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5장 1


 

제 5 장

1

 

해빛이 잘 스며드는 장군님의 집무실은 언제나 밝고 정결했지만 너무도 검소하였다. 량수책상과 기다란 탁상 그리고 옆벽에 잇대여놓은 몇개의 키낮은 서류함뿐이지 그밖에 별로 눈에 띄는것이 없었다.

1946년 새해, 농민동맹이 갓 조직된 어느날 저녁 넓지 않은 이 검소한 방에 숱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손님용 의자들에 주런이 자리들을 잡고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 앉으신 량수책상앞으로 길게 놓인 탁상을 사이두고 바른편에는 김책, 농림국장, 보안국 부국장이, 왼편에는 안길, 오기섭이와 최근에 농민동맹위원장으로 선거받은 강진건과 교육선전부문에서 일하는 송신일목사들이 차례로 앉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 생각에 골몰하느라 서로 이야기도 없이 입을 무겁게 다물고있었다. 벌써 며칠전에 이날 저녁 장군님의 집무실에서 농촌문제에 대한 토의를 한다는 통지를 받고 이렇게 모여들 왔지만 누구든 장군님앞에서 우리 나라 농촌혁명에 대한 당당한 일가견을 피력할만 한 자신이 없기때문에 은근히 마음들이 무거워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우선우선한 표정과 패기에 넘치는 모습으로 방금 들어와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일일이 사람들을 짚어가며 건강이 어떤가, 생활에서 애로되는것이 없는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나서 문제토의에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두툼한 노트들을 뒤적이다가 높이 쌓인 서류더미에서 문건들을 뽑아 활기있게 번져보고 말씀하시였다.

《자, 그럼 토론해봅시다. 이미 알려드린바와 같이 우리는 오늘 여기서 토지개혁에 대한 문제, 다시말해서 토지개혁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하는데서 견해의 일치를 봐야겠습니다. 농민들의 세기적인 숙원을 풀어주는 이 력사적인 개혁을 놓고 우리는 이미 여러번 론의했고 또 지금까지 모두가 심사숙고해왔으니만큼 이제는 호상합의에 도달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소탈하게 웃으며 방안사람들의 심중을 읽는듯 한사람한사람 둘러보시였다. 모두가 심각하고 긴장한 몸가짐을 한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팽팽하게 헤워진 방안의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담배들을 피우라고 권하시였다. 오기섭이 장군님의 그 말씀이 있기 바쁘게 잠바주머니에 손이 들어갔다. 이윽고 길이가 한뽐만 한 검은 에나멜이 번쩍이는 마드로스파이프가 그의 손가락짬에 걸려나왔다. 그는 미간을 쪼프린채 잉크단지같은 대통안에 열심이 가치담배를 까넣고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지그시 감은채 뻐끔뻐끔 파이프를 빨면서 뭉치연기를 내뿜는데 대체로 그는 중요하고 심각한 사색을 할 때면 그렇게 무거운 표정을 짓는것이다.

방안의 다른 사람들도 의자를 드티여 고쳐앉기도 하고 옆을 돌아보며 이야기도 하면서 굳어졌던 긴장한 자세들을 허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팽팽히 헤워졌던 방안의 공기는 마치 사람들이 피워올리는 담배연기에 밀려나가는듯 했다.

장군님께서는 몇명의 애연가들이 담배 한가치씩을 태울 때까지 여유있게 기다리였다가 농림국장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자, 한대씩 피웠으니 시작해봅시다. 국장동무가 먼저 이야길 할수 있지 않겠소?》

농림국장은 기다리고나 있은듯이 선뜻 탁상을 짚고 일어섰다.

《아니, 앉아서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모두가 기탄없이 의견을 터놓도록 시종 격식을 없애려고 하시였다. 농림국장은 자리에 도로앉아 두툼한 수첩장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눈은 수첩에 가있지 않았다.

