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제2편 8

제 2 편

8

 

그이께서는 줄곧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시창밖으로 스쳐가는 고산지대의 풍경을 묵묵히 내다보실뿐이였다. 이끼덮인 바위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외통길이다. 왼쪽으로 검푸른 내물이 흘렀다. 음달진 계곡은 음침했다. 오른쪽 벼랑턱우에서는 단풍나무가지들이 누런 잎사귀를 흔들었다. 산비둘기가 날개를 치며 날아갔다. 그 등성이너머에서 싸늘한 바람이 불어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였다. 서병호, 리성조! 대조적인 두사람, 두 일군이다. 한편은 강인하고 전개력있는 지도일군이고 다른편은 조용하고 책임성있는 기술자이다.

서병호는 체소하고 병색이 도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뜨거운 정열로 자신을 불태우는 이악스러운 일군이다. 어린 시절부터 로동에 손이 익고 잔뼈가 굵었다. 곡절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우연적인 인연으로 두만강을 건너 쏘련에 건너간 그는 거기에서 열화같은 혁명의 리론을 배웠다. 지도경험도 쌓고 기술과 기계도 얼마간 배웠다. 광복후 자기가 배운 모든것을 조국건설에 써먹자고 달려나왔다. 주관적으로는 당과 혁명에 몸바쳐 일할 각오도 높고 결단성과 전개력도 있다. 반면에 리성조는?!··· 사생활에서는 비록 어리무던할지언정 기술자로서의 량심은 결백하고 굳건했다. 후실로 들어온 녀자로 하여 괴로움이 크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외동딸을 끔찍이 귀애하고 그에게서 삶의 희망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기술자로서 《조선의 전기불》에서 참된 삶의 긍지를 찾고있다. 그러한 사람을 서병호는 규탄하고 쫓아버렸다. 기술적인 타산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한것때문에, 지금 상태로는 당에서 맡겨준 무기생산과제를 수행하기 곤난하다고 솔직히 말한탓으로 처벌을 받았다. 과학과 기술이 도덕을 강요당하고있다. 과학과 기술이 존엄성 없다고 타매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것을 느끼시였다. 얼마나 무지한 완력인가. 혁명의 리론도 적지 않게 배웠다는 사람이 어떤 만용을 부리고있는가?!···

··· 험한 길이였다. 날이 어둡기 시작할무렵에야 목적지에 이르렀다.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선 협곡으로 새 인입선이 놓여지고있었다.

앞서간 서병호가 알려준 모양으로 험한 작업복차림의 리성조가 모자를 움켜쥐고 달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 마주가시자 그는 별안간 말뚝처럼 박혀버렸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급히 다가가시였다. 후들후들 떨고있는 리성조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성조동무! 그새 잘 있었소? 무척 수척해졌구만, 응?!··· 고생했겠소.》

앞코숭이가 터진 지하족, 그 한끝으로 발가락이 내밀려있었다. 그것을 감춰보려고 애쓰는 리성조를 보자 그이께서는 얼핏 눈길을 돌리시였다. 가슴을 저미는듯 한 아픔이 느껴지시였다.

《그래 집은 어데 정했소? 주택조건이 어려울텐데··· 아주머니가 몹시 불편해하겠구만. 돌보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오.》

《장군님!-》

목메인 부르짖음, 거침없이 흐르는 눈물, 그의 일신상에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서는 수척해진 두볼에 번쩍이는 눈물이 더 자세히 말해주고있었다.

《성조동무, 혹시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요?》

《장군님! 일없습니다. 이젠 다 지나간 일입니다.》

《무슨 일인지 말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떨리는 그의 어깨를 다그어안으시였다. 《자, 이젠 그만 진정하구 어서 말하오. 개인적인 비밀이라면··· 듣지 않겠소.》

《아닙니다. 장군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여서 차마 말씀드리기가··· 제가 책벌을 받고 여기로 나오자 처가 집을 나갔습니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리성조는 말끝을 맺지 못한채 더 깊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의 안해는 궁벽한 산촌생활에 질겁하였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돌격작업, 험한 굴간, 광차바퀴소리, 함마질소리, 남편의 꿰여진 장갑, 남의 집 웃간에 펴놓은 살림, 추위, 굶주림 등에 진저리쳤다. 이 모든것들에 습관되려면 다시 태여나야 할 장영실이였다. 그런데 별안간 남편이 패배주의자, 동요분자로 락인받고 철직되여 집에서 멀리 떨어진 철도인입선공사장에 나가버렸다. 그 녀자는 더이상 견딜수 없어 남편도 만나지 않고 어데론가 사라지고말았다. 주인집 처녀애가 리성조에게 가져온 편지엔 이렇게 씌여있었다.

