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7장 1


 

제 7 장

1

 

조순근은 저녁을 먹고나서도 오봉산밑에 두엄을 몇짐 져날랐다. 집안에 붙박혀있으면 대복이, 서분이에 대한 생각이며 농조에서 쫓겨난 절통한 일이며 그 모든 천만가지시름이 납덩이처럼 지지누르는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어보자고 황혼의 들바람을 맞으며 두엄을 날랐었다.

그는 아주 날이 어두워져서야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향했다. 음력 보름녘이였으나 구름이 한벌 덮여서 천지가 캄캄했다. 어둠속에서 들길을 더듬으며 집오래에 들어선 조순근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구름 뒤덮인 이 캄캄한 밤에 천제를 지내는지 음산한 바람결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녀인의 구슬픈 소리가 들려왔다. 더욱 놀라운것은 그 애달프고 처량한 소리가 자기집 길모퉁이에서 들려오는것이였다.

조순근은 소리나는쪽으로 몇걸음 더 옮겨가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특하신 목신님께 소원성취 비나이다. 6년세월 떨어져서 모진 고생 당하는 불쌍한 어린 아들 어미품에 들게 해주소서. 아, 목신님. 령험으로 금옥같은 외아들이 품안에 안기게 해주소서.》

마침 구름짬으로 둥근달이 삐여져나와서 어둡던 천지가 환해지며 삽짝문앞에 서있는 작은 향나무가 눈에 비치였다. 그밑에서 소복단장을 한 녀인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며 빌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안해였다.

앙상한 향나무를 향해 한참 손을 비비고나서 안해는 돌 하나를 주어 나무둘레에 쌓인 돌무지우에 얹더니 손을 모아 수없이 절을 하였다. 나무밑에 무드기 쌓인 돌담은 안해가 목신제를 지낸 회수를 의미하는것 같았다. 하루밤에 돌 한개씩 쌓은것이 이제는 두룩하니 올라갔다.

남몰래 밤마다 나와서 돌을 쌓으며 맨손바닥을 마주비비는 꼴이 허망스러웠으나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저리였다. 아들에 대한 생각이 오죽했으면 저러랴싶었다.

얼마후에 달은 또다시 구름속에 숨어버리고 천지는 캄캄해졌다.

조순근은 안해가 목신제를 지내고 마당으로 들어설 때까지 작시미를 짚고 망연히 서있었다. 흑호놈에게 매를 맞고 머슴방 랭돌바닥에 쓰러져있던 아들의 모습이 불쑥 눈앞에 떠올랐다. 아, 과연 언제면 대복이 서분이들이 저 서슬스러운 아흔아흡간 《대궐》속에서 빠져나와 에미애비와 한가마밥을 먹으며 살게 될것인가. 조순근은 날이 갈수록 막막한 생각만이 들었다. 이제는 농조에서까지 쫓겨나고보니 마치 허허광야에 홀로 서있는것 같은 무서운 고독감을 느끼게 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조순근이 비척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자 등잔불빛이 불깃하게 내비친 지게문에 안해의 머리그림자가 비껴있었다. 등불앞에 우두커니 앉아서 아들생각을 하는 모양이였다. 조순근은 가슴속에 먹구름만 차있는 안해의 시름스러운 얼굴을 대하기가 싫어서 지린내가 풍기는 재터앞에 작시미를 깔고 앉아 곰방대를 꺼내였다. 컴컴한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곰방대를 몇모금 빨고있을 때 느닷없이 삽짝문밖에서 쿵당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이어 《어머니!》 하는 대복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조순근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으나 아들은 어둠때문에 아버지쪽을 보지 못한채 등잔불이 내비친 퇴지에 훌쩍 뛰여오르며 어머니를 재차 불렀다. 지게문이 벌컥 열리였다.

《아니, 이게 누구냐? 대복이 아니냐?》

안해는 웬일인지 발자국은 떼지 못하고 웃몸을 아들쪽으로 실리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대복은 얼룩덜룩한 범나비무늬의 보퉁이를 방안에 내던지고 문지방너머로 곱드러질것 같은 어머니의 여윈 상체를 붙안았다.

《너 이 밤중에 웬일이냐? 이렇게 다니다가 또 매를 맞지 않겠느냐?》

《어머니, 기뻐하세요. 이젠 제가 아주 나왔어요.》

《어엉?!···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안해는 무슨 기상천외한 일이라도 당한듯 놀란 소리를 지르며 아들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그제서야 조순근이도 퇴지로 뛰여올랐다.

《대복아! 그게 정말이냐?》

《아버지, 정말이예요. 왕벌네 집에서 다신 일 안하게 됐어요.》

《아잇구나!··· 아잇구나! 정말 하늘은 무심치 않구나!》

안해는 풀썩 방바닥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도 뜻밖에 그리고 너무도 졸지에 행운이 떨어져서 조순근이도 생시처럼 믿어지지 않아 슬그머니 넙적다리를 꼬집어보기까지 하였다. 분명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였다.

그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지주집에 맡겨놓고 6년세월 가슴을 지지고 태우던 아들, 그 아들이 머슴살이를 마치고 지주집 솟을대문을 빠져나온것이다.

조순근은 아들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갔다. 안해는 방바닥을 허비면서 그냥 기쁨의 곡성을 울리였다.

