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제1편 16

제 1 편

16

 

문화부중대장 주영섭이 지휘하는 13명 대원들가운데엔 의용군으로 입대한 로지봉도 있었다. 며칠전 직지천의 끊어진 다리 아래에서 현수와 반갑게 만났으나 인사말도 변변히 나누지 못하고 헤여진 그 병사였다. 그때 탄약을 싣고가던 그들은 갑자기 대도로를 따라 공격해오는 적들과 조우했었다. 3대의 자동차중 선두차가 적땅크포사격에 불타버리자 나머지 차들은 급기야 산기슭의 달구지길로 방향을 꺾었다. 가까스로 적들의 추격은 피했으나 전혀 왕청같은 방향으로 빠져 최현사단의 방어계선에 이르렀다. 그곳 병사들이 아주 만족하여 탄약상자를 부리면서 입이 뚜해진 로지봉일행을 적당히 구슬려놓았다. 누이 주려던 곶감을 매부가 잡쉈기로 그게 무슨 속앓을 일이란 말인가. 어데서건 이 총탄이 미국놈들을 쏘아잡으면 그만 아닌가 하는 소리들이였다.

여기서 로지봉은 문화부중대장 주영섭을 만났다. 그때 주영섭은 이런저런 리유로 부대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적진을 뚫고서라도 부대를 찾아가려 했었다. 그들의 부대가 대전부근으로 철수하며 기동방어전을 벌리고있다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로지봉은 얼마전에 그쪽에서 탄약을 싣고 떠난것이다.

로지봉은 그때 주영섭이 《대전방향의 지형을 잘 아는 동무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너무 기뻐 후닥닥 뛰쳐일어났었다.

《예. 제가 알지유!》

그는 마치 누가 자기의 기쁨을 앗아갈가봐 겁을 내는듯 했다.

《제가 알아유, 대전, 보은, 금산- 그쪽으로 가는 길들은 죄다 알지유!》

그리하여 첫날 부대를 찾아떠날 때 로지봉은 길잡이가 되였다. 바삐 걸었다. 그들이 가는쪽에 로지봉의 고향 보은땅이 있는것이다. 그것도 로지봉의 고향마을은 대전과 이웃하고있는 지경이였다.

다들 로지봉을 따라가느라고 헐근헐근했다. 한번은 주영섭이 그의 뒤를 겨우 따라잡으며 소리쳐 물었다.

《동무 혹시 황천왕동의 손자가 아니요?》

로지봉은 영문을 몰라했다.

《그게 누군데유? 황천왕?!···》

주영섭은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어느 련대요?》

《근위 18련대예유.》

《저런!··· 한집안식솔이였구먼. 혹시 나없는새 우리 중대에 슬쩍 끼워든건 아니요?》

《어느 중대게유?》

《나 2대대 5중대!》

《아네유, 난 공급소대에 있은걸유.》

《오!-》

그런데 그처럼 바삐 서둘러 가던 길이 막혔다. 대전, 보은 방향의 모든 길은 적들의 땅크와 자동차로 붐비고있었다. 그들은 세차례나 적들과 조우하여 전투를 하였고 가까스로 위험을 면하게 되였다. 하는수 없이 북으로 더 올라가 산길을 타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경고개에까지 올랐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적들의 포위에 들었다가 최현사단장을 만난것이다.

이제는 고향으로 가는것을 단념해야 했다. 로지봉은 최현사단의 맨 후미에서 고향과는 정 반대쪽으로 멀고 먼 북쪽을 바라고 가고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달은 실낱같은 한쪽 모서리를 얼씬 내밀었다가도 곧 구름장속에 숨군 하였다. 로지봉과 얄궂은 유희를 거는듯 했다. 그때마다 로지봉은 꺼지게 한숨을 내짓군 했다.

문화부중대장 주영섭이 그를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지봉동무, 어째 그렇게 풀자루가 됐어?》

지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난 고향으로 가고싶수-》하고 말하겠는가. 《당신네들은 후퇴를 해도 고향이 있는 북으로 가지만 내야 머···》하고 말할수도 없지 않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로지봉의 걸음은 자꾸만 떠지고있었다.

