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4장 2


 

제 4 장

2

 

이날도 조순근은 어뜩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엌에 달린 자그마한 고방안에 서말들이 독 두개를 들여놓고 거기에 3.7제로 타작한 벼를 찧어서 채워넣기 시작하였다.

앓던 안해마저 키를 들고나와 조순근이 절구에 찧어낸 입쌀을 쓸었다.

《여보오, 이 숱한 벼를 무슨 수로 절구에 다 찧어낼랴구 그래유?》

키질을 하던 안해가 처마밑까지 올려쌓은 벼가마니가 어처구니 없어보이는지 억이 막힌 소리를 했다.

조순근은 안해의 말을 듣는둥만둥하고 절구공이를 들어 쾅쾅 내려찧었다. 눈섭끝에서 콩알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닭무리들이 조순근의 발치에 감겨돌아가며 흩어진 벼알을 부리로 극성스레 찍었다. 조순근은 벼겨가 얼굴에 게발려서 코구멍까지 노랗게 되였다.

《여보, 3.7제가 좋긴 좋수다. 집안에 사람 먹을거라군 생쥐 볼가심할것두 없는판이였는데 글쎄 쌀이 섬으로 들어오니···》

안해는 함지에 수북이 쌓인 쌀을 고루 펴놓으며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심정에서 토방에 높다랗게 쟁겨진 벼가마니를 보고 또 보았다.

김창규가 신당리농가들에 3.7제투쟁의 된바람을 일궈 일조에 변화가 일어난것이다. 그것은 창규자신이 말한것처럼 장엄한 뢰성을 터칠 발파구멍과도 같은것이였다. 창규가 떠나가자 신당리에는 즉시 농조가 생겨났고 절대다수의 빈농민들이 그 조직체에 운명을 맡기였다. 창규는 농조를 꾸리는것과 함께 억대우같은 청년들로 자위대를 뭇도록 하였는데 농군들의 의사에 따라 날파람있는 그의 처남 영길을 대장으로 내세웠다. 그리하여 지난날 서만호앞에서 숨도 크게 못쉬던 농군들이 농조에 뭉쳐서 자위대의 응원을 받으며 3.7제를 해냈다.

마을에 생겨난 조직체로 하여 배심이 든든해진 농군들은 저들이 거둔 수확에서 좋은 낟알로 먼저 자기 집 쌀독을 채워놓은 다음 3할의 량곡만을 서만호네 집마당에 메치고 돌아왔다. 마름들이 나와서 시비를 걸면 자위대원들이 목총을 휘두르면서

《무슨 시비질이야! 이만치라도 매해 가져다바칠줄 알아? 이제 〈꼭다리〉떨어질 날이 있을줄 알아라.》하고 을러메였다.

마름놈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그저 어리둥절해서 마당을 빙빙 돌았다. 《꼭다리》란 3.7제투쟁을 시작할 때 농민들속에서 나온 말이다.

누군가가 3할이라는 그 꼭다리까지 마저 농민들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농민들속에 퍼져 소작료철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였다.

높이 쟁겨진 벼가마니를 보며 잠시 취한듯이 서있던 조순근은 아름이 벌게 큰 쌀함지를 씽 안아서 고방에 들여갔다. 독 한개는 벌써 아구리우에까지 좁쌀이 골똑 찼다. 함지의 입쌀은 다른 독에 쏟는데 마저 쏟기도전에 독이 다 찼다.

《허허, 두더지두 나비 못되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지.》

그는 입이 벙글어져 함지를 내려놓고 쌀독을 쓸어보았다.

서만호가 이번 타작에서 숱한 손해를 보고도 꼼짝 못하는 일이 신기했다.

이것이 바로 법으로 누른 3.7제소작세칙의 덕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리 해방이 좋고 세상이 바뀌였다 해도 그런 법이 없이야 서만호의 승기를 무슨 수로 눌러놓겠는가.

조순근은 김창규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다.

사실 서만호가 3.7제법을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인것은 아니였다. 그러는것을 창규가 가르쳐준대로 농조가 모두 한덩어리가 되여 무섭게 나오자 그놈은 더 어쩌지 못하고 수그러졌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지주와는 드세차게 맞서야 한다는 창규의 말이 옳은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분이와 대복을 빼내는 일도 3.7제식으로 농조와 자위대의 도움을 받으면 수월하게 풀릴것이 아닌가. 그러나 조만식선생은 절대로 지주와 엇서서 아귀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조순근은 성사된 3.7제로 하여 속이 후련하면서도 무언가 가늠할수 없는 아리숭한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탐욕스럽기 이를데없는 서만호가 소작료 3할을 받아놓고도 저렇게 그냥 잠잠해있는것이 오히려 심상치 않게 생각되기도 했다. 3.7제를 하는데서 자위대원들의 응수를 받은것은 암만 생각해도 께름하였다. 자위대대장을 하는 흥묵의 아들녀석이 언제 소목수재간을 배웠던지 하루밤사이에 신통이 실총처럼 보이는 목총을 네댓자루 만들어가지고 지주집을 위협하면서 3.7제를 내밀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바로 조만식선생의 뜻을 거역한 행동이였다. 혹시 서만호가 신당리에서 벌어진 일을 조만식어른께 송사하고 조처를 기다리는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이 조순근이를 배은망덕한놈이라고 얼마나 꾸짖을가싶었다.

