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제1편 5

제 1 편

5

 

최현은 린접의 서울제4보병사단도 락동강을 강행도하하여 적진깊숙이 파구를 뚫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곳 사단장은 바로 열흘전에 임명되여온 박정덕이다. 당년 31살의 지혜롭고 과단성있는 젊은이로서 지금까지 제5사에서 련대장으로 싸워왔었다. 그런데 사단장으로 임명되자바람으로 강행도하를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최현의 2사와 나란히, 조금도 뒤지지 않고 교두보를 확대해나가고있다. 류현수중대의 배떼다리를 통과한 땅크와 포차들중 많은것들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지어 전선사령부 예비대들중의 하나이던 독립포련대도 그쪽으로 갔다.

최현은 박정덕의 지휘소를 전화로 찾았다. 사실은 전선사령관 김책의 새 명령을 기다리다 못해 그쪽의 동향에서라도 맥을 짚을수 있지 않을가 하고 생각했던것이다. 전화는 곧 련결되였다.

《박정덕입니다!》

그쪽에서 먼저 말했다.

《아, 이웃친구, 나 최현이요.》

《최현동지!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여보, 보고된데 의하면 우리한테 오던 독립포련대를 동무네가 가로채갔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이라면 혼쌀을 내줄테요!》

《최현동지! 원, 무슨 롱담을···》

최현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사실말이지 롱을 하고있을 계제가 못된다. 결전진입을 위한 제2제대의 진입계선진출도 끝났고 포병집단편성까지 다 끝냈는데 공격명령은 내리지 않고있다. 그는 감시구밖에서 구질구질 내리고있는 비줄기를 내다보며 저도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어떻게 된 셈판인지 내 눈엔 신호탄이 보이질 않누만. 여보, 이웃량반! 거게선 보이오?》

《신호탄》이란 공격명령을 두고 한 말이다. 박정덕은 조용히 웃는것 같았다.

《최현동지! 저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중입니다.》

《음-》

그렇다. 기다리는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그런데 최현은 늘 기다리는 일을 제일 힘들어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다음 수류탄깍지에 심지를 박고 켜놓은 야전용등불에 마주앉았다. 지도를 펴들고 태풍과 함께 시작된 이 놀라운 침묵의 비밀을 파헤쳐보려고 안깐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미제8군은 미10군단의 인천상륙에 합세하는 필사적인 반공격준비를 끝내고있었다. 16만에 달하는 미제8군은 미1군단의 l기병사단과 미24사단을 주타격력량으로 하고 미2사 및 미25사단과 영제27려단, 괴뢰군1군단 (수도사단 및 3사)과 2군단(6사, 7사, 8사)을 보조타격력량으로 대구-김천-대전-수원을 주공전선으로 할 계획이였다. 인천상륙작전과 배합한 이 총공격은 날이 밝은 다음 시작할 예정이였는데 그 시각까지는 아직 4시간이 남아있었다···

별안간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최현은 피뜩 머리를 돌렸다. 전화수가 송수화기를 감싸쥐고 부르짖었다.

《사단장동지, 금강산입니다!》

《금강산》이란 아름다운 대호는 전선사령부를 의미한다. 최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수가 내미는 송수화기를 움켜잡았다. 미처 입에 가져다대기도 전에 《최현입니다!》하고 웨쳤다.

전류흐르는 소리가 고막을 징-울렸다. 이어 전선사령관 김책의 갈린듯 한 목소리가 귀전을 두드렸다.

《최현동무, 교두보에 전개된 부대들이 얼마나 되오?》

최현은 오래 생각지 않고 대답했다.

선견대에 이어 먼저 도하한 부대, 구분대들과 진입계선에 진출한 제2제대 부대들, 배속 포병구분대와 땅크들··· 그러자 김책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또 물었다.

