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7장 4


 

제 7 장

4

 

대복에게 업혀서 집으로 돌아온 조순근은 인차 정신이 들었으나 점심도 먹지 않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서 종일 바람벽만 지켜보았다. 이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이렇게 수천번 자문하던 끝에 얻어낸 궁여지책이 그 옛날 서분이 아버지처럼 원한많은 이 신당리마을과 결별하는것이였다.

조순근은 저녁도 몇술 뜨는둥만둥하고는 밖을 나섰다. 해는 이미 져버리고 금빛노을이 부채살처럼 서산마루에 퍼져오르며 온 대지에 누런 여광을 던져주고있었다.

조순근은 아버지의 소작지였던 장사래밭이 바라보이는 강뚝에 와서 주저앉았다. 마음속으로는 장사래밭이나 한번 돌아보고 들어가려고 나왔지만 어쩐 영문인지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코앞에 밭을 두고도 더 나가지 못하고 설음을 터뜨렸다.

《으허허- 아버니임,··· 난 이젠 여길 떠나요. 원쑤두 못갚구, 땅두 떼우구···》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목을 적시였다.

조순근은 10여년전 어느 가을날, 소용도는 재령강여울물에서 아버지의 시체를 건져내던 바로 그때처럼 주먹으로 무릎을 두드리기도 하고 잔디를 쥐여뜯기도 하며 처량하게 곡성을 터뜨렸다. 엄동설한에도 얼줄 모르는 저쪽의 여울물은 성에장을 실어다 벼락바위에 내동댕이치고 흰 거품을 일구면서 소연히 설레였다. 그속에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에끼, 이 후레자식같은놈! 제 땅을 두고 제 애비를 남겨두고 어딜 도망치겠다는거냐!》

《아버지, 욕을 해두 어쩔수가 없어요. 땅없이야 여기서 어떻게 살아요··· 어 어이구.》

코멘소리로 넉두리를 하는 그의 눈앞에는 아버지의 구리빛같이 컴컴한 얼굴이 서서히 다가왔다.

《여길 뜨다니? 네가 제정신이 있어하는 소리냐. 제 땅을 두고 어딜 도망쳐.》

《아버니임, 제 땅이 어데 있어요. 우린 제 땅이 없어요.》

《이놈, 떠나겠으면 아예 여기서 죽어버려라!》

아버지의 억센 손아귀가 눈앞으로 다가오는것 같았다.

《아-》

조순근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쳐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승에서 날아오는듯 하던 망령의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다만 쓸쓸한 바람만이 그 무슨 령혼의 속삭임처럼 술렁거리며 발밑으로 머리우로 불어간다.

오봉산쪽에는 벌써 전기불이 훤하게 켜졌다. 불빛이 번뜩거리는속에 거쿨지게 틀고앉은 《대궐》이 아아한 산처럼 막아서며 온몸을 오싹하게 하는 전률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래마을은 무덤같은 컴컴한 집들이 불도 없이 붙어앉아있다. 오봉산에서 바람이라도 세게 일구면 날려갈것 같은 자리에 몇집씩 무덕무덕 옹크리고있다. 조순근은 후우 한숨을 내쉬였다.

(이 땅도 이렇게 하문 다 밟아보는가?)

조순근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또다시 악몽같은 환영이 떠올랐다.

조만식이와 서만호가 서로 어깨를 겯고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그것들은 저마끔 옥돌약탕관을 한개씩 들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누워있는 안해의 얼굴에 펄펄 끓는 시꺼먼 약물을 쏟아부으며 너털웃음을 쳤다.

《사람 살려요!》

안해는 아우성을 치며 발버둥을 하였다.

(아, 사람이 이렇게 되여 미치는가보구나.)

조순근은 채머리를 떨며 일어섰다. 그는 두억시니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는 환영의 그림자들을 떨어버리려고 머리를 저으면서 방향도 없이 걸어갔다. 강변길을 지나 한참 들길을 걸어가다가 이상한 인기척을 느끼고서야 그는 멎어섰다. 길가의 스무나무밑에서 두그림자가 어른거리고있었다. 구름속을 헤염쳐가는 달빛에 이따금씩 드러나는 그림자는 잔가지 많은 스무나무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말소리를 들어보면 분명 대복이와 서분이 같았다.

조순근은 눈을 부릅뜨고 나무가지사이를 들여다보았다. 나무밑에 두 그림자가 바싹 어깨를 붙이고 앉아있다.

