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6장 1


 

제 6 장

1

 

강진건은 재령벌을 돌아보고 온 뒤부터 아래사람들을 늦도록 사무실에 붙들어놓고 신경질을 부리는 버릇이 생기였다. 그는 량수책상이 놓인 회전의자에 우람한 상체를 실은채 응접탁에 둘러앉은 농민동맹 간부들을 건너다보며 개탄하였다.

《정말 야단이요.··· 반동들이 날치는데 우리 동맹간부라는 사람들은 눈을 감고 륙갑을 하고 앉아있으니··· 그래 동무들은 밑에서 이런 잡귀신이 든 종이장이 돌아다니는걸 알구나 있소?》

강진건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조만식의 소작세칙을 들어서 흔들었다. 그는 자기가 한나라 농민동맹의 상좌에 앉아있으면서 제구실을 못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목에 피줄을 뻗치고 아래사람들에게 화를 내였다. 사실 새해에 들어와서 3.7제가 결속되여가는데 아직도 의연히 농촌마을들에 반동적인 《소작세칙》이 떠돌아다니는가 하면 함경남도와 같은데서는 좌경분자들이 소작료불납운동을 일으켜 계속 말썽이 생기고있는것이다.

강진건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지는것을 보고 좌중에서 바지저고리를 입은 농민풍의 중늙은이 하나가 응접탁을 짚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위원장동지, 거 그런데 우리가 잘못 인식하는게 아닐가요. 소작세칙을 내려보낸 사람으로 말하면 도위원장이기도 하고 민주당 당수이기도 한데 그런 사람이 아무렴 저혼자 그런 세칙을 만들어서 내려보냈겠나요.》

《동문, 무슨 소리요? 동맹간부라는 사람이 저렇게 떨떨한 소리를 하고있으니 무슨 일이 잘되겠소.》

강진건은 바지저고리에게 눈총을 쏘면서 핀잔을 주었다.

《영 뻐꾸기같은 소릴 하고있거든. 조만식이가 우리 정책을 반대한다는것이야 이미 판이 나지 않았소. 지난 가을 평양으로 성출미가 들어오는것도 막아서 전시내가 식량난에 봉착했댔소. 그때 적지 않은 쌀이 남조선으로 밀수출되였다는 말도 있소. 그렇게 보면 그는 반동이나 같소. 그가 내려보낸 세칙이라는걸 읽어봐도 그게 어떤 사람이라는걸 명약관화하게 알수가 있소.》

강진건은 세칙이 적힌 종이를 들었다가 책상우에 엎어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동맹간부들부터 좀 수준을 높여야겠소. 동맹간부가 조만식의 세칙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못가지고있으니 한심하지 않소. 좋소. 내가 인제 조만식의 소작세칙을 눌러놓는 소작료규정초안을 하나 읽을테니 모두 들어보오. 이건 얼마전에 장군님께서 하나 만들어보라고 말씀이 계셔서 농림국사람들이 만든것인데 농민동맹에서도 알고 차후 이대로 투쟁을 벌려 빨리 3.7제를 결속지어야겠기에 알려주는거요.》

강진건은 소작료잠정규정초안을 꺼내들고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소리내여 읽었다.

제1조. 소작료는 당해 소작지 총수확량의 3할로 함. 단 경작이 곤난한 산간화전지대들은 2할이하로 정함.

제2조. 지주는 소작계약의 담보 및 전리금 또 전납금 등을 청구하지 못함.

제3조. 소작지에 대하여 지주는 좌의 비용을 부담함

l) 종곡비

2) 지세 및 제공과금

3) 토지의 개량비

···

강진건은 목소리를 높여 부칙 2개조까지 달린 전 13조에 달하는 소작료잠정규정을 내려읽었다.

