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7장 2


 

제 7 장

2

 

이튿날 아침 조순근은 조반을 먹기 바쁘게 굴뚝모퉁이로 돌아가서 새로 자루를 맞춘 괭이를 들고나왔다. 아직 괭이자루에 손때가 오르지 않아 터실터실한 맛이 있지만 아들이 마침 돌아온 때에 새 연장을 쥐고 부자가 함께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니 천하를 얻은것처럼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러고보면 세상일이란 결코 야속하고 박정하지만 않은것 같았다.

조순근이 지게를 한쪽 어깨에 걸멘채 마당으로 나서자 어느새 대복이 일차비를 하고 퇴지에 나와 서있었다.

《아버지, 밭으로 나가실래요? 나두 같이 가자요.》

《무얼, 넌 집에 있거라. 아직 그리 바쁜 일두 없다. 재나 몇짐 져나르자고 한다.》

《아니예요. 나두 가겠어요. 아버지가 일군 밭에서 괭이질이라두 한번 해보겠어요.》

《으음- 그럼 가자꾸나.》

조순근은 눈뿌리가 쩌릿해와서 아들을 외면하며 중얼거리였다. 하기는 애가 열두살 어릴적에 지주집에 들어갔으니 아버지가 일군 오봉산밭에서 괭이질 한번 해본적없고 씨앗 한줌 묻어본 일이 없었다.

《그럼 앞서거라!》

조순근은 괭이와 삼태기를 대복이에게 넘겨주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나서 지게에 재를 듬뿍 담아지였다. 부자가 그렇게 마당을 나설 때 안해는 부엌문으로 내다보며 눈물을 지었다.

어제밤 등잔불밑에서는 몰랐는데 해빛에 들여다보니 푸름푸름 피멍이 든 아들의 얼굴상처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아서 보기조차 끔찍스러웠다. 그런데도 아들은 노방 벙글거리며 기운차게 걸음을 내짚었다. 그는 흥묵이네 집이 저발쯤에 바라보이는 들길에 나서자 뒤에서 머리를 숙일사하고 담배연기를 펄펄 날리며 걸어오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영길형님이랑 그러는데 농조에 들어와서 지주하구 싸움해야 땅을 탈수 있대요.》

조순근은 그 소리에 흠칫 눈길을 들며 걸음을 멈췄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평온한 얼굴이 이상하게 이그러지고 유순한 눈에서 사나운 빛이 일었다.

《내앞에서 농조소린 싹 걷어치워라!》

조순근은 손을 홱 내젓고 아들의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사실 농조소리만 들어도 조순근은 머리가 욱신거리였다.

대복이도 물론 진고개 총사건때문에 아버지가 농조에서 쫓겨난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자기자신의 가슴도 허비는 괴로운 추억이였다.

그러나 조순근은 농조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불쾌한 얼굴을 지었을뿐 인차 헌헌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조순근은 오봉산비탈밭을 바라고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아들에게 말하였다.

《농군에겐 그저 다른게 없느니라. 착실히 농사를 지으면 그게 나라를 돕는 일이지. 3.7제요 토지개혁이요 하는건 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린 그저 농사를 잘 짓자.··· 참 올해엔 오봉산밭에다 네 좋아하는 참외를 여러고랑 심으련다.》

《아버지, 그게 정말 좋겠어요.》

대복은 기뻐하며 몇걸음 껑충껑충 뛰여가더니 괜히 괭이를 휘둘러 오솔길 어방의 땅을 내리찍었다. 소뼈다귀같이 얼었던 땅은 벌써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빛을 덜 받는 나무밑 음달진곳은 아직도 돌덩이처럼 땅이 굳어서 괭이날이 박히지 않았다. 마치도 봄은 찾아올듯말듯 저 산너머 어디에서 바재이는듯싶었다.

《아버지-》

조순근은 대복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좀 보세요. 우리 밭쪽에 웬 사람들이 서있어요.》

앞에서 걸어가던 대복이가 괭이자루를 들어 오봉산 경사지를 가리켰다.

《정말 그게 웬 사람이냐? 우리 밭에서 뭘 하는거냐?》

조순근은 소나무가지를 헤치고 앞을 내다보며 의아해하였다. 키가 꺽두룩한 사람들이 손에 무슨 나무장대같은것을 쥐고 밭변두리를 거위걸음으로 왔다갔다하고있었다.

《빨리 가자.》

조순근은 뛰다싶이 장달음을 놓았다. 지게가 허리를 툭툭 맞부딪쳤다. 대복이가 먼저 뛰여갔다. 산기슭을 헐떡거리며 톺아올라가니 밭에는 서씨네 소작농 두사람이 밭에 돌이 많다거니 그래도 낟알을 심을수는 있을거라느니 하며 밭둘레를 장대로 재여보고 나머지길이는 걸음보로 재보고있었다. 두사람은 서씨마을에 사는 4촌형제간인데 조순근이와도 안면이 있는 소작인들이다.

