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7


 

제 5 장

7

 

군농조에서 회의가 있은지 며칠 안되여 군당비서 유사천이 발바리차를 타고 신당리에 내려왔다. 키가 작달막한 군농민조합장도 함께 왔다. 유사천은 조순근이 읍장마당에 갔던 날 최폴이라는 남포군청년의 연설을 지휘하던 광주리머리 털보였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까지는 감옥생활을 했다는 시위를 하느라고 수염도 시꺼멓게 하고 단장도 짚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구두솔같던 수염을 반반히 밀어버리고 얼굴이 맨숭맨숭했고 단장도 짚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광주리머리만은 젓고다녔다. 마을에 자동차가 나타나자 아이들과 개들이 달려나왔다. 아이들이 뜀박질을 하며 자동차주위로 맴을 돌고 어른들도 무슨 경사라도 있는듯이 활개를 휘저으며 모여들었다.

외투 량쪽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찌른 유사천은 입에 륙각물부리를 물고 연기를 뿜어올리며 장춘하를 나무람하고있었다.

그는 목에 털을 댄 수박색외투를 입고 윤이 번쩍거리는 왜놈군대장화를 신었는데 삼단같은 광주리머리가 그의 풍채를 위엄있게 해주었다.

《이번에 신당리농조는 우리 군의 위신을 아주 땅바닥에 멨다꼰졌소. 그 책임을 아오?》

장춘하는 그의 질문에 몸둘바를 몰라 제 혼자 속을 썩이였다. 말밥에 오른 일들은 시간이 가느라면 저절로 잦아들고 말겠지 했는데 뜻밖에도 군에서 큰 간부들이 달려내려와서 추궁을 하자 당황하게 되였다.

《농조원들을 모이게 하시오. 중요한 회의를 하나 해야겠소.》

유사천은 장춘하에게 이렇게 이르고는 군농민조합장과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는 이번에 중앙농맹에서 강진건이 직접 내려와 이곳 실태를 료해하고 올라간 일이 몹시 기분에 거슬렸다.

그래서 신당리농조를 대담하게 정리하여 다른 면, 리의 농조들도 정신을 차리게 하자고 결심했던것이다.

지시를 받은 장춘하는 얼른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농조원들을 소집할 장소가 문제였다. 지금까지 회합은 주로 정기찬네 집에서 가지군 했다. 정기찬네 집은 원채가 두칸 있고 웃방앞으로 청간이 달린 사랑채가 있어 회합장소로서 그중 적합했다. 그런데 정기찬네 집에 모여들어 정기찬을 두들겨패는 회합을 벌려놓을수 있겠는가. 장춘하가 우물쭈물하자 군농민조합장이 빨리 움직이라고 눈짓을 했다. 정기찬네 집에 모이는 길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얼마후 련락을 받은 사람들이 정기찬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아래웃방과 사랑방에 사람들이 가득 배겨앉고도 모자라서 더러는 뜨락에 서있었다. 긴 그림자를 끌며 마당에 들어선 유사천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뜨락한가운데 가져다놓은 걸상에 까치다리를 하고앉았다. 방안에 들어간 사람들과 뜨락에 선 사람들이 모두 바라볼수 있는곳이다. 그의 눈가장에서는 살벌한 기운이 풍겼다.

《비프로트를 쫓아내는 회의라누만.》

《비프로트라니?》

《글쎄 나도 모르겠네. 아마 정기찬의 문제겠지.》

사람들속에서는 벌써 이런 귀속말들이 오갔다.

《조용들 하시오.》

장춘하는 뜨락과 방안 사람들을 정돈시키고 유사천에게 다 모였다고 말했다.

《저 방안에서도 내 목소리가 다 들리오?》

유사천은 웃방과 아래방쪽에 대고 턱짓을 했다. 들린다고 하자 이번에는 군농민조합장이 사랑방쪽에 대고 물었다.

