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4장 6


 

제 4 장

6

 

불안스러운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요즘 내내 발편잠을 자지 못하고있는 조순근은 이 밤도 처량한 문풍지소리와 안해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애꿎은 담배만 피우고있었다. 며칠전에 서만호가 찾아와서 으름장을 놓고간 다음부터 안해의 병이 더해져서 다시 몸져 눕게 된데다 요즘 추가소작료징수를 거부하는 투쟁으로 마을의 공기가 더 어수선해져서 조순근은 좀처럼 불안속에서 헤여날수가 없었다. 추가소작료징수를 거부하는 투쟁은 애초의 3.7제투쟁보다도 더 치렬하였다. 김창규의 지시에 의해 면농조에서도 신당리를 오르내리며 마을농조원들의 투쟁을 적극 밀어주었다. 신당리 농조원들과 자위대원들은 비단 신당리뿐아니라 다른 리들에서 들어오는 추가소작료를 실은 달구지들을 막기 위해 신당리앞등과 동흥리에서 건너오는 다리목 그리고 진고개쪽에 나가 길목들을 지켰다. 자위대원들은 아직 목총들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 마름놈들을 두드려눕히고 추가소작료 달구지들을 모조리 되돌려보냈다.

일이 그쯤 되자 서만호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통고한대로 무조건 다 받아들이라고 호신심부름군들을 내보냈다. 고간에 두었던 10여자루의 사냥총까지 들어내다 한자루씩 골고루 메워주며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라고 소리쳤다.

《쏘아라. 맞서는놈은 어느놈을 불문하고 쏘아제껴라. 제놈들이 먼저 총자를 들고나섰으니 만국의 어느 법에도 정당방위로 총질을 하는건 죄로 되지 않는다. 내가 소작료를 한톨이라도 떼워?》

서만호는 미군련락기관과 함께 어엿이 평양에 정주해있는 아들로 하여 기운을 회복하고 배심이 든든해서 큰소리를 치며 돌아갔다. 아무렴 이 서만호가 그리 쉽게 물러나겠는가. 내 뒤에는 전승국으로서 조선정사를 주관하는 미군어른들이 있다. 감히 나한테 맞서 3.7제를 한답시고 돌아치던 작인놈들의 버릇을 뚝 떼놓아야 한다.

서만호의 이와 같은 불호령에 그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총을 메고다녔다. 늘 손이 근질거려하던 호신심부름군들은 피비린내를 맛보고싶은 변태적인 광증이 발작하여 승냥이울음소리같은 기괴한 부르짖음을 하며 마을을 싸다녔다.

조순근은 비록 굶고 고생하며 지냈지만 언제나 조용했던 신당리에 바야흐로 류혈의 참극이 벌어질것같은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조순근은 이런 때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겠는지 자기의 좁은 궁량으로써는 도저히 알아낼수가 없었다.

《성님 계시우?》

조순근은 문밖에서 부르는 흥묵의 목소리를 듣고 움쭉 일어섰다.

《임자가 웬일인가. 이 밤에?》

조순근은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인채 한손에 몽둥이를 집어들고있는 흥묵의 괴이한 행장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였다.

《성님, 나하구 함께 진고개쪽으루 가보시자유.》

흥묵은 지금 성배가 진고개 너메마을에서 총을 내대며 추가소작료들을 받아내고있다고 급한 소리를 하였다.

《뭐 성배 그녀석이 총을 메고 사람들을 몰아대?》

조순근은 흥묵의 소리에 눈이 둥그래졌다.

《그래유. 그놈뿐아니라 서만호가 다른 심부름군들한테도 다 총을 메웠어유. 그리구 듣자니 성배가 대복이까지 데리고갔다지 않겠시꺄.》

《아니 우리 대복이가 그놈을 따라다녀?!》

《뭐 따라나서기야 했겠어유. 그놈들이 끌고다니겠지.》

《왜 이렇게 흉흉한 소리만 들리나. 음 쯔쯔···》

조순근은 채머리를 떨며 혀를 찼다. 자기 아들이 그놈들과 섞여서 추가소작료를 받으러 다닌다니 세상에 이렇게 기막힌 일이 또 어데있을가 싶다.

《어서 가세!》

조순근은 생당쑥이라도 씹은듯이 오만상을 찌프리고 침을 내뱉으며 퇴지로 걸어나왔다.