《저는 가요. 당신을 원망하며 잃어진 내 청춘을 찾으러 가요. 하지만 이제 어데 가서 그것을 찾겠나요.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떠나가요. 당신도 더 비싼 대가를 치르기 전에 생각을 고쳐하세요.
영실 씀.》

이렇게 되여 두 심장이 한세계를 소유할것을 약속한 그날로부터 시작되였던 한 가정사는 끝나고말았다. 리성조는 지금껏 감췄던 가정사정을 그이앞에서 털어놓고나니 어둡던 마음이 한결 밝아지는듯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험하게 된 그의 손우에 자신의 손을 다정히 얹으시였다.

《안해를 사랑했소?》

《···》

《솔직히 말해보오.》

《장군님! 그 변변치 못한걸··· 그래두 안해라고 사랑했습니다. 그런 속물인줄은 모르고··· 제가 정말 바보였습니다. 장군님!》

《성조동무, 전쟁이 가혹하니 시련을 이겨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는거요. 하지만 다들 이겨낼거요. 전쟁때에 제일 무서운건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어버리는거요. 이제 동무의 안해도 이 전쟁을 치르면서 많은걸 리해하게 될거요. 많은것을!···》

그이께서는 몹시 수척해진 리성조를 눈여겨보며 고무적인 말씀을 오래 계속하고싶으시였다. 지금 그 어느때보다 더 사랑이 필요한 때 그의 안해가 사라졌다.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더 따뜻한 인정이 요구되는 때 사람들은 마치 그가 반혁명이라도 한듯이 외면하고있다. 그에게 힘과 열정을 분출하는 사색을 되돌려주어야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 그가 버림받는 존재로가 아니라 자기가 순결하고 정직하고 요긴한 존재로 되기를 그 어느때보다 더 열렬히 갈망하고있음을 잘 알고계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성조동무, 동무와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왔소.》

《저와 말입니까?!》

《그렇소. 동무한테 왔소. 전기관리국 기사장동무와 의논하려고 말이요.》 그이께서는 산턱을 깎아낸 로반우에 리성조를 앉히고 자신께서도 무릎을 꿇고앉으시였다. 그다음 가까이에서 손에 잡히는 나무꼬챙이를 꺾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시였다. 《이제 전기문제를 의논해봅시다. 기사장동무!··· 주의해 보시오. 여기는 신의주, 여긴 만포, 이쪽은 강계, 또 이만쯤 해서··· 개천이요. 수풍발전소는 여기 있고 우리가 관심하는 군수공장들인 540호공장, 550호공장, 560호공장들은 다 이쯤에 있는데···》

눈물에 젖어있던 리성조의 두눈에서 광채가 번뜩이였다.

《무슨 의민지 알만하오?》

《예, 장군님!··· 알만합니다.》

《그럼 됐소. 이제부터 동무가 말해보오. 수풍전기를 끄는 고압선이 어데로 이어졌소?》

리성조는 너무도 벅찬 환희에 몸을 떨었다. 돌멩이를 하나 집어들자바람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죽죽 금을 긋기 시작하였다.

《장군님! 여깁니다. 여기서부터 이렇게 삭주- 구성- 태천-박천!··· 이렇게 뻗었습니다. 여기가 제일 가깝습니다. 박천에서, 맹중리에서 끌어올수 있습니다.》

《그렇단말이지. 그러니 문제가 풀렸단말이지?》

《예, 장군님, 풀렸습니다. 전기가 풀렸습니다.》

《성조동무!》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의 어깨를 힘껏 껴안으시였다.

