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4장 1


 

제 4 장

1

 

장군님의 승용차는 무연한 들판길을 지나 평양시가로 향하고있었다. 차창너머로 바라보이는 서쪽하늘에는 래일의 맑은 날씨를 약속하는듯 저녁노을이 비껴있었다. 노을은 바람에 퍼덕이는 기발처럼 붉은빛 물결모양을 이루면서 넓은폭으로 하늘을 덮었다. 차창밖으로 대동강이 내다보이였다. 저녁노을이 반사되여 대동강수면은 주홍빛으로 번들거렸고 거기서 서려오르는 물안개는 노을빛을 담아서 마치 붉은 연기가 타오르는듯 하였다.

승용차가 평천리 철공소앞을 지날 때 장군님께서는 먼저 양철을 말아세운 철공소굴뚝을 올려다보시였다. 뜻밖에도 푸른 연기가 타래쳐오르고있었다.

《무송동무! 저걸보우. 연기가 나오. 〈대동철제〉에서···》

《예?!》

박무송도 의외로움에 놀라면서 철공소담장안에 높이 솟은 양철굴뚝을 쳐다보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는건 철공소가 숨을 쉰다는걸 말하겠는데 그렇다면 주인이 온게 분명치 않겠소. 들어가보자구.》

장군님께서는 차문을 닫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시였다. 문이 열린 철공소작업장안에서는 모타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 울려나왔다. 뿌연 전등불밑에서 웃동을 벗어던지고 고무앞치마를 걸친 청년들 둘이 엇가로 힝힝 메질을 했다. 방안은 소탕에서 이글거리는 괴탄이 열을 뿜어 후끈했다. 청년들이 메질하는 사이짬에 엉뎅이를 들고 앉은 장년이 집게로 문 철편을 모루우에 대고 뒤집기를 한다. 그는 한손에 든 망치로는 땅- 따당 가락을 먹이기도 했다. 무슨 식칼을 벼려내는것 같았다. 메질에 흠씬 늘어난 철편을 물통에 던지자 씨익 하고 흰 증기가 피여오른다.

장군님께서 들어서시자 집게를 잡고앉았던 장년이 일손을 멈추고 급히 일어섰다.

《웬 분들이신지요?》

철공소주인인듯 한 그는 밖에 서있는 승용차를 얼핏 내다보고는 두손을 가슴노리에 모두고서서 장군님과 그뒤에 선 무송을 스스럽게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길인데 오늘 처음 철공소문이 열린걸 보고 기뻐서 들어왔습니다.》

장군님께서 장년의 거쿨진 손을 덥석 잡아쥐시였다.

《예, 며칠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새 제가 좀 어딜 갔다오다나니.》

《글쎄 그런것 같습니다. 난 무시로 이 앞길을 지나다니는데 저렇게 〈대동철제〉라는 좋은 간판만 있고 문이 늘 닫혀있는걸 보고는 아주 문을 닫아버렸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장군님께서 허물없이 작업장을 돌아보시자 주인은 황급히 쪽걸상 한개를 들어다가 편히 앉으라고 권하였다.

《일없습니다. 고되게 일을 하는데 앉아서 뭘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뭘 만들고있습니까? 식칼입니까?》

《예. 식칼두 만들구 바께쯔, 주전자 이런 잡화들두 만들구. 더러 주문을 받아서 난로나 쇠가마 같은것두 부어냅니다.》

《그럼 로도 가지고있단말입니까?》

《예, 뒤울안에 자그마하게 쌓은게 있습니다.》

철공소주인은 자랑하는 일이 어줍은지 굵은 목덜미가 붉어졌다.

《이만하면 기업이 괜찮습니다. 앞으로 전망도 있고. 그런데 벌이가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쇠모루우에 무랍없이 걸터앉으며 주인더러 쪽걸상에 앉으라고 하시였다. 그러자 주인은 황송한듯 여전히 두손을 앞에 모으고서서 일없다고 했다.