《전 식량문제를 다루는 사람이다보니 국가적인 식량사정에 대하여 외면할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습니다. 작년 북반부의 알곡 총수확고를 장악해본데 의하면 110만석으로서 수요량에 비해 수십만석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더우기 지금 북남간의 경제적련계가 두절되여가는 형편에서 량곡확보는 어렵게 되고있습니다. 때문에 농업생산을 안정시키는 문제는 시급한 문제로 제기됩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당장 토지개혁을 시작하면··· 물론 그래야 옳겠지만 만일의 경우 일단 시작된 개혁이 혼란에 빠지고 제때에 맺음을 못하면 농업생산의 후과에 대하여 마음을 놓을수 없게 됩니다.》

《그걸 말해보시오. 농업생산에 후과가 없게 하자면 토지개혁을 언제 실시해야 될것 같소?》

장군님께서 국장의 표정을 주의깊게 바라보시였다.

《글쎄, 그걸 가늠할수 없는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저는 다만 여기서 동지들이 이 농림국장의 처지를 좀 봐주면서, 다시말해서 농업생산문제를 깊이 고려하시면서 토지개혁의 시기문제를 선택해줄것을 하소할뿐입니다.》

《그러니 동문 의견을 내놓자고 한게 아니라 사정을 하려고 일어섰댔구만. 허허···》

장군님께서 크게 소리내여 웃으시여 좌중에도 웃음이 터지였다. 그러나 오기섭이만은 눈섭을 치켜들고 건너편에 앉아있는 농림국장을 지켜보다가 마드로스파이프로 가볍게 탁상을 두드리였다.

《국장동무, 이거 도중에 안됐소만 문제를 정치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소? 토지문제란 식량문제이기전에 계급해방문제이지요. 혁명에서 로동계급이 독창이 아니라 농민과 합창을 해야겠기에 농민문제 즉 토지문제가 제기된다고 보는데요. 국장동무의 의견대로 한다면 결국 토지혁명문제가 식량문제의 포로로 되고맙니다. 좀 가슴아픈 말이겠지만 국장동무의 의견에는 소부르죠아적인 나약성과 함께 형이상학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집니다.》

오기섭은 파이프를 잠바주머니에 쑤셔넣더니 대신 탁상우에 오동통한 손을 올려놓고 다드락 다드락 손가락장단을 먹이였다. 농림국장은 그 손가락 다드락거리는 모양을 슬밉게 마주보다가 아주 조용히, 그러나 내심에 강한 반발이 깔린 또렷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오기섭동무, 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농민이자 곧 쌀인데 토지개혁문제에서 식량문제를 론하는게 왜 형이상학적고찰로 되며 비계급적인것으로 되는가? 그래 프로레타리아트가 농민들을 계속 굶기는 혁명을 하면 로농동맹이 이루어질것 같습니까? 오동무의 말대로 농민이 합창을 하자면 할것 같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또박또박 번지는 농림국장의 말을 심중히 들으시였다. 일제시기부터 농민문제에 대하여 많이 연구하고 좌익적인 론문도 발표한바가 있는 농림국장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였다. 무슨 모임을 할 때마다 웬일인지 오기섭이와 농림국장은 늘 상극이 되여 다투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오기섭은 언제나 고전리론들을 인용하며 국장을 누르려 했고 국장은 구체적인 생동한 현실을 놓고 재치있게 반박하였다. 오기섭은 방금 프로레타리아트가 농민과 《합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맑스의 말을 외운것이였다.

《토지문제는 곧 식량문제와 직결되여있다는 농림국장동무의 말에 나도 동의합니다. 토지혁명과 식량문제를 련관속에서 보지 않고 서로 별개의것으로 취급한다면 그게 바로 형이상학적인 고찰이 아니겠소. 안그렇소? 오기섭동무.》

장군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예, 저두 그렇게는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러나 토지개혁문제가 뜻밖에 식량문제로 번져지는것 같아 그랬습니다.》

오기섭은 애써 웃음을 띠으며 농림국장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였다. 자기의 의도를 리해하여달라는 뜻이였다. 장군님께서 오기섭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씀하시였다.