《그 부대들을 강 이쪽으로 철수하려면 얼마나 걸릴것 같소?》

《예?!》

최현은 얼떠름해졌다. 김책이 반복하는 말을 듣고서야 기관포소리처럼 토막치는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전선사령관동지! 원, 무슨 말씀을··· 롱담을 해도 분수가···》

《롱담이 아니요!··· 최현동무, 즉시 교두보에 전개된 부대, 구분대들을 철수시키고 락동강서안의 공격출발계선에 방어를 구축하시오.》

《아니 전선사령관동지!》

《시간이 없소. 최현동무, 날이 밝으면 련합부대가 방어로 이전해야 하오!》

《···》

최현은 혀가 굳어진듯 했다. 김책이 어성을 높였다.

《최현동무! 왜 말이 없소?》

《···》

여전히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별안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술을 비틀었다. 저도모르게 군복저고리의 목깃을 마구 헤쳐놓으며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전선사령관동지!》

《뭐요. 최현동무?》

《전선사령관동지, 이게 어찌된 일이오다, 예?!···》

몹시 흥분할 때마다 최현의 입에서는 북관사투리가 튀여나오군 한다. 그는 걷잡을길 없는 충격에 모지름을 쓰며 포격처럼 맹렬히 퍼부어댔다.

《전선사령관동지, 내 군사재판에 넘어가 까꾸박질을 하는 한이 있어도 말은 좀 해야겠소다. 어째 피흘려 준비한 공격은 안하고 돌아서라고 하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서 피를 흘렸습니까. 생떼같은 최춘국이도 여기서 잃었지오다?!··· 그걸 생각하면 막 가슴이 터질지경인데 돌아서라니··· 전선사령관동지도 그때 땅을 치며 한 말이 있지오다 예?··· 그런데 다 먹어논 대구를 눈앞에 놔두구 어떻게···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다. 그러면 내 이제 저눔들이 홍찌를 싸갈기게 하지오다. 저 두억시니떼같은놈들이 헤때기를 쭉 빼물게 해놓겠소다!···》

《···》

침묵이 흘렀다. 강직하고 엄엄한 김책이였지만 최현의 세찬 반격에 흔들린것 같았다. 전류흐르는 소리만이 불안스럽게 귀전을 파고돌다가 별안간 김책의 아주 낮아진 거의 속삭임같은 목소리가 흘러왔다.

《최현동무, 우린··· 후퇴를 하게 되오. 이건···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이요.》

《예?··· 장군님께서요?!···》

《그렇소. 곧 명령을 집행하시오.》

《···》

목이 꺽 메였다. 심장의 고동이 멎는듯 했다. 최현은 한순간 망두석처럼 굳어져있다가 가까스로 입술을 놀려 속삭이듯 했다.

《알았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았다. 피발이 선 눈으로 수류탄등불에 비추인 젖은 통나무들과 전화수의 색이 바랜 군복잔등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참모장이 눈앞에 서있었다. 묻는듯 한 눈빛이다. 불그레한 수류탄등불이 그의 얼굴에서 들레들레 뛰놀고있다.

《무슨 일입니까. 사단장동지?!》

참모장이 묻는 말이였다. 최현은 이발이 쏘는듯 괴롭게 이마살을 찌프리며 한마디한마디를 가까스로, 힘겹게 짜내였다.

《교두보에 전개된 부대들을 즉시 강건너로 철수해야겠소. 시간이 얼마 없소. 즉시 락동강서안에 방어를 구축하라는 명령이요!》

참모장은 아무 대답도 없이 여전히 버티고있었다. 그의 집요한 묻는듯 한 시선에 최현은 하는수 없이 한마디 또 덧붙이지 않을수 없었다.

《후퇴요!》

 

이때부터 최현은 극심한 오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열에 들떠있으면서도 그는 군용지도를 펴놓고 붉은 색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린 대구와 부산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군 했다. 어둠도 그 붉은 동그라미는 숨기지 못했다. 그는 그 붉은 동그라미에서 변함없는 돌격의 함성을 듣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차츰 재빛으로 되여갔다. 이마우에는 이슬처럼 땀방울이 돋아나고 입술은 꺼멓게 타들었다. 모진 심리적충격과 아픔이 범같다던 그를 여지없이 타격한것이였다. 그리하여 오랜 병마가 다시 달려들었다.

