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4장 3


 

제 4 장

3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물레방아간은 요즘 때없이 흥성이였다. 매일 달구지들이 북나들듯 하고 쌀가마니를 지게에 진 농민들이 분주히 오갔다. 마을의 참새란 참새는 다 몰려오는듯 했다. 방아간지붕우에 떼지어 앉은 참새떼가 마당에도 내려오고 외벽진 밑구멍으로 방아간안에까지 새여들어와 뜀박질을 했다. 오봉산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큰 개울에 석축을 해서 락차를 짓고 돌리는 정기수네 물레방아는 몸체와 공이가 우람차고 확이 깊어 벼한가마니쯤은 두세번 갈라서 잠시에 찧어낸다. 다만 요즘은 수세가 약해서 밤이면 물을 매두느라고 낮시간에만 벼를 찧었다. 신당리 본마을 서씨농민들은 대개 서만호의 기계방아를 리용하지만 신당리아래마을 농민들은 침자가 눅은 이 물레방아간에만 다녔다. 그런데 요즘엔 례년에 없이 방아간벽이 터져나가게 벼가마니가 쌓이고 사람들이 붐비였다. 신당리본마을 서씨들도 적지 않게 벼가마니를 실어들였다. 그도 그럴것이 모두 서만호의 도조를 3.7제로 물었으니 그 낟알을 서만호네 정미간에 가서 찧을 엄두는 나지 않는것이다.

《허허, 이젠 왕벌네 정미간엔 거미줄 쓸게 됐는걸.》

농민들은 말대가리같은 방아공이가 오르내리는 옆에 서서 말을 주고받았다. 방아공이가 절주있게 확속에 떨어질 때마다 쿵쿵 지심이 울리였다.

《이러다간 방아채가 부러지든지 물레바퀴가 꺾어지든가 일이 나겠는데.》

키가 싱아대같이 큰 정기수가 손에 허옇게 게발린 벼겨를 털며 사람들을 비켜세웠다.

《뭘 그러우. 서만호네 정미간이 웅담없는 곰처럼 되고 말았는데 이제야 정기수가 련속부절로 침자를 긁어들여야지.》

《듣기 싫네. 내가 침자 먹자구 이노릇 하는줄 알아. 왜 서씨넨 문중기계 둬두구 이 복잡통에 와서 끼여들가.》

정기수는 서씨들 와있는쪽에 대고 소리쳤다.

《주라를 좀 바로나 틀면 듣기나 좋지. 그게 문중기곈 무슨 문중기계야. 서만호거지. 그러지 말구 우리두 3.7제한 집들이니 찧어달라구.》

그바람에 방아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찧어주구말구. 농조라는게 서씨네 문중보다야 상문중이지. 알쭌히 못사는것들끼리만 모였는데 자꾸 찧어서 우리 새 문중이 잘 살아야지.》

정기수는 방아를 돌아보며 벼가마니를 부리고 쌓는 바쁜속에서도 롱담을 잘 받아넘겼다.

이러는데 비써 열린 문짬으로 귀가 발쭉한 강아지 한마리가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개는 들어오자바람으로 벼겨가 담긴 마대아구리에 가서 코끝을 박고 혀를 날름거리며 겨를 훔쳐먹었다.

《지가이!》

정기수는 마대자루를 여미여놓으며 개를 몰았다. 개가 왈왈 짖어대며 뒤걸음질을 했다.

《가만, 저게 흥묵이네 발바리군. 길잡이가 먼저 온걸 보니 그가 오는가 보우.》

《하긴 눅게 찧어준다는데 그 알량한 사람이 가만 있을리 없지.》

사람들은 문밖을 내다보았다. 아닌게아니라 흥묵이가 달구지에 벼가마니를 싣고 가벼운 걸음으로 오는바람에 농민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뒤에는 조순근이 뒤짐을 짚고 스적스적 걸어왔다.