《형님 있소?》

누군지 마당으로 들어서며 큰소리를 질렀다. 조순근은 두손을 벌린채 뒤를 돌아보았다. 몸이 작달막한 사람이 조순근의 앞으로 마주오며 어깨에 새끼멜빵을 한채 절을 했다.

《누군데?》

창황중에 누군지 생각이 안났다.

《대복이 외삼촌이웨다.》

《뭐? 대복이 외삼촌? 야 이런!》

조순근은 퇴지우에서 뛰여내리며 모자 쥔 처남의 두손을 틀어잡았다.

《매부, 집안은 다 무고하우?》

《엉, 무고하구말구. 다 잘있다. 여보-오! 대복이 외삼촌 왔어.》

조순근은 처남의 어깨에서 멜빵끈을 벗기고 짐을 받아내려 퇴지에 놓았다. 부엌문이 벌컥 열리더니 두손을 걷어올린 안해가 뛰여나왔다.

《누이!》

《몽필아, 이게 몇해만이냐?》

안해는 제 오랍동생을 보자 당장 눈물이 쏟아져서 울먹이는 소리를 하며 그러안았다.

《누이, 울지 말어요. 몸은 좀 어때요?》

《으응, 명이 길어서 죽진 않는다. 들어가자.》

대복이 외삼촌은 뒤꽁무니에 찬 수건을 뽑아 땀과 눈물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조순근이 퇴지우에 놓았던 중태를 안아서 들고 들어왔다.

《매부, 욕많이 했겠지요. 엎디면 코닿을데서 누이 앓는데 한번 와보지두 않는다구.》

《너두 농사지어먹으면서 다니긴 어딜 다니겠냐. 그래 어떻게 이렇게 걸음을 했니?》

《매부, 금년엔 우리두 좀 살길이 열리는것 같수다. 그래 쌀 두말 지구 여기 장두 보고 매부네두 볼겸 해서···》

처남은 문옆에 놓인 중태를 들어다가 아구리를 풀고 신문지에 싼것을 펴내놓았다. 무명누비저고리와 차렵바지였다.

《누이, 대복이 옷 한벌 샀는데 맞겠는지 모르겠어. 그리구 이건 한말 남은건데 보태자시우. 여긴 쌀고장이라지만 누이네야 어떻게 입쌀구경 해보겠소. 대복인 아직 종살이 안끝났지요?》

《그 애두 이젠 곧 나오게 될것 같다. 령감이 그 애 일때문에 평양에 갔댔다.》

《아니 평양에요? 가서 재판이라도 걸었나요.》

《재판은 무슨 재판. 고마운 분을 만나 청원을 드렸다. 너두 그분을 알겠지. 조만식이라는 어른이 그 애뿐아니라 내가 앓는다구 옥돌약탕관을 보내주지 않았겠니.》

안해는 그 일을 자랑하고싶어 방구석에 놓인 궤짝에서 베보자기를 꺼내였다. 정성스레 싼 보자기잎을 풀어헤치자 아름다운 옥돌약탕관이 번쩍번쩍 흰빛을 반사했다. 너무도 귀한 물건이여서 아직 한번도 쓰지 않고 그렇게 간수해두고있었다.

《거 참 가보로 될만한 진귀한 물건이웨다.》

처남은 약탕관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희한해하였다.

《그러게 네 누인 그걸 보기만 해두 병이 덜리는것 같다누나. 그건 그렇구 너네두 식솔이 적지 않은데 쌀이 어디서 나서 이렇게 지구오니?··· 거긴 농사가 괜찮게 되였니?》

《중화땅이라는게 원래 시뻘건 괘질인데 곡식이 나야 늘 그렇지요. 이번 가을엔 날아가는 쌀가마닐 좀 잡았수다.》

《무슨 장사래두 시작했니?》

동생의 말이 궁금하여 조순근의 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허허, 장사는 무슨 장사겠수. 나두 매부 닮아서 땅 뚜지는것밖에 재간이 있수. 누이, 우린 이번에 3.7제라는걸 하지 않았겠수. 그래서 최첨지한테 3할 주구 내가 7할 먹었지요. 난 금년농사나 끝내군 평양성안에 들어가 지게나 질가 했댔는데 글쎄 이렇게 세월이 좋아질줄은 몰랐수다.》

《여기서두 3.7제 했다. 이자 토방에 쌓아놓은 벼가마니 못봤니.》

조순근이 방문을 약간 열고 벼가마니 놓인 토방을 가리켰다.

