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9장 2


 

제 9 장

2

 

농민대렬이 읍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자 온 시내가 들썽들썽 끓었다. 골목마다 구경군들이 나서서 박수를 쳤다. 시내변두리에 있는 왜정시대의 소장마당에서는 연설대를 만드는 일이 한창이였다. 네모번듯하게 기둥을 박아 가름대를 건너지르고 그 가름대우에 굵은 널판자를 깔아나갔다.

신당리농민대렬이 소장마당입구로 들어선것은 바로 그때였다. 신당리의 흰 명주프랑카드가 볼만했지만 그뒤에 따라선 대렬은 더욱 가관이였다. 수건을 동인 농민들속에는 갓쟁이, 통감투쟁이, 지어는 베감투, 다섯뿔난 관까지 섞였다. 관을 쓴 샘골집령감은 따라올 생각을 안하는것을 청년들이 프랑카드도 썼는데 물러서면 되느냐고 하며 손을 이끌고왔다.

수건동인 농민 하나가 갓쟁이령감과 손을 마주 쥐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들어왔다. 농민도 갓쟁이령감도 《품배 품배》입나팔을 잘 불어댔다. 벌써 연설대가 다 되여 군농민조합장이 직접 연설대우에 올라서서 마분지로 오그려만든 나팔을 입에 대고 신당리대렬은 하상리대렬옆에 가서 서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상리대렬이 저기요.》

조순근이 대렬앞에 서서 들어오며 팔뚝을 뻗쳐 가리켰다. 사람들이 마구 밀렸다. 그통에 손을 내흔들던 조순근은 하마트면 걸음을 디뚝거리다가 넘어질번 했다.

《야! 또 들어온다. 저게 어디 사람들이야?》

신당리대렬이 제자리에 들어서자 뒤이어 대렬 하나가 또 프랑카드를 여러개 들고 꿍챙꿍챙 농악까지 울리며 들어왔다. 농민들은 모두 수건을 동이고 당장 지주를 들이칠것 같이 몽둥이들을 하나씩 짚고왔다. 아래다리도 전부 각반을 치고 짚세기며 지하족을 신었다. 대렬은 소장마당으로 들어서자 농악을 울렸다. 춤도 잘 췄다. 새납소리가 소장마당을 들었다놓았다. 가관인것은 한 농민이 든 허수아비다. 때때옷 입힌 허수아비가 팔을 들었다놓았다하며 춤을 추었다. 허수아비를 든 사람이 밑으로 줄을 당겼다놓았다 할 때마다 허수아비가 저절로 곰배팔을 들었다놓았다 했다. 허수아비얼굴은 동그란 널장에 종이딱지를 붙이였는데 머리는 왼가름을 타고 두눈엔 색안경을 걸었다.

《바로 송상환이로군. 그러니 저게 동흥리대렬이요.》

《오늘은 돌밑에 눌렸던 숱한 두꺼비들이 기지개를 편다.》

어느 농민의 말에 주위의 농민들이 흐아 하고 웃어댔다. 군내에서 제일 기세가 높다고 소문이 난 동네의 대렬이 다르긴 달랐다.

《하하하, 지주계급에 대한 야유가 그럴듯 하군.》

군농민조합장이 곁에 와서 여겨보더니 한마디 하며 웃어댔다.

그는 팔목을 들어 시계를 보며 동흥리대렬을 신당리대렬곁에 이끌어다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당비서 유사천과 김창규가 소장마당으로 나왔다. 동흥리농민들 대여섯명이 김창규의 주위를 삥 둘러쌌다. 거기에는 동흥리농민조합장인 김창규의 삼촌 김재경이도 있었다.

《이사람 창규, 오늘 대회를 끝내고 돌아가선 송상환을 아주 없애치우겠네.》

삼촌 김재경의 말이였다.

《작은 아버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왜? 그놈이 지금 우리 농조가 하는 일을 눈에 든 가시처럼 보고있는데두.》

여러 농민이 소리를 질렀다.