사람들이 벼가마니를 메고 들락날락하는속에서 물레방아는 쉴줄을 모르고 꾸준히 오르내리며 벼를 찧었지만 들어오는 곡식보다 찧어낸 곡식이 적어서 벼가마니를 들여 쟁일 자리도 없었다. 조순근은 자기의 벼가마니를 들여다 쌓고는 바삐 돌아치는 정기수의 일을 거들어주었다.

밖에서는 고기비늘처럼 달린 함지박이 물을 받아서 떨구는 소리가 폭포떨어지는 소리처럼 장쾌하게 들려왔다. 조순근은 신명이 나서 무거운 벼가마니를 옆구리에 가방끼듯하고는 방아간안을 돌아쳤다. 흥묵은 풍구앞에 앉아 찧어낸 쌀에서 겨를 갈라내느라고 땀을 뻘뻘 흘린다.

《방아삯이 눅다했더니 담배 한대 피울새없이 부려먹는걸.》

흥묵은 풍구채를 당겼다밀었다하며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도 조순근이 벼가마니 다루는 일을 시작하자 그냥 서있기가 뭣해서 쉬운 풍구질을 맡았는데 그것도 쉴새없이 들이대니 고될수밖에 없는것이다.

《힘들문 쉬염쉬염 하라구. 임자를 부려먹어서야 되나.》

성미가 고정한 정기수가 허리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도 쉬지 못하니 허리가 쑤셔났다.

《좌우간 성님은 수났수다. 눅게 받든 적게 받든 삯은 삯이니 이 숱한 베를 찧으면 땅 살 돈이 아 안나오겠시꺄.》

《앗따, 흥묵이한테서 침자 받아 땅사? 이 형님이 땅살맘 있으면 벌써 그랬지.》

정기수는 대꾸를 안하는데 옆에 있던 농민이 이죽거렸다.

이때였다. 방아간문이 벌컥 열리며 서만호의 서사 성배가 훌쩍 들어섰다.

《다들 여기 있었구만. 수고들 하는데!》

한쪽다리를 절며 다녀서 일명 《국둑발》이라고 불리우는 성배는 벌써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것을 알고 온것 같았다. 바투 깎은 상고머리에 줄간 검은 양복을 빼입어서 온몸에 기름이 쭉 흘렀다.

《저게 다 〈꼭다리〉만 져다 팽개치구 번 낟알이겠소?》

그는 들보가 닿게 쌓인 벼가마니들을 치떠보며 말을 걸었다. 모두 일손을 멈추고 시비를 거는 그를 지켜보았다. 어쩐지 남의 물건을 만지다가 들킨 때처럼 낯색들이 불안해졌다. 정기수가 오르내리는 방아를 멈추었다. 방아가 멎자 밖에서 좌르륵좌르륵 물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무슨 일이요?》

정기수가 손을 털며 다가갔다.

《다른게 아니요. 내 장춘하를 만나서 정식 통고하자고 했는데 면에 회의가구 없더군. 한마디로 말하면 새 법령이 내렸소.》

장춘하란 신당리농민조합장이다. 그가 어려서 소학교물을 좀 먹었다고 선거되였는데 요즘 회의가 많아서 읍과 면으로 자주 올라다니였다.

《이 이보게, 국둑발이, 새 법령이라는게 뭔가? 땅이래두 준다는 소식인가.》

흥묵이가 벼가마니우에 걸터앉았다 일어서며 물었다. 그러자 성배의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빙긋빙긋 웃음을 지었다.

《못난 알뚜거비같은게.》

성배는 눈을 찔 흘기며 흥묵을 언짢게 쏘아보았다. 그는 가래를 톺아뱉으며 양복 웃주머니에서 네귀 반듯하게 접은 종이를 꺼내 펴들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뾰족한 턱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여기 신당리농조에선 잘못 나가고있소.

이때까지 3.7제소작료는 여기 이 새 법령에 의해서 다시 계산해야겠소.》

《아니 다시 계산하다니? 거 좀 똑똑히 말하게.》

농민들이 눈이 둥그래져서 그의 주위로 다가들었다.

