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4


 

제 5 장

4

 

지주집 대문앞에서 그런 참경이 벌어지고있을 때 조순근은 오봉산 비탈밭에 두엄을 져나르고있었다. 옛날 콩쥐가 매던 밭처럼 척박하기 그지없는 돌밭이다. 그래도 조순근에겐 금쪽같은 땅이였다.

서만호네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안해를 데리고나와 여기저기 우거져있는 쑥무지와 분지나무그루터기들을 베고 파던져서 생전처음 제 땅이라고 일군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이 한마지기 부대밭과 소작받은 진디기논에 명줄을 매고 오늘까지 근근히 살아왔었다. 조순근은 이것이 도지밭이 아니고 자기의것이란 생각에서 정말 금덩이같이 여기며 걸쿠어왔다. 땅이라기보다 찍으면 피방울이 나올것 같은 자기 육체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조순근은 두엄을 쏟고나서 눈에 띄는 큰돌 하나를 들어일구었다. 돌밑에서 부그그하는 거품소리가 났다. 들여다보니 그밑엔 또 큰 바위돌이 깔려있다. 결국 큰 바위산우에 흙이 한꺼풀덮여서 밭이라는 명색을 띠였는지 모른다.

조순근은 큰돌을 가슴팍에 안아들고 디뚝디뚝 밭머리로 걸어갔다. 문득 조순근은 금년에 이 밭에 한절반은 참외를 놓아볼가하는 생각을 했다. 조를 심어도 개꼬리같은 이삭들이 드리우지 못하고 파리대가리같이 몽글몽글한것이 길지 않은 이삭에 몇알씩 움켜붙었다. 수수도 끝이 모지라진 몽당비자루같은 조그만 이삭이 내밀고 그것마저 지력이 모자라 겉말라죽고만다. 그래서 재를 지고 올라올 때엔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방금 돌을 주어내면서 참외를 놓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를 심자해도 돌투성이밭에서 감자알이 생길것 같지 못하고 참외는 개가 작아도 맛이 달기만 하면 좋은 물건이다. 게다가 대복이가 참외를 무척 좋아했다.

양지바른 밭머리에선 오봉산쪽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조잘조잘 소리를 내면서 흘렀다. 얼음밑에서 흐르는 물이 해가 떠오르자 바위밑으로 녹아내려갔다. 눈물같은 물방울이 누런 락엽이 깔린 바위옆으로 똑똑 떨어진다. 해동머리는 아직 아닌데 하얀 얼음이 깔린 밑으로는 옥같이 맑은 개울물이 무엇을 속삭이는지 종알거리며 흘러간다.

조순근은 개울가에서 한숨 쉬고 두엄을 지러 산밑으로 내려갔다. 그가 마을길에 들어섰을 때 동네 농군 하나가 조순근을 띠여보고 눈이 둥그래지며 걸음을 멈췄다.

《아니 성님, 지겔 지구 어델 다니시오?··· 대복이 소식을 모르는게 아니유?》

조순근은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하는 말에 어정쩡히 서있었다.

《대복이가 흑호한테 매맞아서 인사불성이 됐대유···. 그래 지금 동네가 들썩해졌는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조순근은 청천벽력이 내린듯 눈앞이 아찔해졌다. 몇시간전에 펄펄해서 집에 찾아왔던 아들이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렸다는게 웬말인가?

《흑호놈이 우리 앨 무슨 일로 때렸단 말이요?》

《글쎄 알겠어유. 도적놈의 아들새끼라면서 때렸대유. 영길이가 자위대를 데리고 뛰여갔수다.》

《뭐 도적놈의 아들?》

조순근은 기가 막혀 얼굴을 찌프리며 부르짖었다. 흑호놈의 우악스러운 곰보상통과 함께 초주검이 되여 쭉 늘어진 아들의 피투성이 된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조순근은 지게를 벗어던지고 지주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아들이 누워있다는 행랑방부터 먼저 찾아보았다. 그는 아들의 생명이 경각에 다달은줄만 알고 내처 급하게 달려왔는데 다행히도 아들은 일어나앉아 미음을 받아먹고있었다. 머리에 띠를 동이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보기조차 끔찍했으나 안도의 숨이 나갔다.

