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9장 3


 

제 9 장

3

 

정기찬네 사랑방에는 사람들이 툭 터지게 모여와 오늘 읍에 갔다온 이야기로 법석 끓었다. 총이 없던 자위대에도 한꺼번에 두자루나 생겨 사람들은 더 신이 나서 떠들어대였다. 오늘 면에 올라가 받아왔다는것이였다.

《야 총이 두자루씩이나 생기구. 이젠 전쟁이라두 하겠네.》

늦게 들어온 대복이는 총 한자루를 들어보며 입이 헤벌어졌다. 그저 당장 그 총을 들고올라가 서만호의 가슴팍에 겨누고 《야, 이놈!》소리를 지르고싶었다. 그는 오늘 영길의 지시대로 서만호의 동정을 살피느라고 읍에도 가지 못하였다.

《무슨 다른 일은 없었니?》

영길이가 다가와 물었다.

《별로 없어. 다 집에 배겨앉아있더라.》

《그것들이 집안에 배겨앉아있지만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알겠니. 야, 실은 네가 좀더 그놈집에 있다가 나와야 하는건데.》

《일없다. 서분이 있지 않니. 내 지금 가보구 오겠어. 그런데 우리 아버진 어데 갔어?》

《읍에 좀 떨어졌어. 군농조에 들리겠다구.》

《농조에? 아버진 아직 농조원두 아닌데··· 연설한다더니 잘못한거 아니야.》

대복이는 눈이 둥그래져서 들었던 총을 놓으며 겁먹은 소리를 했다.

《핫하하··· 너 되겐 마음쓰구있구나. 아버진 이젠 옛날과 달라. 오늘 연설두 우리 동흥리 사둔아버지하구 제일 잘했어 》

《그래?》

영길은 대복이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오늘 조순근이들은 영길이의 말대로 군농조에 떨어졌다. 조순근이뿐아니라 적지 않은 농민들이 군당비서의 말이 무슨 말인지 똑똑히 알고야 내려가겠다고 군농조에 들리였다.

땅을 개인소유로 안넘기고 국가소유로 한다는 말과 무슨 집단농장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진 그들은 그 사실여부를 알아보겠다고 남은것이였다.

《넌 다른 걱정말구 그놈들 동태나 잘 살펴라.

김일성장군님께서 너한테 호미까지 주시지 않았니. 꼭 땅을 타구 그놈들 망하는것두 보게 돼.》

《응. 알겠어.》

기분이 좋아진 대복이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어두웠다. 대복이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오봉산기슭을 바라고 걸었다. 서분이를 만나려는것이였다. 기쁜 마음으로 걸으니 속이 싱숭생숭해지며 기운이 솟구쳤다. 서만호를 제힘으로 한번 둘러메치고싶은 생각도 들었다. 힘이 뻗친 그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팔을 들어 우쩍우쩍 꺾어보기도 했다. 오봉산앞 아흔아홉간대가는 죽은듯이 고요했다.

정구장옆길에 들어서던 대복은 웬 사람이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것을 보았다.

《저게 웬 작자야?》

대복은 소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어둠속에서 나귀행차를 쏘아보았다. 한참 눈여겨보니 동흥리지주 송상환이였다. 그는 나귀등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대문쪽을 향해 소리치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성배가 디뚝거리는 걸음으로 마주 달려나왔다.

《아니, 이거 송주사가 아닙네까? 견마도 없이 어려운 걸음을 하셨소이다.》

성배는 나귀고삐를 받아 정구장옆에 있는 느티나무에 비끄러매고 등자에서 내리는 송상환을 부축했다.