《네에, 썩 잘 들립니다.》

유사천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날씨가 쌀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이게 해서 안됐습니다. 우리 군당과 군농조에서는 여기 신당리 문제를 가지고 신중하게 토론했습니다. 동무들도 다 알지만 농조는 공산당의 대중조직이며 믿음직한 방조자입니다. 에, 때문에 농조안에는 철저한 프로레타리아의 계급적원칙이 견지되여야 합니다. 비계급적, 비프로레타리아적인것은 사소한것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허용하거나 양보하면 농조는 있으나마나입니다. 그때는 벌써 우리 공산당의 농조가 아닙니다. 계급적이냐, 비계급적이냐? 프로레타리아적이냐 비프로레타리아적이냐? 언제나 문제를 이렇게 세우고 눈을 밝혀야 합니다. 여기에서 약간한 편차가 생겨도 가차없이 쳐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농조를 통하여 농촌에서 력사상 있어보지 못한 첨예한 계급투쟁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있는가. 신당리농조는 지주계급과 타협하면서 공공연하게 지주를 도와나서고있습니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 농조가 지주놈을 돕다니요?》

장춘하는 연설도중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유사천의 말이 너무도 억울하게 들리여 저도모르게 불쑥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번 군농조회의에서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여 욕을 당하고 내려온 처지였지만 지주를 도와주고 그와 타협한다는 말에 불쑥 정신이 들었다. 한두사람이 잘못했다고 해서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 사람들도 장춘하의 항변에 무언의 공감을 보내며 머리를 끄덕였다.

유사천은 기분이 언짢은듯 장춘하를 노려보았다.

《농민조합장, 벼락이 어느 정수리에 떨어질지도 모르고 서서 무슨 잡소리요? 신당리농조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당신 장춘하요. 조순근, 정기찬이 이 세사람은 한통속이요.》

장춘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유사천을 바라보았다. 정말 마른 하늘의 벼락이였다. 군중들도 술렁거렸다.

《왜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추가소작료 징수놀음은 반동들이 만들어낸 규정세칙을 등에 대고 지주놈들이 제 배를 채우자는 수작입니다. 그래서 군당부에서는 추가소작료 불납투쟁을 단호히 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당리농조에서는 어떻게 하고있는가? 서씨들을 비롯해서 농조원자신들이 추가소작료를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은밀히 가져다바치고있습니다. 이건 완전히 지주의 편에 넘어간 사람들의 반혁명적행위입니다. 그런데 더 엄중한것은 지주의 편으로 넘어간 이런 혁명의 배신자들, 에, 비프로레타리아분자들을 끼고앉아서 그들을 공공연히 비호하는것입니다. 그 대표자가 바로 농민조합장 당신이요. 계급적원칙에 투철한 농조원들은 배신자들을 자기 대렬에서 제거하자고 이미 태도를 표명했소. 그런데도 농민조합장자신은 이 원칙적인 제기를 묵살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농민조합장은 빼앗았던 총까지 도루 돌려준 비프로레타리아분자인 조순근과 한짝이 되여 정기찬을 농조에서 내보내지 말라고 상부에 상소하는 놀라운 행위까지 저질렀습니다.

얼마나 한심한가. 누가 누구를 하는 때에 반혁명과 타협하고 지주의 편을 도와준것은 벌써 그것자체가 반혁명입니다. 한가지 알려드릴것은 당신들의 투쟁에 혼란을 야기시킨 즉 우리 도에 해당도 안되는 반동세칙을 배포하였던 군서무과장, 이자는 이미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양보를 모르는 강철같은 사람들입니다. 농민조합장 그리고 조순근농민, 할말이 있소?》

유사천은 죄인 심문하듯 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신당리일을 손금쥐듯 다 알아가지고 내려왔다. 사랑방에 앉은 조순근은 까무라칠것 같은 얼굴을 하고 머리를 못들었다. 결국 자기때문에 장춘하가 욕을 보는것이였다. 그는 엉거주춤히 일어서서 유사천에게 사정하듯 비는 소리를 했다.

