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제1편 17

제 1 편

17

 

아침이였다. 내가의 물황철나무들은 짙은 안개속에 묻혔고 여울가의 물동에서는 선잠을 깬 까마귀들이 이슬에 젖은 날개를 털었다. 그것들은 자동차가 가까이 달려오는데도 기슭에 밀려나온 나무가지들을 타고다니며 열심히 검부레기를 뚜졌다.

운전칸에 앉은 리숙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조는듯마는듯 차가 들추는대로 몸을 흔들고있었다. 태화동부근의 방어계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득히 흘러간 유년시절의 기억처럼 더듬었다.

부상병들이 련이어 들이닥쳤었다. 군의장이 리숙을 불러 말하였다.

《여기 있는 부상병들은 동무가 맡아 후송하오!》

11명의 부상병들이였다. 위생차는 커녕 달구지조차 없는 형편이였다. 모든것을 자체로 해결해야 했다. 그는 포차라도 1대 빼앗아오기로 결심했다. 포중대의 얽음뱅이 화력부관이 입을 쩍 벌린채 눈만 두릿거릴지경으로 을러메고 따지고 아프게 허비였다.··· 마침내 포탄차를 빼앗아냈다. 이번엔 보병들가운데서 담가병으로 쓸 건장한 병사들을 빼앗기로 했다. 그러나 교호식으로 피어린 방어전을 하고있는 그들과는 이야기가 잘되지 않았다. 다행히 박원철이라고 하는 뼈대가 약한 전사가 자원해나섰고 그의 상급인 애젊은 소대장도 허락해주었다. 그가 왜 자원했고 소대장은 왜 선선히 동의했는지 후에 가서야 알게 되였지만 그때 리숙은 끔찍이도 그가 고마웠다.

그들은 서둘렀다. 리숙, 운전사와 박원철, 간호원 한영순은 죽도록 고생을 한끝에 부상병들을 날라 차에 싣고 떠났다. 이제는 03호병원까지만 가면 된다. 03호병원은 영동에 있었다. 그곳에 가면 03호병원 일군들이 렬차수송을 조직해준다고 했다.

리숙은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앞으로의 일을 상상해 보고 지난 밤의 일들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문득 견갑골아래 관통상을 입은 한 부상병에게로 생각을 이어갔다. 처음 업혀왔을 때엔 무심히 스쳐지났었다. 그 부상병은 소리치지도 않았고 간절히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꽉 악물고 누워있었다. 옷차림이 좀 이상했고 어깨엔 군관용 야전가방을 메고있었다. 그러나 극도로 지친 리숙이여서 그런것들에 주의를 돌릴 여가가 없었다. 그저 입술을 깨물며 눈섭에 매달린 졸음과 무섭게 싸웠을뿐이다. 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가늘게 좁혀진 부상병의 눈동자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거기에, 부상병의 눈동자속에 굴절된 자기의 모습을 본것이다.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새까만 눈동자, 반디불처럼 타오르며 순간마다 명멸하는 그 작은 렌즈속에 리숙의 모습이 굴절되여있다.

리숙은 붕대감던 손을 멈추었다. 잠시 물끄러미 그를 지켜보다가 속삭이듯 물었다.

《나를 알지요?··· 그래서 그렇게 보지요?》

《···》

대답이 없었다. 리숙은 개의치 않았다. 흔히 부상병들은 아픔과의 지리한 싸움끝에 입을 열기조차 힘들어하는 때가 있다. 잠간 생각해보고 또 물었다.

《참 언젠가 한번 만난 일이 있지요?··· 아주 오래전에!···》

《···》

부상병의 두눈은 메말랐고 아픔의 그늘이 씌워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리숙의 주의를 끈것은 지꿎게 견주어진 그의 사나운 눈빛이였다. 리숙은 불현듯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것을 깨달았다.

