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5


 

제 5 장

5

 

조순근은 허탈감에 사로잡힌 맥없는 걸음으로 허청허청 마당에 들어섰다. 이미 조순근이네 집마당에는 조합장 장춘하와 흥묵이 와있었다.

《성님, 대복이가 매맞구 누워있다는 말이 옳시꺄?》

흥묵이 조순근의 팔소매를 붙들고 눈이 올롱해서 물었다.

《모르겠네, 모르겠어··· 어째 세상일이 그렇게 돼먹는겐지.》

순근은 세차게 머리를 내저으며 쓰러지듯 토방에 걸터앉았다.

《그 애가 과히 다치지야 않았겠지?》

장춘하가 분기로 해서 잔뜩 이그러진 순근의 표정을 살피며 다가섰다.

《대복이두 대복이지만 내 기가 막혀서··· 지금 나라의 명을 받구 이 마을에 법관이 내려왔다네. 우리 그 3.7제때문에···》

장춘하와 흥묵은 그게 웬말이냐는듯 조순근을 흡떠보았다.

《방으로 들어가세. 내 자초지종 얘길 할테니···》

조순근이 두사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퇴지에 올라서는데 별안간 웬 사람이 마당으로 뛰여들었다.

《형니임-》

커다란 퉁방울눈에 눈섭까지 류달리 짙어서 시원스러운 인상을 주는 한 장년이 경풍을 맞은 사람처럼 전신을 떨면서 마당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물방아집 정기수의 동생 정기찬이였다.

《아이구, 여기 마침 다 있군요. 야, 야단났수다. 저놈들이··· 우, 우리 형님이 자들한테 맞아서 피, 피투성이가 됐수다. 이걸 어쩌문 좋수.》

《자들이라니?》

조순근은 문고리를 잡은채 그를 마주보았다.

《그 불한당같은 흑호놈들이죠. 소작룔 제대로 안문다구 물방아간에 와서 몽땅 때려눕히구 벼가마닐 다 실어갔수다.》

《뭐 뭐 몽땅 때려눕혀?》

조순근은 벗었던 신발을 발에 꿰여 토방으로 뛰여내렸다. 아침에는 어린 대복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하더니 련달아서 이제 또 50고개를 넘어선 사람에게 매질을 했단말인가. 이것들이 도대체 사람들인가?

제 한집의 일사만 안고 모대길 계제가 아니였다. 지주의 《호신병》들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점점 더 갈개며 돌아가는지 몰랐다.

《형님, 좀 빨리 갑시다.》

정기찬은 조순근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가 앞서 걸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였다.

《낮전에 그놈들이 넷이나 달구지를 끌구 방아간에 들이닥쳤어요. 총멘놈두 있습디다. 어이구 저 저 생벼락 맞을놈들.》

놈들중에는 성배도 끼여있다고 했다. 그들은 추가소작료는 물지 않고 방아만 찧어가는가고 호통을 치며 곡식을 빼앗아내기 시작하였다. 첫마디부터 발길과 주먹행사를 들이대였다. 물방아간에서는 란투가 벌어졌다. 놈들은 정기수와 벼를 찧으러 왔던 농민 두명을 방아간 바닥에 혀가 흘러나오게 때려눕히고 쌓아놓은 벼가마니를 메내다 달구지에 처실었다.

(악한놈이군.)

정기찬의 이야기를 듣는 조순근의 눈앞에는 아침에 만났던 서만호의 징글스러운 낯짝이 떠올랐다. 그래 그 법관이란 사람은 지주놈이 이런 란동을 부추기고있는걸 알고나 있는지··· 더럽고 흉한놈, 입으로는 강도요, 비적이요 하고 제법 인륜도덕을 제 혼자 지키는척하면서도 뒤에서는 불한당놈들을 내풀어 갖은 악한짓을 다하게 만드는놈! 조순근은 이 모든것이 서만호의 작간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그는 억이 막혀 달려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방아간에 갔을 때에는 떨어져나간 문짝이 나딩굴고 뽀얀 벼겨만 흩날리고있었다. 방아채끝이 부러져서 빈물레바퀴만 밖에서 빙글거리며 돌아갔다. 연목이 닿게 쌓여있던 오륙십가마니의 벼는 한가마니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란루의 잔해들이 널린 방아간에는 참새무리만이 와-날아왔다 날아가군 하였다.

《짐승같은놈들!》

조순근은 분한 생각에 어금이를 으드득 갈았다. 과연 이것도 우리 농군들이 법을 어긴 값으로 응당 겪어야 하는 참사인가.

《여보게 순근이! 내 흥묵이와 같이 매맞구 쓰러졌다는 사람들의 집을 좀 돌아보겠는데 임잔 정기수네 집을 가봐주게.》

장춘하는 당황해서 돌아가다가 순근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고 방아간을 나섰다.