《그렇습니다. 토지개혁문제는 비단 식량문제뿐아니라 이여의 주객관적현실과 밀접히 결부시켜 토론되여야 합니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식량문제가 대단히 곤난합니다. 작년 알곡수확고를 가지고는 인민들을 먹여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들어오고있습니다. 국장동무, 그 수자가 얼마나 되던가요?》

《50만명계선으로 접근하고있습니다. 작년 10월에 압록강을 건너온 귀국동포들이 매일 2천명이였고 한달동안에 6만명 수준이였습니다.》

《이렇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농촌으로 들어갑니다. 농사를 희망하고있지요. 이들은 다 제 나라 제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살수가 없어서 떠나갔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돌아와서 당장 뭘 먹고 지내겠습니까? 오자마자 빈 쌀자루를 쥐고 다시 지주집대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끊으시였다가 국장을 돌아보며 계속하시였다.

《문제를 그렇게 놓고 한번 생각해보시오. 과연 토지개혁을 늦잡을수 있겠는가? 식량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방안에는 다시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바깥창가에 참새무리들이 날아와앉아 부리로 창턱과 유리문을 쫏고있었다. 마치 그것은 신통히도 문밖에서 똑똑 손기척을 하는 소리처럼 들리였다. 날새들도 늘 밤늦도록 불이 켜있는 이 창문이 신기스러운지 밤이 되면 유난스레 찾아드는것이였다.

농림국장은 조그마한 쌀도적놈들인 참새무리들을 지켜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50만명에 이르는 귀국민들을 위해서도 토지개혁이 절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년 봄씨붙임전으로 토지개혁을 해야만 그들에게도 땅을 나눠줄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토지개혁이 속결되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간 식량생산에 막대한 후과를 초래할것 같아서 걱정하는것입니다.》

《결국 국장동무는 토지개혁을 속결할수 있겠는가 하는것때문에 고민하고있구만.》

《털어놓고 말해서 그렇습니다.》

김일성동지, 제가 좀 의견을 제기하겠습니다.》

문득 오기섭이 손을 들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고조된 음성으로 말을 뗐다.

《모든 혁명에서 시기선택문제는 운명적인 문제입니다.》

오기섭은 이마에 드리운 머리칼을 고개짓해 넘기며 무엇때문인지 김책이 앉은쪽을 힐끔 스쳐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 운명적인 화제에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말아야겠다는 강한 승벽이 내비쳐있었다.

《농림국장동문 금년 봄씨붙임전으로 토지개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하나의 욕망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오기섭동문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잠자코 앉아있던 김책이 조용히 오기섭에게 반문하였다. 그는 사실 토지개혁과 관련해서는 이미 장군님과 늘 의논해왔기때문에 될수록 발언을 삼가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가시가 들어있는 오기섭의 말을 듣고는 가만 있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남조선을 미군이 강점했기때문입니다. 조선혁명은 남과 북이 보조를 맞춰나아가야 합니다.》

오기섭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 오기섭동무가 정말 리해되지 않소. 미군이 남조선에 들어온 날부터 우린 이미 혁명에서 남조선과 보조를 같이 할수 없게 되지 않았소. 그래서 북조선에서 혁명을 먼저 발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이 나오고···》

《예, 알고있습니다.》

오기섭은 김책의 말이 끝나기전에 대꾸했다.

《그때문에 나는 심사숙고한끝에 이 의견을 제기하는데는 복잡한 심리과정, 반성과 고민··· 예 그런것들이 있었습니다.》

오기섭은 눈을 내리깔고 서글프게 중얼거리고나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다싶이 나는 지역적유리성만을 생각하고 함남에서 소작료불납투쟁을 조직하고 실패했습니다. 그건 오유였지요. 그래서 비판도 받고··· 그러나 나는 그 실패로부터 아주 귀중한 교훈을 찾았습니다.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주지하는바와 같이 함남으로 말하면 로씨야 원동과의 국경을 륙해상으로 가까이 한 조건으로부터 10월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산업시설이 집중되였기때문에 산업프로레타리아트대군이 형성되여있고 해방전 농민운동도 활발하였습니다. 나는 이런 유리한 지역적특성을 고려하여 소작료불납구호 즉 수탈자는 수탈되여야 한다는 구호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오유가 있었습니다.》