《대복이, 가지 말아요. 다 가문 난 어떻게 살아요.···》

《그러게 서분이도 데리구 간다지 않아.···》

《듣기 싫어요. 지주집에 갇혀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

《한밤중에 내가 몰래 들어가서 서분이를 업어내오지.》

《거짓말, 거기서 가문 난 우물에 빠져죽을테야.》

《그러문 나두 함께 우물에 빠져죽겠어.》

조순근은 가슴이 활랑거려 그만 저도 모르게 기침을 깇었다. 그러자 두 젊은이는 인기척에 놀라 풍겨나는 한쌍의 장끼와 까투리처럼 화닥닥 날아오르더니 처녀는 오봉산기슭으로 총각은 집오래쪽으로 뽀얗게 달아났다.

조순근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도 하나의 환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 지나가버린 환영이 아니라 현실이였다. 조순근은 애들이 앉아있던 스무나무밑에 다가와서 머리를 쾅 부딪쳤다. 그 충격에 나무가 우수수 소리를 내며 가지를 떨었다. 그는 나무줄기를 붙안고 터실터실한 껍질에 볼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

이젠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붙안고 울어야 애들에게 밝은 웃음을 줄수 없다는 시름스러운 생각만이 머리를 옥죄였다.

얼마후 마당으로 들어선 그가 구팡에 올라서는데 보지 않던 구두 한컬레가 놓여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옆에 대복이의 짚신이 삐뚤써하게 가로놓여있었다. 조순근은 문고리를 잡고 잠간 망설였다.

(누굴가? 이 밤중에.)

방안은 조용했다. 이따금 쿨쩍쿨쩍 코물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대복이나 처가 울고있는것 같았다. 조순근은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섰다.

《아저씬 어디 갔다 인제야 오시우?》

굵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환한 남포등빛에 비치인 얼굴은 김창규의 웃고있는 모습이였다. 등불에 흰이가 차돌처럼 반짝거렸다.

《아니?···》

조순근은 문고리를 잡은채 눈섭을 꿈틀했다. 김창규가 일어서서 조순근의 손목을 쥐였다. 방안은 발을 옮겨놓을수 없게 한절반 란가가 되였다. 한채밖에 없는 이불짐도 헌 베보자기에 싸 내려놓고 옷가지들도 무덕무덕 구석마다 널려있다. 대복이가 짐을 꾸리느라고 분주탕을 피운것 같았다.

《언제 내려왔나?》

《예, 나두 인자 들어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오니까 이렇게 대복이가 이사짐을 꾸리구있군요. 그래 어디루 가실려우?》

《아주 보이지 않는데루 가볼가 하네.》

조순근은 천정을 올려다보며 목석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리였다. 이윽고 무심중 방안을 둘러보던 그의 눈길이 정지구석에 놓인 옥돌약탕관에 꼿꼿이 들이박히였다.

《귀신단지같은 저건 왜 저기 놔뒀냐?》

《어머니가 왕벌네 대청마루에 갖다던지라구 해서···》

대복이가 새끼줄로 보퉁이 하나를 끙끙 조이며 대꾸하였다.

《정신빠진 소릴··· 그따위걸 들구 또 악귀네 집엘 발걸음을 해?》

조순근은 정지구석으로 내려가서 넉가래같은 손으로 약탕관을 움켜쥐고 번쩍 쳐들더니 부엌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단단한 옥돌로 만든 약탕관은 마사지지 않고 부엌바닥에서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조순근은 부엌으로 내려가서 도끼를 집어들고 약탕관을 죽어라고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약탕관이 두쪼각으로 쩍 짜개졌다.

《이 망할놈의 물건짝!》

조순근은 도끼등으로 깨진 쪼각을 정신없이 연거퍼 내리쳤다.

하얀 옥돌쪼각이 튀여날 때마다 조만식의 얼굴이 눈앞에서 얼씬거렸다. 악마의 붉은 피가 부엌바닥에 랑자해지는듯싶었다. 그는 여기저기 튀여나는 쪼각들을 따라 돌아가며 까부시였다. 얼마나 내리쳤는지 옥돌쪼각들이 부엌바닥에 푹푹 들어박히고 도끼등에도 허연 돌가루가 묻어났다.

《아버지, 이젠 그만하세요.》

대복이가 부엌으로 내려가서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바닥에 널린 돌쪼각들을 걷어모아 문밖에 멀리 내던졌다.

《그게 조만식이가 줬다는 약탕관인가요?》

조순근이 숨을 헐떡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서자 김창규가 물었다.

《그렇네. 약을 달이는 물건인줄 알았는데 그놈이 거기다 독을 달여먹으라고 준거네. 조만식은 지주와 한배속인걸 모르고 장군님의 부하인줄만 알았네.》

조순근은 지게문을 열고 달빛이 흘러내리는 뿌연 허공을 망연히 지켜보며 얼굴의 땀을 식히였다. 약탕관에 실컷 도끼질이라도 하고나자 속이 후련해지는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