《오늘 회의는 땅을 요구하는 궐기대회인데 인제 토지법령이 내려야 결판을 지을수 있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기다리겠나. 그럼 오늘 돌아가서 저놈을 동여놓고 토지문서를 모두 빼앗아내겠네.》

《그것두 좀 기다려주십시오.》

《이사람아, 무슨 쪼물짝한 소린가? 자네가 처음 와선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하더니 인제 와서는 왜 들여디뎠다 내디뎠다 하나? 그래 박병칠이 같은건 아주 다칠 엄두도 못내겠군.》

《박병칠인 못다칩니다. 그 사람은 지주도 아닌데 무엇때문에 청산한단말입니까?》

《아니 자넨 그놈의 집에 가서 고생살이하던 생각이 안나나? 조꼬만 자네가 갈데 없어서 그 집에 들어가 얻어먹으며 두해나 개천대받듯 했는데··· 그리구 자네가 뛰쳐난다음 자네 삼촌한테서 쌀을 한섬이나 받아냈는데 그걸 그냥 둬?···》

이번엔 다른 농민들이 주먹질을 하며 떠들었다.

《그리구 요즘 신당리 서만호한테 왔다갔다 하는게 심상치 않아. 무슨 땅을 산다는 말두 돌구··· 또 그놈이 토지개혁은 인차 될것같지 않다는 소리두 돌리네.》

박종관의 양아버지인 박병칠은 땅마지기가 적지 않은 부농인데 땅을 산다는 말은 이미부터 들어와서 박종관에게 창규가 지적을 한적이 있다.

《알았어요. 제가 알아 처리하겠어요.》

창규는 주위농민들에게 이젠 제자리에 다 들어서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신당리대렬로 와서 조순근에게 손짓으로 만나자는 시늉을 했다.

《아저씨, 연설할 자신이 있어요?》

《아, 이거 난 정말 못하갔어. 이 숱한 사람들앞에 나섰다가 무슨 망신을 당할라구.》

조순근은 울상이 되여 말했다.

《연설 못할게 뭐 있어요. 다 아저씨같은 농민들앞에서.》

《그래두 이거야 마을돌이두 아니잖나. 이제래두 다른 사람을 시키문 안되나.》

《핫하하, 아저씨한테서 장군님 만나뵈운 이야기 듣자는건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요.》

김창규는 조순근의 어깨를 아귀센 손으로 쥐여주었다.

《이름을 부르면 나와서 평양갔다온 이야기만 하세요.》

그리고는 바삐 주석단쪽으로 걸어갔다.

조순근은 지난해 가을 장마당에 왔다가 남포군청년이 연설하던 일을 생각하고는 눈앞이 아뜩해서 한숨을 쉬였다.

대회가 시작되였다. 군농민조합장이 연탁앞으로 걸어나가 대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술렁거리던 소장마당이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소장마당둘레에 늘어선 구경군들도 그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군간부들이 올라가 서있는 가설무대쪽만 눈이 아릿하게 바라보았다. 군농민조합장이 연탁가위손을 잡고 목갈린 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벌써 그는 대렬정돈을 하며 목청이 쉬여버렸다.

《여러분, 잘들 들으시오. 오늘 우리는 수천년동안 압제속에서 살아온 그 고통을 벗어던지고 제 땅에 제 보습을 박고 〈이랴! 나가자〉하며 살아보자고 여기에 모였습니다.》

확성기를 만들어달지 못해서 한껏 목청을 돋구어 연설을 해도 뒤에선 똑똑히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모두들 량귀에 손을 오그려붙이고 긴장해서 들었다. 신당리에서 온 달성서씨 농민들중에는 반귀를 먹은 령감들도 있어서 그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구 해? 땅을 어떻게 하겠다고 해?》

《나두 모르겠수다. 땅을 노나주겠다고 하겠지요. 이런 땐 눈에 붙이고 보는 망원경처럼 귀에 붙이고 듣는게 있으면 좋겠네.》

령감들은 두덜거리며 오금을 들썩거렸다. 서로 고불통에 담배를 담아들고 맞불질을 했다. 그들이 듣기에는 군농민조합장이 그저 왝왝 소리를 지르는것만 같았다. 군농민조합장은 말을 끝내고 무대가운데 서있는 유사천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안하겠는가고 묻는 표정이다. 그러자 유사천은 장화신은 발을 뚜걱거리며 연탁앞으로 다가왔다. 군농민조합장이 자리를 내주자 유사천은 연탁을 두손으로 갈라잡고 사자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한광주리되는 머리칼이 뒤통수로 물결일듯 쓸려넘어갔다.