《에, 이 규정은 먼저 내려간 조만식의 소작세칙을 무효화하는것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것이라는걸 알아야 하오. 그럼 이 규정에 대해서 의견이 있는 동무들은 말해보우.》

강진건은 해방직후에 《동무》라는 말이 입에 올라 이젠 그 말을 곧잘 썼다. 그런데 그때 출입문에서 손기척소리가 나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리였다. 이윽고 방안으로 조용히 들어서는분은 뜻밖에도 장군님이시였다. 털외투를 입은 장군님께서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방안을 빙 둘러보시였다. 모두 우르르 일어섰다.

강진건은 급히 문앞으로 걸어나와 장군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나서 뒤따라 문을 닫으며 들어오는 김책이와 악수를 하였다.

이날 강진건의 방에 모인 동맹간부들은 거의나 다 장군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뵙기는 처음이여서 긴장한 나머지 굳어진 몸가짐을 하고있었고 지어는 당황해서 어쩔바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소탈하게 웃으며 모두 앉으라고 하고 자신께서도 강진건의 책상곁에 있는 쏘파에 김책을 데리고가서 앉으시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모여앉았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좌중을 둘러보다가 강진건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장군님, 다른게 아니구 농림국에서 만든 소작료잠정규정초안을 가져다놓고 어떻게 하면 토지개혁이 시작되기전에 3.7제투쟁을 종결짓겠는가 하는걸 토론해보는중입니다.》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있습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나도 농림국장동무가 가져온걸 보고 그걸 좀 토론해보자고왔습니다.》

《장군님, 그 규정초안이 마음에 듭니다.》

강진건이 일어나서 대답을 올렸다.

《그렇습니까. 3.7제투쟁이 벌어진 이후 농민들의 반영은 어떠합니까?》

《예, 전반적으로 3.7제가 끝나가면서 농민들속에서 공산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있습니다. 이게 전부 밑에서 동맹조직을 통해 올라온 농민들의 편지입니다.》

강진건이 자기앞에 무드기 쌓인 서류들을 가리켰다.

《좀 봅시다. 여러분들두 함께 나누어봅시다.》

장군님께서 팔을 들어 강진건의 앞에 놓인 서류를 한줌 쥐여다 펴놓으시였다. 강진건은 나머지 서류들을 이사람 저사람에게 몇장씩 나누어주었다.

《개별적으로 오는 편지가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서류앞으로 다가앉으시였다. 김책이 곁에서 서류를 한장한장 골라서 장군님께 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넘겨주는 서류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시였다. 평북도 어느 리의 농민이 올린 편지에서는 오래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글줄마다에 열렬한 기쁨과 환희가 스며있었다.

···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우리 농민들은 3.7제로 소작료를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다리펴고앉아 밥을 먹는 복락을 누리고있습니다. 이것은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덕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공산당의 정책을 절대 지지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또 다른 편지를 받아쥐시였다. 강원도의 한 농민이 장군님앞으로 보낸 편지였다. 그래서 그 편지만은 겉봉을 뜯지 않은채 따로 보관해두고있는것이였다.

《그 편지도 동맹조직으로 들어왔기때문에 이리로 올려보낸것 같습니다.》

강진건은 장군님의 손에 쥐여있는 편지를 보며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주머니칼을 꺼내여 봉투를 베고 속지를 꺼내시였다. 한지에다 서툰 붓글씨로 굵직굵직하게 쓴 글발에 농민의 소박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져있었다.

 

장군님, 우리 장군님!

우리는 나라를 찾아주신 장군님의 하늘같은 그 은혜를 잊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해방되자마자 또 3.7제로 소작료를 물고보니 감사의 마음은 이루 누를길이 없습니다. 3.7제가 아니였더면 우리 아홉식구는 해를 못넘기고 쪽박을 차고 나앉을번 했습니다. 농조에 드니 배곯고 풀뿌리 캐먹던 왕시의 설음은 없어지고 얼굴에 덮였던 어두운 그늘은 해받은 양지처럼 사라졌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진심을 담은 농민의 글을 다 읽고나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편지를 접으시였다.

