시하고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박중돈은 컴컴해진 눈을 어웅하니 뜨고 그이를 쳐다보며 설명했다.

《틀림없이 다섯마립니다. 림서기동지가 구령을 쳤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 세마리는 그 자리에 너부러지고 두마리는 비칠거리며 달아났습니다. 우리 동무들이 소리치면서 따라갔습니다. 이리뛰구 저리뛰구··· 갈팡질팡하는걸 둘러싸고 총탁으로 갈겼습니다. ···한놈은 고개너메까지 쫓아가서 끌어왔습니다. 다섯마리 다 큰 놈들이였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더 묻지 않으시였다. 박중돈이 더듬거리며 섬겨대는 설명을 들으니 사실 같기도 하지만 선뜻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언제든지 좋은 음식이 생기면 아끼고 남겨두면서 사령관에게 대접하려고 마음쓰는 대원들의 진정과 웅심깊은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터이였다.

땅바닥을 굽어보며 천천히 거닐고계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매돼지 한마리나 두마리쯤 잡아놓고 사령부에 보낼 살고기부터 큼직큼직 갈라놓으면서 자기들은 나머지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떠들어대는 대원들의 모습이 방불하게 떠오르는것이였다.

거기에 림춘추가 참견했을뿐더러 선도했을것이라 생각하니 그의 처사가 못내 유감스러우시였다. 다른때 같으면 고기짐짝을 지워서 돌려보냈을것이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없었다. 행군대오는 지금쯤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쏘만국경에 접근하고있을것이였다. 하여 그들이 지성을 담아 꾸려보낸 커다란 고기짐이 지금은 오히려 괴로움으로 되였다.···

눈을 꺼벅거리며 서있던 박중돈은 사령관동지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겨놓는 모습을 보고있다가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벗어놓은 짐짝있는데로 가더니 짐속에 손을 깊이 넣어 팔토시같이 길둥근 꾸레미를 끄등끄등 뽑아냈다. 그것을 들고오면서 묶은 매듭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돌리던 그는 노끈을 와락 끊어버리고 젖은 아마포를 풀었다.

《그건 무엇이요?》

사령관동지께서 다가오며 물으시자 박중돈이 대답했다.

《약재랍니다. 사령관동지께 꼭 드리라고 림서기동지가 꾸려넣었습니다.》

펼쳐진 아마포에는 가랑잎에 정히 싼 메돼지열 다섯개가 들어있었다.

그이께서는 여겨보시고 천천히 물러서서 몇걸음 옮기다가 행군대오가 움직이고있을 먼 동북쪽하늘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박중돈이 그이께 다가와서 말씀드렸다.

《림서기동지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떠나기 전날밤에 사령관동지께서 중돈동무의 처지를 고려하여 사령부에 남겼으면 하는 의향을 비쳤을 때 내가 생각이 짧다나니 무엄하게도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떨어지겠다고 하겠으니 대오를 인솔해가기가 어려우리라고 제기했댔소.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의사를 존중하여 데리고 가라고 하셨는데 행군해오는동안 내내 그 일이 마음에 걸려 발걸음이 무거웠댔소.

이번에 중돈동무를 사령부에 보내게 되면 동무의 소원도 성취된 셈이고 나도 역시 마음이 놓이오. 다른 대원들을 더 딸려보낼수가 없어 혼자 보내니 무거운 짐을 지고 사고없이 잘 다녀가기 바라오.···

그 말을 듣고 저도 감격해서 결의를 다지고 떠나왔습니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멍쟈산(맹가산)지구에서의 그날밤, 자정이 넘었으니 돌아가서 쉬라는 권고에도 움직임이 없이 초연히 서있던 림춘추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자기 임무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에 옴해 사령관의 의도를 옳게 파악하지 못한것만 같아 생각에 잠겨있던 그 모습에서도 사령관의 심정을 헤아리며 그 뜻을 굳건히 받들어나가려고 마음쓰는 성실하고 웅심깊은 림춘추의 사람됨이 정겨웁게 느껴졌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