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6장 3


 

제 6 장

3

 

낮에 사무실에서 송신일을 만나고 들어온 조만식은 자기집 울타리곁에 서있는 교회당앞을 서서히 거닐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청해놓고 그들을 기다리며 홀로 산책을 하는것이다. 얼굴이 불그레 상기되고 이마전에는 피대가 일어섰다. 각박하게 죄여도 무섭게 죄이는것같은 압박감을 그는 이겨낼수가 없었다.

《나오셨나이까?》

담장안 오막살이에 사는 종지기가 나와서 조만식앞에 고개를 숙였다.

《응, 요새 뭐 불편한것은 없나?》

《없습네다. 그저 심심소일로···》

《그렇겠지. 종이 뒤웅박 달리듯해서 입을 다물었으니 종지기야 심심소일을 하겠지. 그렇지만 지금 종을 쳐선 안돼.》

《그래도 공산당에서 종을 치지 말라는 법을 내놓은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느님도 믿지 말라는 소리를 했다는 말은 없는뎁쇼.》

《그러나 공산당치하에선 종을 치고 종교를 믿는것이 안치고 안믿는것만 못해. 공산당은 종교를 아편과 같다고 모독했어.》

《예.》

《인제 마음놓고 치게 될날이 있을거야.》

《알겠소이다.》

조만식은 걸음을 옮겨 집마당으로 돌아나왔다.

마당은 넓었다. 마당 한쪽엔 한아름씩되는 독이 열개도 더 놓여있다. 그 맞은쪽에는 벽돌을 줄지어 눕혀세우고 만든 꽃밭이 있다. 꽃밭에는 그전날 엘리오트목사와 함께 심었던 백합꽃그루터기가 한무데기 있다. 봄이 오면 그 그루터기에서 순이 무너지게 자라 화려한 꽃이 피여난다.

조만식이 퇴지로 올라서려고 하는데 그의 서기가 나타났다.

《위원장선생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이?··· 무슨 손님이게?》

조만식은 얼굴에 파문을 지으며 물었다.

《저, 재령벌 서만호씨의 아드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니 그 사람이 어떻게 왔나? 참 그 사람이 평양에 와서 일을 본다고 했지. 미군련락기관에서··· 어서 모셔오게.》

얼마후에 검은색 제낀 양복에 넓은 곤색무늬 넥타이를 맨 서강이 나타나서 조만식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그새 건강하셨습니까?》

《오, 서강군, 참 오래간만일세. 자네가 평양에 와있다는 말을 자네 춘부장을 통해서도 들었네만 일이 바쁘다나니 한번 찾아가보지도 못했네.》

조만식은 사뭇 반색을 지으며 서강의 넓은 잔등에 다정히 손을 짚었다.

《선생님, 제가 죄송합니다. 벌써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했을텐데 저역시 바쁘다보니 인제야 왔습니다. 참 선생님은 년세도 많으신데 큰일을 보시자니 몹시 힘들겠습니다.》

서강은 아주 정색을 띠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힘이 좀 부치네. 믿는 나무 부러진다는 말이 옳아. 예수 그리스도를 같이 숭상하던 송신일이가 내 속을 썩이고있네. 저건 우리 종교를 배반한 이단자가 틀림없어. 미친놈이지. 한때 공산당에 잡혀가서 욕을 보구두 기가 나서 공산당정책을 숭배하는걸 보면··· 그런데 문제는 저 사람밑에 숱한 교인놈들이 모여드는거네.》

《이를테면 천사복을 입은 붉은 마귀란 말씀이지요. 엘리오트목사님은 늘 십자가만 들고는 공산당과 싸워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자들에겐 징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강은 웬일인지 엘리오트란 말에 류달리 힘을 주며 예민한 눈빛으로 조만식의 표정을 살피였다.

엘리오트는 북조선의 종교계와 반공세력을 조종할 임무를 받은 자이다. 그는 나이도 60이 넘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년금생활로 넘어갈 때이지만 아메리카의 번영을 위해 교회에서 주는 적지 않은 년봉도 마다하고 젊은이들을 따라 몇달전 태평양을 다시 건너왔다. 그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전함우에서 해병대원들과 함께 바다바람에 넥타이를 날리며 군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는 자기를 조선반도의 토착인들에게 자유세계의 문명과 정신을 가져가는 천사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서울에 와서 본 토착인들은 그전같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독립국가의 떳떳한 민족으로 자부하면서 미군의 남조선주둔과 군정을 달가와하지 않고있었다. 엘리오트는 차츰 그것이 조선반도의 북에 있는 공산주의세력의 영향때문이라는것을 느꼈다. 북에서 그들이 실시하는 정책들이 남쪽사람들에게 자극이 컸다.