《성님두 몽둥이든지 쇠스랑이든지 무얼 하나 집어들어유. 적수공권으루 가서야 총쥔눔하고 싸우겠시꺄!》

《거 너무 추접떨지 말게. 농군이 그게 무슨 꼴인가? 젊은애들두 아니구 나살이나 먹은게···》

조순근은 참나무몽둥이를 집어들고 서있는 흥묵을 흘겨보며 책망하였다. 그는 동네 농조에서 다같이 보조를 맞춰서 하는 일이 아니고 제 혼자라면 서만호가 내라는대로 훌 벼가마니를 들어다 던지고싶었다.

그들은 달빛이 으스름히 깔린 언덕길을 올라갔다. 눈아래 벌판에도 부드러운 달빛이 논뚝길을 어루만지고있었다. 별들이 가물거리는 묘연한 서쪽하늘가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곡진하게 들려왔다.

《마가을이 됐으니 소쩍새가 리별곡을 하누나. 기러긴 날아오고 소쩍샌 날아가는 장장추야라··· 인생 40년에 곡절도 많다가 좋은 세상 맞아 3.7제 하는데 이눔의 서만호가 어째 이리 갈개느냐?》

흥묵은 참나무몽둥이를 지팽이처럼 짚고 언덕길을 오르며 타령조로 흥얼거렸다. 마가을 차거운 밤바람에 실려오는 애절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느라니 조순근의 속은 어쩐지 더 클클해졌다.

《이보게 영길애비, 이거 우리가 괜히 팔자에 없는 호사를 하자는게 아닌가. 보아하니 서만호 그눔이 기껏 소란을 피울 작정같구만.》

《그럼 뭐 그눔이 고분고분 말을 들을줄 알았시꺄. 그래서 우리 창규가 하는 소리가 그게 아니야유. 농조가 한데 뭉쳐 싸워야 된다구. 난 요새 이밥만 먹으니 목구멍이 미끈미끈한게 좋기만 해유. 나라에서 이만큼 뒤받침해주는데 우리가 3.7젤 못하면 정말 그런 등신들이 살아선 무얼 하갔시꺄.》

흥묵은 언덕길옆의 마른 잡관목들을 몽둥이로 후려치면서 어지간히 열을 띤 소리로 말하였다. 이마적에 와서 그는 자기 사위에 대한 긍지가 높아지는지 말끝마다 《우리 창규》라는 소리가 묻어나왔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네댓명의 자위대청년들이 불무지를 지펴놓고 둘러앉아 덕담들을 하고있었다. 널름거리는 불길에 비쳐서인지 그들의 얼굴은 모두 불깃하게 상기되여있었다. 자위대장 영길이가 목총을 무릎짬에 세우고 한참 이야기에 열중하고있었다. 싸리나무와 애솔들이 건성드뭇하게 박혀있는 언덕마루에선 바람소리가 더욱 소연했다. 눅눅한 랭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올적마다 불길은 훌쩍 키를 솟구었다가는 허리를 꺾고 이리저리 기울거리였다. 조순근이네보다 한발 먼저 앞서 올라가던 흥묵의 발바리가 너울거리는 불빛을 보고 왈왈 짖어댔다.

《길목을 지킨다면서 불은 어째 피웠느냐. 어서 불을 끄구 냉큼 숨지 못하겠냐? 쯔쯔··· 자위대장이란게 왜 그 모양이냐?》

흥묵이 기다리기에 지쳐있는 아들에게 소래기를 질렀다. 조순근은 여전히 기가 막혀 한쪽옆에 묵묵히 서서 곰방대만 빨고있었다. 목총을 든 젊은이들이 덤불속에 숨는 꼴을 보니 어쩌면 화적떼라도 보는것처럼 속이 께름하였다.

고개길에 곡식달구지가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으스름달이 서쪽 산마루로 기울어져내릴 무렵이였다. 영각소리,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바퀴소리, 사람들의 기침소리, 여러가지 소리들이 짙게 깔려있던 정적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성님! 달구지가 여러대 같은데 성님은 자위대원들속에 같이 숨어있어유. 내 먼저 나서서 어디 가는 길에 만난것처럼 하고 케를 보겠어유. 옛병법에두 이르기를 매복을 옳게 하자면 적의 형세를 먼저 살펴봐야 한댔어유.》

흥묵은 그러며 조순근의 가슴에 발바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순근은 움직이지 않고 기가 막힌 소리를 하였다.

《내가 숨기는 왜 숨어? 참 세상두, 임자가 병법을 외우는걸 보니 이젠 군사를 하자는건가?》

그들이 이러는 사이에 벌써 첫 달구지가 소방울소리를 딩겅거리며 다가왔다. 그보다 먼저 앞에 나타난것은 성배였다. 정말 그의 어깨에는 번들거리는 총이 한자루 메워져있었다.