그는 한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저 멀리 뒤에 두고 가는 보은땅, 국사봉기슭에 그의 고향이 있다. 정든 집, 분여받은 땅, 늙으신 어머니와 애태우며 그를 기다릴 젊은 안해도 있다. 이제 가면 언제 올가, 언제쯤이면 돌아오게 될가?···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군 한다. 그래서 자꾸만 걸음이 떠지군 했다. 세상에 나서 두번째로 고향을 멀리 떠나는것이다.

처음 집을 떠난것은 일제가 패망하기 몇달전이였다. 매일같이 놈들은 《기름 한방울이 피 한방울!》이란 글을 써붙이고 송탄유피마주에 미쳐돌아가는가 하면 17살이상의 젊은이들을 닥치는대로 끌어갔다. 로지봉도 놈들에게 끌려 머나먼 북만의 새초숲 우거진 타관땅으로 갔다. 거기서 방어공사에 내몰리였는데 로지봉은 일본군야포중대의 비루먹은 말과 함께 종일 물긷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비루먹은 암말이 소택지에 빠져 영영 일어서지 못했다. 소동이 일어났다. 이마니시라는 일본군군조가 미친듯 채찍을 휘둘렀다. 누런 이발을 드러낸 그자의 입에서 느침이 흘렀다.

《죽어봐라. 네놈이나 왜 살았어. 네놈이나 왜···》

몸뚱아리에 감겼던 채찍이 뒤덜미를 후려쳤다. 귀가 찢어지고 시퍼런 채찍자리가 어깨를 휘감았다. 그래도 그놈은 사정이 없었다. 몸을 피하여 돌아서면 면상을 겨누고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면 정수리를 내려쳤다. 찢어진 귀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람루한 옷에서 실밥들이 흐트러졌다. 마침내 지봉은 더는 견딜수 없어 면상을 겨누어 날아들던 채찍을 한손으로 받아쥐였다. 힘센 손아귀로 꽉 감아쥐고 부르짖었다.

《이보시유, 내가 잘못한게 뭐유, 제대루 걷지도 못하는 말을 끌구 그만큼 했으면 됐지 어째 내가 죄를 뒤집어써야 하는거유.》

《뭣이?!》 이마니시의 두눈이 고양이의 그것처럼 좁혀졌다. 거품이 끓는 입에서 찢어지는듯 한 악청이 터져나왔다. 《찢어죽일테다. 네놈이나 사지를 찢어죽일테다. 놔라. 이걸 놔라, 놔라!-》

로지봉은 그 미칠듯 한 발광에 눌리워 채찍을 놓았다. 그러자 이마니시는 뒤로 벌렁 나가 자빠졌다. 숱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진창에 엉뎅이를 박고 주저앉은것이다. 다음 순간 벌떡 뛰여일어난 그놈은 채찍을 던져버리고 어느새 늪가의 사스레, 측백나무들이 늘어선 곳으로 뛰여갔다. 그중의 한 나무가지에 철갑모와 기다란 보총이 걸려있었다. 이마니시는 무작정 보총을 들고 돌아섰다. 시꺼먼 총창이 로지봉을 향하여 날아들고있었다.

《죽여버릴테다아!-》

로지봉이 몸을 피하자 총창은 비루먹은 암말이 끌던 수레바퀴를 텅 찌르고 튀여났다. 질겁한 사람들이 기괴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마니시의 피에 주린 광증을 더 자극했을뿐이였다. 이번엔 도망갈념도 못하고 엉거주춤 뒤걸음쳐가는 로지봉의 배허벅으로 곧추 총창이 날아들었다.

《죽어봐라!-》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얼결에 두눈을 꾹 감고있던 지봉은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당장엔 알아채지 못했다. 느침이 끓던 이마니시의 입이 항 벌려지고 그속에서 피거품이 흘렀다. 새파랗게 좁혀뜬 두눈도 그대로 굳어지고 손에 들었던 보총은 땅에 떨어졌다. 물렁물렁한 땅바닥에 꽂힌 총창이 후들후들 떨리고있었다. 그때 로지봉은 삽자루를 움켜쥔 한 청년을 보았다. 현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던 기억이 났다. 책을 많이 읽어 아는것이 많아서 밤이면 젊은이들이 그를 둘러싸고앉아 말똥을 태우며 중얼중얼하군 했으나 아직 로지봉은 한번도 끼워본적이 없었다.

