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8장 3


 

제 8 장

3

 

《그러니까 3대째 머슴을 사는군요.》

장군님께서는 조순근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의 불갈구리같은 손을 잡으며 동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시였다. 조순근은 장군님과 할아버님앞에서 자기 일가가 살아온 피눈물나는 이야기를 있는대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해방되여서 오늘까지 농조에 들어가 투쟁하던 일과 3.7제를 해내면서 끝까지 잘하지 못하고 쫓겨나던 얼굴뜨거운 자기 잘못도 말씀드렸다. 그다음 밭을 떼우고 서만호와 싸우던 일, 마지막에는 고향을 뜨자고 결심했던 일도 서슴없이 다 털어내놓았다.

《이 사람은 고생을 수태 한 사람이야.》

《예, 말씀을 들어보니 불행도 많이 당하시고 풀지 못한 원한도 깊습니다.》

장군님께서 할아버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조순근은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다 들어주시는 장군님께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몇번이고 곱씹으며 벌겋게 피가 진 두눈을 자꾸 슴벅거렸다.

《이렇게 대복이 아버지의 청을 직접 받고보니 내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땅은 바로 대복이 아버지같은분들의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은 밭갈이하는 농민에게로!〉라는 구호를 내놓고있는것입니다.》

《장군님, 그런데 저는 장군님의 정사에 방해가 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조만식이란놈이 꼬드기는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도깨비문서에 지장을 찍었쉐다, 천벌을 맞아 마땅한··· 흐흑···》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조순근은 마침내 흐느낌을 터뜨리였다.

《대복이 아버지, 그만하십시오. 일없습니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문서장 하나때문에 세상일이 바로 못될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조순근의 혈서와 눈물로 자책하는 절절한 목소리에서 무엇인가 력사의 한 층계를 디디고 올라서는듯 한 농민의 성장을 보며 기뻐하시였다. 우리 농민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우리 농민들을 기만하지도 우롱하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힘이 생기시였다. 그러면서도 장군님의 두어깨는 섬돌을 올려놓은것처럼 무거우시였다. 대대로 속히워 살고 억눌려 살며 항거의 주먹을 뻗쳐올렸다간 죽음을 당해야 하는 그 수난의 세월에 풀지 못한 한스러운 일을 자신께 풀어달라고 안타깝게 부르짖는 이 농민을 위해서 지금 속이 확 열리는 시원한 대답을 해주실수 없는것이다. 땅은 틀림없이 차례지게 된다는 약속, 그건 약속이지 준다는 확답은 아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조순근의 험한 손 하나를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려다보시였다. 손이 우선 두텁고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들도 끝이 작두로 잘라낸것 같이 뭉툭하다. 손등이나 손바닥이나 차이가 없이 거칠고 상처투성인데 손가락마디들엔 아물지 않은 상처자리들이 손금처럼 뻗어있었다. 자신과 가족들의 생사를 걸고 땅을 주무르고 돌을 들어내며 억세게 쟁기를 틀어쥐는 이 손이 부드러울리 없는것이다. 그래도 손은 너무 험했다. 사람의 손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투박스럽다. 장군님께서는 조순근의 다른 한손도 들어보시였다. 손가락끝이 이지러지고 닳아서 손톱들은 까부러들지 않으면 쪼개지거나 끝이 부스러졌고 어떤 손가락엔 아예 손톱이 없는것도 있다.

조순근은 갈퀴같은 자기의 험한 손을 쓰다듬어주시는 장군님의 애무의 손길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온몸의 혈관으로 퍼져가는듯 가슴이 후더워오고 눈굽이 저려나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대복이 아버지, 그 마을 지주의 이름이 서만호이지요?》

《예?!···》

조순근은 장군님께서 어떻게 그놈의 이름을 알고계시는지 저으기 놀라와 눈을 치뜨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 지주가 얼마전에 동맹중앙위원회앞으로 토지개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약한 글을 써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아침에 우리에게도 편지가 왔는데 자기는 애국지주라고 하면서 재령벌 전답들을 농조원들의 란동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것입니다.》

조순근은 주먹같은 불뭉치가 명치를 치받아오르는듯 한 분노의 열화로 숨이 콱 막히였다.

《장군님, 바루 그놈입네다. 저의 집안은 서만호, 그놈때문에 3대가 망했어요.》

조순근은 어느새 어려움도 긴장도 잊어버리고 마치 서만호가 눈앞에 있는듯이 주먹으로 무릎을 치며 계속 부르짖었다.

《장군님, 그놈은 애국지주가 아니라 친일지줍네다. 그놈은 한일합방후 일본놈을 끼구 갈밭을 얻어가지구 농군들의 피땀을 짜서 백리전답을 불궈놓은 놈입네다.》

사실 조순근은 서만호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싶었으나 말이 모자랐다.

