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8장 4


 

제 8 장

4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서 각도 파견원들에게 전화를 거시였다. 최근 3.7제를 통한 농민들의 준비정도가 어떠한가에 대하여 도별로 료해를 한 다음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대중적인 농민궐기모임을 모든 도, 시, 군, 면들에서 조직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러면서 이 투쟁은 3.7제운동을 한걸음 전진시켜 토지개혁을 위한 직접적인 준비단계의 투쟁으로 된다고 강조하시였다. 요즘 장군님께서는 며칠전 댁에 찾아오셨던 만경대할아버님과 조순근의 얼굴이 무시로 떠오르며 가슴이 부풀어나시였다. 수천년간 굴욕과 천대의 무거운 중압에 짓눌려 숨조차 크게 못쉬고 살던 우리 농민들이 이제는 눈을 뜨고 자기를 지지누르는 무거운 짐을 둘러메칠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것이였다. 지금도 장군님의 귀전에는 피를 토하는것 같은 조순근의 울부짖음이 쟁쟁하시였다. 쇠스랑, 걸이대, 낫을 추켜들고 지주의 정수리를 찍어넘기겠다고 두주먹을 돌같이 뭉그려쥐고 부르짖던 그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순종밖에 모르던 양같이 어진 농군의 얼굴에 비껴오르는 계급의식, 그 황해도 농군의 부르쥔 두주먹에서 바야흐로 각성되여가는 조선농민의 새 모습을 볼수 있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여태 고심하며 찾던 토지혁명의 불씨가 뜻하지 않게 찾아온 할아버님과 조순근농민의 가슴속에서 튀여나온것만 같으시였다. 분명 그이께서는 료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타오르게 할 토지혁명의 불씨를 보시였다. 하여 그이께서는 토지개혁의 진군신호를 하늘높이 올리시였다. 기치장검을 들고 봉건의 장벽을 무찌르며 나아가는 여섯개 도의 농민대오가 방불히도 눈앞에 펼쳐지시였다. 함북, 함남과 같은 산세 험한곳에서도 황해도와 같이 무연한 벌에서도 산간벽곡 그 어느 두메산촌에서도 일제히 화염이 충천하는듯 하시였다.

전화를 다 끝내고도 장군님께서는 흥분을 걷잡을수 없어 방안을 거니시였다. 마루바닥이 장군님의 가벼운 발걸음에 삐걱삐걱 가락맞게 울리군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한쪽벽에 걸린 조선지도앞에서 뒤짐을 지고 한참씩 서계시기도 하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3.7제구호를 내거는 첫 시각부터 당장 토지개혁법령을 떨구자고 조르던 성미급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그속에는 강진건이도 있었다. 그들을 막아나설 때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던가. 그러나 이제는 력사의 사변이 이 땅에 도래하고있었으며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야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조선지도를 한창 들여다보고계실 때 조용히 출입문을 두드리고 송신일이 들어섰다.

《장군님, 바쁘시지 않습니까. 긴히 의논할 문제가 생겨서 찾아왔습니다.》

송신일은 서류철을 옆에 끼고 문가에 서서 장군님께 묵례를 하였다.

《송선생, 어서 가까이 와 앉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친히 송신일의 손을 잡고 쏘파에 앉도록 자리를 권하시였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저의 집에 지주가 한사람 찾아왔습니다.》

송신일은 무중 말을 꺼내놓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이었다.

《지주라고는 하지만 보통 지주들과는 달리 행색이 초라하고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더군요. 자기도 예수를 믿는 교인이라면서 저에게 진정서라는걸 맡기고 갔습니다. 장군님께 올려달라고···》

송신일은 서류철에서 편지를 꺼내여 장군님께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편지를 넘겨받으시였다. 편지는 숙달치 못한 문장으로 엮어진 역시 토지를 빼앗지 말아달라는 청원이였다. 자기의 토지란 전부 산등판에 얹혀있는 화전인데 그것을 개간한 값으로 농민들이 3년을 거저 부치고 3년후에야 반작으로 나누어 먹었다고 하면서 따져보면 그것은 자기가 하느님의 뜻으로 작인들에게 덕을 입힌 소행이라고 했다. 자기 땅이 있는 구룡벌이라는 벌에는 논이 몇마지기 되지 않고 그렇게 작인들에게 은덕을 입히는 화전들이 소유지의 거의라고 말할수 있으니 부디 이 점을 하량하시고 땅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행색이 초라하다는 송신일의 말과 이 숙달치 못한 진정서를 하나로 련결시켜보시였다. 거기에는 아직 한마디로 단정할수 없는 심중한 문제가 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더란 말이지요?》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조용히 뇌이시였다.