《가만, 가만 내 다리가 채 낫지 않아서··· 부목을 떼지 못했네.》

《그럼 지난해 상한 다리가 아직···》

《그래 그래.》

송상환은 부축은 받으나 상한 다리로는 땅을 저겨디딜수가 없어 한다리를 가지고 개꾸막뜀을 했다. 그는 해방직후 동흥리 농민들의 뭇매에 들어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왜정때 일본놈을 끼고 제일 포악하게 놀다가 해방되기 바쁘게 혼뜨검을 당한것이였다. 송상환은 오늘 아침 읍에서 궐기대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또 무슨 봉변을 당하지 않나 해서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앉아있다가 저녁녘에 부랴부랴 채 낫지 않은 다리를 끌고 기동을 했다. 속이 뒤숭숭해난 그는 마름이 있긴 하지만 농민들의 기세에 벌벌 떨고있는 그에게 나서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견마는 들리지 않고 나귀잔등에 앉아왔다. 사실 부러진 다리는 의사를 불러다가 치료를 해서 다 붙었댔는데 붙고보니 잘못 붙여져서 요새 도로 뚝 꺾어가지고 바로 붙여 치료를 하느라고 늦어졌다. 송상환은 이래저래 골탕만 먹는 판이였다.

그는 한다리로 껑충껑충 사르디디며 두걸음이 멀다하게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서만호가 사랑마루에 나서서 바깥대문을 넘어서 들어오는 송상환을 여겨보더니 성배를 꾸짖었다.

《거 왜 송주사를 업지 못하구 외다리걸음을 시키나.》

그제야 성배는 송상환의 앞에 잔등을 둘러대였다.

《어서 업히시우.》

송상환은 가죽장갑을 낀 두손으로 성배의 어깨를 끌어잡으며 그의 잔등에 업혔다. 송상환이도 서만호만큼이나 덩저리가 컸다. 성배는 엉뎅이밑으로 간 손을 맞잡지 못하고 양복바지자락만 미여지게 잡아당겨 쥐고 디뚝디뚝 걸었다. 그는 겨우 사랑앞대돌을 디디며 걸어올라갔다. 대돌을 다올라가 퇴마루에 쾅 내려놓는바람에 송상환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원 조심조심 다루지 않구···》

서만호가 성배를 탓하며 혀를 찼다. 이윽고 송상환은 서만호의 부축을 받으며 부목 댄 다리를 들고 엉뎅이걸음으로 사랑방문턱을 넘어들어갔다.

대복은 이 광경을 다 엿보고나서 송상환이 타고온 나귀곁으로 다가갔다. 제몸때기 하나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쏙닥질을 하려고 왔을가.

대복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생각했다. 그러자 서만호 못지 않게 송상환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가만 있자. 이걸 풀어서 쫓아버려야지.)

허리를 굽히고 나귀곁으로 간 대복은 느티나무에서 고삐를 풀었다. 그리고는 길바닥에서 차돌멩이 하나를 주어 삐죽한 모서리로 나귀의 꽁무니를 힘껏 내려찍었다. 멍청히 서있던 당나귀는 《호홍!》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놀란 당나귀는 네굽을 안고 뛰기 시작했다. 정구장 한판을 가로질러 내뛰더니 그다음엔 정미소를 휘돌고 언덕아래길로 재령강다리를 향해 내달렸다. 어떻게나 혼이 났는지 당나귀는 다리를 건너갈 때에도 내내 네굽을 안고 뛰였다.

《나쁜놈들, 혼나봐라.》

대복이는 어둠속에서 중얼거리며 안채가 보이는 담장쪽으로 돌아갔다.

얼마후 목덜미가 돼지수패같은 송상환은 서만호와 칠소반에 마주앉아 술병을 기울이며 자기네 동흥리이야기를 한참 퍼냈다.

《글쎄 이거 사람이 코구멍 둘가지구두 숨막혀 살겠소. 군당조직부장이란놈이 들고날고하며 농민조합장을 하는 제 삼촌을 어떻게 들쑤셨는지 작인놈들이 내 집을 이젠 제 하인방만치두 안여기오. 쩍하면 달려드누만, 원 기가 막혀서.》

《군당조직부장?》

《네, 김창규라고, 그놈의 애비에미가 내 땅을 부치다가 일가몰살을 하려고 서슬단지를 가져다놓고 열살난 그놈의 새끼 입에다부터 서슬을 퍼넣었지요. 그런걸 그놈의 새낀 액퉤액퉤하며 서슬을 뱉아던지고 애비에미만 서슬을 먹고 죽었지요. 살아난놈의 새끼가 그뒤 로동판으로 굴러다녔지요. 그게 뭐 로동계급이라고 해방후엔 군당에 와서 한자리 하고있다질 않소.》

《으흠, 나두 알고있소.》

서만호는 재령강의 비화와 비슷한 이야기여서 비대한 몸을 으쓸뜨렸다.