오기섭은 잠간 말을 멈추고 눈동자를 좌우로 빠르게 굴리면서 손을 머리우로 치켜들었다.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함남의 지역적유리성 하나만을 동떼여보고 전반적인 우리 나라 농촌의 계급적세력관계를 보지 않은데 있었습니다. 북조선도 조선의 한부분이며 따라서 남조선을 포괄한 전체 조선적인것과 보조를 맞춰야지 단독혁명을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겸해서 마지막으로 부언할것은 농촌의 봉건적령지에 대한 사회주의적국유화를 실시하지 않는한 농촌에서 프로레타리아트의 정치적지배란 영원히 하나의 공상으로만 남아있는다는것입니다.》

오기섭은 자기의 웅변이 뭇사람들의 가슴을 석연하게 풀어주었을것이라는 만족과 안도감에 평온한 표정으로 말끝을 맺었다.

그런데 언제나 론쟁의 적수로 나타나군 하는 농림국장이 입가에 랭소를 띠고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아주 까다로운 질문을 하였다.

《오기섭동무, 그렇게 되면 당이 제기한 토지분여정책을 애당초 부정하게 되지 않는가요?》

오기섭은 눈을 치뜨고 농림국장을 건너다보았다. 장군님을 모시고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는 점잖은 사람들이라 말들은 조용히 하고있으나 그들 두사람은 밑바닥의 보이지 않는 어디에서 늘 심리적인 강한 충돌을 일으키고있는것 같았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기섭동무! 제 생각에는 사실상 토지개혁의 시기문제는 이미 합의에 도달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오기섭동문 개인농민들에 대한 토지분여 그자체를 부질없는것으로 보고있으니 저는 좀 아연해지는군요.》

《국장동무, 너무 그렇게 바투 들이대지 마오.》

오기섭의 평온하던 얼굴에 울기와도 같은 붉은 빛이 확 피여올랐다.

《물론 토지문제해결의 길에서 또하나 토지를 농민들에게 균등적으로 분할하여주는 방법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하여 맑스는 〈···소농민들의 토지의 균등적분할은 지주경리를 청산하는대신 농촌에 소부르죠아적경제제도를 수립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강령과 모순되며 농업경리를 령세화시키는 농업문제에서의 일보퇴각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래서 국유화해야 합니다.》

오기섭은 잠간 말을 끊었다가 한층 더 고조된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까도 말한것처럼 농촌의 국유화가 우리 농촌의 현실에서 당장 실현될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농촌의 기본계급들이 준비되여있지 못할뿐아니라 남조선에 적대계급이 지배세력을 이루고있는 조건에서 북조선에서 단독 토지개혁을 하면 남북의 혁명발전의 공동보조를 어렵게 하고 반동계급들의 결탁을 쉽게 하여 그 반항을 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에,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그 탄생을 그토록 갈망하여온 우리 공산당, 청소한 조선프로레타리아트의 전위대를 전체적으로 위태롭게 한다는것을···》

점점 더 격조높이 열변을 토하던 오기섭은 눈길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흠칫 놀라면서 말끝도 맺지 못하고 움츠러들어갔다. 장군님의 시선과 마주쳤던것이다. 오기섭은 자기의 열변에 도취되고 집착되면 만사를 잊어버리는 병적인 망각증이 생기군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수재형의 인간에게서 보게 되는 특이한 건망증상이라고 그를 추어주기까지 하는것이다. 오기섭은 자기를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시선에서 조금도 엄혹한 빛을 보지 못하였음에도 온몸이 오싹해지도록 전률이 일어났다.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당황해하는 오기섭의 이상스러운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오기섭동무!》

장군님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그랬으나 오기섭은 옆에서 벼락이 터진것처럼 몹시 놀라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동무가 너무 책을 많이 읽다보니 그만 다른 사람의 말을 맑스의 말로 혼돈하고있는것 같소. 허허허···》

오기섭은 장군님의 시선을 피하느라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사실 오기섭이 당황해한것은 바로 그것때문이였다. 그가 방금전에 인용한 맑스의 말은 실지 어느 책에서 읽은것이 아니라 론쟁의 적수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생각나는대로 지어낸 말이였다. 그는 론쟁에서 몰리게 될 때면 가끔 자기 말을 맑스나 엥겔스의 말로 둘러치는 버릇이 있었다. 수십권이나 되는 맑스의 글을 어느 누가 자자구구 외우고있고 생전에 그분들이 한 말을 어느 신동이 다 알고있겠는가 생각하고 김책이앞에서도 그러기를 주저하지 않는 오기섭이였다. 그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비상한 기억력에 놀라며 세상에 드문 수재로까지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장군님 앞에서만은 그런 방자한짓이 허용되지 않는다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있었다.

