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3


 

제 5 장

3

 

별무리마저 구름에 가리운 그믐밤, 하늘은 먹물을 칠한듯이 새까맣다. 오직 산과 들에 덮여있는 흰눈만이 어둠의 세계에 희미한 설광을 던져주고있었다.

서만호네 아흔아홉칸 《대궐》안에도 빈집같은 적막한 고요와 어둠이 깃들어있었다. 그러나 깊은 밤에도 이 지주집에는 류다른데가 있었다. 쥐죽은듯 고요하다가도 이따금 머슴방에서 내지르는 가위눌리는 비명소리가 짙게 뒤덮인 암흑의 정적을 흔들군하는데 그것은 마치도 어둠의 공간을 배회하는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소름을 끼치게 하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잔다.

《아아- 숨이야- 으흐흐- 아악-》

가위눌리는 소리가 머슴방의 문풍지를 흔들고있을 때 사랑채 대청아래에서 웬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얼찐하였다. 그 이상한 그림자만이 머슴방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는듯 그 방앞으로 걸어와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머슴방이 한동안 잠잠해지자 그림자는 중대문을 열고 녀인들이 거처하는 안채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살금살금 발을 저겨디디며 주방문앞으로 걸어가서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윽고 안채마당에서는 난데없이 무리로 지저귀는 참새소리가 들려왔다. 신통히도 참새무리가 마당에 내려앉아 분주히 재잘거리는듯하였으나 그것은 한밤중에 지주집을 맴도는 그 괴상한 그림자가 입으로 내는 소리였다. 주방에 대고 무슨 신호를 하는것 같았다. 잠시후에 주방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서분이가 보자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이때 마당에 쪼그리고앉아 참새소리를 내던 사람이 일어섰다. 그는 대복이였다. 그들은 마당 한끝 담장밑으로 걸어가서 오금을 꺾고 마주앉았다.

《아이, 참새소리가 언제 나는가 해서 한잠두 못잤네.》

서분이가 속삭이며 손에 들었던것을 대복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은 주방칸 식모들이 서분이에게 먹으라고 준것들을 먹지 않고 여투어두었던 음식보자기였다. 이제 대복은 그 음식보자기를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고 돌아와야 한다.

대복은 보자기를 그러안은채 서분이쪽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어둠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눈앞에는 들판의 망초꽃같이 파르스름한 처녀의 연약한 얼굴이 확연히 안겨왔다. 언제나 수심에 잠겨있는 잔잔하고 아련한 눈빛이며 부드럽게 선을 그은 고운 코날이며 종살이에 시달려 부르터있는 입술이며 사랑스럽고 불쌍한 서분이의 그 모든 모습이 그려지며 가슴을 따갑게 지져주었다.

《아이참, 왜 그렇게 벙어리처럼 가만있을가?》

서분이는 대복이의 강렬한 눈빛을 몸으로 느끼며 응석을 부리듯 속삭이였다. 그제야 대복은 서분이의 손을 덥석 그러쥐였다.

《고마와 서분이!》

서분이는 거의 본능적으로 흠칫 놀라며 집게같이 억세게 그러쥔 총각의 꽛꽛한 손에서 얼른 자기 손을 뽑고 옆으로 물러났다. 이제는 대복의 손이 허물없는 오빠의 손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함부로 잡아서는 안되는 그런 손으로 생각되는것이였다.

《서분이, 이젠 들어가봐야 하지 않어. 그 독사같은 작은 마님의 눈에 들키면 또 큰 야단을 부리겠는데···》

대복은 보자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러나 서분이는 웬일인지 쪼그리고 앉은채 일어날념을 하지 않았다. 이제 대복이와 헤여지면 무인고도에 홀로 남은듯이 외로와질 처녀였다. 대복이도 서분이의 곁을 떠나고싶지 않았다.

《서분이, 난 차라리 세상이 늘 이렇게 캄캄해있으문 좋겠다.》

《그건 왜요?》

《그러문 서분이하구 늘 이렇게 마음놓구 함께 있을수 있잖어!》

대복은 조용히 속삭이였으나 거기에 불같은 뜨거움이 있어 서분이는 저도 모르게 호헉-하고 흐느낌과도 같은 떨리는 한숨소리를 냈다.

《오빠! 우리가 언제문 정말 이 집에서 나갈수 있을가요?》

《조금만 참어! 평양에서 이름난 큰 어른이 아버지의 소청을 듣구 왕벌한테 편질 내려보냈다니까 이제 무슨 조처가 꼭 있을게야.》

《야- 우리도 마음놓구 세상을 다니게 되는 그런 날이 있을가?》

《서분이! 자위대장을 하는 영길형님이 그러는데 이제 지주놈들의 땅을 뺏아서 농군들에게 뭉청뭉청 나눠준대··· 그렇게 되문 우리두 기름진 옥답옆에 기와집을 짓구 량친부몰 공양하면서 제 농사를 기껏 지을수 있을거야···》

대복은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에 취한듯이 말하였다.