저들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일이긴 하지만 그런 원귀가 하늘밑에 꽉 차있는것 같기도 하고 사방에서 위위 소리를 내며 죄여들어오는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그리나 그는 올방자를 괴여올리며 시뻘건 낯을 들고 큰소리를 쳤다.

《걱정말구 가있소. 암만 저희놈들끼리 원내구 좌수내구 해야 소용없소. 중앙정부가 설텐데. 그리고 이 북조선땅에서 우리편 정치세력두 공산당세력 못하지 않다는걸 알아야 하오. 그들이 가만 있질 않아. 공산당을 뒤집어엎든지 남조선에 와있는 미국군대에 원조를 청하든지 용단을 내릴거요. 그러니까 조금도 기운을 꺾이지 마오. 그리구 농군들두 다 공산당을 지지하는건 아니요. 오늘 우리 서씨문중에선 모르고 따라간놈 몇을 제외하고는 한놈도 읍엘 안갔소.》

《어이구 그렇게만 되면야 옛날같이 두다리 펴고 배두드리며 살지 않겠소. 그러지 않아 어떻게 하문 저 공산당놈들을 짓눌러버리겠는지 의논을 좀 하자구 왔댔소.》

송상환은 이발을 뿌드득거리며 거치장스럽게 걸었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또 술을 몇잔 들이키였다. 그는 농민들한테서 무리매를 맞고 다리가 부러진 다음부터는 어델 나가든 반드시 안경을 꼈다. 또 어데서 매를 맞을것만 같아 눈이라도 가리워 얼굴을 모르게 하자는것이였다.

《보자, 이놈의 새끼들, 공산당만 꺼꾸러지면 내 네놈들을 가만 둘줄 아니? 몽땅 두다리갱이를 부러뜨리고 혀가 한발씩 흘러나오게 밟아죽일테다.》

송상환은 그다음엔 서만호를 올려추기 시작했다. 자기는 죽을 봉변을 당했지만 서만호는 여적 매 한개 안맞고 끄떡없이 지낸다고 반주정으로 찬사를 했다. 서만호는 그 소리에 얼굴이 붉어져 껄껄 웃었다.

《난 이젠 떠나야겠소. 흥취도 좋은데 당나귀잔등에 앉아서 간다노자를 부르며 가보아야겠소.》

《가보우, 흉흉한 세월에 집을 비워두어서야 되겠소. 내 정세의 변화를 가끔 알리겠소.》

서만호는 사랑문을 열고 나서며 성배를 불렀다. 그가 어데 갔는지 기척도 없다.

《흥, 이젠 심부름 시켜먹을놈두 없군.》

《괜찮수다. 형님이 날 좀 부축만 해주시우.》

술이 거나해진 송상환은 서만호의 어깨를 잡으며 푸접좋게 굴었다. 서만호는 그게 더 역기가 올랐으나 꾹 참고 그의 어깨를 그러안으며 대돌을 짚어내려갔다. 술을 처먹어서 그런지 송상환은 아주 늘어져 매달리였다.

《나귀가 어디 있어?》

숨을 헐썩이며 송상환을 끌고온 서만호가 빈 느티나무밑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엉? 이거 어데 갔어? 분명 이 나무에 매두었겠는데.》

송상환이도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외다리로 벌떡거리며 두리번거렸다. 당나귀 없어졌다는 소동이 일어나자 허리굽은 장서방이 바깥대문밖으로 달려나왔다.

《나귀고삐가 끊어지진 않았소이까?》

《끊어지진 않은것 같다.》

서만호가 장서방의 물음에 신경질을 부렸다. 그는 아직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송상환을 부축하고 서서 쓴 입을 다셨다. 장서방은 굽은 허리를 비척거리며 이곳 저곳으로 나귀를 찾아 돌아다녔다.

장서방은 담장을 되돌아나왔다. 그리고는 여적 서있는 서만호에게 나귀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고삐가 풀려서 달아난게 틀림없소이다.》

서만호는 또 기색이 흐려지며 역증을 냈다.

