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6


 

제 5 장

6

 

정기찬이 추가소작료를 지주집에 실어다바쳤다는 소문은 그날로 온 신당리마을에 파다하게 퍼져서 물의를 일으켰다. 농조원들은 저마다 정기찬을 쓸개빠진 얼간이라고 몰아댔고 농조원 호상간의 의리는 물론 형제간의 의리도 지킬줄 모르는 무도한 인간이라고 규탄하였다.

상처를 입고 집에 누워있던 정기수도 그놈을 당장 농조에서 내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바로 이때 군에는 중앙에서 강진건을 비롯한 농맹일군들이 지도차로 내려와있었다. 몇개 리와 면을 돌아본 강진건은 3.7제투쟁이후 농민들속에서 일어나고있는 부정적인 현상들에 대하여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엄중한것은 3.7제이후 농조의 초급간부들속에서 계급성이 없는 해이된 현상이 나타나고있는것이였다.

강진건은 급히 군농조일군들의 회의를 소집하였다. 어느날 강진건이 참가한 가운데 면과 리의 농민조합장들과 군농조일군들이 군농조청사에 모여 비판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농조일군들뿐만아니라 강진건이 《얼간이농민》이라고 부르는 락후한 농민들도 10여명 불리워와서 한쪽구석에 죄인처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칭찬을 받는 회의가 아니라 욕벌이를 하러 온 모임이기때문에 농민들은 될수록 뒤자리에 몰켜앉아 까투리처럼 고개들을 틀어박고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우람한 체구에 눈섭이 시커먼 독립군출신의 동맹위원장이 범처럼 무섭게 생각되였다.

키는 작지만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게 생긴 군농민조합장이 쇠소리가 나는 챙챙한 목소리로 먼저 자료보고문을 읽었다.

···농민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은 각이한 양상을 띠고있는바 어떤 동네에서는 3.7제로 소작료를 바치고나서 지주를 보기가 미안하다느니 각박하다느니 하며 개를 잡아놓고 지주에게 술과 고기를 권하며 《지주령감, 이번 일을 널리 량해하고 앞으로 손잡고 화목하게 지냅시다.》하고 빌붙는 한심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마을에서는 분명 지주가 3.7제를 한 앙심으로 새해에는 땅을 뗄것이라고 하면서 지주에게 소 한마리를 뢰물로 바치였다.

특히 묵과할수 없는 엄중한 현상은 농민을 지도한다는 어느 리의 농민조합장은 지주의 첩살이를 하다가 떨어져나와 읍에서 술장사를 하는 《다홍치마》네 집에서 술을 폭음하고 농조의 비밀을 루설함으로써 그 소리가 다홍치마와 함께 살던 지주의 귀에 들어가게 된것이다.···

《가만, 조합장동무 좀 찍어서 말하오. 그게 누구요? 다홍치만지 홍색치만지 지주집 첩을 하던 녀자한테 술먹구 농조의 비밀을 루설했다는게?···》

강진건이 검은 눈섭을 치켜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게 장풍리 농민조합장입니다. 그에 대해서 제가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리의 농민조합장이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뒤로 돌리였다. 아마 뒤좌석에 장풍리 농민조합장이 앉아있는 모양이였다.

《글쎄 이 량반이 그저께밤에도 여기서 회의를 마치고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 다홍치마네 집에 들렸댔습니다.》

그러자 좌중에서는 그저께밤만 들린게 아니라 군에 와서 회의를 하고는 번번이 《다홍치마》한테 들려서 술을 먹는다고 떠들어댔다.

《옳수다. 내가 그저께밤에도 수상하게 보고 뒤를 밟았지요. 그래서 울타리밖에 잠간 숨어있다가 살금살금 걸어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문구멍을 뚫었지요.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한잔하고 닭다리를 뜯어먹으며 하는 말이 〈인젠 내가 지주야. 다홍치마가 뭐 박기동의 다홍치마인줄 알아? 인젠 내 다홍치마야.〉 하고 히히 웃으며 다홍치마와 입을 쩝 맞추지 않겠습니까.》

어둑컴컴한 방에서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그 녀자는 또 뭐라고 하는고 하니 〈지주어른, 아니 나리, 조합장나리, 우리 둘이 백년해로를 하며 삽시다레.〉 그러면서 잔을 들어 텁석부리입에 술을 쏟아넣지 않겠습니까.》

《거 그런데 당신은 무엇때문에 그 추잡스러운판에 따라가서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보았소?》

주석단에 앉은 강진건이 근엄한 낯색을 짓고있다가 한마디 물었다.

《저··· 그건···》

말하던 사람은 자기가 그만 실언을 했다고 생각되였던지 목을 움츠리며 당황해하였다. 사람들은 계속 키득거리였다.

《좌우간 하던 말이니 계속하오.》

《저 솔직히 말한다면 저도 한잔 먹을가 해서 갔다가 안에서 심상치 않은 말들이 오가기에 제딴에는 경각성을 높이느라고 창구멍을 내구···》

강진건은 어이가 없어 몸을 제끼며 껄껄 웃었다. 아무리 내세워주어도 바지저고리같은게 우리 농민이 아닌가 하는 구슬픈 생각이 또다시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언제 개명을 하고 머리가 트이겠는지 막연하게 생각되였다. 그래도 장군님께선 이들을 깨우쳐서 토지혁명을 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자못 어깨가 무거웠다.