《내 읽겠소. 특히 정기찬, 조순근, 리흥묵, 영길 애비이름이 옳지요?(그는 흥묵을 흘겨보며 물었다.) 그리고 정기수, 서춘길, 서순재들이 잘 듣소. 소작료에 관한 규정세칙이라. 세칙 첫째라고 할것 같으면 소작료는 물납제로 할사. 둘째, 소작료는 타조, 정조로 하며, 금비대와 수세는 소작인이 부담할사. 셋째, 종곡도 소작인이 부담할사. 넷째, 곡초는 소작률에 의하여 나누어가질것. 다섯째, 소작료를 3.7제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재래의 관습도 무방함. 이 아래에는 군인민위원회 서무과에서 발송한다는 공인이 있소. 당신들이 왜 부당한가? 에, 여기 이 마지막문구에 3.7제로 할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본래대루 할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말인고 하면 땅임자가 자기 생각에 따라서 그렇게 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다는 말이요. 그런데 당신들은 땅임자의 승인두 없이 제멋대로 했다 그거요.》

《가만, 거 나 좀 보세.》

조순근이 둘러선 농민들을 헤치며 손을 내밀었다. 성배가 세칙을 읽을 때 제일 아연해진것은 그였다. 귀에 익은 문구였다. 그런데 그것이 성배의 입에서 정정당당히 서만호를 비호하는 문구로 흘러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고싶었던것이다. 성배는 보겠으면 보라는 식으로 문서를 훌 던져주었다. 조순근이 날아떨어지는 종이장을 받아 정히 펴고 한자두자 따져읽었다. 문서를 읽는 그의 눈가장이 표표해지며 입이 꾹 다물려졌다. 성배가 지어낸 소리는 아니였다. 틀림없이 자기가 받아다가 서무과에 넘겨준 그 문건이였다. 조순근은 그때 그것이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조만식이 농민들을 허리펴게 하려고 만든 문서로만 철석같이 믿었던것이다.

《성님, 틀림이 없시꺄?》

성미 급한 흥묵이가 까시시 보풀이 인 입술을 감빨며 조순근이 들고있는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조순근은 묵직한 떡메에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것처럼 정신이 얼떠름해서 재래의 관습도 무방하다고 쓴 글자를 그냥 들여다보았다. 조순근이 조만식의 방에서 처음 소작세칙을 볼 때에도 이 구절을 읽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렇게 뒤집혀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에, 이 법령대로 참의어른은 금년도조는 본래대루 받겠다오. 그러니깐 대복이 아버진 벼 일곱가마니, 영길이네는 여섯가마니, 정기찬네는 열두가마니··· 그리구 이 물방아간집에서도 다섯가마니 미달이 있는데 이걸 추가로 도루 실어와야겠소. 에, 그리구 묵은 빚들두 빨리 물어야겠소.》

성배는 뜬금으로 앞서 호명한 사람들의 소작료추가량과 빚을 내리외웠다. 그리고는 조순근이 들고있는 문서장을 내라고 손을 내밀었다.

《좀 놔두게. 임자넨 여기 3.7제를 하라는 문구가 전혀 상관이 없다구 보나?》

조순근이 종이장을 두드리였다.

《상관이 있지요. 그래서 참의어른께서두 생각다가 금년만은 본래대루 하구 보자는거지요.》

《법을 그렇게 제 좋을대루만 지키면 되나. 우린 금년부터 3.7제를 해야겠네.》

조순근은 굵직한 눈섭을 꿈틀거리며 거칠게 내쏘았다.