얼마후 그의 군복상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증명서를 보고서야 리숙은 도하장에서 만났던 공병중대장 류현수라는것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벽돌견장을 단 보통전사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가. 무슨 일로 갑자기 견장을 바꾸었을가?··· 군복은 불에 그을린 군관군복 그대로인데··· 어떻게 알수 있으랴. 그에 대해 말해줄수 있는 사람은 그자신뿐인데, 그는 무서운 생각만 집요하게 파고드는것 같다. 아무말없이 이따금 불에 그슨 눈섭을 경련적으로 푸들푸들 떨고있을뿐이다.

이어 리숙은 또 무엇인가 생각했다. 두서없는 생각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서 차례대로 번져졌다. 별로 중요치 않은 일, 그동안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하찮은 일들에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머니는 리숙이 중학교를 다닐 때 갑자기 페염을 앓다가 돌아갔다. 이태가 넘도록 아버지는 쓸쓸해하고 멍해져서 턱수염이 길어지다 못해 마른 강냉이수염처럼 배배 꼬이는것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서울에 다녀온 이후 갑자기 달라졌다. 다시 서울로 갔다 돌아올 때엔 리숙이 앞에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어느 주식회사 리사의 미망인이라고 했다.

《숙아, 인사해라, 이제부터 우린··· 함께 살기로 했다.》

아버지는 리숙이더러 그 부인을 굳이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지는 않았다. 장영실이라는 그 젊고 아름다운 부인 역시 그런 허드레로 리숙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해방된 이듬해 리숙은 손수 꾸린 작은 손짐을 기숙사로 옮겨갔다. 아버지의 어정쩡한 미소며 장영실의 우정 꾸며낸것 같은 배려가 지겨워졌던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술취한 행인처럼, 지팽이를 잃은 늙은이처럼 가끔 허둥지둥하군 했다. 그 아버지에게 얼마나 아픈상처를 남겼는지 그때의 리숙은 다 알지 못하였다. 실로 리숙은 그 아버지의 제일 큰 사랑이였고 희망이였었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리숙의 맑은 두눈을 통해서만 래일의 밝은 전기불을 내다보군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을 생각하는 리숙의 마음은 저릿저릿했다. 지금 무얼 하고계시는지, 인민군대가 후퇴를 하고있는 오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신지?··· 그래도 리숙은 언제 어느때나 아버지를 믿는다. 혹시 남들의 눈에는 촉수높은 전기불에 눈이 나빠진 얼뜨기같이 보일런지 몰라도 리숙은 언제나 굳건히 믿는다.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사랑과 믿음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그 녀자는··· 그 아름다운 부인은 자신이 없다. 아버지가 가는 길에 걸음마다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고 자신할수 없다. 왜 그럴가. 어째서 마음에 걸리고 불안스럽게만 생각되는것일가?··· 아직 우리사이에 애정이 없기때문에 그런것은 아닐가?···

애정이란 청해서 얻어가지는것이 아니다. 누구에게서 선사받는것도 아니며 길가에서 주어모으는것도 아니다. 애정이란 가꾸는것이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꾸준히 가꾸는것이다.

그런데 리숙은 지금까지 그 녀자를 멀리하려고만 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끊을수도 지울수도 없는 육친의 정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었을가. 무엇이!?···

차츰 머리속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들었다.

쪼각쪼각 흐트러진 꿈들이 들락날락했다. 대학동창생들과 선거선전연예대를 무어 떠났는데 기차를 놓쳤다. 난데없는 배에 올라타고 갔다. 다들 떠들썩하고 쿵쿵 의자를 밀쳐댔건만 리숙은 죽을지경으로 피곤했다. 선실에서 잠을 자다보니 모두 가버리고 문은 걸쇠로 단단히 걸어놓았었다. 발로 힘껏 차다가 놀라서 깼다.

늙수그레한 운전사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를 흘끔 바라보았다.

《꿈을 꾼 모양이디요?》.

리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운전사가 또 무슨 말인가 하는것 같았으나 등받이에 어깨를 붙이고 또 고개를 수그렸다.··· 기관단총을 손에 들고 경사진 언덕으로 달려가고있었다. 도하대대의 중대장 류현수가 그의 뒤를 따라오고있었다.

《거기루 가면 안되오. 서시오- 섯!》

적들이 화염방사기로 불을 내쏘았다. 군모밑으로 삐여져나온 머리칼이 칙칙 타버렸다.

