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2


 

제 5 장

2

 

이튿날 강진건은 검정두루마기자락을 펄럭이며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로 향했다. 그는 《소작에 관한 규정세칙》을 내려보내여 농촌사업에 혼란을 조성하고있는 조만식을 만나 단단히 항의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성미가 불같은 강진건은 한놈의 지주때문에 강씨일가들을 산설고 물설은 이국의 심산벽지로 끌고가서 갖은 풍파를 겪어야 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지주라는 말만 들어도 눈에서 불이 일었다. 비록 합방직후의 먼 옛날의 일이였지만 골수에 사무쳐 여적 잊혀지지 않는 원한이였다. 그런데 조만식이 《인민》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지주를 도와주고있으니 참을수가 없는것이다. 그러지 않아 강진건은 민주당의 일부 상층사람들이 남조선의 미군정청정치고문 엘리오트라는자와 련계가 있다는 심상치 않은 말을 들은 때부터 조만식을 한번 만나서 단단히 캐고들려던참이였다.

강진건이 평남인민정치위원회에 찾아갔을 때 마침 조만식은 테가 동골동골한 은테안경을 끼고앉아 무슨 서류인가를 보고있었다. 몸이 체소하고 얼굴이 담숭담숭 얽은 그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였다. 천대받는 조선농사군들의 체모를 따른다고 해방후에는 말총모자대신 늘 머리에 평안도 로친들같이 광목수건을 올려놓고있는것이다.

《아니 독립군령감이 어떻게?》

조만식이 놀란 눈으로 들어서는 강진건을 마주보았다. 일어선 그의 키는 강진건의 어깨에 오나마나했다. 강진건은 조만식을 대하자 속에서 풀떡풀떡 된풀무질이 시작되였지만 그래도 상대가 정당의 당수이고 또 자기쪽도 농맹위원장이니만큼 자중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다가 둘은 다같이 60고개를 넘은 동년배의 령감들이였으므로 아이들처럼 마구잡이를 할수도 없었다. 하긴 조만식의 내심은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동년배의 정객이라는 의미에서 그전부터 강진건에게 류달리 무랍없이 굴며 각근히 대해주었다.

《무슨 일로 이 초라한 도청에까지 행차하셨소?》

조만식은 강진건이 자리에 앉자 자기를 찾아온 곰같은 상대가 심상치 않게 생각되는지 먼저 말을 걸었다. 강진건은 꼬리가 쳐들린 짙은 눈섭을 까딱 움직이지 않고 조만식을 지켜보다가 마뜩지 않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도지사를 잡아가자고 왔소.》

《화승대두 없이?》

조만식이쪽에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화승대? 화승대가 있어야만 잡아가는줄 아오. 당신같은 사람은 맨손으로라도 오라를 지울수 있소.》

《허허허, 자네가 맨손으로 날 오라를 지워?》

강진건은 책상을 탕 치며 조위원장은 위원회에서 내려보낸 소작에 관한 규정이 아직도 농가마을들에 떠돌고있는것을 알고있는가고 하였다.

《알고있지. 그런데 휘뚜루 떠돌아다니는 종이장을 조만식인들 어떻게 다 걷어내겠소.》

조만식은 옛날에 엄한 어명이 내려도 민간에선 암암리에 어명을 어기는 비행들이 벌어졌으니 정치로는 막을수 없는것이 민심이라고 했다. 강진건은 마치도 조만식이 민심을 반영하여 소작세칙을 발급한듯이 둘러치는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조위원장! 왜 그렇게 야지랑을 부리며 건국로선을 줴비트는거요? 그래 한글자 안틀리게 농민보다 지주의 편에 유리하게 만든 그 규정이 민심을 반영한거요? 그래서 신소편지가 그렇게 뻗닿게 날아들어오우? 늘 야죽거릴텐가 말이요.》

강진건은 눈섭을 푸들거리며 주먹으로 탁상을 탕탕 두드리였다. 그러나 조만식은 오히려 야릇한 미소를 띠고 앉아서 흥분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덩저리 큰 독립군로인을 지켜보았다. 사실 그는 지금 강진건이와 같은 촌바우독립군따위는 정치론쟁을 할만 한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고 동격으로 대해주고있는것이였다.

《독립군령감! 옳소. 나는 민심을 반영해서 세칙을 만들었소. 그러길래 농민들이 제꺽 받아물었거든. 되려 지주가 악용했을뿐이지.》

《어째 악용하게 만들었는가 그말이요. 그게 벌써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란말요!》

《허어- 이 령감이 서루 물고뜯기내기를 하던 그 독립군들의 못된 버릇이 또 나온다. 허허··· 여보 령감, 이런 정치야 나도 처음인데 어찌 그만한 실책도 없겠소. 귀신이 아닌 이상 첫걸음부터 완벽한 정치를 할수 있겠는가? 최남선이 력사책을 집필할 때 조선민족기질의 우단점을 론하면서 세사람만 모이면 옥신각신이 벌어지고 꼬집어뜯기내기를 한다더니 그 말이 옳은것 같아. 너무 그러지 마우. 참 정사를 보기가 힘이 들구만···》

강진건은 벌써 말문이 막혀 덤덤해졌다.