《나는 밭을 갈구. 서분이는 씨를 뿌리구··· 얼마나 좋아··· 서분이, 언젠가 우리 아버진 이제 우리가 땅을 받구 제 농사를 하게 되면 서분일 며느리로 들이겠다나···》

《아이, 망칙해···》

서분이는 부끄러워 급기야 대복의 말을 막으며 돌아앉았다. 그러나 대복은 계속하였다.

《서분이!··· 서분이 아버지, 어머니도 날 사위로 맞으면 좋아하실가? 그러다 퇴방을 맞으면···》

《오빠!》

서분이가 갑자기 울먹이는 소리로 부르짖는바람에 대복은 말을 중둥무이하였다.

《오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우리 아버지, 어머닌···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예요. 살아있으문 왜 아직 안오겠어.》

서분이는 흐느낌때문에 토막토막 힘겹게 말을 잇다가 끝내 더 크게 설음을 터뜨리였다.

《서분이, 왜 그런 생각을 해. 서분이 아버지, 어머닌 꼭 돌아와!》

서분이는 잠시후에 흐느낌을 진정하고 조용히 일어나서 품속을 더듬더니 무슨 거밋한 물건을 대복에게 내밀었다.

《이걸 가져.》

《뭔데?》

대복은 서분이 내미는 물건을 받아쥐였다. 그것은 뜻밖에도 담배쌈지였다.

서분이는 대복이의 눈길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 서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밤도망을 하던 날 떨어지지 않겠다고 조르는 어린 서분이를 얼리느라고 쥐여주었던 물건이다. 이제는 영영 돌아올수 없는 아버지의 유물로 된 담배쌈지라고 생각하고 대복에게 넘겨주는 서분이의 가슴속은 무어라 이름할수 없는 눈물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 사연을 모르는 대복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건 왜 그래?》

대복은 어둠속에서 담배쌈지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였다.

《그건··· 우리 아버지···담배쌈지···》

처녀는 또다시 말꼬리를 잇대지 못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흐느끼였다.

순간 대복은 무엇인가 단단한 물건에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담배쌈지를 꽉 움켜쥐였다. 대복은 그제야 서분이에게 아버지의 담배쌈지가 있었던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워낙 그것은 대복이 아버지가 간수해두었다가 서분이 철이 들무렵에 아버지를 보듯이 가지고있으라고 돌려준것이였다.

(서분이가 그런 귀한걸 나에게 준단 말인가?)

대복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분이! 서분이의 마음을 품에 안듯이 내 평생 이 담배쌈질 고이 간직하겠어!》

《오빠-》

서분이는 쓰러지듯 담벽에 몸을 기울이였다. 대복은 그러는 처녀를 힘껏 껴안아주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얼마후 대복이가 수수짚 삽짝을 열고 집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먼저 들려온것은 어머니의 신음소리였다. 지게문을 열고 들어서자 궤짝옆에 몸을 기대고 신음하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희미한 등불에 비치였다. 아버지는 부뚜막에 쪼그리고앉아 약탕관을 끓이고있었다.

《어머니! 왜 이래요? 또 속이 치밀어요?》

대복은 보자기를 아래목에 내려놓고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았다.

《대복이냐?》

어머니는 간신히 이렇게 중얼거리고 이를 악물며 궤짝고리를 쥐여비틀었다.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이마에 드리운 산발한 머리카락이 땀에 푹 젖어있었다.

《어머니, 내가 가슴을 문대드릴가요?》

대복은 그전날 어머니가 속앓이를 하며 진통을 겪을 때면 아버지가 붙안고 앉아 가슴팍을 문대주는걸 보아온터여서 어머니를 붙안았다.

《얘야, 이 일없다.》

어머니는 대복의 손을 끌어내리며 쥐여비틀었던 궤짝고리를 놓았다.

얼마후 아버지가 약탕관을 들고들어와서 놋종발에 약물을 찌워놓고 어서 마시라고 어머니를 재촉하였다.

《아유, 쓰거워서···》

《쓰니까 약이지··· 애들처럼 약을 먹을 때마다 그리 성화요.》

아버지의 지청구를 받고 어머니는 눈을 지리감은채 놋종발의 약물을 단숨에 다 들이키였다. 그러자 조순근은 불돌을 안해의 가슴에 안겨주고 대복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넌 어떻게 이 밤에 왔느냐?》

《서분이가 음식을 좀 보내서 가져왔어요.》

대복의 말을 듣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시에 아래목에 놓인 보자기에 눈길을 돌렸다. 조순근은 슬그머니 웃목으로 비켜앉고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보자기를 끌어당겼다. 그 별치 않은 음식보자기는 늘 어머니의 가슴을 허비였다.