《됐소. 이젠 한시름 놓게 됐소. 성조동무, 그래서 동물 찾아온거요!》

리성조는 걷잡을길 없는 기쁨과 더불어 다시금 목이 메고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어째서 나는 이 생각을 못했는가! 손꼽히는 전기기술자이며 수리공학자인 내가 어찌하여 이런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가?!···)

그것은 비범한 안목과 통찰력은 물론 크나큰 심장을 지니고서만 가능한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성조를 다그어안은채 허리를 펴고 일어서시였다.

《성조동무 나는 이 중대한 일을 동무에게 맡기려 하는데··· 동무 생각엔 어떻소?》

《제가 말입니까?》

《그렇소, 그런데 지금 그곳은 적후요. 그런만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요.》

《장군님!》 꺼칠해진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빛났다. 《신임에 보답하겠습니다. 장군님, 꼭 해내겠습니다!》

《고맙소. 성조동무! 내 그럴줄 알았소.》

그이께서는 다시금 그의 어깨를 힘껏 안아주시였다.···

다음날 김책은 수풍발전소의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별동대를 조직하였다. 전기부문 로동자 5명과 송전작업용기자재를 실은 화물자동차가 배정되였다. 그들을 호위하기 위하여 보병 한개소대(28명)가 동원되였다. 별동대의 책임자로는 전기관리국 기사장 리성조가 임명되였다.

출발하기 직전에 김책은 리성조에게 자기가 애용하던 권총을 넘겨주었다.

리성조의 별동대는 적후에로의 멀고도 위험한 길을 떠났다.

 

한밤중부터 세찬 눈발이 고산지대를 뒤덮기 시작하였다. 갓난애기 주먹만큼씩한 눈송이들이 어찌도 극성스럽게 퍼부어지는지 승용차의 시창유리닦개가 겨우 움직일 지경이였다. 허리를 쭉 펴고 시창유리에 눈이 닿도록 앞을 내다보던 운전사도 끝내는 혀를 내두르고야말았다. 강부관장이 엄하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는 자기보다 퍼그나 손우인 김덕삼운전사에게 평시엔 깍듯이 존대하지만 일단 차에 오르면 돌로 깎은듯 꼿꼿이 앉아서 위엄을 보이군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직도 높고낮은 10여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것을 잘 아시는것만큼 하루종일 긴장하게 운전대를 잡고있는 운전사를 좀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차를 멈추오. 여기서 좀 쉬였다 가기요.》

차가 멎었다. 부관장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군님! 너무 늦지 않습니까?》

그의 말은 최사작전국에 도착할 시간을 말하는것이였다. 그곳에서 전선형편을 분석하시고 새로운 대책을 세우시려면 또 한밤을 지새야 한다는것을 잘 아는만큼 그대로 달려야 하지 않을가 하는 의미였다.

《일없소. 이럴 땐 밖에 나가 허리를 펴고 찬공기도 마시며 좀 쉬는 편이 나아. 자, 강동무도 나가보자구. 눈이 굉장하구만··· 함박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던데···》

어느 령밑이였다. 오불꼬불 비꼬이며 쏟아지는 눈발, 높다랗게 치솟은 산봉우리들도 눈에 파묻히는듯 했다. 어깨우에 내려쌓이는 눈송이들을 맞으며 그이께서는 천천히 몇걸음 오가시였다.

(지금부터 새해 영농준비를 다그쳐야 한다. 부림소, 종곡··· 전쟁으로 집을 불태우고 가장집물을 잃은 인민들의 생활안정문제도 반공격준비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풀어나가야 할 일들은 날이 갈수록 더 산더미처럼 쌓이고있었다. 그이께서 각 전선 련합부대들을 직접 지휘하시므로 김책이 내각사업에 돌아왔지만 그이의 결론, 비준, 방침을 기다리는 문제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어제 오늘에 제기된 문제들만 하여도 단기작물현물세징수정형보고, 국가량곡수송대책, 새해춘경사업보장을 위한 협의, 중앙예산 4. 4분기예산, 외국주재 국가기관들의 분기예산, 각 성의 불합리한 기구정원개편, 내각전원회의안건, 거기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국전선사업까지도 그이의 가르치심을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다시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김덕삼운전사는 잠간사이에 깊은 잠에 들었었다. 쌓이고쌓인 피곤이 일시에 밀려들었던것이다. 어찌나 깊이 잠들었던지 모자가 뒤로 흘러내렸으나 그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부관장이 그를 깨우려 했으나 김일성동지께서 막으시였다. 피곤해하는 그에게 다문 얼마라도 눈을 붙이게 하려고 우정 차를 멈춰세우신것이다.