흥묵은 솔숲에 엎디여 담배를 한모금 깊이 빨아들이고나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일어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개마루에 올라선 성배는 불시에 두억시니처럼 나타난 흥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두어걸음 비실비실 물러났다.

《아니, 이게 누군가? 영길이 아버지가 야밤중에 여길 어떻게?》

그는 무엇인가 이상한 기미를 느꼈던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어깨에 멨던 총을 슬그머니 가슴앞으로 끌어내리였다.

《내 지금 대복이 에미의 병이 심해서 순근형님을 동무해서 동흥리 박병칠의원을 찾아가는 길일세. 한데 임자가 정말 이밤중에 웬일인가?》

흥묵은 저발쯤에 비켜서있는 조순근을 가리키며 그럴듯하게 둘러치였다. 조순근은 고개밑까지 늘어선 기다란 달구지행렬을 내려다보았다. 얼추 세여보아도 여라문대 넘을것 같은데 달구지마다에는 어수룩한 동흥리 작인들이 붙어서있었다. 아들은 뒤쪽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성배는 막아서는 흥묵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지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영길이 애비, 자위대 나온것 보지 못했소? 영길인 여기 안왔소?》

성배는 약간 겁먹은 소리로 빌붙듯이 물었다.

《모르겠네. 자위대가 나왔는지 보안대가 나왔는지.》

성배는 약간 안심이 되는듯 주위를 다시한번 살펴보더니 달구지군들에게 빨리 따르라고 소리쳤다.

《가마안, 달구지를 세워!》

《아니 왜 그래?》

성배가 와뜰 놀라며 곱지 않게 치떠본다.

《왜 그러는가구. 성배, 자네가 지금 때가 어느땐데 총까지 메구 나서서 이러나?》

흥묵은 눈을 부릅뜨고 성배를 노려보았다.

《어느때긴 어느때야. 만귀잠잠한 밤중이지.》

흥묵이보다 훨씬 나이가 아랜것이 점점 입버릇이 고약스럽게 나오며 이죽거리였다.

《야, 이 국둑발이 말버릇 봐라? 이 흥묵이가 뭐 네 동갑인줄 아냐? 너보다 장국을 몇동이나 더 먹었는지 알구나있어?》

흥묵이 주먹을 틀어쥐며 성배에게 다가갔다.

《오, 알구보니 네가 그래서 남 다 자는 야밤삼경에 망두석처럼 지켜서있었구나. 죽지 않으려문 비켜라! 쏜다!》

성배는 눈앞에 다가오는 흥묵의 주먹을 보고 뒤걸음을 치면서 당장 총을 쏠듯이 꼬나들었다. 순간 조순근은 미련한놈이 살인을 칠것 같아 흥묵의 앞을 막아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눔! 네가 무슨 일을 저지를려구··· 넌 옛날일두 다 잊었구나.》

조순근은 앞으로 내민 총구를 감아쥐였다.

《그러게 비키라지 않아. 옛날이구 오늘날이구.》

성배는 붙잡힌 총을 빼내려고 잡아채였다. 그래도 억센 손아귀에 잡힌 총은 빠지지 않았다.

《이거 총을 모 못놓겠어?··· 쏜다 쏴!》

《이눔아, 말루해야지 어디다 총을 내대?》

조순근은 뚝 뻗치고 서서 잡아쥔 총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게 뭘 믿구 이 지랄이야?》

성배는 발길로 걷어차려고 지하족신은 발을 내질렀다. 그때 덤불속에 들어가 숨어있던 자위대원들이 우야!- 하고 달려나왔다. 날파람있는 영길이가 어느새 성배의 손목을 비틀고 총을 빼앗자 그놈은 비칠거리며 저발쯤에 나가 넘어졌다.

《네가 이제보니 왕벌을 닮아가는구나. 총을 메구 나서서 사람을 쏘겠다구.》

조순근이 이러며 비틀비틀 일어서는 성배를 쏘아보는데 어느새 흥묵이 달려와서 참나무몽둥이로 성배의 아래도리를 후려쳤다. 성배는 비명을 지르며 풀밭에 주저앉았다. 흥묵이 재차 몽둥이를 후려치려고 두팔을 버쩍 쳐들어올리는것을 순근이가 말리였다.

《이보게, 그만하게.》

그러자 성배는 순근에게서 구원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 대복이 아부지··· 아, 순근형님.》

성배는 턱주가리를 떨며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조순근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총을 빼앗아간 청년들이 어딜 겨누고 쏘는지 땅! 하고 한방 갈겼다. 빨간 불찌가 탄도를 그으며 맞은편 언덕으로 날아갔다.