《어서 업구 들어가자.》

그는 애첩을 끼고 자야 할 방에 술미치광이같은놈을 들여다 눕히고 같이 잘 생각을 하니 역기가 치밀어 견딜수 없는것이였다. 장서방이 송가를 업지는 못하고 끌다싶이하여 사랑방으로 들어오니 벌써 서만호의 젊은 애첩 월미가 령감과 함께 잘 잠자리를 신랑신부자리같이 깔아놓았다. 두동베개가 놓이고 함박꽃이 돋힌 양단이불이 너렁청한 방안을 하나가득 메웠다.

《아니, 이건 또 어째 들여와?》

잠옷바람의 월미가 총알같은 소리로 내쏘았다.

《나귀가 없어져 못가시와요.》

《아니 그럼 다른 방에 모실게지 꼭 이 방에 와야 돼?》

이러는데 서만호가 들어서며 잠자리 거두라고 손짓했다.

《어이구 별 꼴딱서닐 다 보네. 술을 짓쳐멕이니 인젠 잠자리까지 빼앗네.》

월미는 입안으로 혼자소리처럼 종알거리였으나 송상환이 들으라는 소리였다.

《아주머니, 여기 누워서 령감과 같이 자소그려. 내가 뭐 남 자는걸 엿보겠소. 어서 펴놓은대로 놓고 자시오. 입을 맞춰도 좋으니까···》

송상환은 술에 취해서인지 평시의 체면은 어데다 두고 쌍스러운 말을 서슴없이 지껄였다.

《어이구, 수작은 또 많군요.》

월미는 이부자리를 꿍져서 새문을 열고 장서방 방에다 탕탕 내뜨렸다. 내뜨리는 두동베개에 자기방으로 들어가던 장서방이 맞아서 하마트면 뒤로 나자빠질번 했다. 월미는 중대문쪽으로 난 출입문을 열어던지며 서분이를 불렀다.

《야, 요년, 여기 와서 이 이부자리를 거두어넣지 못하겠어?》

월미는 아흔아홉간이 깨져나가게 째진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서분이는 벌써 문옆에 와 서있다.

《야, 요년, 거기 와 서있으면서두 대답을 안해? 손에 든건 뭐냐?》

《저 나리님께서 주무시기전에 잡숫는 약을 달여가지고···》

《요년, 오늘밤엔 관둬라, 술을 처먹구 외다리뱅이놈과 흥야라 붕야라 하는데 약은 무슨놈의 약이냐.》

월미는 손을 내저어 약사발을 밀어던졌다.

그바람에 서분이는 얼굴에 약물미역을 감았다. 그래도 성이 풀리지 않는지 월미는 치마바람을 힝힝 일구며 중대문쪽으로 걸어나갔다.

얼굴에 약물미역을 감은 서분이는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닦고 장서방방에 내뜨린 이부자리를 안아들고 안방쪽 출입문을 나와 서만호들이 자는 다음방으로 올라갔다. 거기가 옷장, 경대, 화장품함, 지어는 새 장고, 가야금 같은것들을 간수해둔 월미의 방인것이다. 월미는 펴놓았던 이부자리를 꿍져서 제방에 던질것인데 제방을 송상환이같은것들한테 보이기 싫어서 장서방방에다 내던졌던것이다. 서분이는 월미의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놓고 두동베개대신에 베개모에 학을 그린 외동베개를 내려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바삐 걸어나와 중대문쪽으로 갔다. 중대문을 넘어서자고 하는데 안방부엌에 들어갔던듯싶은 월미가 나오며 새침해서 이부자리를 갰느냐고 물었다.

《녜, 작은마님방에다 갖다 펴놓았세요.》

《응, 그건 약삭바르게 잘했구나. 배라먹을년.》

잘했다고 하면서도 쌍욕질이다. 종일 팽이처럼 돌아쳐도 무엇이 마음이 안드는지 가랑잎에 불달리듯 안달복달을 한다. 서분이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안채의 부엌으로 들어왔다. 부엌으로 들어서듯마듯 또 이어 웃방에 있는 큰댁이 서분이를 불러댔다.