《자기는 교인이기때문에 저를 믿고 편지를 맡기고 간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깨가 축 처져서 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다가 송신일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선생님, 이 지주에 대해선 앞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예, 제가 한번 그 마을에 들려보겠습니다. 그러지 않아 저는 요즘 토지개혁을 놓고 땅을 가지고있는 친지들과 의논해보고있습니다. 제 며칠전에는 강서에 있는 저의 한 구면지기의 편지를 받고 기쁨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 그 일도 알려드릴겸 해서 오늘 이렇게 장군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건 또 무슨 편지인데 선생님을 그렇게 기쁘게 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이 이렇게 맘껏 기뻐하는 얼굴을 처음 보시였다. 눈가장자리가 약간 발그레해져서 웃고있는 모습이 은테안경에 비쳐 더 밝아보였다. 얼핏 보면 송신일은 침울하고 과묵한 사람같지만 웃음이 많고 이야기 잘하고 체육과 노래를 즐기는 다정다감한 교육자였다. 그러나 그 모든것들이 진폭이 크지 않는데다 조용한속에서 단정한 울타리를 치고있기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뿐이였다.

송신일은 얼마전에 편지를 보낸 강서의 윤장로에게서 땅을 나라에 바쳤다는 회답을 받고 어제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윤장로가 용단을 크게 내린것이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된다는 확신으로 하여 기운이 북받쳐 방안을 돌며 안정을 못했었다.

《전 사실 장군님을 웃층에 모시고있으면서 나는 아래방에서 딴꿈을 꾸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자기 가슴속을 들여다볼 때가 많습니다.》

《허허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이 어떻게 저와 다른 꿈을 꾸시겠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동상이몽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평생 거짓이라는것을 모르고 살아온 선량한 신자이며 교육자인 송신일은 장군님앞에서 자기 마음을 추호도 숨기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그것이 미덥고 고마왔다.

《장군님, 솔직히 말해서 저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면서 인도주의적인 어떤 방법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장군님께 다시한번 저의 의견을 말씀드려서 잘못된점이 있으면 바로잡자고 합니다.》

송신일은 웃음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조용한분의 가슴속에 분명 무슨 안타까움이 서려있다는 느낌을 받으시였다.

《저도 기억하고있습니다. 선생이 토지개혁을 인도주의적으로 하시자는 제기를 말입니다. 나도 토지개혁이 피를 흘리면서 되여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문제지요.》

《예. 고맙습니다. 저의 분명치 못한 주장두 다 기억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전 장군님께서 항일전쟁을 하시면서 토지개혁을 하셨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장군님, 그때두 지주일반을 다 숙청하지 않고 반일을 지지하는 지주들은 그냥 놔두었다고 하시던데···》

《예,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런 지주가 지금도 있습니다. 어제는 반일을 하고 오늘은 건국을 지지하는 지주가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건 좋은 일입니다.》

《제가 토지개혁문제루 고민하다가 땅을 가지고있는, 이를테면 지주계급에 속하는 저의 동료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냈습니다. 저의 고민이란 전번에 말씀드린것처럼 지주를 건드리면 그와 사돈의 팔촌까지 캐서 얼마나 많은 세력이 우리 통일전선에서 떨어져 나가겠는가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지금 조선의 백성이 다 장군님을 따르는데 그 지주 한둘을 다쳤다가 온 일가족속들이 건국을 반대하면 우리 힘이 그만큼 약해지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땅을 희사하고 건국에 나서라구 호소를 했더니 한사람 회답이 왔는데 제가 부칠 7천평 과수만 내놓고 땅을 모두 인민위원회에 바쳤다지 않습니까. 장군님,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주들두 감화가 되여서 너두나두 땅을 내놓지 않겠습니까.》

《예, 그러니까 제가 부칠 땅만 내놓고 나라에 땅을 희사하였단말이지요?》

《녜. 혹 땅을 안내놓겠다고 버티기를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런 좋은 실례를 교훈삼아 설복을 들이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신일은 송구스러운듯 두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우려하시는 점도 다 리해가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맡은 직분만 해도 아름찬데 그런 시름까지 늘 하시니 몸이 퍽 축가는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의 움푹 꺼진 눈확을 보자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송신일은 아직도 지주의 세력을 두려워하고있고 지어는 지주의 땅을 강권으로 빼앗아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여하는 그 원칙이 인도주의적인것과 인연이 먼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품고있는듯싶었다.