《하늘이 무심치 않구나. 내 한달 내내 밤마다 빠짐없이 목신제를 지냈더니 천지신명이 도와줬구나. 그러찮으면야 내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 불쑥 지붕밑으로 뛰여들겠느냐!》

방바닥을 허비던 안해는 대복을 어린아이처럼 그러안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쓸어만지였다.

어머니의 애무의 손길은 아들의 얼굴에서부터 어깨로 잔등으로 내려오다가 얼고 터져서 시퍼렇게 부어오른 손등에 옮겨와서 멎었다. 며칠전에 본 손등보다도 더 험해진 아들의 손이였다. 어머니의 온몸은 전기에 닿은듯 파르르 떨리였다.

《에그, 손이 이렇게 되두룩 일했으니 쯔쯔···》

《어머니, 왜 자꾸 우세요. 내가 이젠 돌아왔는데···》

대복은 가슴에 품듯이 어머니의 손을 모두어잡고 젖은 목소리로 달래였다.

《오냐, 오냐··· 너 참 저걸 입어봐라.》

안해는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더니 궤짝안에서 포개여놓은 옥당목바지저고리 한벌을 꺼내였다.

《그건 또 뭐예요. 외삼춘이 준 옷도 있는데.》

《이건 네 아버지가 너 나온 다음 입히겠다구 쌀 두어말 주고 사온거다. 궤짝에 꿍져넣으면서 정말 이걸 입히기나 하겠는지 하구 한숨을 지었더니 하늘이 도와서 네가 이렇게 나왔구나···》

안해의 눈에서는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복이도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며 옷가지를 받아놓고 방안을 살피였다. 이제부터 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새 생활을 하게 되려니 생각하니 방안의 모든것이 더욱 뜻깊고 정겹게 느껴졌다. 대복은 문가에서 가물거리는 등잔불을 보자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듯 가지고온 보퉁이를 풀고 유리등피가 반들거리는 남포등을 꺼내놓았다.

《어머니, 이젠 이 등잔불 치우자요.》

《그게 양등 아니냐?》

《녜, 왕벌넨 전기없는 방에 이런걸 더러 써요.》

대복이는 심지가 있는 기름접시를 내리우며 그 자리에 남포등을 걸었다.

《그건 석유가 있어야 불을 켜는건데···》

《어머니, 석유두 한병 가져왔어요. 이담엔 내가 장에 가서 사와요.》

조순근은 그때까지 방한쪽에 비켜앉아서 안해와 아들이 서로 붙안고 울고웃는 모습을 거느즉이 지켜보고있었다. 그렇게도 바라던 일이였고 또 언제이건 오게 되리라 믿었던것이였으나 정작 아들의 머슴살이가 끝장났다고 하자 오히려 어리둥절해지면서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것이였다. 오랜 세월 쌓이고 덧쌓여 가슴속에 앙금으로 앉았던 시름이, 뼈가 녹고 애간장이 타던 걱정들이 하루밤에 별안간 봄바람에 날려가듯 하였으니 그럴법도 하였다.

그는 안해의 넉두리와 흥분이 조금 가라앉게 되자 조용히 아들에게 물었다.

《대복아, 그런데 정말 어찌된 일이냐? 그저 순순히 널 내보냈다는게 잘 믿어지지 않는구나.》

《아버지, 이게 다 조만식어른의 은덕인가봐요. 국둑발이 성배가 왕벌지주의 심부름으루 조만식 어른한테 갔다왔어요.》

《조만식어른한테?》

조순근은 무중 가슴이 설레여 저도 모르게 아들앞으로 한무릎 다가앉았다.

《예, 오늘 낮에 돌아왔어요. 왕벌이 성배한테서 조만식어른이 보낸 편지를 받아 읽어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응, 조장로의 말이 옳아. 그렇지 그래··· 대복일 내보내야지.〉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장아바이가 옆에서 똑똑히 들었대요.》

《응, 그분은 그걸 내내 잊지 않고계셨구나.》

조순근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리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그때 세 식구의 이슬에 젖은 눈은 방웃목 당반우에 우상처럼 모신 옥돌약탕관을 지켜보았다. 눈처럼 흰 옥돌약탕관은 방금 대복이가 등잔불 대신에 달아맨 불그스름한 남포등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거렸다. 문득 조순근의 눈앞에는 저 옥돌약탕관처럼 희디흰 두루마기를 입고 천한 농군의 설음에 찬 하정을 새겨듣던 조만식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것은 벌써 근 반년의 세월이 흘러간 과거의 일이였으나 조만식어른은 여태 잊지 않고 서만호에게 글월을 보내여 마침내 아들을 구원해주었으니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으랴.

아들이 구원된것은 제를 지낸 안해의 지성에 하늘이 감동한 때문이 아니라 그 어른의 자비심이 베풀어준 은덕일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조만식이 만든 소작세칙이 지주를 돕는 소작세칙이라고 하던 김창규의 말이 불쑥 떠오르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지주를 돕는 소작세칙을 만들었단말인가? 도저히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그래, 서분이는 어떻게 하겠다더냐?》

《서분이 일은 잘 모르겠어요.》

대복은 고개를 수그리고 서글프게 중얼거리였다. 조순근은 자기 자식을 먼저 끌어내오고 남의 딸자식은 그냥 지주집에 둬둔 일이 가슴에 걸리였으나 조만식이 뒤를 봐주면 서분이도 구원될것이라고 확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