《오기섭동무, 잘 생각해보시오. 지주의 토지를 소농민들에게 균등적으로 분할하는것이 왜 농업문제에서 일보퇴각이겠는가? 맑스가 그렇게 말할수가 없으며 또 말하지도 않았소. 물론 맑스와 엥겔스는 토지의 국유화를 토지문제해결의 최고강령으로 내세웠지만 한편 국유화문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소농, 중농의 땅에 대한 애착을 고려하면서 점차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소. 그렇지요, 김책동무?》

《옳습니다. 레닌도 토지문제해결에서 이미 직접적리해관계를 가지고있는 농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로동계급의 당은 여기서 농민들의 요구를 무시하여도 뛰여넘어도 안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동의할수 없는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제의를 무시할수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오기섭의 얼굴은 수수떡처럼 붉어졌다. 김책의 말을 듣고나니 문득 어느 소책자에서 레닌의 그런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가 결코 농민문제에 대한 맑스, 엥겔스의 말도 전혀 모르고있은것이 아니지만 순전히 론쟁의 승벽으로 해서 맑스의 리론을 제멋대로 수정하다가 걸려들었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치였다.

《됐습니다. 토론의 초점을 분산시키지 말고 기본곬을 파면서 하나씩 합의를 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오기섭에게 너그러운 웃음을 보내고 조금 삐여졌던 이야기의 곬을 바로잡기 위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방금 농림국장동무도 말했지만 토지개혁의 시기선택문제에서는 이미 합의에 도달해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다시 상정하게 한것은 토지개혁을 빨리 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왜 그것이 긴급한 문제로 제기되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있지 못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는바와 같이 다소 론쟁들도 벌어지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방금전에 론쟁을 하던 농림국장과 오기섭의 얼굴을 번갈아 훔쳐보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시선이 정돈되자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최근 반동들은 북조선에서 토지개혁을 진행하는것이 통일정부수립을 방해하고 나아가서는 남북의 국토분렬을 가져올수 있다고 황당무계하게 떠들고있습니다. 거기에는 혁명력량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반혁명세력을 묶어세우려는 적들의 검은 속심이 있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시오. 일제는 식민지통치를 하면서 우리 나라의 그 어떤 계급이나 계층과도 정권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지주계급은 일제의 보호하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였을뿐입니다. 조직된 정당이나 단체로 결속된것은 없었지요. 그러므로 일제의 패망은 지주계급의 패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한 그들이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조직적저항을 시도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수 있는가? 남조선에 있는 제국주의군대와 손을 잡자고 안하겠는가? 결국 이러한때 북조선에서의 토지개혁을 놓고 시기상조하다는 견해가 누구에게 리로운가. 때문에 우리 북조선에서 토지개혁을 전격적으로 진행해서 지주와 반동세력들로 하여금 자기 대렬을 편성하고 토지개혁에 대처하여 음모와 술책을 꾸미고 발악하여 나올수 있는 시간적여유를 조금도 갖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부 동무들은 또 우리 혁명력량이 준비되지 않았기때문에 토지개혁이 시기상조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우리 힘을 정확히 보지 못한 견해입니다. 우린 벌써 당을 가졌고 그 뿌리가 한창 뻗고있습니다. 이제 곧 인민정권과 정규적인 혁명무력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체 농민들이 토지개혁을 일일천추로 갈망하고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천년 내려오던 봉건의 질곡을 없애는 위대한 개혁, 토지개혁을 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입니다.》

갑자기 누구인가 흥분한 나머지 저도모르게 박수를 쳤다.