《어째 총을 쏘느냐?》

조순근이 몸을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순근형님, 제발 잘못했소. 제발 총··· 총을 돌려주. 저걸 뺏기구 가면 주인령감한테··· 난··· 으흐흐···》

성배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조순근의 발목을 그러안고 몸부림을 치다가 절망적으로 땅바닥을 치며 울음소리를 냈다.

《또 이따위짓을 하겠느냐?》

《안하겠소. 안하겠소. 주인어른이 내몰아서 이런짓을 하지··· 형님두 알지만 내야 숙부드럽구··· 어데 딴 마름들처럼 갈개는 일이 있었소?》

이때 몇발자국 물러갔던 흥묵이가 또 바람처럼 날아와서 성배의 목을 움켜쥐였다.

《이눔아, 그래 이 달구지들을 모두 돌려보내겠느냐?》

《예··· 보내겠소이다.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성배는 진짜 얼혼이 나갔는지 아니면 흉물스럽게 엄살을 떠는건지 실성한놈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헵뜬 소리를 하였다.

《성배 이놈아! 네가 근본을 잊어버리구 이렇게 험한짓을 하며 다녀서야 되겠냐. 너두 한때는 고생을 한 녀석이 아니냐?》

조순근이도 분한 생각이 들어 발을 구르며 성배를 꾸짖었다. 기실 성배가 지금은 서만호의 손발이 되여서 괜찮게 살며 거들먹거리지만 어렸을적에는 고생을 적지 않게 했었다. 서씨문중에서 서만호와 밭은 항렬에 있던 그의 아버지가 죽자 서만호는 제가 그를 먹여살리겠다고 데려갔다. 제가 데려다 건사하지 않으면 문중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을것 같아 14살될 때 데려오긴 했는데 처음은 종과 같이 부려먹었다. 그때 조순근이도 머슴으로 들어가있던 때라 성배와 처지가 비슷했다.

그해 겨울 눈보라가 일던 날 서만호는 아이에게 아래마을을 돌면서 집집들에서 빚돈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는 아침부터 나가 돌아다니면서 빚을 받아가지고왔는데 해가 넘어가도록 점심 한그릇 못얻어먹어 아래도리를 비칠거렸다. 같은 서가문중이라도 빚받으러 다니는놈에게 누가 점심까지 먹여줄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조순근이들이 허기가 져서 비칠거리는 그를 부축해서 행랑방에 들여다 눕혔다. 그런데 그날밤 그는 발가락이 아리고 저려서 온밤 자지 않고 일어나앉아 울었다. 발등만 걸친 다 해진 양말을 신고 돌아다니다가 한쪽발가락이 몽땅 동상을 입었던것이다. 며칠후 의원이 와서 발이 썩는다면서 발가락 다섯개를 한개도 안남기고 잘랐다. 어린 그는 그 잘라버린 발가락 다섯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행랑에서 며칠동안 울었다. 그래서 국둑발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였다. 그후부터 서만호는 자기가 너무했다고 생각했던지 성배를 종으로 부리지 않고 서사겸 마름으로 썼다. 그런 가슴아픈 래력이 있는 성배가 오늘은 총을 들고 작인들을 몰아대고있는것이다.

《순근형님, 제발 잘못했소. 그러나 총만은 돌려주. 대복이두 여기 함께 왔는데 총을 빼앗기면 그 애두 무사치 못하우.》

《우리 대복이가 왔단말이냐?》

조순근은 번뜩이는 눈길로 고개밑을 내려다보았다. 성배는 살아날 구멍이 생겼다고 생각했던지 달구지들이 늘어선쪽을 향해 대복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성배가 아무리 불러도 아들은 어디에 있는지 얼씬 나타나지 않았다.

《대복이두 왔소. 정말 왔소. 총을 돌려주··· 나와 대복일 살려주.》

성배는 조순근의 다리를 붙잡고 애걸하였다. 조순근은 여전히 눈덕이 시퍼래서 고개밑만 내려다보다가 로획한 《전리품》을 둘러싸고 서있는 자위대원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야, 영길아, 장난들 말구 총 갖다줘라. 알은 다 뽑구.》

《아니 총을 어째 도루 줘요?》

청년들속에 서있던 영길이가 한발자국 나서며 물었다.

《글쎄 갖다줘라!》

《대복이 화입을가봐 그래요?》

영길이가 총을 그러안으며 눈을 흘기였다.

《뭐 뭐가 어째?》

조순근은 욱 분격이 치밀어올라 주먹을 떨었다. 세상이 온통 자기를 몹쓸놈이라고만 여기는것 같았다. 아들놈까지 이런 복새판에 끼워서 자기는 안팎으로 졸경을 치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미여지게 했다. 그래도 총을 돌려줘야 한다. 서만호가 서두르는 잡도릴 보면 동네일이 상서롭지 않았다. 그가 총까지 뺏기고나면 동네에 꼭 죽고살고하는 일이 벌어지고야말것 같았다.