《이렇단말입니다.》

옆에 앉은 군농민조합장이 주먹으로 앞탁을 울리며 소리쳤다. 그는 성질이 몹시 급한 사람이였다.

《농민조합장자신들이 술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유흥기분에 들떠서 군으로 오르내리고있소. 저 저 선암리농민조합장은 여기서 회의를 하고 술집에 가서 술을 짓처먹고는 그자리에 군드러져 잤는데 글쎄 바지에 오줌을 쌌소. 농민운동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모양이니까 농민투쟁이 잘 될수 있겠는가.》

《내가 한가지 좀 물읍시다. 여기 자료에 의하면 신당리농조에서는 한 농조원이 마름의 총을 빼앗았다가 돌려주었다는 사실이 적혀있는데 이게 옳소?》

강진건이 앞에 놓인 문서철을 뒤적이며 좌중에 대고 물었다.

좌중에서는 누구도 일어서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신당리 장춘하가 일어서 대답해야 했으나 그는 총소리가 나오자마자 겁을 집어먹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뭐 추궁을 하자는건 아니니까 어서 일어나 대답해보오. 어떻게 되여서 이렇게 되였는지.》

강진건은 얼굴에 느긋한 웃음을 띠우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신당리조합장, 안왔소?》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군농민조합장은 바로 코앞에 앉아있는 장춘하를 보지 못하고 뒤좌석에 눈길을 보내며 큰소리로 웨쳤다.

그렇게 되자 주석단앞에서 솜바지를 입은 장춘하가 긴얼굴을 약간 들었다놓으며 엉거주춤히 일어났다.

《응, 이 동무가 그곳 조합장이요?》

강진건이 목을 돌리며 군농민조합장에게 물었다.

《옳습니다. 장춘하라구···》

《장춘하동무, 그곳 지주가 이 고을 군수로 되겠다구 나섰던 일이 사실이요?》

《예, 해방돼서 얼마 있다가···》

《그때 동무넨 어떻게 생각했소?》

《예?》

《지주가 군수가 되면 세상이 좋아지겠는가, 나빠지겠는가 이런 생각들을 해보지 않았소?》

《그야 뭐 좋아진다구 보진 않았습지요.》

《그런데 지주가 마름놈들에게 총을 메워서 농민들을 협박하는 판국에 빼앗은 총은 왜 도루 주었을가?》

강진건은 상대가 너무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하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실은 제가, 제가 다 잘못입니다. 농조원들을 잘 교양하지 못해서···》

《아니요, 동무에게 책임을 따지자는게 아니요. 난 그저 사연을 알고싶어서 그런거요.》

《어서 대답을 올리오. 지주가 고와서 그랬다던지 한편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던지.》

군농민조합장이 볼이 부은 소리로 추궁했다.

《조합장동문 가만 있소. 곁가마가 끓어서야 내가 이야길 제대로 하겠소.》

강진건이 두툼한 손으로 군농민조합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실은 지주보다두 마름이 불쌍해서, 그리구··· 자위대청년들이 그런 실총을 손에 넣으면 사고를 칠것 같아서···》

장내에 폭소가 터져올랐다. 긴장해 앉아있던 농민들이 기분이 풀려서 목을 제끼며 웃어댔다. 주석단에서도 덩달아 웃었다.

말끝을 채 여물구지 못한 장춘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그는 사실 군농조에 올라올 때에는 조순근의 총문제같은것은 별로 생각지도 않았다. 우둔한 생각에 오히려 정기찬이를 농조에서 내보내는 문제를 좀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하자던 참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왕청같은 문제에 걸려드는바람에 더 주눅이 들었다.

《알만하오. 내가 이번에 형편을 잘 알았소. 동무들은 그래도 우리 농민들중에서 그중 개명한 사람들이라고 보고 조합장일들을 맡아보게 했겠는데 수준이 너무 낮소. 왜 마름이 불쌍하오? 왜 자위대가 실총을 가지면 안되겠소? 지주가 어떤놈들인지 나보다도 동무들이 더 잘 알것 아니요. 지주라는건 일본놈에게 붙어먹다가 이젠 왜놈대신 제가 권력을 쥐자고 벼르고있소. 신당리에서처럼 총을 내두르면서··· 그래 지주는 총을 휘둘러두 일없구 우린 총을 빼앗아서 휘두르면 안되겠소? 일본놈들이 총으루 우리 인민들을 탄압할 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바로 그 왜놈들의 총을 빼앗아서 놈들을 답새겼소. 지주도 일본놈과 같소. 총을 빼앗았으면 그 총으로 지주를 쳐야지 도루 줘, 한심한 일이요. 이래가지곤 아무것도 못하오.》

강진건은 문득 화승대를 메고 압록강을 넘다가 왜놈의 추격을 받아 동굴속에 숨어서 련사흘 나오지 못하던 일이 떠올랐다. 메고 갔던 화승대는 녹이 쓸어서 왜놈과 맞불질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그때 왜놈이 메고 다니던 38식보총만 가졌어도 그렇게 쫓겨다니지는 않는것이였다. 그런데 지주네 앞잡이가 불쌍해서 총을 도로 주다니, 그리고 애들이 사고를 칠가봐 보기 끔찍하다고 집어던져?

강진건은 몸을 제끼며 허무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