조순근은 아들에게서 이날 아침에 벌어진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나자 더는 대복이와 서분이를 지주집에 맡겨둘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호, 그놈이 아버질 강도라구 욕된 말을 하니 참을수가 없었어요.》

대복은 매맞은것보다 그 소리가 더 분하고 아픈지 주먹을 쥐고 눈물을 뿌렸다.

《오냐, 너무 그러지 말구 어서 미음이나 마셔라.··· 그런데 흑호 그놈은 어디 있느냐?》

조순근은 행랑방에 앉아있는 대복이또래의 머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괭이를 들고 달려가서 그놈의 대갈통을 까버렸으면싶었다. 그놈은 동네 자위대청년들이 때려죽이겠다고 덤비는바람에 어디로 가서 숨은것 같다는것이였다.

얼마후에야 조순근은 진이 끓는 곰방대를 털어 적삼주머니에 넣고 서만호가 있는 앞채 사랑방앞으로 갔다. 장서방이 얼른 알아보고 주인어른을 찾아뵙자고 왔느냐고 했다.

《좀 있게, 지금 조반상을 받았네. 거의 끝나가.》

머리가 허연 장서방은 등이 활등처럼 굽어서 머리를 땅에 박고 다니다싶이했다. 일생 머리 들날이 없이 살다보니 등이 더 빨리 굽은것 같다. 그는 조순근의 옆구리를 슬며시 잡아당기며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여보게, 적은이가 전번날 밤에 진고개에 나가 달구지들을 돌려보냈나?》

《예, 그런데 왜요?》

《참의가 그것때문에 성이 독같이 올랐어. 법두 은혜두 모르는 도적놈들이라구 별별 욕을 다하네. 그 일루 해서 우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내려왔네. 지금 그분들하구 같이 조반을 하구있으니 조심하게.》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내려왔다구요?》

조순근은 가슴이 섬찍하였다. 그는 흑요석같이 까맣고 반짝반짝 빛을 내는 세컬레의 고급구두가 사랑채 대청아래에 가지런히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3.7젤 하란 법이 딱히 없는데 비적들처럼 산에 숨어있다 소작료달구질 막아서 돌려보냈다구 참의어른이 법에 고소한 모양이네. 옛날에두 봉물짐 수렐 가로채는 산도적들은 릉지처참을 했다는데··· 글쎄 그게 봉물짐은 아니지만···》

장서방은 너덜너덜한 소매자락을 후들거리면서 공포에 질려 중얼거렸다.

조순근은 배은망덕을 한다느니 뭐니 하는 서만호의 말은 귀등으로도 안들렸지만 법에 없는짓을 한다는 말에는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순근은 대복이와 서분이의 일이 아니면 당장 돌아가고싶었다. 서만호와 마주서는것이 이젠 넌덜머리가 나도록 싫었다.

《거 누가 왔다구?》

사랑방안에서 인기척을 느낀 서만호의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예, 저 대복이 아버지가 뵈오러 왔소이다.》

장서방이 얼른 퇴지에 달려올라가 살창가까이에 대고 대답했다.

《순근이가? 거 오래간만이군.》

사랑문이 쩡 열리며 누런 비단마고자를 입은 서만호의 한아름되는 몸집이 나타났다. 입에 빗가시를 물고 씨물거리는 둥그런 얼굴은 허연 비게살이 쪄서 순간에 벌개지기도 하고 허옇게 되기도 하는데 조순근을 보자 유들유들한 그 비게살이 대뜸 푸르딩딩해졌다.

《올라와 앉게.》

서만호는 입에 물었던 빗가시를 뽑으며 마루를 가리켰다.

《뭐, 여기두 괜찮아요.》

조순근은 움직이지 않고 사랑방처마밑에 먹글씨로 가득 써넣은 한문글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서있기가 구차했다.

《거 그런데 이렇게 식전걸음을 한걸 보면 무슨 긴한 사정이라도 있는것 같은데 어려워 말구 어서 말하게.》

해가 중천인데 제가 이제야 조반을 먹으니 식전이라고 한다.