《여보 독립군령감, 흥분하지 말구 우리 차나 마시면서 이야길 해보자구. 해방이 되였는데 임자같이 감옥살이를 오래 한 사람이 이렇게 건국사업에 나서 뛰는걸 보면 나도 같은 지인으로서 감동이 크오.》

조만식은 차잔 한개를 강진건이앞으로 내밀어주며 김이 물물 나는 홍차를 부었다. 강진건은 자기가 처음부터 너무 멋없이 큰소리를 치고 몸달아한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 말이나 망탕 줴치는게 정치가 아니야. 응, 정치는 공평한게 기본인데 우리가 다같이 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어느 한편만 잘살게 하고 이여의 세력은 빈궁에 몰아넣는다면 그게 어떻게 민주정치가 되겠나. 난 온 민족이 화목할걸 바라오. 이 고통받는 민족을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애써왔소. 왜적이 망한 이 밝은 세상에서 백성들이 만민평등으로 복락을 누리며 화목해지는걸 보자고··· 이젠 천년불모지에 새싹이 움트는 좋은 세월이 왔기에 우리 이렇게 인생석양기에도 다같이 국사에 헌신하지 않는가. 그런데 서로 도와주지는 않구 반목질시해서야 되겠소?!》

조만식의 눈에는 이슬이 고이였다. 순간 강진건은 이 령감이 정말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결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대꾸를 하였다.

《조위원장은 늘 만민평등의 복락을 주장하지만 지주하구 농군이야 어찌 한덩어리가 되겠소. 수화상극인데··· 그건 이번 소작세칙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봐두 알수 있잖소.》

《어, 이젠 임자가 공산당이 다 되였군 그래. 엉, 허허허··· 어서 식기전에 차를 들라구. 중국홍차야. 이건 백범이 인편에 들여보낸거네. 그 바지저고리같은 림정이 지나에서 귀국하면서 보내는 선물이라나. 그 사람들의 목적이 여기 평남도에 앞으로 자기 당 파견원을 두겠다는거야. 그래 내가 홍차 한상자와 파견원을 주재시키는 문제를 같은 금새로 칠수 없지 않느냐구 덧걸이를 했지. 우리 당대표두 서울에 주재시키겠다구 한수 더 떴네. 그런 차인줄 알고 한모금 들어보라구.》

조만식은 손목을 까딱거리며 어서 들라는 시늉을 했다. 강진건은 차잔을 밀어내였다.

《난 이런건 입에 안대오. 독한 배갈을 마시면 마셨지.》

《하하하, 압록강을 넘나들던 호랑이독립군이 다르긴 다르구만.》

조만식은 이렇게 웃고나서 상우에 놓인 강진건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이사람, 우리 민족은 하나같이 불쌍한 민족이야. 이 불쌍한 민족이 해방된 오늘 또 작인이 지주를 치고 공인이 업주를 치는 류혈전을 벌려야 옳겠나. 내 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가난한 나라이고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나라지. 국운을 개척하려면 온 국민이 고난을 무릅쓰고 뭉쳐야 해. 소의를 희생하고 대의를 살리는게 군자의 도리야.》

조만식은 살을 베여줄것 같이 강진건의 두툼한 손등을 쓸어만지였다. 강진건은 손을 뽑았다.

《군자의 도리? 왜놈한테 붙어서 조선민족을 못살게 굴던 지주놈들편을 드는게 군자의 도리란말요? 그런 소리는 장군님 정치와는 맞지 않거니와 난 워낙 지주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오. 지주놈때문에 내 얼마나 피눈물 뿌렸다구···》

《하아 이러지 마우, 나도 장군님의 정치를 지지해서 늙마에 이런 자리를 지키고있소. 자넨 마치 우리 당이 3.7제나 토지개혁을 반대하고있나 해서 그러는데 이걸 보라구.》

조만식은 책상 빼람에서 종이장을 꺼내들고 강진건의 어깨를 쳤다.

《이게 우리 민주당정책강령이야. 들어보겠나. 량원제의 실시와 3권분립의 엄수, 방어본위의 국방확충,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의 자유, 근로대중의 생활확보, 농민본위의 토지개혁 조속단행 이렇네, 그래 못믿겠어, 민족이 대동단결하지 못하면 우리가 한생을 독립성전에 바친 보람이 없지.》

《글쎄, 3.7제도 못하겠다구 행악을 하는 지주와 어떻게 대동단결을 하는가말이요? 누가 지주를 잡아가두기라도 한다우? 남만큼 땅받아가지고 농사지어먹고 살라고 하는데 저 앙탈이요. 지주와 작인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소. 지주라는 씨종잘 없애버려야 세상이 공평해진단말이요.》

강진건은 다시금 울기가 뻗쳐 주먹으로 탁상을 두드리였다. 그의 눈앞에선 강씨일가를 망쳐버린 리원땅 고향마을 지주놈의 상통이 오락가락하였다.