《야, 요년, 빨리 올라와 다리를 좀 주물러주지 못하겠니?》

서분이는 호 한숨을 내쉬며 새문을 열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인젠 백발인 큰댁이 베개우에 송낙갈은 긴머리를 풀어던지고 공작새무늬의 초록색 비단이불을 덮고 누워있는데 다리는 노상 밖으로 내놓았다. 시허연 두다리는 살집이 피둥피둥했다. 그 다리가 달아오르고 쑤셔서 못자겠다는것이였다. 서분이는 들어앉아 큰댁의 다리를 주먹으로 꾹꾹 누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비비기도 했다.

《사정보지 말아. 꽉꽉 주물러라. 어루만지지만 말고 꽉꽉, 어 시원하다. 발이랑, 발바닥도··· 손아귀에 힘을 줘서···》

서분이는 큰댁이 시키는대로 손아귀에 힘을 넣어 주물러댔다.

림종이 가까운 꼴을 하고 누워서도 세살난 아이같이 늘 타발이다. 큰댁은 쑤시는 아픔이 좀 덜해지는지 서분이를 노려보며 또 욕질을 했다.

《야, 요년. 너 인제 어데 갔댔니? 사랑방 월미년한테 갔댔지.》

《예, 나리님 약을 달여들고···》

《그래 그년이 무슨 심부름을 시키더냐?》

《자리를 깔아줬세요.》

《뭐 자리를 깔아줘? 두동베개를 놓아주고, 야, 요년!》

숨가쁜 소리로 트집을 건다. 서분이는 머리를 숙이고 대꾸를 안했다.

《요년, 그건 왜 깔아주었어? 제손으로 깔고자게 놔두지.》

큰댁은 머리를 들어 서분이의 치마자락을 걷어 잡아쥐려고 팔을 뻗쳤다. 팔이 모자라 서분이를 꼬집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귀세게 주물러주는 다리를 빼고 일어나기도 싫었다. 그래서 입으로만 악을 썼다.

《요 배라먹을년, 그 여우년한테 가서 뭐라고 소근거려줬니? 아이 시원하다. 좀더 꽉꽉··· 대라, 어서.》

서분이는 소근거린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소근거리지 않았다구?》

큰댁은 또 꼬집어보려고 서분이쪽으로 손을 뻗쳤다. 서분이는 몸을 멀리하며 손으로 큰댁의 다리를 계속 주물러주었다.

《어이구, 내 언제면 몸이 나아서 저 사랑채 여우같은년의 끄닥지를 휘감아쥐고 끌어엎겠니. 아이구 분해라···》

큰댁은 설음에 겨워 목놓아울었다. 한참 울던 큰댁이 다리를 주무르는 서분이를 월미로 보았는지 벌떡 일어나앉으며 《야, 요년!》 하고 달려들었다. 서분이는 큰댁이 두손을 벌리며 두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바람에 질겁해서 일어나 뒤문으로 빠져 달아났다. 밖에 나오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별이 어찌도 선명한지 도글도글 뛰는것 같다. 서분이는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눈물은 여윈 볼을 타고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맨날 이런 천대를 받고 어떻게 살가싶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데 가서 나혼자 남겨두고 왜 이렇게 소식 한장 없으실가, 아주 세상 떠났을가··· 내가 왜 저렇게 사람 못살게 꼬집는 큰댁을 큰엄마라구 불러가지고 이런 천대를 받을가. 문득 그는 큰댁이 자기를 《수양딸》로 정하는날 무릎을 꿇어앉히고 말하는법을 가르치던 아이적 일이 생각났다. 자기보고는 큰엄마라구 하지 말고 《마나님》이라고 하고 서만호는 《나리님》, 아들은 《서방님》, 작은댁은 《작은 마나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회초리를 쥐고앉아 외우게 했었다. 처음엔 혀가 잘 돌지 않아 《나리님》을 《나라님》이라고 잘못 불러서 회초리로 장딴지 한개를 맞기도 했다. 그보다 큰댁이 회초리 찜질을 마구 할 때는 자기를 큰엄마라고 잘못 부를 때였다. 그때마다 《종년이 누굴 보구 엄마냐?》 이러며 다리를 붙잡고 회초리로 안그러겠다고 할 때까지 때렸다.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신세는 그를 큰엄마라고 잘못 생각한 그때에 망친것이였다.···

(난 이렇게 자꾸만 꼬집히우다가 나중엔 온몸이 험집투성이가 돼서 죽을거야.)