《우리 애들을 아주 데려가자구 왔수다. 남은 빚은 차후에 물더라도 조만식선생의 분부대로 데려가게 해주시우다.》

조순근의 목소리는 애원조의 공손한 말투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원망에 사무친 울분의 소리로 울려나왔다. 순간 서만호의 기름묻은 입술이 실그러졌다.

《음, 조만식선생의 분부대로 애들을 데려가겠다? 그러잖아 대복이때문에 마당안이 소란스러워 걱정하던 참일세. 생각해보자구. 허나 서분인 좀더 둬야겠네. 임자두 알겠지만 우리 집 사람이 저승문밖에 있으니 그 애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겠네.··· 그건 그렇구 임잔 조만식선생의 분부가 어쩌구저쩌구하는데 그분의 분부를 따른다는 사람이 그런 망동을 부리나? 내 다른 사람은 몰라두 임자가 비적행위를 했다는 말을 듣구는 깜짝 놀랐네.》

이때 사랑방에서 안경을 끼고 나비넥타이를 맨 중년의 점잖은 사나이가 기침소리를 내며 대청마루로 걸어나오는 서슬에 서만호는 말을 끊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이 조순근이라는 작인입니까?》

나비넥타이가 서만호옆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서만호는 그에게 참대의자를 놓아주고나서 조순근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분이 바로 나라의 명을 받구 평양성에서 법을 따지려 내려온분이니 묻는 말에 이실직고하게.》

서만호가 자리를 피하자 나비넥타이가 안경알을 번뜩이며 법정의 상좌에 올라앉듯이 휘친거리는 참대의자에 몸을 실었다.

《날씨도 추운데 한지에서 긴말을 할게 없이 묻는 말에만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시오.··· 예, 간단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긴말을 한다는것은 벌써 자기를 변명하려는것이기때문에 법에서는 그런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법관은 이렇게 경고하고나서 조순근이와 일문일답을 벌리였다. 그는 먼저 아무날 아무때 조순근이가 진고개에 올라가서 동흥리에서 오는 소작료달구지를 돌려보낸 일이 있는가고 물었다.

《예, 제가 거기로 올라가게 된것은···》

《아하,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간단한 대답이 필요하다고. 있는가 없는가 그것만 대답하시오.》

《예, 있습니다.》

조순근은 기가 막혀 한숨을 지었다.

《본인은 그 달구지가 추가소작료달구지라는것을 정확히 알고있었는가?》

《예, 알고있었습니다.》

《본인은 평남인민정치위원회에서 발급한 소작세칙에 지장을 찍고 군인민위원회 서무과장 박종관에게 전달한것이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본인은 그 소작세칙에 필요에 따라서는 종래의 관습대로 소작료를 지불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있는것을 알고있었는가?》

《예, 그런 조항이 있었던지 딱히는···》

《알고있었는가? 명백히 대답하시오.》

《글쎄올시다.》

《본인은 례의 그 달구지를 돌려보낼 때 그것이 위법행위라는걸 몰랐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자기 리익을 위해서 고의적인 위법행위를 하였는가?》

조순근은 얼떠름하여 선뜻 대답할수 없었다.

《알았는가? 몰랐는가?》

법관은 참대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조순근을 근엄하게 내려다보았다.

《본인이 대답을 못할 경우에는 본인에게 불리한 측면을 대답으로 인정합니다. 다시말해서 고의적인 위법행위로 보게 됩니다.》

법관은 계속해서 마름을 몽둥이로 구타한 일이 있는가, 마름에게 어떤 인신모욕적인 발언을 했는가, 진고개에서 집으로 돌아간 시간은 언제인가를 물어보고나서 가타부타 긴말을 하지 않고 목책을 휘저으며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한마디 조언도 주의도 주지 않고 표연히 사라지는 그의 랭담한 모습이 조순근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법관이 사랑방으로 들어가자 서만호가 다시 비만한 몸을 뚱기적거리며 걸어나와서 조순근에게 짐짓 한탄하듯이 말했다.