《장군님. 여기 토지개혁을 그만두라는 지주놈의 항의문이 있습니다.》

뒤끝에 앉아 편지를 읽던 한 사람이 종이장을 들고 일어섰다.

《그렇습니까. 어디 좀 읽어봅시다.》

장군님께서 허거픈 웃음을 띠며 손을 내미시였다. 편지를 든 사람이 편지종이를 정히 펴가지고 와서 장군님께 올리였다.

《아주 고약한놈입니다.》

《그래요?》

장군님께서는 빨간 줄칸을 내리친 빨락빨락한 인찰지종이를 들고 읽으시였다.

 

···본인은 작인들이 가져오는 3.7제 소작료를 받아놓고 앉아서 공산당이 천륜을 모르는 무뢰배가 아닌다음에야 이럴수가 있을가 하는 흥분된 마음을 누르며 이 진정서를 올리나이다.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건대 앞으로 지주의 토지를 전부 빼앗는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싶은 경악감이 더구나 이 글을 올리게 하나이다. 나는 공산주의란 만민평등으로 너도나도 복락사회에서 살게 만든다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엎는 일이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믿어지질 않나이다.

옛날부터 부귀는 하늘이 낸다 일렀는데 하늘이 아닌 공산당이 이것을 뒤바꾸어놓을수 있겠소이까. 미천한 농민은 부귀로 만들고 지주를 빈천으로 만든다면 그 세상이 몇날 못가서 또 뒤집혀지리라는것은 명약관화한 일이 아닐수 없나이다. 해방후 만반사물이 혼돈일색이니 이런 저런 일이 다사하게 있을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이런 억지공사로 건국위업을 수행해나가겠나이까. 만사는 분별이 이미 정해졌는데 공연히 인력, 공산력을 동원해가지고 분별없이 날뛴다면 세상에 질서가 설수 없고 건국대업이 성공할수 없을줄로 아오니 소인의 뜻을 하량하시고 무분별한 공산정책을 심사숙고해주기 바라나이다.···

 

장군님께서는 겉봉에 씌여있는 주소를 보시였다. 황해도 재령벌에 있는 지주였다.

《장군님, 제가 그전에 황해도에선 지주를 군수로 추대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씀올렸는데 바로 이 지주가 군수자리를 노렸던자입니다.》

《군수자리를?··· 그러던 지주가 농민들속에서 3.7제투쟁이 벌어지니 자기 말대로 경악실색한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땅문제때문에 요즘 지주들과 반동계층들의 신경이 아주 날카로와지고있다고 하면서 그럴수록 동맹에서는 농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된다고 하시였다.

이날 동맹간부들은 긴 겨울밤을 새우면서라도 장군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하였으나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여 말씀을 간단히 하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동맹간부들을 돌려보내고 방에서 나올 때 앞서 걸어가는 강진건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어쩐지 그 로인의 얼굴은 무거운 시름에 잠겨있는듯 하고 옥중고문으로 하여 뼈가 불거져나온 그의 잔등이 더욱 구부러지고 두드러져나온것 같았다.

《강선생님, 어디 편치 않은게 아닙니까? 식사도 제때에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외지에 다닐 때도 몸에 알맞게 다니십시오.》

《장군님, 제 몸은 이제 쓰러져두 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군님의 뜻대루 농민들을 이끌고 토지개혁을 해낼것 같지 못합니다. 점점 막연해집니다.》

강진건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절망적인 소리를 하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강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푹 쉬고 무엇이 애로되는지 래일 서로 의논하며 풀어봅시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며 강진건의 불거져나온 잔등을 어루만지시였다. 그때 김책이 슬그머니 강진건의 팔목을 잡고 앞으로 내끌면서 그의 귀가에 대고 조용히 그러나 약간 질책하는듯 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 강선생님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왜 우는 소리만 합니까?》

강진건은 몇발자국 뒤에 서신 장군님을 넌지시 살펴보고 역시 김책이만이 들을수 있도록 조용히 속삭이였다.