한참 울고난 서분이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맞은쪽 담장밑에 있는 개구멍에서 딱딱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대복이가 신호하는 소리다. 서분이는 발소리를 죽이며 개구멍쪽으로 걸어갔다. 담장밑에 개가 나들수 있게 뚫어놓은 구멍이 있는데 이 개구멍이 대복이와 서분이가 련락을 가지는 장소이기도 하고 급한 땐 서분이가 몸을 오그리고 밖으로 빼는곳이기도 했다.

《서분아, 이리 좀 나와.》

대복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불렀다. 서분이는 몸을 낮추고 개구멍밖을 내다보았다.

《오빠, 왜 그래요?》

《글쎄 좀 나와.》

서분이는 담장에 등을 긁히우며 기여나갔다. 밖에서 대복이가 손을 잡아주었다.

《이걸 주려고 불렀어.》

대복이는 모개신 한컬레를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뭔데?》

서분이는 대복이의 손에서 모개신을 받아들며 어둠속에서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모개신이다. 너 주려구 집에 나간다음 삼았어.》

《모개신?》

서분이는 신을 끄당겨안았다.

《서분아, 요즘엔 내가 사는것 같다. 야학에두 다니구. 너두 이젠 야학에 나가자. 내가 이제 공책이랑 매줄테니.》

《응, 그럼 나한테두 글을 배워주나요?》

《배워주지 않구. 너 가갸거겨 모르지 않니. 우린 이젠 신문두 뜯어본다.》

《야, 좋겠네. 그런데 난 못나가요. 큰마님, 작은마님이 밤새 자지 않구 불러대는데 내가 어떻게 나가요. 무슨 벼락을 내릴지 몰라.》

《그런데 큰댁방에선 왜 저 야단이야?》

《내가 작은 마님한테 나가서 자리를 펴주었다구 저렇게 울어.》

《쳇, 송장같은게.》

대복이는 주먹으로 담장을 갈겼다.

《오빠, 난 정말 이 집을 버리구 훨훨 날아가구싶어. 오늘도 오봉산꼭대기로 흰두루미 한쌍이 떠서 훨훨 날지 않겠어.》

《쓸데없는 소리말어. 날개도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두루미처럼 난다구 그래?》

대복이는 슬며시 서분이의 손을 잡아쥐였다. 꽉 움켜쥐는 총각의 손에서 불덩이같은 뜨거움이 번져와서 서분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언제부터인가 대복에게서 위험을 느껴오던 이성의 엄습에 대한 공포의 전률이였다.

《왜 이래요?》

서분이는 얼굴이 화끈해서 손을 뽑으려 했으나 대복이는 놓아주지 않았다.

《서분아! 너 이담에 나한테 시집올래?··· 난 막 가슴이 불탄다.》

대복이는 불같이 단 손으로 서분이의 모개신 든 손마저 거머쥐며 뜨거운 입김을 불었다.

《이러지마, 징글스럽게.》

서분이는 할근할근 숨이 차서 몸을 뿌리치였다.

《흥, 싫어?》

대복이는 서분이의 손을 뿌려던지듯 훌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서 몇걸음 걸어갔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몸을 휙 돌려 서분이의 목을 두손으로 훌쩍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잽싸게 한쪽볼에 제입을 대고 뻑 입을 맞추었다.

《어마나!》

입을 맞춘 대복이는 몸을 바람개비같이 돌리며 휘파람소리가 나게 냅다뛰였다.

《아이, 저거 칵 범이나 물어가.》

서분이는 울상이 되여 발을 동동 굴렀다. 대복이 달아나는쪽에다 닥치는대로 자갈들을 뿌려던졌다. 그리고는 담장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고 총각의 입에 닿았던 볼을 꼬집어 뜯으며 울었다. 수년동안 고이 간수해두었던 깨끗한 옷을 한순간에 덞어버린것 같은 분함이였다. 그러나 밤하늘의 뭇별들은 빵긋거리며 처녀의 울음을 굽어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