《해방된 자유로운 근로농민여러분, 나는 길게 연설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공산당은 토지의 사적소유를 페지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있습니다. 프로레타리아전위대인 우리 공산당은 도시에 있어서뿐아니라 농촌에 있어서도 사회주의를 위한 당신들의 투쟁을 백방으로 지지할것입니다. 로농정부에 의하여 몰수된 토지는 다시는 개인의 소유로 되지 않을것입니다. 토지는 사회화될것이며 무의식적으로 운영되던 빈궁하고 걸인적인 소규모개인경리는 우리 농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재령벌과 같은 이 풍만한 초원지대는 집단농장과 집단목장이 창설되여 수백만석의 곡물과 육류를 로농국가에 바치게 될것입니다.》

처음 군중들은 군당비서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얼떨떨해서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토지가 개인소유로 될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재령벌에 집단농장을 창설한다는 소리가 나오자 눈들이 퀭해서 연탁에서 열변을 토하는 유사천을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유사천은 한참 개인농경리에 비한 대규모집단경리의 우월성에 대하여 력설하였다. 그리고 재령벌이 국영농목장으로 될수 있는 유리한 자연경제적조건에 대해서도 한참 내리엮어대였다.

《앞으로 우리 공산당에 의하여 령도되는 로농국가는 당신들에게 농촌에는 지주가 더는 없으며 농민들에게는 오직 자기의 생활을 건설하는 과업만이 남아있다는것을 선포할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 농촌에는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 말라!〉는 구호가 기발처럼 나붓기게 될것입니다.

빈농대중여러분! 봉건적인 토지소유제에 종지부를 찍고 토지를 국유화하여 바로 당신들, 전체 인민의 소유로 만듭시다. 온갖 착취자들에게 무자비하라! 해방된 조선근로농민 만세!》

유사천이 만세를 부르자 군중들도 덩달아 손을 쳐들고 만세 삼창을 하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환희로운 사변을 예감하며 해일처럼 뒤번지던 군중의 기세는 사그라지고말았다. 기쁨에 떠서 기세충천했던 농민들이 집단경리요, 국영농목장이요 하는 말에 좀 얼떨떨해졌던것이다.

김창규는 군중의 기세가 삽시에 식어드는것을 직감하고 당황하게 되였다. 잘돼나가던 대회를 유사천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아예 외지밭으로 끌고가는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유사천의 연설이 끝나자 김창규는 옆에 섰던 군농민조합장에게 빨리 농민들의 연설로 넘어가라고 눈짓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볼이 부어 서있던 군농민조합장이 얼른 연탁에 나서서 토론자를 불러내였다. 각면 농민조합장들이 연탁으로 너도나도 달려올라왔다. 그들은 연탁에 나서기 바쁘게 지주를 때려엎고 땅을 빼앗아 나눠가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유사천의 소리같은건 아랑곳없이 자기들의 속심을 그대로 웨쳐대였다. 우리는 노예살이를 뒤집어엎어야 한다, 이 어지러운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김일성장군님이 계신다, 장군님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농민해방의 날을 가져다줄 령도자는 없다, 우리가 어째서 이목구비를 갖춘 인간으로 태여나서 지주 서만호나 송상환, 박기동, 안도상이 같은놈들한테서 개돼지같은 천대를 받으며 살겠느냐, 그놈들이 가지고있는 땅을 빼앗아내고 우리의 목에 걸려있는 멍에를 벗어던져야 한다, 올가미를 끊어던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딴군에 있는 지주의 이름까지 내려부르며 연탁을 주먹으로 땅땅 치기도 했다. 회의가 점점 고조되고 연설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말소리가 뒤에까지 들려왔다. 귀바퀴에 손을 붙였던 사람들도 손을 내리우고 달성서씨네 령감쟁이들도 모두 일어서 입을 벌리고 들었다.