《대복이 아버지, 알겠습니다. 우리도 그놈의 허튼 소리에 넘어갈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자기를 애국자라고 하는 애국자는 없습니다.》

《장군, 이사람의 말을 듣고보니 나도 분을 참을수 없구만. 그래 그 악착한 지주놈들의 땅을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할아버님이 재털이에 담배대를 올려놓으며 절절하게 물으시였다. 그이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지주놈의 땅이야 이 대복이 아버지같은 농민들이 나눠가지셔야지요.》

장군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다가앉는 할아버님을 쳐다보시였다.

《그걸 몰라서 내가 묻는줄 아나. 난 다른 소리를 들은게 있어서 그래.》

할아버님께서는 방바닥을 손으로 두드리며 기색이 사뭇 엄해지시였다.

《무슨 말씀인지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옆에 앉은 조순근을 피끗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으시였다. 조순근이 보기에 할아버님이 무슨 노여운 일이 있는것 같았다.

《지금 우리 마을엔 나라에서 농군들에게 땅을 돈주고 팔아준다는 소문이 도는데 왜 그런 흉흉한 말이 떠도는지 모르겠거든··· 실은 내가 오늘 그걸 좀 똑똑히 알아보자구 왔어.》

사실 이 며칠동안 만경대농민들속에는 누가 얻어듣고와서 퍼뜨렸는지 올봄에 토지개혁을 하는데 나라에서 땅을 팔아준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소문은 발이 달려서 강건너 신흥리쪽에까지 퍼졌다. 그래서 농민들이 매일밤 베틀에 북나들듯 할아버님과 형록삼촌을 찾아와서는 땅을 팔아준다는데 몇해동안에 땅값을 물게 하는가, 땅값을 년부로 내지 않고 한꺼번에 내야 한다면 땅을 살수 있는 농군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하고 근심들을 터놓았다. 심지어 어떤 농민은 땅을 사기 위해 부림소를 팔러 장마당으로 가는것을 할아버님께서 엄하게 책망하여 돌려보내신 일도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의 말을 듣고 자못 놀라시였다.

《땅을 사기 위해 소를 팔러 다니는 농군이 있단말입니까?》

《내 눈에 띄운것만 해두 그런 사람이 둘씩이나 되니 민심이 어느쯤 됐는지 알만하지 않나. 헌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가?》

《할아버지, 솔직히 말하면 토지개혁을 유상몰수, 유상분배 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정색을 짓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허어? 그럼 그게 랑설이 아니였구나. 그럼 내 장군한테 한마디 하겠어. 민심이 천심이야. 앞으로 땅을 돈주고 사라고 하면 조선농군들이 장군을 받들지 않아. 이걸 똑똑히 명심하라구.》

할아버님은 노하신듯 크게 기침소리를 내며 장군님을 외면하여 머리를 돌렸다. 그바람에 장군님께서는 몸을 제끼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그 무언가 알지 못할 찌르르한것이 한줄기 파도쳐 흘러갔다. 할아버님의 순박한 심정에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이런 말까지 하시랴 하는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메운다. 할아버님은 정말 노하였는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담배를 태우셨다. 담배대를 쥔 손이 보일락말락 떨린다. 장군님의 눈굽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시였다.

《할아버지, 노여워마십시오.》

그이의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할아버지, 내가 땅분여를 못하면 말았지 그런짓이야 하게 하겠습니까. 우리 할머님의 의농밑에 시집올 때 가져오신 엽전 세잎을 보구 내가 그런 일에 찬성을 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의 불이 죽은 담배대에 성냥을 그어서 대드리며 말씀하시였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이 나라를 왜놈들한테서 돈주고 찾았어요? 땅도 마찬가지지요. 지주놈들이 농민들한테서 돈을 주고 샀는가요. 우리가 뭣때문에 피흘려 찾은 제 나라에서 제 땅을 다시 돈내고 산단말입니까? 할아버지, 난 이 혈서를 래일 가지고나가 우리 전체 동무들에게 돌려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조선농민들은 이렇게 더운 피로써 땅을 요구하고있다고 말입니다.··· 이 편지를 보면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제기한 사람들도 생각을 달리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앞에 놓았던 편지종이를 들고 힘있게 흔드시였다.

《할아버님, 어떻게 하나 밭갈이전으로 농민들에게 땅을 분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옳습니다. 민심이 천심입니다. 나는 이 한장의 혈서가 바로 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편지봉투를 들어올리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할아버님은 정기가 번쩍이는 그이의 눈빛에서 일거에 천지를 개벽하는 무한한 힘을 느끼고 불시에 조순근의 어깨팍을 흔드시였다.