《원래 철물가게란것이 파철을 대기가 힘들어 그러지 벌이는 괜찮습니다. 왜정땐 세금등쌀에 벌이라는게 본전떼우고 하는 놀음이였습지요.》

《아, 앉아서 얘기를 합시다.》

장군님께서 손을 잡아끌어서야 그는 걸상옆대기에 송구스럽게 앉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담배를 꺼내 권하시였다.

《아니, 제게두···》

《어서 태우십시오. 나도 평양태생인데 14살될 때까지 여기 살아서 평양거리를 잘 압니다. 원래 이 성안에야 상업이 많았지 이런 기업이야 얼마 있었습니까. 서창에 고무공장이 하나 있었고 그 다음 몇군데 정미소, 솜타는 솜방집이 몇개 있었을뿐이지요.》

《정말 성안실정을 잘 아십니다. 사실 성안엔 잡화가게따윈 많아두 온전한 기업이야 없습지요.》

《나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자주 성안에 오군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진 이런 벼림질하는데 와서 무딘 농쟁기들을 벼려내가군 했답니다.》

장군님께서는 아득한 어린시절을 추억하는듯 눈길을 높이 들고 잠간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리고나서 철공소안을 둘러보며 기업을 좀 늘쿼서 평양성주변농가들의 농쟁기들을 여기서 다 만들어내면 농민들이 아주 좋아할게라고 하시였다. 그러자 주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저 그런데 제가 이런 기업을 허가없이 해나가두 정말 일없을가요?》

《일이라니요? 누가 기업을 못하게라도 합니까?》

장군님께서는 사뭇 심중한 표정으로 주인을 건너다보시였다.

《사실 전 며칠전부터 일을 시작하면서두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공산당에선 개인기업을 못하게 한다는 소리가 있어서··· 사실은 그래서···》

주인은 바재이면서 말꼬리를 얼버무리였다.

《편히 앉으시오. 나도 공산당에서 일을 보는 사람인데 누가 그런 말을 합디까?》

《예?!··· 공산당에서요?》

주인은 일순 놀라며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사죄하듯이 말을 이었다.

《어른, 용서하시우. 이건 기업밖에 모르는놈이다보니 아무말이나 마구 흘려서···》

장군님께서는 일없다고 주인을 안심시키고 친히 자리에 앉히시였다. 그제야 그는 약간 주눅이 풀리는지 한숨을 내쉬며 두손을 무릎에 놓았다. 메질하던 청년들이 모타를 끄고 도구들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들은 소문이 랑설은 아니였군요. 듣자니 공산당에서 기업을 못하게 한다는 소리에 주인님이 문을 닫고 서울로 가셨다더군요.》

《아니 그럼 어르신님께서 그걸 다 아시구···》

주인은 또다시 놀라면서 앉은자리에서 몸을 들썩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희끗희끗한 귀밑머리에 땀이 즐펀해진것을 보시였다. 관골이 두드러지고 허우대가 큰 주인은 죄를 진 사람처럼 더욱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수굿하고있었다.

《주인님이 오죽했으면 수십년동안 손때를 묻힌 이 철공소를 버리구 서울로 갔댔겠습니까. 무얼 모르는 사람들이 허튼소리들을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고 이왕 서울에 갔댔으니 서울소식이나 좀 들려주십시오.》

주인은 인자하게 웃으시는 장군님의 얼굴을 지켜보며 눈을 슴벅이였다. 그는 아무리 공산당이라 해도 이런분앞에서는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던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할아버지때부터 해오던 철물가게를 조금씩 늘쿼서 오늘 이렇게 철공소라는걸 차리게 되였습니다.》

주인의 눈에는 웬일인지 물기가 어리였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조그마한 철물가게로부터 철공소로 되기까지에는 눈물겨운 사연들이 있는가보았다. 주인은 쇠먼지들이 오른 까마득히 높은 작업장의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으니 얼마나 기뻤던지요. 얼씨구나 이젠 왜놈들 세금등쌀도 안받고 한번 소리치며 해보자 하고 생각했습지요.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료들이 하나둘 기업을 거두어가지고 남조선으로 간다지 않습니까. 그래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북조선에서는 필경 공산당이 정권을 쥘터인데 개인기업을 아주 몰수해서 국유화해버릴거라고 합디다. 뭐 공산당은 공산공처가 구호라나요. 그 말을 들으니 맥이 탁 풀렸지만 설마 그러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이 철공소앞에서 연설을 했는데 정말 공산당은 일체 개인기업을 허락치 않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숱한 사람들이 있는곳에서 저한테 손가락질을 하며 당신도 그걸 알아야 한다고 소리칩디다. 알고보니 그 사람이 평남도 공산당부에서 무슨 큰 벼슬을 하는 사람이랍디다.》

