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8장 1


 

제 8 장

1

 

방금 기차에서 내린 조순근은 갈길을 몰라 역사앞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였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아직도 한마당 늘어서서 출구로 밀려나오고있었다. 보자기 하나를 려장으로 들고 평양성을 찾아온 조순근의 눈에는 어쩐지 가을에 익혀두었던 평양의 모습이 죄다 달라진듯 생소하게 보이였다. 전차와 자동차들이 그때보다 더욱 분주히 달리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더 힘차고 생기가 있어보이였다. 가끔 삽과 괭이를 멘 사람들이 대렬을 짓고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기도 했다. 거리는 참으로 번창해졌다. 조순근이 떠나올 때 김창규는 략도까지 그려주었지만 어리어리해서 향방을 알수가 없었다.

《가만 있자. 그림을 보니 저 길이 대동교쪽으로 가는 길이로군···》

조순근은 략도를 놓고 한참 대중해보다가 자신없이 걸음을 옮기였다. 대동교 어름에서 그는 공산당청사가 어데쯤 있는가고 몇사람을 불러세우고 물었으나 모두들 고개짓으로 얼추 알려주고는 바삐 지나갔다.

《원, 촌사람 길 좀 물으면 차근차근 잘 알려줘야지. 쯔쯔···》

조순근은 애가 타서 혀를 차다가 마침 서분이또래의 얼굴말쑥한 녀학생이 마주 오는것을 보고 붙들었다. 녀학생은 조순근의 초라한 행색을 훑어보더니 그리로 가려면 바른쪽으로 에돌아 중성리쪽으로 전차길을 따라 걷다가 아래미루기슭으로 올라가보라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아래미루?》

《예, 지금은 해방산이라고 합니다.》

《응, 고맙네.》

조순근은 너무 고마와서 저도모르게 어린 처녀에게 허리를 굽혀 절까지 하였다. 처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지나갔다. 조순근이 얼핏 자기 신발을 내려다보니 빨아신고온 허연 지하족이 기차칸에서 아주 기름걸레처럼 덞어졌다. 당목두루마기도 매끈하던 다림발이 간데없고 아예 수세미가 되여 엉뎅이우로 말려올라갔다. 조순근은 그제야 자기 몰골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며 얼굴이 은근히 붉어졌다. 그저 장군님께 한시바삐 편지를 전하겠다는 생각만 했지 자신의 옷주제에 대해서는 미처 머리를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사실 조순근의 처음 생각은 장군님께 편지를 우편으로 올릴 결심이였다. 그런데 봉투를 쓰면서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장군님께 드리는 그런 애절한 진정을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낸다는것이 백성된 도리로서는 너무도 무성의한 일같았다.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는다는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지만 장군님께서 나라정사를 보시는 기관에 가서 전하기만 해도 한결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또 그래야 편지도 실수없이 장군님께 가닿을수 있을듯싶었다. 조만식이와 같은놈들이 더 없다고 어떻게 믿겠는가. 그래서 김창규를 찾아가서 의논을 했었다. 창규는 아주 잘 생각했다고 기뻐하며 그를 군당으로 데리고가서 중앙조직위원회앞으로 보내는 소개신까지 한장 써주었다.

조순근은 양각도가 바라보이는 대동강변을 따라 스적스적 걷기 시작하였다. 강역 얼음판에서는 조무래기들이 썰매를 지치며 돌아갔다. 벌써 얼음이 녹기 시작한 저 아래쪽에서는 물오리떼가 하늘빛수면에 배를 붙이고 한가로이 떠돌았다.

《에라, 저기 물이 있는데 가서 신발부터 씻구 구겨진 두루마기두 좀 펴놓아야지···》

조순근이 강바람에 두루마기자락을 날리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는데 뒤에서 누구인가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가는게 재령농군이 아닌가?》

조순근이 물가에 다 와서 돌아보니 흰 두루마기를 입은 수염 허연 로인이 따라내려오고있었다. 순간 조순근은 흠칫 놀라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자기를 부르며 내려오는 늙은이는 분명 저번가을 평양나들이를 갈 때 솔밭우거진 산기슭의 아담한 마을에서 우연히 만났던 바로 그 늙은이였다.

《아니! 난 또 누구라구요. 아버님-》

조순근은 손에 쥐였던 보자기를 떨구며 마주 달려갔다.

《옳구만. 재령농군이구만··· 내 글쎄 어딘가 비슷해보여서 저 큰길에서부터 따라왔다니.》

《아버님! 정말 반갑습네다. 그새 옥체건강하셨습네까?》

조순근은 목이 메인 소리를 하며 허리를 깊숙이 굽히였다.

《그래, 별일없이 이렇게 무탈하네. 한데 임자가 어떻게 또 여길 왔나. 왜 내 집엘 들리지 않았나. 그때 내가 푸대접을 해서 그랬던 모양이군···》

《아버님! 원 무슨 말씀을··· 그날 제가 얼마나 페를 끼쳤다구요. 지금이야 어디 배길루 다닙니까. 기차를 타구 방금 내렸는데 옷주제가 이 모양이여서 얼룩 문대기라도 하자구 물녘을 찾아왔어요.》

조순근은 덞어진 신발과 두루마기를 내려다보며 어줍게 웃었다.