《이보라구 재령벌농군, 내가 무어라던가? 이 봄엔 내땅을 갈구 내땅에 씨뿌리게 될거라구 했지···》

《아버니임-》

조순근의 눈에서는 갑자기 더운 눈물이 솟구쳐올라 량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아버지! 이젠 제가 한마디 묻겠습니다. 토지개혁을 하자면 지주놈의 땅을 빼앗아내야 하는데 그럴 자신들이 있습니까? 서만호같은 지주놈의 발악이 여간치 않겠는데 땅을 지켜낼 자신이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웃음을 거두고 할아버님과 조순근을 눈여겨보시였다.

《장군님···》

조순근이 불현듯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두주먹을 뭉그려쥐였다.

《어서 말을 하게.》

할아버님이 턱짓을 하시였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땅을 빼앗으라는 령만 내려주십시오. 우리 농군들이 쇠스랑, 걸이대, 호미, 낫가락 닥치는대로 들고 일어나서 저, 저 악귀같은 그놈의 정수리를 찍어당기고말갔습네다. 그래서 이, 이 가슴에 쌓인 원한을 풀갔습네다.》

조순근은 뭉그려진 주먹으로 제가슴을 두드렸다.

《옳네. 그 옛날 아버지원한두 풀어야 해. 장군, 이게 우리 대답일세.》

할아버님께서도 격정에 넘쳐 웨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불을 토하는것 같은 대답을 가슴에 받아안으며 할아버님과 조순근의 손을 갈라쥐시였다. 돌같이 뭉그려진 할아버님과 조순근의 두주먹은 크기도 비슷했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갈라진 두 농군의 손에서 쿵쿵 울려오는듯 하였다.

《됩니다. 이 힘이면 됩니다. 무서울것이 없습니다.》

장군님의 가슴속에서는 세찬 격랑이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할아버님과 조순근의 구리빛 얼굴에서 땅의 주인으로 새 력사의 무대우에 올라서는 온 나라 농민들의 얼굴을 보는것 같으시였다. 바로 저 황해도농군처럼 온 나라 농민들은 한목소리로 땅을 내라고, 땅을 가지겠다고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을 지르며 일어날것이다. 수백만 농민들이 이렇게 자각하기만하면 수천년 쌓이고쌓여 석벽처럼 굳어진 봉건의 장벽도 일조에 박살이 나서 모래성처럼 무너질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이 저녁에 그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여 무한히 기쁘시였다. 그리하여 그이께서는 벌써 땅을 받는 농민들의 얼굴을 그려보며 목책을 펼쳐들고 조순근에게 재령벌의 토질이 어떤가, 논 한정보에서는 소출이 얼마나 나는가, 3.7제후에 농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상세한 내용들을 알아보시였다. 할아버님은 장시간 올방자를 틀고앉아있어서 오금이 저려나는지 두발을 펴며 무릎을 두드리시였다.

《하, 이거 이야기바람에 할아버님 피곤하신줄두 모르구···.》

장군님께서는 목책을 접으며 할아버님더러 두다리를 곧게 펴고 벽에 기대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할아버님의 무릎을 두드려드리시였다.

(아, 효성이 지극하신분이구나.)

조순근은 내심으로 감동을 금치 못하며 할아버님의 어깨를 부축하고 무릎을 두드려드리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홀린듯이 지켜보았다. 사실 여태 장군님에 대한 조순근의 표상은 백만왜적을 일검에 무찌르는 호랑이같은 기상으로만 그려져있었지 이렇게 할아버님의 무릎을 두드려드리고 농군의 슬픈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시는분으로 그려진적은 없었다.

그는 이제야 장군님께서 농군의 집안에서 태여나셨다는것을 확신할수 있었다. 그는 자기와 같은 농군의 집안에서 장군님이 태여나셨다는 그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랐다. 장군님으로 하여 농군의 인품이 올라가는것 같았다.

(그래 이제 재령으로 돌아가면 정기수, 장춘하, 흥묵이들에게 그걸 자랑하자··· 아차, 그런데 내 이 정신보지.)

조순근은 펄쩍 정신이 들어 장군님 앞으로 다가갔다.

《장군님, 가만 앉아계십시오. 제가 두드려올리갔습네다.》

그러자 할아버님께서는 손을 저으며 벽에 기댔던 잔등을 일구시였다.