《김책동무, 내 오죽 속타면 이러겠습니까? 아까 아래사람들이 있는데선 꼭 입을 봉하고 앉아있었지만 근본문제를 다시 론의해야 될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재령벌에 나가보고와서 생각한건 농민들을 다 개명시키구 토지개혁을 하자면 부지하세월이라는겁니다. 우리 동맹간부들중에서도 농민들을 깨게하자면 오랜 력사가 흘러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진건은 승용차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이 깃든 넓은 공간에서 음산한 바람이 일며 눈꽃이 날리고있었다.

《근본문제를 다시 론의해야 되겠다는건 무업니까? 그러니 강선생은 토지개혁을 할수 없다는겁니까?》

김책의 목소리는 아주 엄하게 울리였다.

《김책동무, 나는 토지개혁을 할수 없다는게 아니라 당장 하자는겝니다. 래일이라도 토지개혁법령을 발포하고 그다음 농민들을 각성시키든지 어떻게 하자는겁니다.》

마침 그때 장군님께서 둘이 서있는 승용차곁으로 오시였다.

《허허허··· 앞에서 걸으며 무얼 그렇게 속삭이는가 했더니 계속 토지개혁에 대한 토론이군요.》

장군님께서 손을 들어 허공에 날리는 흰눈송이들을 잡으며 두사람을 번갈아보시였다.

《전 농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문제가 헐치 않다는걸 이번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강진건이 김책이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재령벌에 갔다와서 제가 장군님께 이미 말씀올렸지만 옛날 한일합방직후에 저희 고향마을에서 보던 농군이나 오늘의 농군이나 그저 대동소이합니다. 일껏 3.7제를 해놓고도 지주가 무서워 슬그머니 쌀가마니를 도루 실어다바치는 얼간이가 있는가 하면 지주한테서 뺏은 총을 도루 지주에게 가져다 바치는 백치도 있지요. 밭갈이철은 이제 곧 닥쳐오게 됐는데 이런 사람들의 머리를 어떻게 그전으루 개명시키겠습니까?》

강진건의 목소리는 거칠고 높아졌다. 김책은 얼핏 장군님의 얼굴을 스쳐보고 묵묵히 서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의 말을 무심히 들을수 없으시였다. 문득 그이의 뇌리에는 방금전에 읽은 농민들의 편지가 떠오르시였다. 아닌게아니라 그 편지들을 다시금 음미해볼 때 농민들의 정치적각성문제를 놓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것 같으시였다. 농민들의 편지에는 3.7제를 해서 감사하다는 말은 있지만 땅을 달라는 요구를 하지 못하고있었다. 오히려 지주놈이 앞질러서 토지개혁이 천륜을 어기는 일이라고 호통을 쳤다. 제 땅을 가지고 제 농사를 짓는것이 우리 농민들의 세기적인 숙망인데 어찌하여 아직까지 그들속에서 땅을 달라는 열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지 않는가?

장군님께서는 그 문제를 놓고 생각을 깊이 더듬으시였다. 자본주의발전마저 억제당한 이 나라의 력사는 농민들을 지주의 전장에 얽매여놓은채 수천년세월을 흘러왔다.

그때문에 지주놈이 편지에서 력설한것처럼 농민들자신도 땅에 얽매인 자기 처지를 어찌할수없는 천륜법도로, 숙명으로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농민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에게 지주의 땅을 빼앗아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니 결국 토지혁명이란 종래의 그릇된 관념을 뒤집어엎는 혁명, 인간의 정신을 개조하는 철저한 인간혁명이였다. 그런 혁명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였다. 지난해 팔월가위때 자연군중앞에서 어느 한 문필가가 개탄한것처럼 땅을 놓고 빚어진 지주와 농민의 비극적인 관계, 그릇된 의식은 동토대의 빙하와도 같이 굳게 얼어붙어있었다. 세기를 두고 얼고 다져진 그 거대한 얼음의 산악, 얼어붙은 강을 과연 하루아침에 녹여버리고 무너뜨릴수 있겠는가?