《저게 다 매부네거요?》

몽필이 일어서서 벼가마니를 세여보며 물었다.

《그렇단다. 저기 고방에두 찧어놓은 쌀이 두어독 된단다.》

처가 동생에게 낟알 들어온 수량을 일일이 말해주었다.

《야, 난 그런건 모르구 우리 중화땅에서만 3.7제한줄 알았지. 세상이 원래 이렇게 돼야 바루 되는거지요.》

몽필은 무릎을 치며 엉뎅이를 들썩했다.

《그런데 이사람, 이게 굳어질가?》

《뭐가 말이유. 3.7제가요?》

조순근의 소리에 몽필은 머리를 들었다.

《이렇게 많이 쌓아놓긴 했는데 너무 뜻밖에 횡재를 만난것 같아 그래. 땅임자들이 저렇게 약차하게 손해를 보구두 가만 있을가?》

《참 매부두, 3.7제가 허물어질가봐 걱정이유. 허물어지기는커녕 더 한급 뛰여올라간대요.》

《한급 더 올라가다니?》

《매부, 앞으룬 땅두 나눠준대유. 내 눈이 번쩍 뜨이는 실담을 한마디 하갔시다. 우리가 사는 고개너메 남곤면엔말예요 누이, 백양나무 서있는 고개 아래동네 생각나요?》

《생각나지 않구, 아이때 너랑 달구경 간다면서 올라가던 고개지.》

《옳수다. 그 아래동네가 남곤면인데 얼마전에 거기서 참 희한한 일이 있었수다.》

《무슨 일인데?》

《녜, 앞채엔 허청간과 외양간이 달린 어느 남향집농가에 웬 군복을 입은분이 오셨는데 글쎄 주인이란 사람은 지붕에서 이영을 이고있었대누만. 그분이 누구신지도 모르구.》

《그래서?》

《그래 지붕에서 내려가니까 그분이 토방에 앉아서 여기선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준다는 말이 돌아가는가고 물었답니다. 그런 소리가 더러 있다고 말씀올리니까 여기서 제일 잘사는 사람은 누군가, 그리구 제일 어렵게 사는 집은 누구네 집인가. 지정을 가지고 갈 땐 어떻게 가져다주는가 이런걸 차근차근히 묻더라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어른이 누구게?》

조순근은 옛말을 듣는 심정으로 다가앉았다.

《글쎄 내 말을 마저 듣수다. 주인이란 사람이 지주한테 지정을 가지고 갈 땐 닭알같은것이나 받쳐가지고 가선 거들떠도 안보기에 소갈비든가 숭어생선같은것이 아니면 떡을 해가지고 가야 받는다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원래 땅은 밭갈이하는 농민의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상이 거꾸로 되여있었지요. 1년내내 피땀흘려 농사짓는 농민에게는 땅이 없고 아무일도 안하는 지주에게는 땅이 많고··· 이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세웁시다!〉 하더랍니다.》

《음···》

조순근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주인이란 사람이 렴치를 불구하고 그 어른께 땅이 언제쯤 차례지는가고 물어보았대요. 그분이 하는 말씀이 그건 농민들자신께 달렸다고 하드래요. 농민들이 3.7제를 해내듯이 농조에 들어서 지주와 잘 싸우면 래년봄안으로두 땅이 차례질수 있다고 하시면서 지주의 땅을 나눠주면 지켜낼수 있겠는가고 물으시더래요.》

《땅을 지켜낸다?》

《녜, 그날 그분은 부락형편을 일일이 다 살펴보고나서 돌아가셨는데 들려오는 소문이 김일성장군님같다는거우다.》

김일성장군님이 거길 오셨댔다는 소린가?》

《글쎄 딱히 그렇다구 누구두 장담은 못하는데 짐작이 그렇다는거지요.》

《건 모를 소리다. 김일성장군님이 지금 나라를 세우신다는데 농사군집엔 왜 다니실테냐. 농사철도 아닌데.》

조순근은 담배내굴을 내뿜으며 머리를 저었다.

《매부, 농조에서 그러는데 김일성장군님이 앞으로 토지개혁을 하실려구 그렇게 농촌마을을 다 돌아보신대요.》

《글쎄 사실이 그렇다면 여북 좋겠니. 지금 3.7제만해두 과남한데···》

《허허 매부두, 제것을 찾아먹는데 과남하단요.》

《저렇게 용해빠지니 집안이 늘 이모양 이꼴 아니냐.》

대복이 어머니가 남편을 빗대고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누이, 그게 좋수다. 그런데 이 집에선 조반이 지나갔소 아니문 밥을 짓구있소? 난 배고프우다. 잔입에 20리길을 걸었더니···》

《내 정신봐라. 밥물이 다 잦았겠는데.》

대복이 어머니는 치마바람을 일구며 부엌으로 달려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