《국장동무가 근심하는 알곡생산문제도 오직 토지개혁으로써만 해결될수 있습니다. 우리는 빨찌산때에도 토지개혁을 해봤습니다. 그때 근거지땅들이란 화전이나 서덜밭같은것뿐이였는데 토지개혁을 하니 그런 땅에서 놀랄만 한 수확이 나왔습니다. 내 땅을 가지고 내 농사를 하기때문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땅에서 나는 량곡으로 근거지인민들도 먹이고 유격대도 먹이면서 4∼5년동안 왜놈과 싸웠습니다. 이제 토지개혁을 하면 알곡생산에서도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잠간 말씀을 끊고 창문가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근거지이야기를 하시여서인지 그이의 눈빛에는 절절한 회포가 어려있는듯 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10여년전 유격근거지생활이 아니라 아득히 흘러온 민족의 토지력사를 더듬어보고계시였다. 그것은 눈물겨운 비극의 력사였다.

《이 땅의 토지력사를 훑어보면 우리 농민들은 수천년 세월 언제 한번 제 땅을 가져본적이 없었습니다. 대대로 국부장적이라고 할 정도로 농민의 개인토지소유란 말조차 없었습니다. 〈려전제〉요 〈균전제〉요 하는 말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건 다 학자들의 머리속이나 책갈피속에만 있는것뿐입니다. 내 땅을 가지고 내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하는것이 우리 조선농민들의 세기적인 숙망입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국유화가 아니라 토지분여를 해야 하며 그것도 금년봄 밭갈이전으로 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 이렇게 락착을 보고 다음 방법문제로 넘어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좌중에서는 모두 다른 의견이 없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럼 다음으로 우리 농림국장동무가 통사정을 했는데 과연 어떤 방법이여야 지주계급이 숨돌릴 틈을 못가지게 하고 또 금년농사에도 지장이 없이 토지개혁을 할수 있겠는지 토론해봅시다.》

회의는 어느덧 순풍에 돛을 단 배마냥 제곬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식량문제를 제기했던 농림국장도 얼굴에 화색을 띠고 열심히 노트에 글을 써넣고있었다.

문득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손기척》소리에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새무리들이 아직도 창가에서 물러나지 않고 창문을 쫏고있었다. 밖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농림국장은 직책상 이번에도 자기가 먼저 발언해야 될것 같은 의무감에서 입을 열었다.

《저는 토지개혁에서 저 구라파인민민주주의나라들에서 진행하는 경험을 참고로 삼는것이 어떨가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그새 좀 연구해보았는데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 머리는 끄덕이며 어서 말하라고 하시였다.

《파시즘의 강점에서 해방된 이 나라들에서는 거의나 토지를 유상몰수 유상분배하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써 비교적 무리없이 해결되고있습니다. 물론 이게 외국의 실정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토지소유권에 대한 농민들의 욕망이 높은것만큼 그렇게 하면 빨리 진척될수 있다고 봅니다.》

《허어- 농림국장동무, 그런데 농민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서 땅을 사겠습니까?》

안길이 허거프게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그는 토지개혁의 방법상문제에 대해서는 더 론의할 필요도 없이 이미 구상한대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을 고수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옳습니다.》

오기섭이 입에서 파이프를 빼며 불쑥 맞장구를 쳤다.

《안길동무의 견해에 저도 전적인 동감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토지개혁이 토지매매로 된다는건 계급투쟁을 외면하고 도피하는것입니다.》

오기섭은 활기를 띠고 안길의 말을 지지하면서 농림국장에게 눈찌를 갈기였다. 농림국장은 오기섭이 그토록 핀잔을 듣고도 주눅이 들지 않고 어엿이 참견을 하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오기섭으로부터 두번씩이나 계급성이 모호한 사람으로 공격을 받은것이였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내처 조용히 앉아있던 송신일이 일어나서 농림국장을 옹호해나섰다.