《국둑발에게 총을 되돌려준건 제 잘못이 옳수다. 조합장은 이 일엔 전혀 상관이 없소이다.》

조순근은 겨우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수전이 온듯 두손을 우둘우둘 떨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제 조순근이올시다.》

《조순군? 음 그러니까 당신이 바로 서도빈농협의회에 가서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불순한 문서에 지장을 찍고 온 사람이였소? 앉으시오. 그러지 않아도 당신에 대해선 결심이 서있소. 지금 와서 잘못했다거나 상관이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소. 이제 지주계급을 수탈하자면 농조안에 그 어느때보다도 계급적인 날을 세워야겠는데 농조를 아주 맹물단지로 만들어놓았단말이요. 농조의 계급성을 거세해놓았소. 그래서 군에서는 보고만 있을수 없게 되였소. 조순근농민과 정기찬농민 그리고 〈서가마을〉 일부 씨족들을 농조에서 즉시 축출하기로 했소. 다음 장춘하는 실무가 무능한 점도 없지 않다고 보고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였소. 의견있는 농민들은 말해보시오.》

모두들 말이 없었다. 아래방구석에서 정기찬이 쿨쩍쿨쩍 울고있었다.

《저, 하 한마디 해도 되겠시꺄?》

《어서 말씀하시오.》

토방에 앉았던 흥묵이가 성급히 일어서자 유사천은 군농민조합장을 돌아보았다. 군농민조합장이 군당조직부장 김창규의 장인이라고 귀띔하였다.

《말씀을 듣고보니 우리 조합장과 조순근성님이 말은 듣게 됐어유. 허지만 순근성님은 지주의 편에 설 사람은 아니웨유. 성님이 평양에 간건 지주집에서 종살이하는 애를 내오자구 청원을 갔던거지 문서에 도장을 칠려구 갔던것은 아니웨유. 그리구 총을 돌려줄 땐 나도 있어서 우리 아들애가 총가지고 실수할가봐 줴버리고 말았는데유.》

농민조합장이 유사천에게 저 농민의 아들이 이 마을 자위대장을 한다고 또 귀띔해주었다.

《그럼 한마디 물읍시다. 당신은 문자해득을 할줄 아시오?》

《문자해득이라니요?》

《글을 읽을줄 아는가 그말입니다.》

장춘하가 흥묵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녜에, 전 문맹자올시다.》

《보시오. 그런데 우리가 알건대 저 조순근농민은 문자해득을 하는 사람입니다. 문서를 읽어보고 지장을 눌렀단말입니다. 조순근농민, 옳습니까?》

유사천은 두리번거리며 조순근이 일어섰던쪽을 돌아보았다.

《···》

조순근은 머리를 떨구고 앉아 말을 못했다. 안다고 하면 어떻구 모른다고 하면 어떤가. 일은 벌써 다 저질러진 판인데···

유사천은 더 따지지 않고 그때까지 구부정해 서있는 흥묵에게 얼굴을 돌렸다.

《당신은 총문제가 별일 아닌것처럼 말하는데 그래 마름이 그 총으로 우리 농민을 땅! 하고 정말 쏠 때는 당신은 맨주먹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유사천이 롱담조로 목소리를 낮추며 묻자 흥묵은 여수가 있지 않나 해서 씽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공산당비서어른. 모 못쏘아유.》

《왜 못쏜다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쏘아유. 쏘면 사람이 죽겠는데유.》

그 소리에 유사천과 군농민조합장은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기막힐 지경입니다. 이젠 알만합니다. 앉으시오. 한마디만 더 합시다. 이제 벌어질 지주계급청산은 그야말로 판가리투쟁이라는걸 알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지주계급은 벌써 그렇게 선전포고를 우리에게 한셈입니다. 그래서 농조를 지주계급과 피를 물고 해낼수 있는 알쭌한 농촌프로레타리아트의 대렬로 꾸려야 합니다. 당신이 조순근을 동정하고 조순근이 정기찬을 비호하고 또 장춘하가 그들을 끼고 도는식으로 된다면 그런 농조를 해서 뭘합니까? 비계급적이며 반혁명적인 행위들에 동정을 표시해선 안됩니다.