《자주》, 《독립》, 《민주주의》 이것이 남북민들의 공통된 념원이였다. 엘리오트는 이들을 이전처럼 십자가로만 다스리기 곤난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어느날 하지가 그를 찾았다. 엘리오트는 하지를 만난 자리에서 자기가 조선에 와서 보고 느낀 생각을 터놓았다.

《엘리오트선생, 옳은 생각입니다. 우리가 조선반도에 온것은 이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더없이 좋은 기회이지만 서막이 신통치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오래동안 조선반도를 타고앉아서 오히려 조선인들의 반항정신을 키워준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무라이식통치를 해선 안됩니다. 그러자면 국무성에서 지시한대로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있은 외상회의결정을 조선사람들자신이 거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남의 리승만이나 북의 조만식같은 민족주의거두들이 〈반탁운동〉을 벌리게 하면 그들이 애국자로 될건 틀림없고 조선반도의 공산화도 막을수 있습니다. 조선에는 우리 미국이 바라는 정부가 서야 합니다.》

엘리오트는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국무성에서 하지의 정치고문으로 임명을 받을 때에는 일리노이농장출신의 군인인 하지가 정치문제를 제대로 리해나 하랴 하고 생각했었는데 듣기와는 달랐다. 정치적인 분석도 그만하면 예리하고 결단력도 있었다. 그가 인천상륙시 려운형이라는 민주정객이 들고 나왔던 무슨 조각명단을 보지도 않고 몰상식하게 뿌려던져 민주세력의 반감을 샀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각하, 북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토지개혁과 같은 민주개혁을 서두르고있는 형편에서 좀 더 적극적인 방책이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엘리오트는 응접탁의 담배곽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엘리오트선생, 조선인 대다수가 토지를 기본생활수단으로 하고있는것만큼 토지를 주겠다는 북조선공산주의자들의 유혹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우리의 군정은 38゜선이남에서만 유효한만큼 그걸 당장 못하게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요한건 파탄시키는것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한 북의 모든 비공산세력도 우리쪽으로 당겨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동경하는 조선인 적극분자들이 〈서울중앙〉구호를 계속 들게 해야 합니다. 통일적인 중앙정부가 서울에 서기전에 진행하는 자그마한 개혁도 통일정부수립에 도움을 줄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남쪽에서 공산세력을 대표하는 박헌영이도 이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하고있습니다. 그래야 북조선공산분자들도 주저할것입니다.》

《북에 있는 조만식장로에게도 그렇게 지령을 주겠습니다.》

엘리오트는 이야기가 흥미있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웨스트포인트의 학력도 없이 졸병으로부터 장군으로 출세한 이 사나이가 언제 이런 외교관 못지 않은 책략과 고급한 수를 터득했는지 리해가 안될 정도이였다.

《거기에만 기대를 걸어서는 안됩니다. 토지에 대한 조선인들의 동경이 하루이틀사이에 생긴것이 아닌만큼 공산분자들이 쉽게 손을 떼려고 하지 않을것입니다. 필요한 억제수단도 있어야 합니다.》

《하하하, 옳습니다. 역시 장군은 군인이 틀림없습니다.》

엘리오트는 몸을 제끼며 웃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군인인 덕에 격에 맞지 않게 2천만이 넘는 나라에 와서 이렇게 정치권력을 행사하게 되였습니다. 난 국무성의 신사들처럼 외교는 사실상 질색입니다. 총이나 폭탄처럼 자기의 주장을 명백히 말하는 수단이 또 어데 있습니까? 북에 보낼 사람들을 계속 선발하시오. 적색분자들을 제때에 하나하나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는 얼굴이 벌개져서 부르짖었다. 우묵한 두눈에서는 무엇을 노려보는것 같은 살기가 풍겼다.

이런 일이 있은뒤 엘리오트는 북으로 들어가는 서강에게 조만식한테 보내는 지령을 주면서 십자가만 들고는 공산당과 싸워이길수 없다고 말했다.