각 면농민조합장들의 연설이 끝나자 앞줄에서 김창규의 삼촌 김재경을 어서 나가라고 등을 밀었다.

《내가 무슨 연설을 해?》

김재경은 발을 벋디디고서서 화증머리가 난듯 눈을 흘겼다.

《왜 못해요. 그 원한이 사무친 소릴 만인앞에서 털어놓아요. 젠장 조카가 무서워서 그러우?》

《챠 이거 못한다는데두.》

김재경은 가재걸음을 쳤다. 그러다가 여러사람이 우쩍 떠미는 바람에 할수 없이 머리에 동인 수건꼬리를 너펄거리며 무대로 올라갔다. 그는 턱수염을 내리쓸며 연탁앞에 썩 나섰다.

《작은 아버지, 간단히 말하고 내려가십시오.》

연탁옆에 서있는 김창규가 무슨 실수라도 할것 같아 삼촌에게 귀속말을 했다.

《음, 그러겠네. 내가 말할줄 아나.》

그는 얼마후에야 검실검실한 눈에 눈물을 괴여올리며 입을 떼였다.

《나는 딴말은 안하겠수다. 그저 우리 김일성장군님께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게 해달라고 말씀을 올리고싶수다. 이 자리에 나오니 말은 안나가고 눈물부터 앞섭네다. 이, 이 김창규 이사람네 일가가, 우리 형님네 일가가 송상환의 땅 하루갈이를 얻어부치다가, 그 부대밭같은 땅을 하루갈이··· 빚도 거짓부리빚에 몰려서 그 땅마저 떼우구 살길이 막막해서 우리 형님, 형수는 서슬을 먹구 저세상··· 으으으, 말을 못하겠수다.》

김재경은 연탁앞에 서서 울음을 터쳤다. 부지중 김창규의 눈에 그렁하게 눈물이 괴여올랐다. 서슬을 안먹겠다고 몸부림치던 열살때의 참담한 추억이 현훈증을 일으켜 눈앞이 어질거렸다. 두눈에 흰자위가 덮여 덜컥 군드러지던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 어린 자기의 손을 잡아보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손가락만 바들바들하며 숨이 지던 어머니의 모습, 그것이 방금전에 있었던 일같이 눈앞에 펼쳐지며 가슴을 란도질하였다.

《작은아버지, 그만하고 내려가십시오.》

《이사람 창규, 자넨 서슬을 내뱉으며 겨우 살아난 생각이 안나나? 자네가 그때 애비의 우악스럽게 틀어잡은 입에 쏟아넣는 서슬을 몇모금이라도 넘겼더라면 지금 이 높은 자리에 이렇게 서있기나 할것같은가. 그 생각이 안나서 나더러 말을 하지 말라구 하나? 나는 자네가 곁에 서있으니 더, 더 눈물이 나네.》

김재경은 연탁을 치며 흐느꼈다. 김창규도 삼촌의 말에 목이 꺽 막히고 눈물이 솟구쳐 더 말려내지 못했다.

《장군님, 우리 장군님, 이 원한을 풀게 해주시오이다. 지금 우리 고을하늘밑엔 원한이 꽉 찼습네다. 늙은 농사군들이 재령강물에 빠져죽은 원한, 내 형님내외가 음독자살한 원한··· 장군님, 이 원한의 검은 구름을 벗기고 맑은 하늘을 보게 해주옵소서.》

김재경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숙이며 큰절을 했다. 온 소장마당이 징해졌다.

얼마후에야 김재경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군농민조합장이 연탁에 나서서 이번에는 신당리 조순근이 연설을 하겠다고 소개했다.

《누구래? 조순근이 연설을 한단말이야?》

《왜 못할줄 알아요. 이제 그 농민처럼 울고 내려오면 되지요.》

신당리대렬은 떠들어올렸다. 대렬의 맨앞에 서있던 조순근은 주석단에서 자기이름이 들려오자 흠칫 몸을 떨었다. 드디여 걱정스럽던 일이 시작된것이다.