《여보게, 이게 무슨 꼴인가. 신당리작인들이 비적행위를 한다구 법정에서 나오게까지 됐으니 우선 내가 창피스러워 얼굴을 못들겠네. 이제라두 추가소작룔 바치면 법에서 무난히 넘겨주겠다니 다 바치도록 하게. 우리 서씨문중을 비롯해서 다른 마을들에선 벌써 추가소작룔 다 실어왔네. 신당리 아래마을에서만 그냥 떼먹을 작정을 하는데 그래 그걸 편안히 삭일것 같은가. 그까짓거 벼 몇가마니 적선한셈치고 나는 덮어두려고 했지만 보다싶이 법에서 가만 안있거든. 그리 알구 임자부터 처신을 잘하게. 대복인 내 생각해볼테니 가있게. 어험!》

서만호는 손을 들어 돌아가라는 시늉을 했다.

조순근은 신열이 오르다 땀을 뽑고 늘어졌을 때처럼 몸이 나른해져 사랑채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마침 흑호놈이 쓴웃음을 지으며 조순근의 옆을 뻐젓이 지나갔다. 조순근은 사랑하는 외아들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때리고 상처입힌 포악스러운놈을 눈앞에 보면서도 욕 한마디 못하고 서있는 자신의 신세가 눈물이 나도록 가련하게 생각되였다.

(법이란 무엇인가?)

조순근은 한참만에야 이렇게 자문해보며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바깥대문을 나섰다.

(3.7제때문에 비적이란 말을 들으며 법의 문초까지 받으면서 그걸 끼고있어선 뭘해! 에익, 차라리 싹 바쳐버렸으면 씨원하겠다.)

울분이 치밀어오른 조순근의 걸음은 불시에 빨라졌다. 그는 좋든나쁘든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법을 지켜야지 그걸 어기고는 사랑하는 아들을 구해낼수 없음을 새삼스레 절감하였다.

조순근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재령강 여울목으로 갔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푸른 물이 흰거품을 일구며 소용도는 물세사나운 여울이였다. 지금도 여울물은 허연 성에장들을 싣고 밀려와서 태를 치면서 울부짖는다. 여울물을 지켜보는 조순근의 눈앞에는 그전날 재판정에 나섰다가 억울한 판결을 받고 그날로 이 재령강물에 빠져죽은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아버지의 그 패배한 인생의 전철을 밟고있는것만 같아 발걸음이 여기로 옮겨졌는지 모른다.

조순근의 아버지가 바로 땅과 낟알로 하여 법의 《판결》을 받고 이 강물에 몸을 던져 저승으로 떠나간 농군이였다.

그것은 10여년전 일이였다. 그때 아버지는 조순근을 서만호네 집에 머슴으로 들여보내고 그 값으로 신당리앞에 있는 장사래밭 스물다섯고랑을 얻어부치였다. 아버지가 스물다섯고랑을 얻은 바로 그곁에 지금 물방아간집 정기수의 아버지가 소작지를 얻었다. 그 집은 스무고랑이였다. 그들은 도지밭이긴 해도 피와 땀으로 땅을 걸구며 역사질을 했다. 그러나 첫해는 큰물이 져서 두집이 다 아주 페농이 되였다. 옛날부터 가물끝은 있어도 탕수끝은 없다고 큰물진 밭에선 한해 농량은 고사하고 종곡마저 건져내기 어려웠다. 하는수없이 지주집에서 쌀을 좀 꾸어가지고 풀죽을 먹으면서 이듬해 농사를 참으로 힘겹게 지었다. 다행히도 천지신명이 굽어살폈던지 그해 농사는 대풍이 져서 빚진 쌀과 그해 소작료를 물고도 얼마간 먹을 량곡이 나왔다.

두 령감은 신명이 나서 가을한 조단을 메날라 여러 무지를 세워놓았다. 그런데 지주는 마름 두놈을 내띄워 흉년든 지난해 소작료까지 정조로(흉풍에 관계없이 매해 같은 량으로 정해진 소작료) 바치라면서 조를 실어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빚진 쌀도 리자를 기껏 높여서 더 물게 하였다.

《하느님 맙시사! 이런 법이 어데 있소. 자고로 대흉이 들면 나라에서두 구제미를 보내서 살려주는 법도가 있는건데 아주 페농이 된 지난해 소작료를 정조로 바치라니 이거야 굶어죽으라는 소리가 아니요. 너무하오, 너무해!》

조순근의 아버지와 정기수네 아버지가 사정을 들이댔다. 그러나 마름놈은 《굶어죽기는 왜 죽어, 빚문서에 올리고 쌀을 또 꾸어먹으면 되지 않는가.》 하면서 지주집에서 사냥개처럼 기르고있는 사나운 《호신병》들까지 풀어놓고 강박을 하였다.