《서시오. 간호장동무!-》

고함소리가 멀어져갔다. 리숙은 눈이 쓰려 앞을 볼수가 없었다. 팔소매로 땀을 닦고싶었으나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왼쪽 차창으로 해빛이 비쳐들고있었다. 팔소매안에 끼운 손수건을 꺼내여 땀을 닦았다. 처음으로 밤새 한번도 눈을 붙여보지 못한 운전사곁에서 저혼자 잠을 잤다는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미안해요.》

리숙의 말에 운전사는 눈을 치떴다. 눈에 피발이 섰고 꽉 다물린 입가에 깊은 주름이 패워있었다.

《좀 쉬고가지 않겠어요?··· 눈 좀 붙이세요.》

운전사는 머리를 흔들더니 버릇처럼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간호장동문 아무 걱정 없는것 같수다레?》

《걱정이요?!···》

《우리 가는데에 병원이 없을수도 있지 않소다?》

《아-뇨, 03호병원은 영동에 있어요. 확실해요!》

《그래도 지금은 후퇴하는 때라는걸 잊지 마오다.》

《그런들 뭐라나요. 자동차가 있는데 따라가면 되는거죠.》

《원, 배심두!》

《왜요?》

《글쎄 나이든게 방정떨구싶진 않지만··· 놈들이 우회해서 대전을 포위한다는 말도 있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설마!》

자동차는 강기슭을 따라 멀리 농가들이 주런이 들어앉은 부락쪽으로 달리고있었다. 왼쪽엔 흐름이 완만한 석천이, 오른쪽엔 송림우거진 산판이 소잔등같이 누워있었다. 어데선가 재를 태운것 같은 냄새가 흘러왔다. 차츰 강물우에 시커먼 연기뭉테기들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데서 화재가 난게 아닐가요?》

리숙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운전사는 연신 코를 벌름거리다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산불이 나던가 했겠디요··· 옘병할것들! 나무숲하군 왜 해보지 못해 지랄인지··· 휘발유통을 떨구지 않나, 소이탄을 마구 뿌리지 않나··· 산이 그렇게 무서우면 산이 많은 조선땅엔 왜 기여들었담. 쳐죽일것들!》

문득 리숙은 그의 말씨가 범벅인것에 주의가 미쳤다.

《이상하군요. 운전수동문 함경도말씨구 평안도말씨구 다 섞어서 쓰는군요.》

《그럴수밖에요. 해방전엔 안가본데가 없구 못해본 일이 없소다. 리발사, 야장일, 어물장수, 금점판··· 나중엔 자동차를 배웠디요. 그러다나니 8도강산 발 닿는데가 고향이구 제집이 됩니다레.》

리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굽인돌이를 돌았다. 지금까지는 부락의 서북쪽 한끝만 보이던것이 이제는 전체 마을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부락을 꿰질러난 도로상에 흰별을 그린 땅크들이 굴러오고있었다. 그뒤로 무수히 많은 자동차종대가 늘어섰는데 해빛에 철갑모들이 번쩍거렸다.

맹렬한 대구경기관총사격소리, 부락의 한 변두리에서는 화재가 한창이였다. 벼짚이영들이 삼단같은 불길을 솟구쳐올리고 재가루가 산산이 흐트러졌다.

《세우세요!》 리숙이 부르짖었다. 《놈들이예요. 빨리, 차를!··· 차를 돌려요!》

앞장에 섰던 적땅크가 마을쪽을 향해 겨눴던 포탑을 빙그르 돌리고있었다. 이쪽의 자동차를 발견한것이였다.