장군님께서는 순박하고 조용한 신자에게 계급투쟁의 깊이를 한꺼번에 깨닫게 하기가 어렵다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하시였다. 그렇다고 그가 계속 자기의 소박한 주장에 미련을 가지게 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주위를 몇바퀴 도시였다.

송신일에게 혁명의 준엄한 진리에 대해서 이런 기회에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것은 송신일이 지금 들어선 건국의 곧은 길을 따라 편향없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몸을 돌려 송신일의 앞으로 마주오시였다.

《선생님, 토지를 먼저 우리 정권에 희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달리 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주계급이라는 자기의 부패한 계급에서 스스로 떨어져나온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윤장로처럼 스스로 땅을 바치는 지주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절대다수의 지주가 소작료를 3할로 낮추라는 요구에조차 순응하지 않았는데 과연 그런 지주들이 우리의 설복을 들어줄가요? 그들이 스스로 땅을 나라에 바치고 근로하는 사람으로 되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것을 선생님은 이제 현실에서 보게 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으나 그 어조는 무한한 깊이와 무게를 담고있었다.

《선생님은 아직 토지개혁의 참뜻을 모르고있습니다. 그것을 맑스주의리론이 적혀있는 책을 놓고 리해하자고 하면 잘 되지 않을것입니다.》

《솔직히 말씀올리면 저는 뒤늦게 맑스주의 공부를 해보고있는데 책을 읽을수록 의문이 커지고 놀라게만 됩니다.》

어두운 그늘이 비낀 송신일의 음울한 얼굴에 서글픈 미소가 어리였다.

《선생님은 목사가 아닙니까.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토지개혁을 아주 쉽게, 잠간동안에 리해할수 있는 방도가 있습니다.》

《예?!》

부지중 외마디소리를 내는 송신일의 안경에서 번쩍 빛을 뿜었다.

《선생님도 오랜 세월 우리 인민들속에 전해오는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알고계시겠지요? 토지개혁은 우리 인민들의 념원을 담은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현실로 전환시키는것입니다. 선생님은 놀고먹는 욕심꾸러기 놀부를 엄하게 징벌하는 이 이야기를 놓고 비인도주의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원쑤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신봉하는 신자들중에도 결코 이 이야기가 비인도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의 표정을 눈여겨 살피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놀고먹는 지주가 바로 놀부이고 가난하고 부지런한 농민은 흥부입니다. 수많은 농민들이 땅때문에 헐벗고 굶주리고있는데 혼자서 숱한 땅을 차지하고 그것으로 농군들의 고혈을 짜내는 지주는 사실상 놀부를 무색케 하는 욕심꾸러기지요. 그들은 제비다리를 일부러 꺾어놓고 싸매주는 놀부의 심보보다도 더 고약한 방법으로 땅을 걷어모았습니다. 결코 하늘이 처음부터 그들에게 땅을 거저준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땅의 래력을 캐여본다면 아마 상상할수 없는, 몸서리치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될것입니다. 놀부의 심보를 가진 지주가 땅을 스스로 내놓겠는가? 그런 지주의 땅을 빼앗아서 농군들에게 나눠주는것이 과연 비인도주의적인것이겠는가? 선생님,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송신일은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 눈을 지그시 감은채 고개를 수그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도 이윽히 침묵을 지키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지주들에게도 농사지어먹을 땅을 주어서 살길을 열어주려고 합니다. 지주도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먹겠다면 일반 농민들과 꼭같이 필요한 량의 땅을 주자는것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이이상 더 어떻게 인도주의를 베풀겠습니까?》

《장군님!》

송신일은 고개를 쳐들며 입귀를 떨었다.

《장군님, 제 좀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 문제는 선생님과 나 사이에 숙제로 남겨둡시다. 준엄한 우리 나라의 현실이 오래지 않아 답을 줄것입니다.》

송신일의 은테안경속에서 두눈이 깊은 사색을 담은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