그때 방금 서울에서 팔려온 흑호놈을 비롯한 대여섯명의 호신심부름군들이 직접 달구지를 끌고나와 조단을 지주집마당으로 실어들이였다.

조순근의 아버지는 분통이 터졌다.

《안됐네. 우리 법에다 걸자구. 눈을 시퍼렇게 뜨고 놀부같은 놈을 그냥 내버려둬!》

정기수아버지도 농군의 생가죽을 벗기려드는 지주놈을 의당법에 걸어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동의해나섰다.

두 령감은 읍거리에 있는 대서방을 찾아가서 도적놈 서만호를 재판하도록 기소장을 써서 검찰기관에 내고 변호사를 찾아가 하소연도 했다. 한 보름 지나서 지방법원출장소에서 재판이 열리고 두 령감은 재판정으로 불려갔다.

재판정이라는것이 그리 크지 않은 방인데 단장을 짚은 한창때의 허여멀끔한 서만호가 양갓을 벗어들고 들어섰다.

(이 도적놈, 어디 보자. 법이 네놈을 그냥 둘줄 아느냐.)

마음이 올곧은 두 령감은 속으로 벼르었다. 이어 시꺼먼 법의를 입은 판사가 나오고 검사, 변호사도 나왔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기가 호명을 끝내고 엄숙한 목소리로 기소장을 읽었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변호사도 검사도 두 령감을 다 불법기소죄로 몰았다. 소작계약에 없는 부당한 조건을 내대면서 소작료를 못물겠다고 하는것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소리라고 했다. 다시말해서 지주와 작인간에 흉년이 들면 도조를 면감시킨다는 법적계약을 한것이 없는 조건에서 지주에겐 아무런 죄가 없으며 오히려 소작료를 안물겠다고 앙탈을 쓰는 작인에게 죄를 묻게 된다는것이였다.

두 령감은 법이란 인덕을 지켜주는 정의로운것으로만 알았지 때로는 그렇게 악이 선을 매질하게 만들게도 하는것인줄을 몰랐다. 서만호는 재판정이라는것도 세지 않고 《이놈들, 잡아가두라!》고 살찬 고함을 질렀다.

《서만호씨, 진정하시오. 이건 신성한 법정이요. 대일본제국의 법정이요.》

판사가 종을 달랑거리며 달래였다. 이어 놈은 판결문을 읽었다.

《원고 조응도와 정치길은 피고 서만호의 전지 800평, 600평을 각각 소작하면서 흉작을 리유로 계약된 량의 소작료불납을 주장하여 상기사건을 기소하였다. 본재판은 상기소송사건을 심리하였는바 소화 5년 11월 5일 원고들과 피고의 소작계약에 의하면 자연재해시 소작료배당에 관한 사항은 명기되여있지 않음을 증인 서만필, 서만수, 서만식의 진술과 소작계약서원본에 기초하여 확인하였다. 소화 8년 10월 25일(서기 1933년 10월 25일) 본지방재판소는 민사소송법 제23조 2항, 제27조 8항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원고 조응도와 정치길의 기소를 타인에 대한 무근거한 인신침해 및 불법기소죄로 인정하고 사건을 기각하며 즉시 취소한다. 그리고 원고들은 소작료계약전량을 즉시 피고 서만호에게 반환하며 피고 서만호는 그 집행여부에 대하여 본재판기관에 보고할 의무를 지닌다. 본 사건의 재판비용은 원고들이 전액 부담한다.》

저희들끼리 짜고들어 하는짓이였지만 두 농군은 그것을 몰랐다. 판사는 방안이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내려외우고는 문서를 거두어가지고 출입문으로 나갔다. 검사, 변호사들도 뒤따랐다. 서만호는 벗어놓았던 양갓을 쓰고 두 령감을 야살궂게 쏘아보며 따라나갔다. 령감들은 주먹으로 마루바닥을 치며 한참 퍼더앉아 울다가 재판정에서 일어섰다. 세상이 새까맣게 된것 같아 서로 붙들고 밖으로 나왔다. 둘이는 돌아오다가 장사래밭에 와서 엎어졌다. 스물다섯고랑, 스무고랑의 밭이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가고 부르짖으며 땅을 두드렸다. 조그루를 뽑아쥐고 네가 네 꼭뒤에 달린 이삭이 누구의 피땀으로 달린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으흐으흐흐, 가서 술이나 먹자구.》