《야 현수, 너 어찌자구 이런짓을!···》 누군가 삽자루를 움켜쥔채 굳어져있는 그를 흔들었다. 《이젠 어떡하문 좋니. 응?!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어?!···》

현수는 손에 든 삽을 떨어뜨렸다. 그다음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는 로지봉에게 다가왔다.

《빨리 뛰자. 어물거리다간 끝장이야. 어서!···》

그후 공포와 쓰라린 절망에 사로잡힌 그들은 소택지를 건너 깔따구와 싸우며 고향에로의 멀고먼 길을 허위단심 걸었다. 밤이 되면 걷고 낮이면 죽어넘어진 말고기를 베여 쩝쩔한 눈물과 함께 그것을 씹으며 압록강에 이르렀다. 여기서 조선이 해방된 소식을 들었고 그들은 서로의 고향으로 갈라져갔다. 다시 열흘이 지나 로지봉은 고향땅에 들어섰다. 국사봉기슭의 옛 마바리집에서 늙은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얻어맞은것처럼 비칠거리며 허겁지겁 마주 나왔다. 그러나 로지봉을 기다린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빈궁과 천대였다. 일제는 패망했어도 대신 미국놈들이 기여들고 지주놈의 행패질은 더욱 우심해졌다. 로지봉은 소작지인 깡깡 마른 서덜밭에서 나는 몇섬의 조와 피, 기장쌀마저 죄다 털리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마을 처녀 채순금과 가정을 이루었으나 누더기이불밖에 없는 살림이였다.

그러다가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후엔 인민군대가 마을을 해방하더니 이어 김일성장군님 은덕으로 토지분여사업이 벌어졌다. 로지봉에게도 4 000평의 논밭이 차례졌다. 논밭머리엔 로지봉의 이름을 먹으로 써놓은 지경패말을 박았다.

이게 네 땅이다!- 하고 지경패말은 선언하고있었다. 로지봉의 논밭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땅이다!···

그날 머리가 하얗고 등이 꼬부라진 로지봉의 늙은 어머니는 순금이에게 부축되여 4 000평의 논밭을 쭉 돌아보았다. 나중엔 지경패말을 붙안고 그것을 어루쓸며 눈물속에 부르짖었다.

《지봉아, 장군님께서 살펴주셔서 평생소원을 풀었으니 이 고마운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누!?

그렇다. 이 고마운 은덕을 어떻게 다 갚으면 좋단말인가!··· 밤이 깊도록 그는 푸르싱싱한 논밭을 돌고 또 돌았다.

뜸부기가 울고 물안개가 흘렀다. 어느 밭머리에서는 새로 재를 무져놓은 두엄더미의 알싸한 냄새가 취할듯 날아왔다.

그때 안해 순금이 그에게 다가왔다.

《저··· 나좀 보세유.》 안해는 가만히 발끝으로 땅을 허비며 말했다. 《난 지금 거기서···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유. 다들 총을 메고 의용군으로 가니··· 그 생각을 하는줄···》

《?!···》

로지봉은 놀랐다. 어질고 순박하기만 한 안해였는데··· 그 안해의 두눈이 별빛에 반짝이고있었다.

《걱정마세유. 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잘 가꾸겠어유. 어머님도 잘 뫼시고··· 그러니 맘 놓고 다녀오세유.》

이렇게 순금이는 이제 조만간에 전쟁을 이기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례사롭게 《다녀오세유.》하고 말했던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선은 멀리 북으로 옮겨가고 적들은 물밀듯 밀려들고있다. 지금쯤 그의 고향에도 미국제땅크들이 달려들어 논밭을 짓이기고 로지봉의 이름자가 새겨진 지경패말을 깔아뭉개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입안의 침이 바짝 마르는듯 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러다가 갑자기 멎어섰다.