《됐네 됐어. 임자야 오늘 이 집의 귀한 손인데 그런 수고를 시켜서야 되겠나.》

할아버님께서 굳이 사양하시여 조순근은 할수없이 물러나앉았다. 장군님께서도 밝은 웃음을 띠며 할아버님의 말씀에 동을 다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귀한 손님입니다.···참, 내가 좋은 선물을 하나 마련한게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생각이 나신듯 얼른 미닫이를 열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어느덧 겨울해는 저쪽 서산너머로 떨어져내렸다. 그러나 석양의 여운이 분홍빛노을로 남산재의 작은 집을 비단필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고있었다.

할아버님은 장군님께서 뒤울안으로 돌아나가시는걸 보며 무슨 선물인데 저렇게 울안에 건사했을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시였다. 얼마후 울안에서 돌아나온 장군님께서 고개를 저으며 여기저기 무엇을 찾으시였다.

《그런데 뭘 찾고있나?》

《이거 이상한 일입니다. 내가 뒤울안에 정히 건사했댔는데 제자리에 없습니다.》

장군님께선 짐작되는것이라도 있는지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뭔데?》

《다른게 아니고 호미입니다. 할아버님께 드리려고 특별히 주문을 해서 만들었습니다.》

《뭐, 호미? 김매는 호미말인가, 핫하하···》

할아버님께서는 미닫이 잡았던 손을 놓으며 폭소를 터뜨리시였다. 조순근이도 그제야 생각이 들어 빙긋이 웃으며 장군님 계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아, 그러니까 벌써 호미가 주인을 찾은 모양입니다, 허허허···》

조순근이 마루밑에 손을 넣어 호미 세가락을 꺼내다 제꺽 장군님께 올렸다.

《하하하. 장군, 우린 그걸 벌써 써보았어. 그리구 장군한테 말해서 하나씩 나눠가지자구 은밀히 약속두 하구···》

《그래요.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군요. 그 호미에 욕심을 쓸 분이야 할아버지밖에 더 있을라구요, 허허허···》

장군님께서 호미가락을 받아들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마루에 올라온 장군님께서는 할아버님께 한가락 드리고 조순근에게도 한가락 안겨주시였다.

《이거 물길러 왔다가 잔치상받는군, 고맙다. 난 내건줄 모르구 괜히 탐만 냈다니까.》

장군님께서 추운데 어서 들어가자고 조순근의 어깨를 떠미시였다. 그러나 조순근은 불현듯 조수처럼 밀려오는 감동으로 하여 호미자루를 가슴에 꾹 움켜쥔채 움직이질 않았다. 가슴이 뛰고 목이 메였다.

《왜 그러십니까?》

장군님께서 근심어린 어조로 물으시였다.

《장군님··· 고, 고맙습니다.》

《하, 거 뭐 호미 한가락을 가지고 그렇게··· 가만 이 한가락도 마저 가지십시오. 아들에게 주어서 부자간이 함께 농사를 지으면 더 좋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나머지 한가락을 조순근에게 넘겨주시였다.

조순근은 그만 눈물을 떨구며 호미가락 두개를 한가슴에 그러안았다. 그것이 어찌 단순한 호미가락이랴싶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네 세 식구의 밝은 앞날을 비쳐주고 농군의 운명을 건져주는 장군님의 사랑이라 생각하자 또다시 기쁨의 흐느낌이 터져나오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노을이 펼쳐진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몇걸음 옮기시였다.

《오늘은 이렇게 호미가락을 드리지만 앞으로 제땅에서 농사지을 땐 제가 밭가는 기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밭가는 기계?》

할아버님께서 입에 물었던 대통을 뽑으며 놀랍게 반문하시였다. 조순근이도 그게 무슨 말씀인가싶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 기계가 있습니다. 뜨락또르라고 하는데 기운이 얼마나 센지 보습을 한번에 대여섯개씩 끈답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기계가 다 있어?》

할아버님이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시였다.

《앞으로 얼마간은 호미농사를 지어야겠지만 우리 농촌에두 그렇게 기계로 농사짓는 날이 꼭 옵니다. 기계로 논밭을 갈아엎고 약을 쳐서 김을 잡고 관개공사를 해서 가물걱정을 안하게 될 날이 우리 농촌에 꼭 옵니다.》

《정말 꿈같은 소리군. 그런데 그때까지 꽤 살아낼가?》

할아버님은 허연 수염꼬리를 만지작거리며 한탄을 하시였다.

《할아버지도! 그 몹쓸놈의 세월에도 칠순을 넘겼는데 좋은 세월 만나서 왜 그렇게 못사시겠습니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할아버님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였다. 밝은 앞날을 생각하니 문득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누워있을 맏아들, 맏며느리와 그리고 감옥에서 숨진 셋째아들이 생각나시였다.

그러나 할아버님께서는 용케도 눈물을 참아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