온몸의 피가 머리꼭뒤로 올리뻗치는지 귀가 왕왕 울리고 곁사람들의 말소리조차 가늠해들을수가 없다. 그는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밀어서야 무대모서리쪽으로 엉깃거리며 걸어갔다. 꽁무니에는 아침에 대복이가 가지고 나왔던것을 빼앗아 찔러넣은 호미가 매달려 달랑거렸다.

《아니, 저 사람이 연설하러 나가는데 호미는 왜 차구나가?》 달성서씨들이 저게 무슨 모양인가고 떠들었다. 조순근은 지금 그런것을 알아차릴 경황이 못되였다.

《모르면 가만있소. 그게 평양가서 가져온 호미요. 이제 땅을 타면 저걸루 장수가 은장도 쓰듯 할게요.》

장춘하가 주석단쪽으로 걸어가는 조순근을 주시하며 떠들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도 달성서씨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주먹을 쥐고 긴장해 서있는 장춘하를 쳐다보았다. 흥묵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씨농민들의 귀에 대고 무슨 소린가 몇마디 소곤거려주었다. 그제야 그들은 알아먹은듯 진중한 낯빛이 되여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순근은 무대에 빗대놓은 상자를 디디고 올라섰다. 그는 허리를 펴며 연탁앞으로 가는 순간 피끗 시야에 흘러드는 바다같은 사람의 떼를 보며 또 아래다리를 떨었다. 수천쌍의 눈동자가 숨소리 하나없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저, 난 신당리에 사는 무지렁이 조순근이올시다.》

조순근은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마디 뗀다는것이 그렇게 되였다. 그 소리에 긴장했던 군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엥이, 연설대앞에 나가서 무지렁이라니. 그 무지렁이라는 말을 뺐으면 좋지 않어.》

다섯뿔난 관을 쓰고온 샘골집초시령감이 혀를 끌끌 갈겼다. 군중은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연탁을 움켜잡은 조순근은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넋없이 군중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아니, 저 사람이 말을 하는거요 먹는거요?》

군중들이 이러며 술렁대였다.

《조순근동무, 사람들을 내려다보지 마우. 그러면 말이 더 안되우. 여러분, 신당리 조순근동무로 말하면 이번에 평양에 올라가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옵고 땅을 달라는 혈서를 진정하였습니다. 조순근동무, 이젠 말을 하우.》

군농민조합장이 옆에 다가와서 옆구리를 찔렀다. 조순근은 그제야 얼마간 굳어졌던 몸이 저절로 풀리는것 같았다.

《저, 난 사실 서만호한테 재판에서 지고 돌아간 아버지들만두 못한 멍텅구리였습네다. 글쎄 내가 서만호의 멱살을 못들구 빼앗았던 총까지 도로 내주구 농조에서 딸려났시다.》

밑에 선 군중들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소리쳤다.

《어서 장군님 만나뵈운 소릴 하시오!-》

연설대 가까운 대렬속에서 웨쳐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조순근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장군님께서 당신의 혈서를 보시구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말이요?》

한 농민이 두손을 입에 오그려붙이고 소리쳤다. 조순근은 장군님을 만나뵙던 일이 눈앞에 떠오르며 고아대는 군중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옳습네다. 이제 그 말을 하갔어요. 장군님께서는 이 두주먹을 쥐여흔드시며 온 나라 농민들이 다 같이 쳐들어야 한다고 하셨시다.》

《저런 답답이라구야!》

군중이 또 웃으며 안타까운 소리를 내였다.

《좀 똑똑히 말하시오. 앞으로 땅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셨소?》

대렬속에서 또 질문이 터졌다.

《여러분, 알갔시다. 내 다 말하갔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땅은 나같은 밭갈이하는 농민들이 무상으로 빼앗아서 무상으로 나눠가져야 한다구 하셨시다. 그러시면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면 지주들은 그걸 도로 빼앗으려고 발악할수 있는데 꽤 지켜냄즉한가고 물으셨습네다.》

《그래 뭐라고 대답을 올렸소?》

연설은 아주 문답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고보니 조순근이도 말하기가 한결 쉬웠다.