조순근이 정기수네 집으로 가자 울음굿이 터져있었다. 정기수는 눈을 감고 죽은듯이 누워있고 열네살짜리 막내아들도 온통 피투성이였다. 동리사람들이 모여들어 아이의 터진 이마에 된장을 가져다붙인다 어쩐다 하며 들볶아쳤다. 놈들이 물방아간에 나타나 행패질을 할 때 거기에 나와 놀던 정기수의 막내아들은 슬슬 기여서 말짱으로 한놈의 긴 허리를 후려갈겼다. 뜻밖의 타격을 받은 그놈은 허리를 꼬부리고 비명을 지르며 돌아갔다. 한참만에 정신을 수습한놈은 아이가 들고있는 말짱을 빼앗아서 아직 뼈도 굳지 않은 아이의 몸을 장작패듯 내려패였다. 어떻게 앙심을 먹고 개패듯 했는지 온몸이 푸름푸름 멍이 들고 터지고 해서 성한 자리가 없다.

조순근은 초상난집같이 볶아치는 방안으로 들어가 정기수와 그의 아들을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고 했다. 뼈가 어떻게 되고 힘줄이 어떻게 되였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이 집 부자가 다 잘못될것만 같았다.

《가만, 가서 의원을 데려와야겠소. 내 갔다오지.》

조순근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지게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밤길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조순근은 속이 울렁거려서 경황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서만호! 너는 정말 인두겁을 쓴 짐승이다.)

조순근은 의원을 찾아가는 길에서 몇번이고 원망에 차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의 가슴에서는 무언지 모를 반발심이 새로이 솟구쳐올랐다. 《법관》의 심문을 받고 기겁을 해서 당장 벼를 실어가려던 자신의 일이 천하 못난짓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어째서 흉악무도한 서만호놈의 죄행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던지 후회되였다.

무지막지한놈들을 풀어서 농군들을 란타하게 만드는 서만호야말로 강도의 두목이고 불한당의 왕초가 아니겠는가.

조순근은 땀을 동이로 뽑으며 20리 밤길을 한달음에 걸어 비석거리까지 갔다. 거기에 마음씨 무던한 늙은 의원이 살고있었다. 그런데 의원이 나들이를 가고 없어서 다시 동흥리쪽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박종관의 양아버지인 박병칠의원을 찾아보려는것이다.

박병칠은 집에 있었으나 조순근이 아무리 사정하며 왕진을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왕진을 거절하는 내 마음이 아프오. 허나 꾀가 나거나 인정이 모자라서 가지 않는게 아니요. 내가 거기에 가면 서만호씨와의 의가 덧날가봐 그러오.··· 어허 세상이 왜 이리 어수선한고.》

박병칠은 왕진을 못하는 대신 어혈에 특효가 있는 탕약 10첩을 지어주었다.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가 삼끈으로 꾸려주는 약첩꾸레미를 들고 조순근이 신당리에 이르렀을 때는 캄캄하던 하늘이 희붐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물방아간집 사람들은 밤새껏 부상자들을 돌보느라고 돌아치다가 그때에야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군드러져 자고있었다. 그는 정기수의 처를 깨워 약을 빨리 달이라고 이르고 환자곁에 다가앉았다. 그는 정기수와 아들애의 머리를 짚어보았다. 아직도 신열이 높았다. 정기수는 찬 손길이 와닿자 가늘게 눈을 떴다.

《형님, 약을 지어왔수다. 달여자시면 어혈도 풀리고 인차 추설수 있답니다.》

《고맙네.》

정기수는 조순근의 손을 잡고 울먹거리였다.

《임자 아버지나 우리 아버지가 어째 죽었나? 저 서만호때문이지. 그런데 저눔이 우리들까지 제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자구 드는구만··· 오늘 아침엔 대복일 그렇게 두들겼다면서?》

그러면서 정기수는 약 다섯첩을 갈라서 아들에게 가져가라고 하였다.

《일없어요. 워낙 약이란건 나눠먹으면 효력이 없답디다.》

조순근은 사양하였으나 차고 눅눅한 머슴방에 누워있는 아들에 대한 걱정도 여간이 아니였다.

동녘이 훤히 트일무렵에야 정기수네 집에서 나온 그는 휘청거리며 자기집쪽으로 향했다. 몸도 마음도 허탈상태에 들어가서 금시 쓰러질것 같았다. 그제야 그는 점심 저녁을 다 굶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두끼를 굶은채 비석거리로부터 동흥리로 해서 무려 70여리의 밤길을 급하게 달리고나니 한껏 지쳐버린것이였다. 적삼은 쥐여짤만치 화락하게 땀에 젖어있었다.

조순근은 얼마간 걸어가다가 맥이 진해서 터밭기슭의 바위통에 물러앉았다. 문득 오봉산밑 서만호네 집이 건너다보이였다. 그놈의 집은 전등불이 환하게 켜져있는데 어느새 벌써 나무를 패는 도끼질소리가 메아리쳐왔다.