주인은 낯빛이 컴컴해지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그날 청천벽력을 맞은듯 눈앞이 캄캄하고 아래도리가 휘청거려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온밤 궁리하다 못해 에라 나도 철공소문에 빗장을 지르고 서울에나 가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우선 서울형편을 보고 재산정리를 해서 식솔들을 데리고 들고뛰자는 심산이였다.

그때가 9월중순이였다. 배에다 광목 몇필을 싣고 인천항을 거쳐 서울에 들어서자 벌써 10월에 잡혀들었다. 그는 려인숙에 들어 한 20일 묵으면서 앞서 서울로 넘어온 동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철공소주인은 서울로 가게 되였던 동기를 이렇게 말씀올리고 나서 계속하였다.

《그런데 서울장안을 돌아다니며 보느라니 공장이나 개인소기업은 모두 문을 닫았는데 상품은 여기저기 흔하더란말입니다. 이상타해서 보니 물건너온 미국상품이 장마당, 가게방들에 널리고 쌓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가 어느날 동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술집에 가서 한잔씩 하고는 온밤 통곡을 하더군요. 저렇게 유에쎄이가 쓸어드는데 여기에 기업은 무슨 기업을 차리겠느냐고 가슴을 칩디다. 모두 기업을 차려놓기 바쁘게 파산을 하고 알거지가 되여 지게나 지게 될게라는게지요. 그런데 또 이튿날에는 무슨 〈전국농민회의〉초청장을 받구 서울에 왔다는 평남도 대표라는 사람을 려관에서 만나보군 눈앞이 더 캄캄해졌습니다. 그 사람의 말인즉은 남쪽사람들은 이제 일제때나 마찬가지로 식민지생활을 하게 될것 같다는게지요. 그래서 전 북행차를 다시 잡아타게 됐습니다.》

철공소주인은 무슨 지옥에라도 갔다온것같이 몸서리를 치고나서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장군님께서는 철공소주인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 놀라시였다.

그이께서도 이미 며칠전에 《전국농민회의》의 초청장을 받고 서울에 갔다온 평남도 농민대표를 만나보시였었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철공소안을 둘러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주인장이 그새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겝니다. 마음을 푹 놓고 기업을 하십시오.》

《그러니까 공산당에선 개인기업도 장려하신다 그 말씀이겠습니다.》

철공소주인의 얼굴에서 반신반의하는 빛은 좀체로 사라질줄을 몰랐다.

《예, 불안해할게 조금도 없습니다. 산업을 부흥시키는것은 공산당의 기본정책의 하나입니다. 내 말이 진짜인가 하는건 두고보면 됩니다.》

《하지만 참 모를 일이 또 있습니다.》

철공소주인은 적삼앞섶을 여미며 무엇이 의문되는지 심각한 얼굴빛을 하고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의문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저···》

철공소주인은 두손을 맞잡고 불안스레 비비면서 바재이였다.

《왜 그럽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그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전에 평남인민정치위원회에서 오라기에 가니까 민주당에 안들고 무소속기업을 하면 공산당국유화정책에 의해 즉시 몰수될거라구 합디다. 지금 기업가들이 개인기업을 운영하는것은 민주당의 보호를 받고있기때문이라는거지요. 민주당이 승해야지 공산당이 승하면 철공소를 빼앗긴답니다. 공산당이 지주의 땅을 뺏으려 하는것처럼··· 그래서 전 민주당에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화제가 뜻밖의 문제로 번지는 바람에 놀라운 생각이 드시였다. 더우기 평남인민정치위원회의 일부 사람들이 공산당에 대한 나쁜 선전을 하고있는데 기분이 흐려지시였다. 그것은 물론 어느 한 개인의 발언이지만 정치적도전이라는 생각에 심중해지시였다.