그이께서는 아까 보시던 오늘호 중앙신문들중 《민주조선》을 펴드시였다. 실내등불빛쪽으로 신문을 돌려가며 차례로 보시였다. 거기에는 갖가지 전선소식은 물론 신계목장의 19살난 처녀가 20여마리의 소를 몰아 천리길을 걸어온 소식, 곡산인민유격대의 첫 활동, 구월산에서의 전투, 각지에서 청소년근위대들의 조직에 대한 소식들이 편집되여있었다. 이러한 신문기사들을 읽으실 때마다 그이께서는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는 인민의 모습을 보았고 거기에서 크나큰 고무를 받으시는것이였다.

신문에는 또 남조선에서 후퇴하는 인민군대를 따라 들어온 김규식일행을 축하하여 베푼 내각연회소식도 상세히 실려있었다.

얼마전 김일성동지께서는 김규식박사일행의 도착소식을 보고받고 그들을 축하하는 연회를 마련할데 대하여 홍명희부수상에게 말씀하시였었다.

그러자 홍명희는 무척 놀라와했다.

《연회까지 말입니까?··· 장군님! 지금 나라가 어려운 후퇴를 겪는데 어떻게 연회까지야···》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괜찮습니다. 후퇴야 우리가 주동적으로 결심한것인데 후퇴를 한다고 그만한 여유도 없겠습니까. 우리를 따라 먼길을 온 분들인데 잘 환대해줍시다. 더우기 김규식선생이야 진갑도 썩 지나고 건강도 좋지 못한 몸이 아닙니까. 환영연회를 차리고 저를 대신하여 부수상선생이 연설도 잘하여 따뜻이 맞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광복전 우익민족주의거두들중의 한사람인 김규식으로 말하면 일찍부터 시대착오적인 반공리념을 낡은 민족주의두루마기에 싸안고 한생을 반공에 바쳐온 사람이였다. 1945년 11월 김구와 함께 상해림정의 요인 제1진으로 남조선에 들어온 김규식은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조직된 《민주의원》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의 부의장으로 다음 제1차 쏘미공동위원회가 결렬된 후엔 기만적인 《좌우합작운동》을 벌리는 등으로 미제의 조종에 적극 추종하였다. 1946년 12월 《남조선과도립법의원》의장직에 나선 때부터 그는 반공의 전초선에서 더더욱 맹활약을 시작했으나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참가를 기점으로 돌연히 사상전환의 기로에 들어섰다.

자기 생애의 마지막 정거장을 향하여 줄달음치던 그는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를 만나뵙고 혼탁된 정치계에서 암중모색하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독립과 건국의 길에 돌멩이 하나 고이지 못한것을 끝없는 비탄속에 후회하였다. l차대전이 끝난직후(1919년 6월) 상해림정의 대표로 빠리강화조약 조인식장에 《조선독립청원서》를 들고 달려갔던 그때, 그러나 궁전에 발도 들여보지 못하고 베르사이유궁전의 두터운 담벽을 주먹이 터지도록 두드리며 통탄의 눈물을 뿌리던 때를 회고하면서 그는 말하였었다.

《이 나라 삼천리강산을 통일천하하실 유일무이한 민족의 령도자는 오로지 김일성장군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김규식이 북으로의 멀고 험한 길을 걸어온것이였다. 그것도 어려운 후퇴의 길을 따라왔다는 사실을 김일성동지께서는 매우 중히 여기시였다.

드디여 내각에서는 김규식일행에 대한 환영연회를 마련하였고 그 소식이 신문에 소개된것이였다.

먼저 홍명희부수상의 환영연설이 있었고 이어 일행을 대표하여 김규식이 연설하였다.