담당간호장 림정옥이 담가병들을 데려오자 최현은 무섭게 성을 내며 그들을 쫓아버렸다. 자신의 병세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만큼 그는 피가 끓는 전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불은 불로 다스려야 하고 피를 태우는 고열은 전투의 열광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는 감시소를 나섰다.

날이 밝고있었다. 세찬 바람도 잦고 비도 멎고있었다. 어느덧 진입계선에 진출했던 부대들이 떼를 무어 강을 건너고있었다. 부관의 말에 의하면 보병구분대들의 철수는 기본적으로 완료되고있으나 철수를 엄호할 구분대들과 륜전기재들의 다수는 아직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륜전기재?》

최현이 머리를 홱 돌리자 부관이 또 설명을 달았다.

《사단장동지! 땅크와 각종 포차들은 배떼다리를 통과해야 하기때문에 도하장에서 지체되고있습니다. 그래서 참모장동지가 그곳에 나갔습니다.》

《물은 아직도 줄지 않는가?》

《···》

부관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최현은 마비된듯 잘 말을 듣지 않는 팔을 들었다놓았다.

《가보자!》

그때였다. 우르릉-우르릉!- 하는 굉음이 먼 하늘가에서 구을러왔다. 삽시에 주변의 산과 둔덕들우에 섬광이 번쩍이고 불의 파도가 흐느적거리며 솟구치고 휘몰아쳤다. 총공격에 나선 미제8군의 포병준비사격이 시작된것이였다. 적들은 특히 아군부대들이 차지하고있던 교두보를 맹타격하고있었다. 부대들이 철수하고 일부 엄호구분대들만이 남아있는줄 모르고 철불의 소나기를 퍼붓고있다. 간단없는 폭발이 땅을 짓이기고 검붉은 불의 타래가 골안을 휩쓸었다.

최현은 불길속을 걸어갔다. 부관과 련락병들이, 또 누군가가 그를 에워싸듯 하면서 포연속을 헤쳤다. 그때 머리우에서 앙칼진 쇠소리가 울렸다. 다음순간 최현은 눈앞에서 번쩍인 섬광을 보았다.

폭발의 굉음은 아득한 심연속으로 사라진듯 했다. 그는 구역질나는 폭약가스에 숨이 칵 막혀 헐떡이였다. 거무스레한 피빛의 불길이 사라지자 누군가 가늘게 신음소리를 지르는것이 알렸다. 최현은 온몸에 들씌워진 흙먼지를 털어버리며 소리쳤다.

《누군가, 누가 상했어?》

그 순간 그는 울퉁불퉁한 땅을 짚고있는 한 녀자를, 또 떨리는 두손으로 그를 부축해주고있는 키큰 부관을 보았다.

《간호장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엉?!···》

처녀의 두눈에 아픔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사단장동지!-》

처녀는 입속말로 한마디하고는 새파래진 입술을 꽉 다물어버렸다. 비틀린 입술언저리로 경련이 지나갔다.

《왜 왔어, 간호장! 여긴 뭣하러 따라왔어?!》

처녀는 힘들여 입술을 실룩거렸다.

《사단장동진··· 막 떨면서··· 그래서 비옷을···》

최현은 억이 막혀 부관을 밀치며 고집스럽게 웨쳤다.

《부관, 빨리 응급처치를 해야지, 엉? ··· 뭘하구있어. 빨리!···》

부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처녀는 어깨를 잔뜩 옴츠리고 꿈꾸듯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드리운 몇오리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사단장동지!··· 난···》

처녀는 말끝을 흐리였다.

《간호장!》 최현이 크게 불렀다. 《용기를 내라구 응?!》

그러나 그때 최현은 처녀의 몽롱한 두눈에서 한점 불빛이 걷잡을길 없이 검은 망막속에 잦아드는것을 보았다. 마지막 최후의 경련이 처녀의 목구멍에서 가릉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짜내였다.