《음, 그렇댔구만. 그간 어떻게 지냈나? 헌데 얼굴이 왜 그리 축갔나. 굴대장군같이 거쿨진 사람이 반쪽이 됐구만.》

로인은 조순근의 얼굴이 몰라보게 상해서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닌가싶어 얼른 부르지 못하고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했다.

《무슨 큰 병을 앓은 모양이지?》

《앓은 일은 없어요. 그저 두루 마음고생을 하다보니···》

조순근은 갑자기 눈굽이 저려와서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수그리였다.

《아니 무슨 마음고생을 했기에 얼굴이 그 지경이 됐나?··· 가만, 여기서 이러지 말구 날씨두 잠풍한데 저쪽에 가 앉아서 이야길 하세.》

로인은 강뚝을 가리키며 조순근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조순근이 로인을 따라가서 강뚝에 앉으니 동평양거리와 그 너머로 펼쳐진 들판과 푸른 산발들이 시야에 안겨왔다. 립춘을 지난지 며칠되지 않았으나 유난히도 푸른 하늘에서 봄날처럼 따뜻한 해빛이 내리비쳐 금시 만산의 잔설과 얼음들이 녹아서 봄시위물이 소리치며 흐를것 같았다.

《밭갈이철이 머지 않았군. 칠십고래희란 말이 옳은가보이. 금년에 내 나이가 일흔다섯인데 이렇게 다 늙고보니 좋은 세월이 찾아왔단말일세.》

로인은 실눈을 짓고 산너머 저쪽에서 기다리고있는 봄을 바라보듯이 어딘가 먼곳을 지켜보며 중얼거리였다. 조순근은 묵묵히 로인의 말을 새겨듣기만 했다.

《세월은 나날이 좋아질걸세. 그런데 임잔 그동안 마음고생으로 얼굴이 그 지경으로 됐다니 어찌된 일인가? 지주집에서 머슴살이 하는 외아들때문에 심뇌하더니 그 애가 아직 그놈의 집에서 나오질 못했나?》

《아, 그 얘길 다 하자면··· 참 아버님은 어떻게 성안에 오셨게요?》

《어서 얘길 하세나. 나두 두루 볼일이 있어 방금 성안에 들어서는 길일세. 내 일은 걱정말구 어서 얘길 하게. 우린 다 같은 농군인데 도와줄수 있는 일이라면 내 힘껏 도와보겠네.》

로인은 조순근의 손을 쓸어만지며 인정이 배인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버님, 고맙습네다.》

조순근은 목이 메여올라 땅바닥을 굽어보며 한참 덤덤히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버님, 그때 제가 신선을 찾아간다는것이 마귀를 찾아갔댔시다.》

조순근은 허두를 이렇게 떼였다.

그리하여 그는 조만식에게서 옥돌약탕관과 소작세칙을 받아안고 황홀했던 일이며 소작세칙의 교활한 간계로 하여 3.7제투쟁에 찬물이 끼얹혀지고 란타가 벌어졌던 물방아간사건이며 농조에서 쫓겨난 기막힌 그 모든 사연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지주놈에게서 땅을 떼우고 고립무원해진 그 밤에 옥돌약탕관을 도끼로 까부시고 조순근이 김일성장군님께 혈서를 썼다고 목메인 소리를 할 때에는 로인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듣고보니 참 기가 막힌 일이로군, 참 모를 일이네. 하늘을 믿는 신자라는 사람이 우리 농군들을 그렇게 속이며 흉측한짓을 하다니.》

로인은 눈섭을 구핏거리며 손바닥으로 바지무릎을 쓸어만지였다. 흙물이 슴배여 쩍쩍 갈라진 손이였다.

《정말 그놈은 괘씸한 놈입네다. 우리 농군들의 원쑤여요. 그렇지만 아버님, 제가 감히 이런 편지를 쓰고 돌아다니는게 분수에 닿는 일인지, 이게 무엄하고 외람된짓이 아닐가요?》

조순근은 소심한 표정으로 로인의 벽돌빛 얼굴을 지켜보았다.

《내 생각엔 조금도 외람될게 없다고 보네. 그러니 임잔 이제 장군이 일보는 공산당을 찾아가는거겠구만?》

《예, 략도까지 그려가지구 오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러번 물어봤는데도 아직 어디가 어딘지 향방을 모르갔다니깐요. 허허···》

《그래?··· 그럼 나하구 같이 가세.》

로인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아니, 아버님, 보실 일도 바쁘겠는데 어떻게···》

조순근은 민망스러워 두손을 비비며 선뜻 발을 떼지 못했다.

《나도 그쪽으로 갈 일이 있네. 설사 갈 일이 없대도 같은 농군으로서 그만한 일도 도와못주겠나, 어서 가세.》

《고맙습네다. 장군님 일보시는 근방까지만 데려다주시면···》

조순근은 로인을 따라 몇발자국 걸어가다가 우뚝 멎어서서 자기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보니 구겨진 두루마기와 덞은 신발을 조금도 손질하지 못한채 로인을 따라가고있었던것이다.

《왜 그러나?》

로인도 걸음을 멈추고 조순근을 돌아보았다.

《제 옷주제가 말이 아닌데 아무래두 얼른 려관에 가서 손질을 하고 가야 될가부요.》

《일없네. 들일을 하는 농군의 옷이 그렇지 뭘 그러나. 어서 가세.》

로인은 조순근의 손목을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