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4장 4


 

제 4 장

4

 

조순근은 흥묵의 집에 달구지를 갖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울기를 묵새길수 없어 한참이나 토방에 앉아 고불통을 빨았다. 코구멍으로 뿜어나오는 연기는 칙칙한 저기압으로 하여 설한에 떠는 새무리마냥 흩어지지 않고 얼굴을 덮었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그릇씻는 소리가 났다. 굴통을 빠진 연기도 하늘로 뻗지 못하고 마당으로 느물거리며 뱀같이 기여나왔다.

《여보오, 왜 거기 앉아있수?》

부엌문을 열고 가시물을 내던지던 안해가 그를 띠여보고 의아해하였다.

조순근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천천히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버지, 이제 오세요.》

부엌에 앉아 불을 때던 대복이가 뒤덜미를 문대며 일어섰다.

《응, 너 왔구나.》

《오늘은 어째 점심잡술 생각을 잊으셨수? 얘가 나와서 얼마나 기다렸다구.》

조순근이 말코지에 웃도리를 벗어거는데 안해가 어느새 상을 차려들고 올라왔다. 조순근은 그제야 이날 아침 안해가 3.7제를 해서 쌀도 생겼는데 지주집에서 고생하는 대복이, 서분이를 데려내다 밥 한끼 같이 먹자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들이 겨우 짬을 내여 지주집 허락을 받고 잠간 집에 들린 모양이였다.

안해는 개다리소반을 조순근이앞에 내려놓았다. 대복이가 뒤이어 자그마한 두리상 한개를 들고 올라왔다. 상마다 음식그릇이 넘쳐나게 놓여있었다. 낟가리를 가리듯 기름기 번질거리는 흰 이밥을 눌러담은 밥사발옆에 노란 군물이 도는 콩비지그릇이 놓이고 마늘과 고추를 다져넣은 간장종지가 사이에 끼워있었다. 생무우채와 마른 고사리채, 상옆에 가까스로 붙여놓은 작은 접시에는 껍질을 깐 닭알과 조기구운것까지 네댓토막 있었다.

《별루 차리질 못했수다. 얘 외삼촌 가져온 술 한잔 하시려우?》

안해는 숟가락을 들어 조순근이앞에 놓아주며 다가앉았다.

《술? 그건 그만두우. 그리구 이건 뭐 딴상을 차렸소. 한상에서 해야지.》

조순근이 소반을 밀어 두리상에 붙여놓았다.

《일없어요. 집안에 법도가 있어야지. 아이 어른 한상에서 복작이겠수.》

안해가 소반을 도로 밀어내며 기어이 상을 따로 받게 하였다. 조순근은 잠시 밥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평생 남편과 아들에게 입쌀밥 한끼 푸짐히 차려주지 못한 앓는 안해의 눈물겨운 소원이 그 밥상에 어려있으려니 생각하자 가슴이 쩌릿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들고 조기반찬이며 닭알들을 대복이앞에 덧놓아주었다.

《대복아, 어서 먹어라. 앓는 에미가 널 생각해서 일껏 차린건데···》

《아버지두, 여기 많은데 이걸 왜 다 나한테 덜어요.》

대복의 목소리도 어쩐지 물기에 젖어있다.

《어서 먹어라. 한창 먹을 나이에 밴들 얼마나 곯겠니. 실은 네 에미병이 너를 그리로 보내구 가슴을 앓다가 생긴 병이니라··· 그러니 에미속이 후련하게 실컷 먹어라.··· 그런데 서분이는 왜 오지 않느냐?》

조순근은 안해의 눈앞에서 이밥 한술을 듬뿍이 떠서 입에 가져가며 아들에게 물었다.

《대복이가 말은 했는데 그 앤 큰댁 작은댁이 엇갈라 불러대서 나오기가 힘든 모양이웨다. 이따 대복이 갈 때 한밥 싸보냅시다그려.》

안해가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며 코멘소리를 하였다. 평시에 무뚝뚝한 남편의 입에서 그처럼 살가운 말이 나오니 눈물이 솟구치는 모양이였다.

대복은 고개를 수굿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닌게아니라 늘 허기가 져있던 그는 연방 술질을 하며 걸탐스럽게 먹어댔다.

《대복아, 여기 숭늉에 말아먹어라. 조기반찬은 물에 말아먹는게 좋으니라.》

아들이 먹는양을 이윽히 지켜보던 어머니는 체할가싶었던지 숭늉그릇을 가져다놓았다. 그래서 대복이 감투밥의 봉우리를 허물어 노란 가마치부스레기들이 떠도는 숭늉속에 집어넣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가만 누가 온가부다.》

조순근은 밥술을 뜨며 지게문쪽에 눈을 주었다. 안해가 일어나서 문을 열다가 흠칫 놀라더니 낯빛이 파랗게 질려가지고 남편을 돌아보았다. 조순근은 무슨 일인가싶어 문께로 고개를 기웃하였다. 얼핏 먼저 눈에 비친것은 금술을 장식한 화려한 유개마차와 그 두리에서 술렁거리는 서너명의 지주집 심부름군들이였다. 서만호는 명색상 장정 몇명을 심부름군으로 두고있는데 사실상 그자들은 가병의 역할을 하고있었다.

《대복이아버지 있소?》

렵총을 멘 장정 하나가 마당으로 뛰여들어오며 조폭하게 소리쳤다.

《왜 그러나?》

조순근은 불길한 예감에 낯빛을 흐리며 지게문을 젖뜨렸다.

《주인나으리가 오셨소.》

젊은 장정이 퉁명스레 뇌까렸다. 그러자 마당건너 길목에 서있던 금술을 늘인 유개마차 쪽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서만호의 불깃한 얼굴이 나타났다.

《오셨소이까.》

조순근은 퇴지에 서서 합장을 하였다.

《음, 지나가던길에 잠간 여길 거치네. 내 며칠전에 조만식어른이 보낸 편지를 받았네.》

《그렇소이까.》

조순근은 저도 모르게 문가에 서있는 대복을 돌아보았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알고보니 임자가 조만식어른한테서 많은 훈시를 받고 내려왔더군. 그런데 임자가 왜 요즘 그리 엇뚜루 나가나?》

조순근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합장을 한채 얼떠름해 서있었다.

《그 어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구 농조요 뭐요 하는데 먼저 뛰여들어 어깨춤을 같이 춰, 엉? 그 어른이 그렇게 일러서 보내던가, 총부릴 내대구 3.7젤 하라구 해?》

서만호는 마차안의 비단방석에 걸터앉은채 하얀 백고무신발을 가볍게 굴렀다.

《괘씸하거든.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지. 조만식선생의 편지를 받구 애들 빚문서까지 면감시켜 내보내자구 했는데 임자가 3.7제요 뭐요 하며 농조일에 극성이니 낸들 뭐가 그리 곱다구 적선을 하겠나. 어험!》

서만호는 위엄찬 기침소리를 내고 유개마차 쪽문을 쾅 닫아버렸다. 살찐 한쌍의 가라말이 코투레질을 하며 자국을 떼자 마차는 곳곳에 늘인 금술을 흔들면서 천천히 굴러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마차가 다시 멎더니 쪽문이 열리였다.

《여보게 순근이, 내 보건대 순직한 임자가 도깨비놀음에 홀린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야 해.》

마차는 떠나갔다. 그 마차를 따라 숱한 사람들이 곁묻어 가버렸다. 썰물이 지나간 황량한 바다기슭에 서있는듯 한 무서운 고독이 조순근의 가슴에 밀려들어왔다. 가련한 세식구는 가을바람이 음산하게 부는 퇴지우에 멍청히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