《임자 그러지 마우. 그건 계급투쟁론이요. 난 민족이 화목할걸 바라는 사람이지 그런 계급투쟁동란에 빠지는건 찬성할수 없소. 하늘의 리치는 사물의 근본되는것을 맨 아래층에 두는 법이요. 모든 산업과 국가의 근본이 되는 농업을 경영하는 농민이 사회의 맨 아래층에 묻혀서 땀을 흘리고 근고를 바쳐서 만민을 먹이고 입히고 떠받들어주는것은 당연한 일이요. 새 나라의 농민은 이 정신속에서 동포와 나라를 위하여 큰 나를 위해 작은 나를 내던지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거요. 우리는 이런 취지에서 세칙을 만들었댔소.》

순박한 강진건이 얼핏 듣기에는 조만식이 엮어나가는 말이 그럴상싶기도 하고 또 무슨 뜻이 있는 소리같기도 했다. 강진건은 응당한 리치를 가지고도 조만식을 눌러놓을만 한 구변이 자기에게 없는것을 속으로 한탄하였다.

《아래층이고 웃층이고 그런건 난 모르겠소. 하여튼 지주의 착취를 허용해주고있는 그 세칙은 당장 취소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농민동맹에서 소송을 걸어서라도 도위원장을 정말 잡아가겠소.》

강진건은 앉아있을수록 말수가 모자랄것 같아 으름장을 놓으며 일어섰다. 조만식은 빙그레 웃으며 정문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었다.

《위원장, 너무 그렇게 심뇌하지 마우. 내가 잘 아는 황해도 재령벌의 한 지주는 우리 민주당 결당에 쓰라고 자금을 만원이나 보내왔소. 우리가 그에게 민주당에 들라는 권고를 했지만 안들겠다누만. 그는 민주당만이 아니라 건국하는 모든 단체들을 성원한다는것이요. 그래서 그곳 작인들이 그를 군수로 추대하자고 떠들기까지 했소. 우리가 이런 애국지주를 옹호하지 않을수 있겠소.》

조만식은 이러며 강진건의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얹었다.

《애국지주를 다치자는 사람은 애당초 없소.》

강진건은 쓰거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속이 요글요글해서 풀려내려가지 않았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조만식을 점잖게 대해준것이 후회되였다. 그는 뼈가 굵고 잔등이 구부정한 몸집을 의자에 놓고앉아 두주먹을 쥐였다폈다 했다. 조만식의 능글맞은 구변에 눌리여 자기가 지고 돌아온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조만식에게 미군정고문 엘리오트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따져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강진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방안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장군님을 찾아갔다.

마침 장군님께서 방에 계시였다. 강진건이 들어서자 잘 왔다고 마주 나오며 반기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강선생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였습니다.》

《무슨 일때문입니까?》

강진건이 장군님의 얼굴을 마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게 아니고 오늘 선생님이 조만식위원장을 만나셨더군요.》

《예, 그놈을 만났습니다.》

《방금 그한테서 저에게 전화가 왔댔습니다. 강선생이 찾아와 주먹을 메고 달려드는바람에 땀을 뺐다면서···》

《그놈이?!···》

강진건이 억이 막혀 더 말을 못했다. 더럽게도 교활한놈이다. 언제 벌써 장군님께 자기가 왔다간 일을 송사할 생각을 다 했는가.

《너무 흥분할건 없습니다. 조만식위원장도 그 세칙을 말끔히 걷어내도록 힘써보겠다고 했습니다.》

《장군님, 그놈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와 한배속이 아닙니다. 저놈에겐 제 속꿍꿍이가 따로 있는것 같습니다. 저놈을 몰아내지 않고는 안됩니다.》

강진건은 주먹을 우들우들 떨며 자기가 찾아갔을 때 조만식이 하던 말을 옮겼다.

《잘 알겠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데 왜 건드리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채 추연히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그러나 조만식을 믿다가 화를 입으면···》

강진건은 그것이 두려웠다.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였다.

《강선생님, 그에게도 넉넉히 기회를 줍시다. 자신의 어지러운 죄과를 고치고 우리 인민과 한 대오에 서서 나간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군님!》

강진건은 그이의 넓은 도량과 뜨거운 인간애에 눈물이 솟구쳤다. 장군님의 그러한 사랑이 있기에 옥중고초로 이미 페인이 되였던 자기도 이렇게 해빛을 보며 나라일에 떳떳이 나서고있는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