서강이 엘리오트에 대한 말을 꺼내자 조만식은 그에 대한 생각이 못견디게 간절해졌다. 그전날 서울에 기지를 두고 평양으로 북나들듯 하며 자기를 제 친형같이 《만식형님》《만식형님》하던 엘리오트, 그 엘리오트가 지금 검은 법의를 드리우고 자기의 손목을 잡고 평양거리를 걸어가는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해방전 어느해 여름 엘리오트가 평양으로 온 때 교도들을 교당이 터지게 모여앉히고 부흥회를 하던 일도 생각난다.

그때 기도모임이 1주일나마 진행되였는데 엘리오트까지 참가한 부흥회인지라 교도들이 정말 성신의 감화를 받아 자기의 죄를 이남박에 박박 갈아내듯 가슴을 치며 털어놓았다.

《오 주여, 성신님께서 이 자리에 강림하시여 저를 불살라 없이 해주옵소서. 저는 중학교설립을 설도하면서 기성회비를 축낸것으로 하여 뺨을 맞고 쫓겨나와··· 아 하느님···》

이렇게 부흥회날에는 례배당안에서 도적질한 죄, 질투한 죄, 얼굴 들수 없는 간음한 죄, 온갖 죄가 다 터져나왔다. 인간세상에선 어찌할수 없이 범하게 되는 이 용렬하고 더러운 죄악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지하신 주께서 씻어주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깨끗한 마음으로 되겠느냐고 가슴들을 탕탕 치기도 하고 흥분이 고조에 달해 벌떡벌떡 일어서기도 했다. 기도회의 마지막날밤에는 흥분한 엘리오트도 자리틀 차고일어나 자기 죄를 자복했다. 정중한 태도로 량수거지를 하고서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부르짖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린다.

《저도 죄를 범했삽네다. 그것은 섭섭한 일이옵네다. 다른 죄가 아니옵네다. 서울에 있는 전도부인 정혜은이라는, 정혜은이라는 녀성과 에, 녀성과 간음, 아니 교제하였삽네다. 에, 이것은 매우 섭섭합네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하느님앞에 맹세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기로 마음먹었삽네다, 아멘.》 교도들이 목소리를 합쳐 아멘 소리를 질렀다. 엘리오트는 땀을 좔좔 흘리였다.

《형님, 만식형님, 내가 일생 선교사를 하면서 오늘밤과 같이 성신이 하강하여 불을 지펴준 기도회는 보지를 못했삽네다. 형님은 주앞에서 전도를 참 잘하고있삽네다.》

기도회가 끝났을 때 엘리오트는 서투른 조선말로 자기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아, 그날밤이 그리웠다. 엘리오트는 언제 여기로 올것인가. 태평양전쟁이 터지게 되여 미국으로 떠나갔던 그가 오늘엔 다시 조선땅으로 들어와 군정고문으로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1940년도 루즈벨트대통령의 미국인철수령에 따라 조선에 머물던 미국선교사들이 인천부두에 집결하여 떠나갈 때 그는 부두에서 엘리오트를 배웅했다.

헤여지는 섭섭한 마음때문에 눈물이 그렁한 그의 손을 잡고 엘리오트는 《만식형님, 너무 그러지 마시오. 돌아옵네다. 우리 꼭 돌아옵네다.》 하며 자기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정말 그날이 왔다. 아, 언제쯤이면 엘리오트가 평양에로 올수 있을가. 그와 마주앉아 회포를 나누며 담소할 날은 언제일가···

조만식은 이런 생각을 하며 서강이와 교회당주위를 돌았다.

《위원장선생님, 엘리오트목사님은 민주당이 공산당과 대결자세로 활동하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서강이 먼저 침묵을 깨뜨리며 말을 꺼냈다.

그는 엘리오트의 지시를 생각하며 눈알을 더욱 예민하게 굴리였다.

《그건 옳은 말이네. 난 마음속으로 언제한번 공산당을 받아들인적이 없네. 그러나 대결을 표면화시키는것은 화약을 지고 바위를 부딪는것처럼 무모한 일이야. 공산당은 내가 회심할 기회를 주고있을뿐이지.》

조만식은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조만식의 말이 개탄조로 나오자 서강은 엘리오트의 지령을 정확히 전달한이상 시간을 끌고싶지 않았다.

《선생님,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섭섭한걸, 춘부장께 들리면 인사를 전하게. 자금을 받아 당운영에 잘 쓴다구.》

서강은 머리를 끄덕이며 조용히 담장을 돌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