장군님의 생각은 새삼스레 번거로와지시였다.

《재령벌 형편은 바로 이렇습니다.》

강진건은 눈꽃이 날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는 강권으로라두 농민들이 지주에게 굴종하지 않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그곳 군당비서가 머저리짓을 한 농민 몇명을 농조에서 내쫓아버리겠다고 하는걸 보았습니다.》

《아니, 농조에 들었던 농민을 내쫓는단말입니까?》

김책이 흠칫 놀라며 강진건에게 물었다.

《예, 농민들에게 경종을 울리자고 시범적으로 몇명 내쫓겠다고 했습니다. 나도 농군의 자손이지만 좀 정신을 들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이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강진건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지난날 군률을 어기는 독립군 병졸들에게 가차없이 엄벌을 내리던 그에게 있어서 사실상 농민 몇명을 농조에서 내버리는것은 조금도 심각한 문제로 되지 않았다.

장군님의 안색은 무중 흐려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농조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이름과 가정생활형편을 물으시였으나 강진건은 이름조차 똑똑히 모르고있었다. 그는 락후한 농민 몇명을 시범적으로 농조에서 제거해버리겠다는 군당비서 유사천의 말을 듣고왔을뿐이였다.

《그건 아주 잘못됐습니다. 조직에서 농민을 내보낸다는 말을 듣고 이름조차 알아보지 않았으니 그게 어디 됐습니까? 농맹위원장이 농민들의 운명을 그렇게 값없이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근엄한 눈빛으로 강진건을 바라보며 나무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음이 괴로와 자국눈이 깔린 포도우를 거니시였다. 눈꽃이 날리던 밤하늘에선 모래알같은 싸락눈이 내리고있었다.

(농조가 조직된지 얼마 됐기에 벌써부터 내쫓는 놀음을 하고있는가?)

장군님께서는 농조에서 쫓겨난 농민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하시였다. 토목저고리를 입고 손이 북두갈구리같이 되고 이마에 밭고랑같은 주름이 패인 흑토빛 얼굴의 농민들, 수난많은 세상을 살아온 모습이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언제인가 보았던 한 농군의 발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칡줄같은 피줄이 얼기설기하고 가죽이 밀리는 문드러진 발, 나무뿌리에 긁히고 돌모에 채워 으깨여진 발가락들, 한평생 흙을 밟고 돌아가며 흙에 땀을 뿌리고 눈물과 피를 뿌린 농군의 한많은 생애가 그 험한 발에 새겨져있는것 같으시였다. 모름지기 농조에서 버림받은 그 재령벌 농군들의 발도 그러할것이였다.

《강선생님!》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수굿하고 서있는 강진건의 손을 잡으시였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으나 그의 건강이 념려되시였다.

《날이 차집니다. 이젠 어서 차에 오릅시다.》

《장군님! 전 지금 온 육신이 달아올라서 찬바람을 기껏 쐬고싶습니다. 장군님! 제가 꽤 장군님의 곁에서 혁명을 해낼것 같습니까? 전 혁명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날이 갈수록 더 모르겠습니다.》

강진건은 장군님의 손을 마주잡고 안타까이 부르짖었다.

《허허허··· 혁명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모르겠단말이지요? 그렇다면 제가 한마디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강선생님! 사랑하면 됩니다. 혁명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농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사랑하면 됩니다.》

강진건은 어정쩡히 서있었다.

《언제인가 송신일선생도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목사인 제가 정말 장군님곁에서 꽤 혁명을 해낼수 있겠습니까?〉하구··· 그래서 저는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송선생한테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선을 사랑하는것, 이것이 우리의 사상륜리의 기초가 아닙니까〉하고 대답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포도우를 거닐다가 문득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김책은 경건히 고개를 쳐들고 싸락눈을 맞으며 승용차곁에 서있었다.