《장군님, 저는 농림국장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선생님, 말씀하십시오. 앉아서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의 의견을 듣게 된것이 몹시 기쁜듯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날도 송신일은 검은색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은테안경을 끼였는데 그 외모부터가 류다른데가 있어 사람들모두가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전 민주개혁을 절대 찬성합니다. 그런데 저의 좁은 소견에는 토지개혁을 통일전선정책수립에 지장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농림국장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송신일은 목소리도 온건했다. 많은 학교를 세운 오랜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누구와 다투는걸 모른다. 지금도 그는 관자노리에 피줄이 약간 도드라졌을뿐 억양이나 자세를 조금도 흐트림이 없이 처음그대로 단정히 앉아서 말했다. 약손가락끝으로 이따금 은테안경을 추겨올렸다.

《지금 각당 각파가 다 장군님을 모시고 건국을 하려는 때에 첫 민주개혁이, 그것도 사람들의 생사와 관련이 있는 토지문제를 강압적으로 해나간다면 많은 세력을 잃을수 있습지요. 지주라는게 어디 제 혼자몸입니까. 농촌이나 도시엔 지주와 연고된 층이 퍼그나 됩지요.》

송신일의 느닷없는 발언에 방안에는 가벼운 소음이 일어났다. 이때도 역시 누구보다도 오기섭이 대뜸 얼굴살이 댕댕해지며 송신일을 쏘아보았다. 금시 불같은 말이 터져나올것 같은 기상이였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솔직한 말을 해주는 그의 진정이 고맙게 생각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송신일을 일깨우시였다.

《송선생님의 심정은 알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상몰수 무상분배한대서 통일전선정책에 지장을 받을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잃을것은 극소수의 지주와 반동계층이고 얻을것은 인구의 80%나 되는 농민들과 기타 각계층 인민들이기때문입니다. 지주놈들이 도시와 농촌에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인민들은 지주를 미워하고 농민들을 동정합니다.》

《장군님! 그에 대해서 제가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시 한번도 발언이 없이 과묵하게 앉아있던 보안국 부국장이 움쭉 일어섰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도 앉아서 이야기하라고 하시였다.

《지주가 무서워서 무상몰수를 못한다면 우리가 그밖의 혁명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주놈들이 얼씬 못하게 우리 보안국이 책임지겠습니다.》

《허허허···》

장군님께서 상체를 뒤로 제끼면서 크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그러니 토지개혁을 보안국에서 맡아나서겠다는 말이로구만. 허허허, 그렇게 강권을 동원시킬 잡도리부터 해선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혁명은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농민동맹위원장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짓고 강진건을 바라보시였다. 그러지 않아 강진건은 명색이 농민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란 사람이 자기 사업과 직접 관계되는 모임에서 한마디 발언도 못하고 꿔온 보리자루처럼 앉아있는것이 여간 민망스럽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죽 답답하시면 장군님께서 지명까지 하실가싶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순간에 강진건의 머리에 소작료 3.7제투쟁이 바로 장차 토지개혁을 원만히 할수 있게 하고 농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정치투쟁이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장군님! 저는 이번에 3.7제투쟁을 통해 능히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할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습니다. 전반적인 농촌에서 지주놈들이 어쩌지 못하고 졌습니다.》

《옳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역시 농민동맹을 책임진 위원장선생이 정확히 보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몹시 만족해하며 강진건을 치하해주시였다.

《송신일선생님!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번 3.7제투쟁을 통해서도 지주계급의 세력이 결코 크지 못하며 토지개혁을 하면 농민들이 스스로 자기의 땅을 지켜낼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까?》

《장군님! 제가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허공중의 생각을 말씀드렸던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송신일은 좌중을 둘러보며 마치 사죄라도 하듯이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얼마후 회의는 원만하게 결속될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모임을 마치면서 혁명적경각성문제를 강조하시였다. 신심을 가진다고 하여 토지개혁이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순조롭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악질지주들의 단말마적인 발악을 예견하여야 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며 장군님께서는 지금 전반적으로 3.7제투쟁이 성과를 거두었지만 평남인민정치위원회에서 내려보낸 《소작세칙》때문에 아직까지 말썽이 일어나고있는 농촌들이 있다는것을 지적하고 농민교양을 담당한 농민동맹의 역할을 높일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였다.

장군님의 그 말씀을 들으며 강진건은 《소작세칙》의 독소를 뽑아버리기 위한 투쟁을 잘하지 못한 자신을 놓고 깊은 반성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