부관이 처녀를 땅우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최현은 심장을 뜨끔하니 깨무는것 같은 아픔에 숨이 막혔다. 그는 처녀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갑자기 목이 꽉 메고 다리가 휘친거려 주저앉고만싶었다.

누가 이것을 알았으랴. 이런 불행이 쫓아오고있으리라고 누가 짐작인들 할수 있었으랴!··· 오랜 세월 시련도 많았고 모진 경난도 수없이 겪어온 무장 최현이련만 싸움터에서 녀자들이 죽는것은 차마 견디기 힘들어했다. 또한번 그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우들우들 몸을 떨었다.

부관이 그에게 비옷을 내밀었다. 간호장이 가지고 달려왔던 그 비옷이였다. 처녀는 그것으로나마 앓는 사단장의 몸을 덥혀보려 한것이다.

최현은 비옷을 정히 펴서 그것으로 처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허연 번개불이 눈앞에서 번쩍했다. 찬바람이 그의 젖은 몸에 덮치듯 달려들었다. 그는 잔등을 훑어내리는 차디찬 오한에 몸을 떨며 생각하였다. 후퇴의 첫걸음이 이렇게 시작되는가?··· 그러자 명치끝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아니다. 그럴수 없다!··· 어느덧 그의 굵다란 목에서 피대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했다. 걸음마다 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어야 한다. 걸음마다 놈들을 공포에 떨게 해야 한다!···

어느덧 도하장접근로에 이르렀다. 도중 그는 길가에 내버린 자동차들을 여러대 보았다. 그때마다 매번 걸음을 멈추고 혹시나 해서 운전칸과 차바퀴밑을 들여다보군 했다. 그러나 아무도 찾지 못했다.

도하장은 붐비고있었다. 불타고 오그라진 포차를 강기슭으로 밀어내는가 하면 포탄상자를 옮겨싣느라고 법석대기도 했다. 적들이 쏘아댄 포탄이 터질 때면 길마를 진 포마들이 길길이 뛰여오르며 울부짖었다.

참모장이 달려와 최현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최현의 얼굴은 완연히 흙빛이 되여있었다.

《차들은 왜 버렸소?》

참모장은 해쓱해졌다.

《고장난 차들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건 왜?》

《저··· 후퇴를 하는 이상··· 아무래도···》

《그러니 아무래도 버릴거란 말이요?》

《사단장동지!》

《동무!》 최현의 관자노리에 부풀어오른 피줄들이 요동치듯 꿈틀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거요. 그래 후퇴를 하는데 어쨌다는거요?!》

참모장이 입을 다물고있자 최현은 고열에 달떠있던 두눈을 번뜩이며 격하여 부르짖었다.

《어느새 동문··· 그리도 빨리 구겨지다니!··· 이보 참모장! 우리 장군님께서 후퇴를 명령하셨을적엔 그 길이 바로 승리하는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야 할게 아닌가, 왜 흔들리는가 엉?!··· 장군님께서 가르치시는대로만 하면 백번 싸워 백번 다 이긴다는 신념이 있어야 돼. 알겠소? 죽으나사나 이 신념만은 흔들려선 안돼!···》

날은 환히 밝았으나 아직도 하늘은 서로 얽혀돌아가는 검은 구름장들로 뒤덮여있었다. 사품쳐흐르는 락동강의 수면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기슭에서는 감탕내와 또 알수 없는 비릿하고 물커진 냄새가 풍겼다.

한시간후엔 도하장에 정연한 질서가 섰다. 최현은 도하를 계속하는 한편 도하장접근로에 있던 일부 땅크 및 포병구분대를 종전의 전개계선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땅크들은 반돌격으로 적의 공격서렬을 토막쳤고 포병들은 강력한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적들의 공격은 일시 좌절되였다.

최현은 승용차를 불렀다. 후퇴의 첫걸음을 유유히, 위엄있게 시작하리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승용차는 흔들거리는 배떼다리우에 올라섰다. 류현수라는 인상적인 공병중대장이 배떼다리 이쪽에서 꼿꼿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최현은 아무말없이 한손을 약간 쳐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