《뭘 꾸물거려요. 빨리!》

《넨장- 빌어먹을 기야가··· 급할 때마다 말썽이라니···》

운전사의 얼굴은 대번에 땀으로 흠씬 젖어버렸다. 앞으로 뒤로 움씰움씰하며 무던히도 더디게 차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약 20m앞쪽에서 포탄이 터졌다. 강에 면한 낭떠러지의 아카시아나무들, 또 무슨 잡관목과 바위들이 강물우에 뿌려졌다. 시창유리가 짱!-하면서 산산이 깨여졌다. 그러자 어느새 벌써 톱날같이 비쭉비쭉 모가 난 파편이 좌석등받이에 박혀 누르스름한 연기를 씩씩 뿜어대였다. 리숙은 소스라치듯 몸을 떨며 다리를 가드라뜨렸다. 목구멍에 불뭉치를 틀어박은것 같았다. 소리치고싶어도 숨길조차 막혀버렸다. 운전사가 팔과 어깨를 힘껏 놀려 조향간을 돌리다말고 허둥거렸다.

《넨-장! 이게 어찌된 셈판이야. 응?!···》

《뭘해요. 힘껏 밟아요!》 마침내 숨이 확 열려 리숙은 부르짖었다. 《왜 그래요. 미치지 않았어요? 빨리, 앞으로!》

《뵈질 않소다. 넨-장, 어째 보이지 않소? 응···》

그때에야 리숙은 그의 얼굴이 온통 피칠갑이 되여있는것을 보았다. 이마가 터지고 눈섭이 찢어져 드리우고··· 그가 안타깝게 머리를 흔들어대자 새빨간 피방울들이 뿌려졌다. 리숙이 그의 어깨를 꽉 눌렀다.

《부상?!··· 눈을 다쳤어요?··· 보자요!》

《놓소. 이걸 놓소!··· 그래 따라오우?··· 놈들이··· 거진 왔소다?!》

《왔어요, 거지반 다 왔어요!》

대구경기관총소리가 울렸다. 차체에 부딪친 탄알들이 쩡- 쩡 쇠소리를 질렀고 차바퀴가 삐그극 긁히였다. 뒤미처 땅크발동기소리도 들렸다. 리숙은 미칠것 같이 들뛰는 초조와 절망에 빠져 《보라요. 다 왔어요!》하고 무섭게 부르짖었다. 지금 적재함우엔 무기도 없는 부상병들이 절대다수이다. 게다가 몸이 성한건 간호원 영순이와 박원철뿐이다.

《이걸 놓소. 그리구··· 앞을 대주오!》 운전사가 가속답판을 지그시 밟으며 웨쳤다. 《자 빨리!··· 제대루 가오다?!》

《밟아요. 더 힘껏!》 리숙이 역시 조향간을 그러안았다. 희망이 있다. 구원의 희망!···《왼쪽으로 꺾으면서··· 다시, 다시!··· 앞으로!- 좀 더, 앞에 굽인돌이가 있어요. 정신차려요!··· 좀더, 좀더, 좀더- 됐어요, 돌앗!··· 그래 그래, 잘됐어요, 인젠 우측, 우측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200m, 힘껏 밟아요. 힘껏!···》

울음섞인 목소리가 입안에서 끓고있었다. 조향간을 틀어쥔 운전사의 손등우에 푸릿한 정맥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그우로 새빨간 피방울이 떨어지고 리숙의 눈에서 끓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깨여진 시창으로 더운 바람이 휙휙 쓸어들었다.

《됐소? 더 가자우? 어째 말이 없소?!》

《됐어요, 또 100m앞에 굽인돌이··· 저것만 돌아가면!··· 앞으로, 좀더 앞으로, 인젠 천천히!··· 왼쪽, 왼쪽!···》

앞에서 벙끗했다. 원추형으로 치솟아오르는 불길, 굉음이 떨며 울부짖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엇인지 사납게 찌국거리고 하늘과 땅이 곤두박질하며 돌아갔다. 무서운 충격을 받고 뿌려져나간 리숙은 땅을 허비며 일어나려고 했다. 휘발유 타는 냄새와 뜨거운 화염에 질식할것 같았다.