《남의 밭에 와서 뭣들이요?》

조순근이 밭기슭을 걸어들어가며 소리쳤다. 그제야 두사람은 조순근이 와 선것을 보고 어줍게 웃으며 알은체를 했다.

《허허, 밭이 어떻나 해서 돌아보는중이우다.》

《밭이 어떻나 해서, 그건 왜?》

《아니 사실은···저···》

조순근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얘, 너무 에돌지 말아. 사실대루 말못할거 있니. 순근이, 이건 우리가 만호아저씨한테서 넘겨받았네. 금년부터 농사지어 먹으라고.》

형님벌이 되는 사람이 조순근에게 사연을 먼저 이야기했다. 자기들은 식구가 불고 아이들도 크고 해서 땅을 더 달라고 서만호한테 부탁을 해왔는데 오늘 아침에 기별을 받고 들어가니 이 밭과 조순근이 소작하는 진디기논을 넘겨받으라고 하더라는것이였다. 말은 제대로 하면서도 남의 발등을 밟는 일같아 그러는지 저어하는 기색이였다.

《뭐, 내 내 땅을 넘겨받아?》

순간 조순근은 어떤 단단한 물건에 머리를 부딪치는것 같은 타박감을 느끼며 비칠거리였다. 아래다리가 후들거리고 짚고선 땅이 쿵 하고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주위가 고요해졌다. 눈을 감았다 뜨니 대복이가 자기의 어깨에서 지게를 벗겨내린다.

《가만 좀 있거라.》

조순근은 지게를 벗겨내리는 대복이의 팔을 뿌리쳤다. 그바람에 지게가 아무렇게나 땅에 떨어져 나딩굴며 재 한지게가 밭에 널렸다.

《그래 임자들이 내 땅을 부쳐? 이 밭에 와서 농사를 지어먹겠어?》

조순근의 눈에서는 퍼런 불이 일었다. 마주선 작인들이 우들우들 떠는 실성한듯 한 조순근의 모양을 보며 딱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겠소. 사정이야 다 같은데···》

형이 먼저 대답했다.

《이 땅은 못부쳐. 이건 서만호하구 상관이 없는 밭이야.》

《아니, 그건 무슨 소리요? 우린 그런 소리 못들었소.》

그러자 조순근은 씽 달려들며 그 농민의 팔을 잡았다.

《아니, 왜 이러우?》

서씨들은 눈이 둥그래서 뒤걸음을 쳤다.

《나하구 땅 넘겨준놈한테 다 같이 가자. 거기 가서 시비를 캐자.》

조순근은 두 형제를 내끌었다.

《우리가 왜 가? 뭐 잘못한 일이 있다구.》

《정 못가겠니?》

《안가겠소. 시비를 따지겠으면 당신이 참의어른한테 따질게지 우리야 무슨 상관이요. 별꼴 다보겠군.》

여전히 형이란 사람이 장대처럼 뻗치고 서서 조순근을 마뜩잖게 노려보았다. 대복은 어쩌면 아버지가 이들과 주먹질이나 오가지 않을가 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있었다.

《좋다. 그럼 이 밭에서 지금 썩 물러서라. 그러지 않다간 사등뼈가 부러질줄 알어.》

《흥, 남의 사등뼈 꺾으면 제 뼈다귄 무사할가. 지금은 가겠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엔 어 어림두 없다.》

《글쎄 두구봐야지.》

조순근은 두 형제가 가버리자 밭두렁에 그린듯이 서서 어째서 이런 변이 생겼겠는가를 침착하게 생각해보았다. 분명 서만호가 대복을 내보내는 앙갚음으로 이런 고약한짓을 하는것 같았다. 조순근은 소작을 부치는 진디기논뿐아니라 자작밭인 오봉산밭까지 빼앗으려는 그의 악착스러운 소행에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였다. 무슨 일로 그놈이 이다지도 나한테 그악스럽게 구는것인가? 속이 편안해서 좋은 마음으로 아들을 내보낸것은 아니란말이지. 소작을 부치는 진디기논은 떼운다손쳐도 내 손으로 일군 이 밭이야 왜 뺏기운단말인가? 그것은 내 손으로 나무뿌리를 뽑고 수천지게의 흙을 펴서 일궈놓은 내 밭이다! 비록 하루갈이도 못되는 작은 땅이지만 조순근의 꿈이 어리고 사랑이 스며있는 땅이였다. 그것은 아들에게 넘겨줄 그의 유일한 재산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복일 내보내더니 당장 이 땅을 빼앗겠단말이냐? 안된다. 이 땅은 못빼앗는다!

조순근은 지게작시미를 집어들고 돌아섰다. 무엇이든 맞다들리면 후려칠것같은 험악한 기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