《가자구.》

두 령감은 눈물을 좔좔 흘리며 건너편 《서가마을》술집으로 갔다. 그들은 정신이 돌 지경으로 마주앉아서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는 통곡하며 서로 붙잡고 비틀걸음으로 동뚝길을 걸었다.

《어허이구 하늘아, 말 좀 해다우. 왜 이리 무심하냐?》

《사람사는게 이렇게 힘이 드느냐?》

두 령감은 하늘에 대고 고함을 지르며 재령강가로 올라왔다.

《법도 몰라주는구나. 우린 무슨 짐승이 돼서 낟알을 먹으문 안된다더냐. 이놈들아!-》

고함치는 소리가 신당리마을은 물론 아흔아홉간 대가까지 들썩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소냐 말이냐?》

《우리가 사람이냐 짐승이냐?》

두 령감은 목소릴 합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두 령감은 환각이 일어났다. 머리가 돈 그들의 눈에는 바로 재령강의 시퍼런 물판이 하늘이 내려던져준 땅으로 보였다. 둘이는 《땅》으로 뛰여들었다.

《으흐흐흐, 땅이 좋기는 좋구나. 하늘이 알아주는구나.》

환각속에서 땅이란 본시 이렇게 시원하고 움실움실 굽이쳐 돌아가고 한줌 움켜서 드리우면 주르르 소리가 나고 하는 물건이였다고 여겨졌다. 둘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철썩철썩 물장구를 치며 돌아갔다. 그러다가 먼저 정신이 든 정기수의 아버지가 빠져 죽는다고 소리쳤다.

《아, 이건 강물이야, 땅이 아니야, 나가자구.》

정기수의 아버지는 몸을 바로세우며 조순근의 아버지를 내끌었다.

《으흐흐, 왜 그래, 이 좋은 땅을 버리구 가.》

그는 정기수의 아버지를 허리가 끊어지게 꽉 그러안았다.

《이러지 말아, 다 죽어.》

정기수의 아버지는 물을 꼴깍꼴깍 삼키며 허우적거렸지만 상대는 그를 놔주지 않았다.

《어이구, 이젠 소에 다 온것 같은데.》

《으흐흐, 땅이 우릴 슬슬 안고 돌아가누나.》

소용돌이가 시작되자 정기수의 아버지는 두눈을 번쩍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박힌 하늘이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살아 생전에 못보던 장쾌한 모습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에 사품치는 재령강 여울목에서 두 령감의 시체를 놓고 저마끔 억측을 하였다. 재판에서 지고 살길이 막막해서 울화김에 스스로 물속에 몸을 던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화술을 기껏 마신탓에 정신모르고 강물속에 들어갔다는 축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 령감이 물속에 뛰여들어 주고받는 말을 직접들은 한 소녀의 말을 통해서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되였다.

두 령감의 시체가 걸린 그날부터 여울물소리는 더욱 소연해진듯싶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옆에 끼고 여울물은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어째서인지 여름이면 그 낭떠러지에 자주 벼락이 내렸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벼락바위터로 불리워지는 여울이였다.

바위에 부딪치며 소용도는 여울물소리가 마치 얼어붙은 강물속에서 울려나오는 아버지의 원성처럼 들리였다. 조순근은 아버지의 죽음과 자기의 오늘에는 무엇인가 일맥상통하는 인생의 실책이 있다고 생각되였다. 아버지는 소작계약서의 문구를 똑똑히 보지 않고 재판을 걸었기때문에 그런 참패를 당했고 자기는 소작세칙 문자들을 깊이 따져보지 않고 3.7제를 한 까닭에 이 지경이 된것이 아닌가.

이제는 추가소작료를 바치지 않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지주놈의 눈독이 오른 그 일곱가마니가 불행의 화근처림 생각되여 어서 빨리 지주집마당에 내던지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