난 이 이상 더 설명안하겠습니다. 지금은 칠판에 글써가며 가르칠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유사천은 그후에도 계속 무슨 말인가를 길게 늘어놓았으나 조순근은 듣지 못했다. 그는 이미 제정신을 잃고있었다. 그는 자기 정수리에 이런 불운이 떨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저 정기찬의 문제가 토론되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하고 왔었다. 그런데 무서운 벼락은 자기에게 먼저 떨어졌다. 그는 가슴이 드세게 풀떡거렸지만 매끼풀린 나무단처럼 퍼더버리고 앉아 할 말을 못했다.

이때였다. 아래방에서 《이놈!》 하는 웨침소리가 들리고 주먹으로 누구인가를 두드려패는 소리가 났다. 정기찬의 형 정기수였다. 사람들이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동생문제가 희의에서 토의된다는 소리를 들은 정기수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와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동생의 일때문에 심사가 터져오른것이다.

정기수의 큰 주먹이 정기찬의 잔등에 떡메치듯 오르내렸다.

《이놈아, 네가 뭐 날 생각해서 소작료를 더 실어다주었다구, 그리구 뭐 까만 눈깔들이 쳐다보아서 어쨌다구··· 이 이 무지렁이같은놈.》

《형니임. 날 죽이시오. 날 죽여요.》

《오냐, 죽어라. 네놈은 내 아우가 아니다. 아주 주, 죽어라.》

정기수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피대가 뻗친 한손으로 정기찬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부여쥐고 쾅쾅 내리쳤다. 사람들이 모아붙어 뜯어말리지만 또 달려들군 했다. 사람들은 정기수를 말리다 못해 뒤문으로 정기찬을 빼내갔다. 그제야 정기수는 노전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을 터뜨렸다.

《아버니임! 저놈을 어쩌면 좋아요. 저런 시라소닐 왜 남겨놓구 이 집안 망신을 시켜요. 으으흐흐···》

정기수는 등을 벽에 젖히며 꺼이꺼이 울었다. 방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기분이 잡친 유사천은 군농민조합장을 데리고 간다온다 소리없이 사라졌다. 농민들도 쓴 입을 다시며 헤여졌다.

조순근은 얼굴을 못들고 앞이 동굴속같이 새까만 둔덕길을 걸었다. 날이 어두워서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길이 안보이기보다 길을 골라디딜 경황이 없는것이다. 발밑에서 괴임돌을 뽑아낸것같이 온몸이 허전거렸다. 그는 자기가 비프로트인지 비계급분자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지주의 편은 아니였다. 지주와 한편이 되여 지주를 도와주었다는 말이 목구멍에 뼈가시처럼 가로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지주를 도와주다니?

그래서 농조에서 쫓겨나다니 이럴수가 있는가. 어디에 하소할데도 없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 쓰리여났다. 《난 지주의 편이 아니요!》 《난 서만호의 편이 아니요!》 조순근은 부르짖었다. 그는 비칠거리며 발길이 놓여지는대로 걸었다. 앞에 무슨 뚝이 있어서 더 걷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재령강기슭에 온것이다. 날이 저물고 교교한 달빛이 내려앉은 재령강의 얼음판은 은빛처럼 번쩍거렸다. 어째서 아버지의 죽음터인 강기슭으로 또 나오게 되였는지 그 자신도 알수 없었다.

조순근은 강기슭의 잔디밭에 퍼더버리고앉아 달빛이 번쩍거리는 얼음판을 넋을 잃고 굽어보았다. 그러자 얼음판은 간데없고 늠실늠실 물결이 굽이쳤다. 그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들은 키를 넘는 물속에서 구역질을 하며 두손을 뻗쳐들고 허우적거린다. 물속에 꼴깍 잠겨들어가서 한참씩 있다가 손을 휘저으며 다시 솟아오르기도 했다. 조순근은 웬일인가 하여 훌쩍 일어섰다. 악몽같은 환상이였다. 얼음판은 여전히 차거운 달빛을 받으며 그대로 누워있다. 조순근의 긴 그림자가 얼음판우에 어룽거릴뿐이였다. 그는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강을 바라보며 안타까이 물었다.

공산당에서는 지주와 싸우지 않는다고 나를 쫓아버리는데 나라에서 내려보냈다는 그 법관은 왜 지주와 싸운다고 나를 죄인처럼 다스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