《총은 못주겠어요. 우리 자위대에서 쓰겠어요.》

영길이가 버티고 서서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얼른 돌려주지 못하겠어, 사람을 잡겠니. 보기만 해두 끔찍하다.》

조순근은 다시 표정이 엄격해져서 발을 굴렀다.

《글쎄 안돼요. 총이 없이야 무슨 자위대예요.》

영길이 총을 어깨에 걸메며 돌아섰다. 조순근은 말로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씽 달려들며 우격다짐으로 총을 벗겨내였다.

《자위대에 총이 필요하문 우에서 내려보내주지 않으리. 우리 농사군이 이런걸 메문 못써.》

조순근이 총을 성배에게 던져주며 영길이를 나무랐다.

《아니 저 사람이 총 메구 우릴 위협하는데두요.》

《얘 영길아, 내 안그러겠다구 하지 않니. 나두 주인령감이 메라니 멨지 총다루는 법두 모른다.》

총을 받아쥔 성배는 조순근에게 허리를 갑삭해보이고 달구지군들을 향해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이어 달구지들은 소방울을 딩겅거리며 고개를 굴러내려갔다.

조순근은 고개마루에 서서 굴러가는 달구지행렬을 시름겹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위대원들의 고아대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저기 덤불속에 사람이 있다. 대복이다.》

《야, 넌 무슨 할 노릇이 없어 이따위 개짓을 하는데 따라다녀? 여기 아버지랑 계신다. 어서 올라와라.》

자위대원들이 고개밑으로 달려내려갔다. 그러자 수건으로 머리를 싸서 턱밑에 졸라맨 대복이 덤불속에서 어정어정 걸어나왔다.

《흥, 잘한다. 아버진 손에 다 넣은 총까지 돌려주구 아들은 국둑발이 길안내하구, 야, 넌 언제부터 지주편이 됐니?》

빼앗았던 총을 도로 내놓게 되여 볼이 잔뜩 부어오른 영길이 화김에 대복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조순근은 아들을 향해 몇발자국 내짚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이때 흥묵이 그 광경을 띠여보고 영길에게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녀석아, 그애보군 왜 못살게 굴어! 그애가 뭐 오구싶어 왔겠느냐. 가뜩이나 고생하는 애를···》

《그런데 숨기는 왜 숨는가 말이야요. 뭐 죄진게 있으니 숨었겠지요. 문초를 좀 해봐야겠어요.》

영길은 대복의 멱살을 그냥 움켜쥐고있었다.

《이새끼! 썩 놓지 못하겠냐? 자위대장을 한다니까 무슨 대신자리에라도 올라앉은줄 아는 모양이구나.》

흥묵은 제 아들의 더수기를 주먹으로 갈기며 질그릇이 깨지는것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순간 조순근은 벌떡 일어났다. 참을수 없는 울분이 그를 실성한 사람처럼 만들었다. 그는 고개밑으로 달려가 청년들을 좌우로 헤쳐놓더니 넙적한 손바닥으로 아들의 면상을 후려쳤다.

《죽어라 이눔!》

얼굴을 얻어맞고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났던 대복은 달려와서 아버지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버지!》

조순근은 가슴에 와붙는 아들을 떠밀어냈다. 대복은 고개길돌밭에 쓰러졌다.

《이눔아, 이렇게 안하군 종노릇을 못하니?》

조순근은 또다시 주먹을 쳐들고 아들에게로 다가갔다. 흥묵이 달려와서 순근의 팔을 붙들었다.

《성님! 이거 미쳤수.》

조순근은 흥묵에게 팔을 붙들린채 몇번 몸부림을 치다가 기진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대복은 돌을 붙안고 흐느낀다. 누덕누덕 기운 홑적삼잔등이 세차게 들썩거렸다.

갑자기 골바닥에서부터 찬바람이 울음소리같은 처량한 소리를 내며 고개길로 휩쓸어왔다. 대복의 홑것 옷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시뻘건 잔등살이 드러났다. 대복은 추위와 설음으로 우들우들 떨면서 그냥 소리내여 울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조순근의 가슴에서는 점차 붉은 피덩지가 뚝뚝 떨어지는것 같았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애달프게 울었다. 가슴을 허비는 아들의 흐느낌소리도 소쩍새울음소리도 그칠줄을 몰랐다. 조순근이도 점점 더 설음이 북받쳐올라 두손으로 땅바닥의 흙을 그러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