《하하하. 그러니까 실상 이 법은 있으나마나한 휴지장이란말이요. 휴지장!》

《뭐 뭐 휴지장?》

《휴지장 아니구 뭐요. 땅임자가 싫다면 3.7제구 뭐구 못하는건 사실아니요. 또 당신들이 싫다면 땅임자두 본래대루는 못한대. 그러니 한뉘루 싱갱이질을 한댔자 결판이 날수가 있소. 법이라는게야 하면 한다 못하면 못한다, 이렇게 명백해야지 이게 어디 법이요. 속빈 강정이지.》

《법을 그렇게 우습게 아는게 무슨 나라 백성인가, 이 법은 서참의를 위해서 만든 법이 아닐세. 우리 농군들이 3.7제 해서 허리펴게 하려는 법이네.》

《하하하, 우리두 알구 있소. 대복애비가 가서 손도장을 누르고 찬성을 한 법이란걸. 나두 륙법전서를 읽은 사람인데 세상에 이런 뜨뜨미지근한 법조항은 보다 처음이요.》

성배는 입귀를 실룩거리며 랭소를 하더니 계속 열을 뿜어댔다.

《우리 참의어른두 이 법에 3.7제를 꼭 해야 된다는 조항만 있으문 두말 않구 그렇게 따르겠다구 했소. 그런데 여기 어데 그렇게 꼭 찍어서 3.7제 하라구 했소. 그건 그렇구 당신들의 죄가 어디에 있는가? 똑똑한 법두 없는데 목총을 휘두르며 3.7제를 제멋대로 했으니 천하에 이런 무법천지가 어디 있소. 당신들이 처음부터 곰살궂게 의논조로 나왔으면 참의어른두 양보했을지 몰라. 그런데 그런 강도짓을 하니 절치부심할 일이 아니요, 예? 남의 은전 하나를 훔쳐두 죄가 되는데 목총을 대구 약차한 쌀을 빼앗아? 무리징역들을 가고싶은가? 여러말 말구 미납량을 가져와야겠소.》

성배는 엄포를 놓으며 한사람씩 쏘아보았다.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조순근은 머리벽으로 선지피가 슬슬 새나가는듯 눈앞이 어질거리고 아래다리의 맥이 빠져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그의 얼굴빛은 정말 피를 뽑히운 사람처럼 하얗게 질리였다. 성배는 넋없이 서있는 조순근의 손에서 종이장을 훌 나꾸채고는 살룩거리는 다리로 문을 열어제끼였다.

《허허, 3.7제하라는 똑똑한 법이 없군 그래.》

성배가 나가자 농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글쎄말이요. 3.7제를 하라면서두 재래의 관습두 무방타니 어데다 송사질할데두 없구만.》

《헛허허, 참 맹랑허군. 아니 대복이 애빈 기왕사 도장을 찍을바엔 좀 온전한 문서에다 도장을 찍지 그따위 문서에다 찬성을 할건 뭐요.》

농군들은 환하게 앞이 보이던 꿈의 세계가 졸지에 어두워지는것 같아 락담한 얼굴들을 하고 저마다 한마디씩 조순근을 원망하였다.

《가만, 이자 문건을 발송한게 군인민위원회 서무과라구 했지?》

흥묵이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급히 담배꽁초를 비벼끄며 일어섰다.

《옳네, 왜 그러나?》

정기수가 선과실을 먹은 사람처럼 입을 떫게 다시며 한숨만 짓다가 눈이 떼군해서 물었다.

《음, 내 당장 가봐야지. 그 녀석이 일을 이렇게 망가치다니. 마을에 나와서 잔뜩 바람만 불어놓구 뭐, 원래대루 해두 무방해? 싱거운 녀석!》

흥묵은 벼가마니우에 벗어놓았던 두루마기를 털어입으며 숨이 차서 부르짖었다.

《임잔 도깨비여울물 건너가듯 무얼 혼자서 쑹얼거리나?》

정기수가 영문을 몰라하며 흥묵을 치떠보았다.

《내 창규녀석을 욕하는 소리요. 내가 술한병 먹구 그놈을 집에 들여놓은것부터 잘못이지··· 당장 읍에 올라가겠수. 성님, 내 달구질 부탁해유. 들었시꺄?》

《여보게, 가지 말게, 그게 무슨 그 사람 잘못인가.》

조순근이 당황해서 흥묵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문을 차며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