《아니 저게 뭐유 예?!···》

그의 부르짖음에 대오가 멎었다. 그를 따라 모두 멀리 대전쪽하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먼 우뢰소리처럼 웅근 포성이 구을러오고 검은 하늘가를 벌거우리한 화광이 불태우고있었다.

그때 대오의 앞장에서 가던 최현도 말고삐를 잡고 그 먼 포성을, 화광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는 그것이 박정덕이 벌리고있는 전대미문의 치렬한 싸움이라는것을, 검은구름장들을 짓태우는 그 거대한 화광이야말로 군집단의 전체 포화력을 총동원한것에 못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무슨 일일가. 박정덕이 어떻게 되였을가?···)

그는 있을수 있는 온갖 정황을 다 상상해보며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있었다. 불안도 컸고 희망도 컸다. 그 노한 포성의 파도가 그에게 불안을 주는가 하면 충천하는 화광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넓어져가는 거센 화광이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 일은 이렇게 되였다.

그날밤 사단장 박정덕은 3개사단의 적들이 포위를 좁히고있는 조건에서 거의 모험적인 돌파작전을 벌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전체 부대 및 구분대 지휘관들에게 대전시와 주변의 병기창들에 있는 각종 구경의 포를, 적들것이건 우리것이건 있는대로 집결할것을 명령했다.

대전시와 교외에는 그때 대량의 군수품들이 쌓여있었다. 지난 7월 대전포위전이 벌어지기 전에 이곳은 적들의 대병기창으로 전변되여있었고 그후엔 우리 전선사령부의 전략물자집결지였었다. 여기엔 적들의 군용자동차만 하여도 100여대이상 널려져있었고 수백문의 포와 산더미같은 포탄들이 있었다.

박정덕은 180문의 곡사포, 평사포, 반땅크포들과 고사포까지 룡방리, 산소리의 전방을 겨누어 전개하였다. 우리의 82mm 박격포는 물론 적들의 60mm, 90mm까지도 동원하였다. 포를 쏠수 있는 사람은 죄다 떨쳐나섰고 자동차운전사들은 온종일 포탄을 실어날랐다. 그리하여 총 290문의 각종 구경의 포들이 전방의 약 6km 구간을 겨누게 되였다.

밤이 오자 박정덕은 련합부대 전체 대원들을 2시간동안 잠자게 했다. 적들의 총공격은 새벽에 있을것이다. 경계근무성원들과 포수들만이 눈을 밝히고있었다.

밤 1시, 드디여 290문의 포들이 일제히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각종구경의 파편탄, 지뢰탄, 철갑탄, 연막탄 지어 조명탄까지 불을 토하고 굉음을 터치며 울부짖었다. 포격은 1시간, 2시간 계속되였다. 포신들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천둥소리는 검은 장막을 찢으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충천하는 화염이 밤하늘을 짓태웠다.

2시 30분, 련합부대는 제1제대, 2제대도 없이 1렬횡대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뒤에서는 대오가 전진하는데 따라 사격수정을 가한 포들이 계속 앞서나가며 적진을 때렸다.

새벽 3시, 붉은색 신호탄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지동치며 울부짖던 포성이 뚝 그쳤다. 그대신 이번엔 무시무시한 돌격의 함성이 터졌다. 사단장이하 전 사단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사단의 앞길을 막는 적들은 없었다. 거대한 집중포격에 이미 정신을 잃고있던 적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전투원들을 퀭한 눈으로 보고있을뿐이였다. 사단은 순식간에 6km의 넓은 구간을 돌파해나갔다.···

로지봉이 맨처음 발견한 그 거대한 화광은 이렇게 시작된것이였다. 오래도록 멎어있던 대오가 다시 움직이였다. 여전히 로지봉은 멀리에서 타오르는 화광을 뒤돌아보군 했다. 어느 마른 삭정이에 배낭이 걸려 비청거리기까지 했다. 주영섭이 또 소리쳤다.

《지봉동무, 뭘 꾸물거리는거요. 빨리 오!-》

《예-》

대답한것은 로지봉이 아니라 자기의 헐근거리는 내심을 감추려고 애쓰는 다른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