《김책동무, 그렇지요? 우리는 부모혈육과 자기 민족, 자기 인민을 사랑하는데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이 없이 무슨 혁명이 있겠습니까. 사랑은 혁명의 대명사와도 같은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에게로 다시 눈길을 돌리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물론 혁명륜리의 기초가 사랑이라고 해서 예수의 신봉자들처럼 원쑤까지도 사랑한다는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원쑤도 사랑하도록 설교함으로써 결국 오늘까지 인민대중을 억압하는 기만의 도구로 리용되여왔습니다. 종교를 기만적인 정치도구로 리용하는 〈하느님의 사도〉들은 원쑤가 왼쪽뺨을 때리면 바른쪽뺨을 내대라고 사랑을 설교하여왔으나 정작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뺨을 치니까 사랑하기는커녕 〈붉은 마귀〉라고 펄펄 뛰면서 갖은 악선전을 다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송신일선생과 같이 진정으로 만민의 평등을 념원하고 선을 사랑하는 독실한 교인들은 인민을 억압착취하는 바로 그런자들을 사탄의 무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송신일선생이 우리와 함께 공산주의까지 가지 못할 아무런 리유도 없습니다. 제가 왜 오늘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을 지켜보며 잠시 서있다가 다시금 천천히 승용차곁을 거니시였다.

《한번 잘못을 저질렀다고 순박하고 량순한 농민들을 농조에서 내쫓아버린다면 〈붉은 마귀〉란 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것입니다. 그런 공산당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우리는 열번 스무번 속을 썩이며 참으면서도 아직 조만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농민들은 대번에 내쫓습니까. 하나는 영향력이 있는 큰 인물이래서 신중히 다루고 하나는 비천한 농민이래서 장기쪽처럼 다루는가요? 인간을 그렇게 차별한다면 그건 벌써 혁명이 아닙니다. 봄, 여름내 피땀을 흘리며 씨뿌리고 낟알을 가꿔서 수백만의 사람들을 먹여살리는것이 농군들인데 강진건선생까지 그 고맙고 불쌍한 농민들을 경시합니까?》

강진건은 몇발자국 비칠거리다가 승용차문에 손을 짚고 고개를 떨구었다. 장군님께서는 금시 쓰러질것같은 강진건의 몸을 부축하여주시였다.

《선생님, 제 말이 노엽습니까?》

《장군님!···》

강진건은 오열을 터뜨릴듯 전신을 떨었다.

《바다같이 깊은 장군님의 뜻을 제 조그마한 머리로써는 도저히··· 저는 동맹위원장 재목이 못됩니다···》

《선생님, 그러지 말구 힘을 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의 어깨와 잔등을 어루만지며 바람소리 소연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그 옛날 선생님은 팔도구에 오셔서 한생을 두고 바라는 두가지 큰 소원중에 하나가 이 나라 농민들을 개명시키고 잘 살게 하는것이라고 하셨지요. 우리 더 뜨겁게 농민들을 사랑합시다. 그러면 선생님의 소원이 성취될것입니다. 사랑앞에선 목석도 눈물을 흘리고 산천도 움직인다 했으니 수천년동안 이 땅에 얼어붙어앉은 봉건의 빙하도 일조에 해방기를 맞을것입니다. 선생님, 이제 로동계급출신의 간부들을 더 많이 농촌에 파견하겠습니다. 그러면 토지혁명도 한결 더 잘 될터이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강진건은 고개를 쳐들었다. 이 거형의 늙은이가 지난날 화승총을 메고 험산을 넘나들 때 잃어버린 혈육과 병졸은 얼마였던가. 그리고 길고긴 옥중생활에서 겪은 고초와 슬픔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그러나 그 수십년의 험난한 생활속에서도 눈물을 모르던 늙은 사나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락수물처럼 떨어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