《난 이렇게 말씀올렸시다. 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서만호지주가 다시 뺏으려고 한다면 이 손에 쇠스랑, 낫, 호미, 걸이대를 들고 들어가 그놈의 정수리와 배창을 찍어가르겠다고 말이여요. 여러분! 그렇찮습네까. 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우리가 어떻게 빼앗길수 있겠나요!》

《옳소오!》

《악질지주놈은 타도해버려야 하오!》

동흥리대렬에서 몽둥이들이 올라가며 함성이 일어났다.

《우리도 저 송상환의 배창을 찍어당기겠소. 사지를 갈라던지겠소.》

김재경이 맞받아 소리쳤다. 온 소장마당이 움씰거렸다.

《거 호미이야기도 마저하십시오.》

주석단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조순근은 그 소리에 앗차 하며 허리춤으로 손이 돌아갔다.

《여러분네들, 내 말 마저 들어줘요. 이걸 보시우. 호미웨다. 어떤 호미인지 모를거웨다. 이건 김일성장군님께서 토지를 분여받으면 내밭에서 농사지을 때 쓰라고 직접 제손에 쥐여주신 김매는 호미웨다. 불쌍한 내 아들에게도 한자루 주셔서 이런 호미를 두개나 장군님댁에서 가져왔습네다.》

조순근은 쇠독이 거밋거밋 내배인 호미를 머리우로 높이 쳐들어올리였다. 그러자 밑에 선 군중들이 《야! 야!》 환성을 지르며 우뢰같은 박수를 올리였다.

아까 김창규가 그러했던것처럼 이때 조순근이도 눈앞이 뿌잇하게 흐려지면서 피눈물로 얼룩진 쓰라린 과거의 영상들이 비껴왔다.

아버지의 시신을 건져낸 재령강여울물, 목신제를 지내며 하늘에 애원하던 안해의 가련한 모습 그리고 운명을 희롱하던 조만식의 문서장이며 그 모든 슬프고 억울하고 절망적이던 과거의 그림자들이 연줄연줄 흘러갔다. 그는 걸음마다 지꿎게 고통을 안겨주며 장구하게 흘러온 그 역겨운 생활들이 머리우에 높이 추켜든 철의 농쟁기앞에서 산산이 부셔져나가는것을 보고있었다. 가슴에 부풀어오르는 환희의 흥분을 터치며 저도 모르게 군중을 향하여 소리높이 웨쳤다.

김일성장군님 만세!》

수많은 군중들이 머리우에 손을 뻗쳐올리며 만세를 따라불렀다.

김일성장군님 만세!》

온 장마당을 진감하는 우렁찬 만세소리와 함께 기발과 프랑카드들이 군중의 머리우로 수풀처럼 올라갔다. 군중들의 흥분이 이렇게 절정을 이루고있을 때 한 농민이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진정서를 랑독하였다. 그것은 만장의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채택되였다.

군농민조합장이 이삼일안으로 진정서에 서명하는 일을 끝내고 곧 김일성장군님께 올리겠다고 하자 군중들은 또다시 와아와아 환성을 올리고 만세를 웨치며 세차게 들끓었다.

얼마후 대회는 시위로 넘어갔다. 사방에서 구호가 터져오르고 농악소리가 울렸다. 김창규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열광적으로 만세를 부르며 지나가는 농민들을 내려다보았다. 유사천의 연설에 찬물을 뒤집어쓸번했던 대회는 하도 농민들의 기세가 높은 바람에 제곬을 탔다. 꼭 기울어졌던 큰 배가 다시 바로 서며 파도를 타고 둥둥 떠가는것 같았다. 시위로 넘어간 군중은 무대앞을 지나 소장마당을 한바퀴씩 돌고 시내로 들어갔다. 군중이 얼마나 꽉 들어찼던지 해지기전에는 다 빠져낼것 같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