《벽초(홍명희)선생! 감동적인 축사를 해주신데 흉중에 사무친 이 심정을 어떻게 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지나친 격식을 삼가해서 즉흥적으로 말하고저 하니 량해해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계속하였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지금 정세는 위급한 단계에 놓였습니다. 세계가 이 나라, 이 민족의 생사존망을 놓고 우려하는 때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서울을 떠나던 그 시각까지도 어떤 친지들은 저더러 조용히 시국을 관망하다가 돛을 다는게 상책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벗들은 곡해투성이의 지난날과 단연 결별하고 북으로의 발걸음을 떼였습니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때부터 겨레의 국부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배려를 실로 많이 받아온 우리인 까닭입니다.

···실인즉 장군님께서 우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시지 않았던들 우리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것입니다. 백범(김구)의 참사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습니다. 놈들은 그같이 잔인무도한 피습을 우리에게도 뻗치려고 발악하고있습니다. 만일 서울해방이 좀 늦었던들 여기에 좌석을 같이하고있는 우천(조완구)과 의산(최동오)은 물론 민세(안재홍), 국사(오하영), 규운(윤기섭)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놈들의 흉악한 마수에 걸리고야말았을것입니다.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는 목전현황에서 저희들이 한갖 무엇이겠습니까. 재력도 없는 비천한 우리들을 위해 장군님께서 오늘 이처럼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주시니 무슨 말로 감사의 뜻을 다 아뢸지 모르겠습니다.···》

신문에 실린 김규식의 연설을 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부지중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였다. 남북련석회의때 흥분을 이기지 못하던 그에 대하여 회상해보신것이였다. 눈이 억실억실하고 너부죽한 얼굴에 코도 주먹코인 무척 담차고 호방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였다. 작고 동그란 안경만이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듯 했다. 랭랭하게 번뜩이는 그 작은 안경을 통해서는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기가 몹시 불편할것이였다. 그러나 남북련석회의때부터 위대한 사상에 고무된 그는 낡은 민족주의의 협애한 시야에서 벗어났고 마침내는 인민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허위단심 북행길을 걸어온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놀란 적들은 온갖 비방과 중상으로 우리를 헐뜯고있다. 지어 방송국을 만들어 매일과 같이 불어댄다고들 한다. 인민군대가 김규식, 안재홍, 최동오, 정인보 등을 강제로 끌어가는 내용이였다.

험한 산길로 포승에 결박된 사람들이 끌려간다. 더는 걷지 못하겠다고 뻗대는 김규식을 호송군관이 권총으로 쏴죽인다. 그때 련락군관이 달려온다. 누가 쏘라고 했느냐, 다 쓸모가 있어 데려가는것이니 너희들 호송원들이 업고서라도 데려가야 한다, 하고 그가 고함을 친다. 호송원들은 내놓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을 또 끌고간다. 병들고 기력이 진한 안재홍이 로상에서 또 숨이 진다.···

유치하고도 파렴치한 날조극이였다. 놈들이 어찌도 끈덕지게 불어댔던지 김규식의 시체를 찾으려고 그의 맏아들이 북상하는 미군과 함께 들어와 곳곳을 돌아친다고도 한다.

하지만 김규식의 이 연설이 신문에 나가고 방송으로 나갔은즉 놈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김규식의 육성까지도 꾸민것이라고 우겨대겠는가?···

진리에로의 길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끌려가는것이 아니라 리성의 부름에 자연히 따르는 법이다. 왜냐면 진리는 위혁하지도 강요하지도, 지어 호소하지도 않으며 가르치지도 않으며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암야의 등불마냥 고요히 빛을 발한다. 그 불빛은 부르짖지도 않으며 유혹하지도 않는다. 다만 리성의 눈을 틔워줄뿐이다.

하여 오늘 김규식의 일행은 진리의 빛을 따라 멀고 험한 길을 왔다. 스스로 찾아나선 참된 인생의 새 길이였다!···

맵짠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정신없이 자던 김덕삼운전사가 와뜰 놀라며 깨여났다. 그 순간 자기가 혼자 잠을 잤으며 장군님께서 기다리고계셨다는것을 깨달았다. 어쩔바를 몰라하며 괜히 흘러내린 모자를 집어 비벼대고있었다.

그가 당황해하는것을 보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신문을 놓으시였다. 다음 크게 기지개를 하시였다.

《아, 나도 그새 피곤을 풀었소. 자, 또 달려볼가.》

승용차는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울리며 다시 험한 구배를 에돌아 눈이 쌓여진 고개길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