철공소주인은 장군님의 얼굴에 떠오르는 어두운 빛을 일별하고 불안해하였다. 그는 공산당의 높은 어른앞에서 괜히 민주당에 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후회하게까지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심중속불안을 헤아리고 너그럽게 말씀을 떼시였다.

《주인장이 민주당에 들었대서 조금도 다르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당을 우당으로 생각하며 함께 손잡고 새조선건설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지주의 땅을 몰수하려고 하는가?》

이렇게 반문하며 손을 드시는 장군님의 얼굴에는 불깃하게 혈조가 피여올랐다.

《그건 결코 개인소유라는것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농민들이 부당하게 빼앗겼던것을 도로 찾게 해주자는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주의 땅이 주인장처럼 제 오륙을 놀려서 장만한 땅입니까? 그 땅에다 지주는 땀한방울 흘린적이 없고 밭한이랑 간적이 없습니다. 또 주인장처럼 밑천을 대고 리익을 뽑는것도 아닙니다. 그저 손바닥에 장부책 하나만 들고 앉아서 농민들의 등가죽을 벗겨먹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농민들이 조금 비위에 거슬리는 하소를 하면 경찰을 불러대다 혼을 내우군 했습니다. 그러니 농민들의 목을 지리밟도록 그 땅을 그냥 지주의 손에 넣어두게 할수가 없지요.》

주인은 눈지방이 벌거우리해져서 머리를 끄덕였다. 듣고보니 쉽사리 깨칠수 있는 매우 단순한 리치이고 또 사실이 그러한것이다. 정말이지 발뒤축이 닳도록 뛰여다니는 자기를 어찌 한평생 돼지처럼 먹고노는 심보고약한 지주에게 비기겠는가.

《지주의 땅을 뺏는다는 말에 기업가들이 놀랄건 없습니다.

우리가 개인소유를 부정할것 같으면 왜 농민들한테 땅을 개인소유로 나눠주려고 하겠습니까. 물론 일본놈기업이나 반역자들의 기업은 몰수해야지만 제나라사람들의 기업이야 무엇때문에 못하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마음놓고 기업을 일으켜세워야 합니다. 이제 농민들이 땅을 타면 농기구를 기수없이 요구하겠는데 이게 국가기업 하나만으로야 될 일입니까. 농민들에게 농기구도 주고 비료도 주고 물과 전기를 주려면 산업을 부흥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산업부흥을 정책으로 내미는것입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서 새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주인장은 건국을 한다는 심정으로 호미나 낫, 괭이, 보습같은것을 만들어냈으면 합니다.》

장군님의 진지한 말씀에 주인장은 연신 머리를 주억거렸다. 얼떠름해하고 불안스러워하던 처음의 표정은 가뭇없고 유순한 두눈에 안정을 찾은 밝은 빛이 어려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도 석연치 못한것이 있는듯 입을 열듯말듯 망설이더니 두손을 배허벅에 대고 일어섰다.

《간부어른, 제가 허물없이 소청 하나 드려도 일없을가요?》

《허허··· 무슨 청인지 제 힘으로 해결해드릴수 있는것이라면 이 자리에서 해드리겠습니다.》

주인은 금시 얼굴이 더 환해지더니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영필이, 거 안방에 들어가 필묵 좀 내오라구, 얼른.》

장군님께서는 필묵을 내오라는 소리에 웬일인가싶어 주인의 밝아진 표정을 바라보시였다. 주인은 긴장했던 몸가짐을 완전히 풀어버리고 즐거움에 들떠서 돌아갔다. 더부룩한 수염속에서 큰 입이 그냥 벙글벙글 웃고있다. 아까 주인곁에서 메질을 하던 청년이 벼루통과 백로지 한장을 들고나왔다.

《간부어른, 제가 올릴 청이란 다름이 아니고 저에게 기업허가증을 하나 써주셔달라는것이옵니다. 예.》

주인은 애원하는 눈으로 장군님께 붓을 드렸다.