《너희들의 효성이 고맙구나. 서분이보구 이젠 그러지 말라구 해라.》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쓸어만지고 어깨와 팔을 애무하다가 갈퀴같이 험해진 아들의 손을 꼭 쥐고 가슴에 끌어안았다. 끓어오르는 모성애로 하여 어머니의 몸에서는 경련이 일어나는것 같았다.

《대복아, 네 손이 말이 아니로구나. 터지구··· 긁히구···》

《어머니!》

대복은 어머니의 이마에 맺힌 진땀을 손바닥으로 닦아드렸다.

《어머닌 저희들 근심에 자꾸 앓으시는데 그러지 말래두요. 걱정하지 말아요.》

《오냐, 너를 보니 치미던 가슴이 쑥 내려가는것 같다.》

대복은 잠시후에 보자기를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음식을 덥혀드리고 돌아갈 생각이였다.

그러느라 그는 날이 푸름푸름 밝아올 무렵에야 지주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일이 안되느라 지주집 대문앞에서 《흑호》라는 별호를 가진 서만호의 《호신병》과 맞다들렸다. 서만호는 검은 범이라는 뜻으로 《흑호》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는데 그자는 과연 호랑이처럼 포악하고 사나운 인간이였다. 우람한 몸집에 마마자국이 험하게 난 그는 원래 싸움군으로 서울음식점들에 팔려다니다가 10여년전부터 아흔아홉간 서만호네 집을 지키는 《호신병》이 되였었다. 서만호가 서울을 드나들던 한창시절에 승냥이처럼 사나운 그의 기질이 마음에 들어 돈으로 낚았던것이다.

《야, 넌 새벽부터 어딜 갔다와?》

흑호는 대복을 보자 대뜸 곰보상을 이그러뜨리며 으르렁거리였다.

《어머니 앓는다는 기별이 와서 갔댔어요.》

대복은 한순간 당황해서 머밋거리다가 공손히 대답하였다.

《누가 가라구 했어? 누구한테 허락을 받았어? 그 보자긴 뭐야? ··· 음 요놈의 새끼. 그러구보니 주인집 물건을 살금살금 집에다 날라가는 모양이구나.》

흑호는 대복의 손에 들려있는 베보자기를 보며 트집을 걸기 시작했다.

《서분이가 제 먹을걸 안먹구 남겨둔걸 앓는 어머니한테 드리고 왔는데 뭘 그래요.》

대복은 순진하게 있은 사실을 그대로 말했으나 흑호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거짓말 말어. 요 도적놈의 새끼! 애비 아들이 그저 똑같구나. 요 도적놈의 종자!》

흑호는 가뜩이나 손이 근질거려 몸살이 나던 차에 두말없이 대복의 뺨을 후려쳤다. 대복은 첫탕에 코를 주어맞고 피를 쏟으며 꼬꾸라졌다.

《아니 왜 때려요! ··· 왜 날 도적놈의 새끼라고 그래요.》

대복이도 그만 악이 치받쳐 돌멩이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곰보는 한때 서울에서 하던 싸움솜씨라도 보이듯 씽 날아와서 머리로 대복을 치받았다.

대복은 악소리를 치며 뒤로 넉장거리를 하였다. 흑호는 넘어진 애를 다시 들어일궈선 주먹질을 했다.

《요놈의 새끼, 네 애비가 도적놈이 되더니 네놈의 새끼두 심사가 바르지 않구나!》

《왜 이래요? 아버지가 왜 도적놈이예요.》

대복은 흑호의 손에 멱살을 잡혔으나 필사적으로 몸을 뒤채이며 마주 주먹을 내둘렀다. 로동속에 단련된 젊은 머슴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주먹이 흑호의 이마빡을 한대 갈겼다. 그러자 흑호의 야성적인 광기가 터지였다. 그자는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모두발질을 하여 대복의 면상을 걷어차고 련이어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놈은 어떻게나 날래고 힘이 센지 대복은 잠간새에 피칠갑이 되여 아주 쓰러졌다. 그래도 흑호는 성차지 않아서 땅바닥에 늘어진 대복을 구두발로 짓밟고 내차며 미친듯이 란타를 하였다.

《요놈! 도적놈의 새끼, 버릇을 좀 떼라! 네 애비는 강도다, 강도! 쌀도적놈! 비적이야!》

그놈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대문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듣고 마름과 행랑머슴들이 우르르 쓸어나오는것을 보고야 그놈은 발길질을 그만하고 돌아섰다.

대복이 쓰러진 땅바닥에는 선혈이 랑자하였다.

서만호의 요강을 가시려 늪에 나왔던 장서방이 진저리를 떨면서 인사불성이 된 대복을 업어들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