《간호장동지!-》

누군가 소리쳐부르고있다. 누가 소리치는가, 영순간호원인가?··· 시커먼 연기로 가리워진 하늘을 배경으로 벌거우리한 환영들이 꿈지럭거리고있다. 눈앞으로 지팡막대기가 땅을 쿡쿡 찌르며 다가왔다. 부상병, 그가 후송하는 부상병들이 위험에 처했다!··· 리숙은 모지름을 쓰며 자기의 잔등을 꽉 누른 부서진 적재함을 밀어냈다. 어떻게 되여 적재함이 그를 짓눌러놓을수 있었는지··· 자동차는 눈앞의 낭떠러지에 한쪽 바퀴들을 떨어뜨리고 황황 불타고있었다. 그속에서 부상병들이 엉금엉금 기여내렸다.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리숙은 박원철, 한영순과 같이 부상병을 부축하여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사람들을 소리쳐 부르며 피타는 마음으로 제발 한사람이라도 더 따라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두세명 부상자들이 기를 쓰고 따라오는것 같았다.

비발치듯 총탄이 날아왔다. 도중에 비명소리가 몇번 있었다. 나무가지들이 중둥무이로 부러져나가고 도탄되는 탄알의 새된 음향에 머리칼이 곤두서군 했다. 삽시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갑자기 리숙은 멎어섰다. 숨이 꽉 막혔다.

운전수는?!··· 앞못보는 그 운전수가 보이지 않는다!··· 또 그 사람 류현수···

뻐개지는듯 한 아픔이 가슴을 짓이겨놓았다. 리숙은 신음소리를 질렀다. 벌써 저아래 도로에서는 모든것이 참혹하게 끝나가고있었다. 선두의 적땅크가 불타는 자동차를 낭떠러지로 굴려버리는것이 보였다. 커다란 불덩어리가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쳐 산산쪼각으로 흩어져내렸다. 뒤따르던 자동차의 적들이 사방 둘러대고 어림짐작으로 총질을 했다. 땅크를 앞세운 적자동차 종대는 유유히, 멎음이 없이 굴러가고있었다.

리숙은 비칠거렸다. 타는듯 한 수치와 절망감이 가슴을 옥죄였다. 떨리는 손으로 옆의 나무가지를 더듬어 잡았다. 나무가지가 휘친거렸다. 그러자 어쩔새없이 그는 후려맞은것처럼 어푸러졌다. 발치의 나무등걸이 그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며 뚝 부러져나갔다.

《간호장동무!》

누군가 부르짖었다. 한영순이 그를 거들어 일으키고있었다. 등뒤에서 또 부르짖었다.

《간호장동무, 저기 두사람이 또 올라옵니다!-》

《?!···》

리숙은 머리를 돌렸다. 머리속에서 번개불이 번쩍한듯 했다. 다음순간 리숙은 서로 부둥켜안은 두사람이 헐근헐근하며 올라오는것을 멀거니 보고있었다.

한사람은 얼굴이 온통 피칠갑이여서 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 그가 바로 한손을 허우적거리는 운전사 김상준이였고 그를 부축하고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류현수였다.

리숙은 화닥닥 뛰쳐나갔다. 별안간 가슴속에서 불덩이같은 웨침이 터져나갔다.

《동무들 왔어요? 살았어요?···》

《어데 있소. 간호장!》 운전사가 웨쳤다. 《간호장동무도 무사하오다?!》

《예, 무사해요. 무사해요!》

리숙은 그들을 붙안았다. 박원철이 달려와 또 끌어안았다. 붙잡고 매달리고 정신없이 끌어당기며 리숙은 부르짖었다.

《고마와요. 현수동무! 고마와요. 고마와요!···》

그는 울었다. 눈굽이 막 저려나고 목이 칵 메였다. 제한몸도 운신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류현수가 허우대 큰 운전사를 부축해왔다!··· 도무지 믿을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리숙의 앞에 있는 류현수는 숨이 턱에 닿아있었고 낯색은 죽어있었다.

박원철이 떠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살아있는걸 우린··· 얼마나 놀랐던지···》

《난 죽지 않아.》하고 현수는 꽉 앙다물었던 입을 열고 씨근벌떡거렸다. 《죽을수 없어. 난··· 난 죽어선 안돼!···》

그의 무서운 어조는 대번에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진감시켰다. 분노에 갈리고 흥분에 떠는 그 목소리엔 상상하기 어려운 그 어떤 무서운것이 들어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충혈진 사나운 두눈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입을 꽉 악물고있었다. 검붉은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살아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