(저게 대복이 패는 도끼소린가? 그 애 상처는 어떻게 됐는지.)

조순근은 귀를 도사리고 가늠해보았으나 아무리 들어도 아들의 도끼소리같지 않았다. 어쩐지 대복이가 여직 운신을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는것 같아 불안하였다. 혹시 그애가 병신이 되도록 매를 맞아서 이젠 쓸모가 없게 되니 서만호놈이 순순히 내보내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서만호는 바로 그런놈이였기때문이다.

어디선가 달구지 굴러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드니 실안개가 감도는 서만호네 집쪽에서 나온 달구지 한대가 이리로 건너오고있다. 예감이 이상하여 조순근은 달구지를 노려보았다. 빈달구지였다. 달구지우에는 짐을 싣고 비끄러맸던 북두끈사리만이 또아리를 튼 뱀처럼 놓여있다. 달구지를 몰고오는 키가 장대같은 사람은 지난밤 자기 형의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돌아치던 정기찬이였다.

(저게 신새벽에 달구지를 몰고 어델 갔다오나?)

조순근은 달구지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정기찬은 조순근이와 맞다들리자 흠칫 놀라며 당황해하였다. 그 허둥거리는 눈길이 조순근의 머리에 더욱 불길한 생각을 몰아왔다.

《지주집에 뭘 실어다주구 온게 아닌가?》

조순근의 의문에 찬 눈빛을 일별하자 정기찬은 방아공이 떨어지듯 고개를 툴렁 떨구며 잡았던 소고삐를 놓았다. 그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길게 새여나왔다. 주인은 고삐를 놓고 망연히 서있었으나 무심한 짐승은 저혼자 딩겅딩겅 빈달구지를 끌고갔다.

《형님, 저놈들이 날쳐대는 꼴이 아무래도 추가소작룔 안내곤 못견딜것 같아요. 그래서 실어다주고 와요.》

정기찬은 손에 든 싸리채를 만지작거리며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였다. 억이 막혀 말을 못하는 조순근의 두툼한 입술이 버들잎처럼 파랗게 질리였다.

제 형이 피터지게 얻어맞고 빈사의 몸이 되여 누워있는것을 보면서 말한마디 못하고 벼가마니를 실어다주고 온단말인가.

《에익, 지렁이만두 못한것!》

참을수 없는 격분에 조순근은 무명덧저고리를 입은 정기찬의 멱살을 꺾쇠처럼 움켜쥐면서 옆으로 확 내뿌리였다. 그바람에 정기찬은 기다란 두팔을 허공에서 허우적이다가 버드나무가 서있는 길옆 홈타구니에 모자로 곤두박히였다.

《제 형을 죽도록 때리게 만든놈에게 벼가마닐 섬겨줘, 엑 튀!··· 치사한것!》

조순근은 무언지 모를 혐오감과 분한 생각으로 해서 온몸의 피가 머리끝으로 거슬러오르는듯 했다. 홈타구니에 구겨박혔던 정기찬은 싸리채로 땅을 후려치며 울음을 터뜨리듯 부르짖었다.

《그래 날더러 어쩌라는거요. 추가소작룔 안내면 땅을 떼겠다는데 땅을 떼우면 래년 농살 어떻게 지어요. 농사를 못짓구 어떻게 살아요. 내 식구가 다섯인데 게다가 우리 형님이 저렇게 됐으니 형님네 식구까지 날 쳐다보게 되지 않았수. 땅 떼우면 어떻게 살겠수. 두 집 식구가 열이 넘어요. 그 새까만 눈알들이 다 날 쳐다봐요. ···그리구 저놈들이 당장 죽일 잡도리를 하는데···》

정기찬은 얼빠진 사람처럼 두서없이 설분을 터치며 부르짖었다.

조순근은 기가 막혀 멍청히 서있었다. 하기는 정기찬이 추가소작료를 달구지에 실어가게 되기까지야 얼마나 많은 심뇌를 했을가 싶었다. 그것은 조순근이자신을 놓고보아도 짐작되는 일이였다.

《기찬이, 나두 어떤 땐 그놈의 말썽많은 벼가마닐 지주집마당에 가져다 둘러메치구싶은 생각이 부쩍부쩍 일어나군했네. 그러나 그게 어떻게 생긴 벼가마닌가? 농조가 힘을 합쳐 얻어낸 3.7제지···》

《그래 순근형님, 어서 말해주.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대답을 해주.》

정기찬은 또다시 싸리채로 땅을 후려치며 넉두리를 하였다. 그의 눈은 실성한것처럼 히번덕거렸다. 그도 떳떳하지 못한 일임을 알고있었기에 어둠을 타서 추가소작료를 바쳤던것이다.

조순근은 얼어붙은듯 꼼짝않고 서서 밝아오는 하늘만 쳐다보고있었다. 머리속의 생각과 가슴속의 분노가 삼검불처럼 엉켜서 모든것이 어렴풋하고 막연할뿐이였다. 미칠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