《기업허가증 말입니까? 가만 어쩐다. 난 지금 이런것까지 써드릴 권한이 없는데.》

《아니 무슨 겸손한 말씀을, 나무는 큰나무덕을 못보지만 사람은 큰사람덕을 본다지 않습니까. 제가 인생세파에 성인을 많이 보았지만 어른같은 분은 처음 뵈옵습니다. 그저 눈 질끔 감고 한자 적어주십시오.》

주인이 이렇게 비위살좋게 접어들자 장군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잡아내리며 옆사람들을 보고 웃으시였다.

《이런 난처한 일이 있습니까. 주인님, 이런건 오래지 않아 인민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발급해드립니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은 내가 허가증 대신에 주인장한테 청을 하나 드립시다.》

장군님께서 청을 하시겠다는바람에 주인은 필묵을 무릎우에 놓으며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청이온지 어서···》

《다름이 아니고 내가 오늘 이 철공소에 첫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저의 철공소물건이란건 고작 연장이나 잡화따위인데 말입니까?》

《별로 큰것은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호미나 낫, 괭이 같은것입니다.》

《호미같은것이라면 좀 벼려놓은게 있습니다.》

주인은 뼁끼칠한 자그마한 창고쪽으로 씽 달려가더니 얼른 호미가락을 집어들고왔다,

《저희들은 재래식호미만 가지고는 땅을 다루기가 불편할것 같아서 이 호미 순개를 좀 높이 후려가지고 개량호미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재래식이고 이게 개량한것입니다.》

《그것 참 잘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호미 두가락을 받아가지고 모루에서 내려앉으시였다. 그리고는 비탈밭도 생각하고 평지밭도 생각하며 재래식호미와 개량호미로 바닥을 긁어보시였다.

《음, 개량호미가 좋군. 그런데 목을 들어서 후린건 좋지만 날이 좀 좁고 날길이도 짧습니다. 날을 좀더 넓히고 귀와 끝을 늘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한번 긁어당기면 밭이랑옆대기를 보습날로 자리를 내듯 넓게 낼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건 쓰긴 좋을것 같은데 재래식호미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곰방호미입니다.》

장군님께서 농사군이상으로 호미맵시를 판별해보시자 철공소주인은 그만 눈이 퀭해졌다.

《이런 개량호미 비슷하게 만들면서도 긴 자루를 끼우면 서서도 맬수 있고 필요할 땐 편안히 앉아서도 한번에 넓적넓적 자리를 내는 그런것이 필요합니다. 좀 까다로울수 있는데 한번 만들어주십시오.》

《어른께서 직접 쓰시지는 않으시겠는데?···》

《저에겐 70평생 농사짓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십니다. 난 왜놈들과 싸우다가 20년만에 산에서 올 때 손자로서 할아버지에게 아무것도 긴요한걸 갖다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조국에 돌아오자 할아버진 손수 터신 벼를 찧어서 저에게 햇쌀밥을 맛보라고 보내오셨습니다. 일손을 못놓는할아버지인데 다루기 좋은 호미라도 몇자루 보내드리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알고 좀 부탁을 합니다.》

《아, 그러시댔군요. 제가 만들어올리겠습니다.》

《아니 몇자루만 만들게 아니라 수백수천자루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다 사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으로 원을 그리며 산처럼 만들어 쌓으라고 하시였다. 철공소주인은 또 한번 눈이 둥그래지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정식계약을 맺은것으로 하고 만드십시오. 빨리 만들면 만들수록 더 좋습니다.》

《예, 그런데 주문자의 함자를 장부에 올리고싶은데···》

송구한 생각에 주인은 두손을 마주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장부에 쓰십시오.》

《예, 쓰겠습니다.》

주인은 붓을 들고 올려다본다.

《주문자, 북조선공산당중앙조직위원회.》

주인은 붓대를 곤두세워들고 정성스럽게 한자한자 그리였다.

《그다음 명함은 어떻게 쓰시는지?···》

《이름을 꼭 써야 되겠습니까? 그럼 김일성이라고 해두십시오.》

《예?!》

주인은 한순간에 화석처럼 굳어졌다. 손가락새에서 붓대가 떨어지고 장부책이 발밑으로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