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3장 4


 

제 3 장

4

 

미국기발을 단 무개찦차 한대가 재령벌에 나타났다. 찦차는 뽀얀 먼지구름을 말아올리며 신당리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의혹에 찬 눈으로 들까불며 달리는 발바리차를 바라보았다. 차는 재령강다리를 건느면서부터 속력을 차츰 죽이였다. 구경거리를 만난 동네아이들이 발바리차의 꽁무니를 따라 달리며 소리질렀다.

《미국사람이야.》

《아니야. 조선사람이야.》

자동차안에는 미국군복을 입고 목덜미가 황소목덜미같은 조선사람이 앉아있었다. 운전수도 조선사람인데 같은 미군복차림이다. 평양주재 미군련락기관 통역관으로 와있는 서만호의 아들 서강이 서울에 나갔다 들어오는길에 잠시 집을 찾고있는중이다.

얼마후 자동차는 대문앞에서 앙칼진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대문안에서 개가 자지러지게 짖어댔다. 장작을 패던 머슴들도 무슨 일인가 하여 대문밖으로 얼굴을 기웃했다. 그러나 군복을 입고 검은 안경까지 눈에 건 서강을 인차 알아볼리 없다. 알아본것은 자동차소리와 개짖는 소리를 듣고 사랑채마루우에 나와 서있던 서만호다.

《아니 이게 누구냐?》

서만호는 버선발로 길이가 한발씩되는 섬돌을 츰츰 내려짚었다. 키가 구척이고 몸이 부얼부얼한 그는 두팔을 벌리고 허우적거린다.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서강은 쪽배모양의 군모를 벗어쥐며 허리를 굽혔다. 아들을 쓸어안을듯이 버선발로 대돌을 내려오던 서만호는 흥분을 수습하고 위엄있게 아들의 인사를 받았다.

《음, 수고했다. 그래 평양에서 내려오는 길이냐?》

《아닙니다. 서울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잠간 들렸습니다.》

《서울에··· 너는 서울을 제집문앞 드나들듯 하는구나. 나도 한때는 그랬다만··· 일행이 없느냐?》

《운전수뿐입니다.》

《그래, 게 누구 없느냐?》

서만호가 소리치자 나무를 패던 총각이 달려왔다. 대복이였다. 서만호는 대복이에게 운전수손님을 모셔드리라고 일렀다.

《잘 왔다. 어서 들어가자.》

서만호는 덧문을 열고 미닫이를 량쪽으로 좌르르 밀어제끼였다. 대뜸 마음속에 봄바람이 서린다.

《전번에 평양에 올라온 마름을 만나보니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고생이 많았더군요.》

서강은 애비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좀 고생을 한다. 그러나 그쯤한 고생에 못이겨 내가 지겠니. 난 네가 미국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와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는 마음이 탁 놓인다. 그래 넌 어떻게 해서 그런 자리에 뽑혀 올라갔느냐!》

서만호는 아들이 자리에 앉자 물었다.

《아버지덕분입니다. 아버지덕에 공부를 한때문입니다.》

서만호는 아들의 대답에 마음이 흡족해서 올방자를 괴여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역시 돼먹은 녀석이 틀림없다. 자식들이란 슬하에서 다 키워놓으면 오이꼭지 떨어지듯 똑 떨어져서는 어느 넝쿨에 달렸댔는지도 모르는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을것 같다. 애비의 은덕을 저버려선 큰일을 못하구말구··· 서만호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였다.

그는 아들의 중학공부는 서울에서 시키고 대학공부는 일본에서 하게 했다. 그리고 대동아전쟁이 일기전에 반년동안 미국에 보내여 양바람을 쐬운뒤에 다시 서울에 데려다가 공부를 더 하게 했다. 그러느라고 뿌린 돈을 다 모아 계산하면 한해에 받아들이는 소작미를 다 팔아도 모자랄지 모른다. 돈도 돈이려니와 중요한것은 아들을 왜정말기에 학도병의 올가미에서 빼여낸것이다. 만약 그때 자기가 손을 쓰지 못했더라면 아들은 만주땅이나 저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서 한줌의 흙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빨간딱지까지 받은 아들을 빼돌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그는 돈뭉치를 뿌리며 뢰물을 섬기는 한편 일본인학장을 찾아가서 머리가 좋은 똑똑한 학생들까지 일선에 내여보내서는 안된다고 항의했다. 나중에는 총독부정무총감앞으로 그런 내용의 항의편지를 냈다. 서만호에게는 그럴만한 배짱이 있었다. 서만호는 6천여정보의 대토지를 소유한 황해도의 갑부로서 일제의 산미증식정책수행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있었다. 재령벌의 서만호라면 총독부에서도 무시할수 없는 존재였으므로 아들 한명쯤 떼달라는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리라고 기대했던것이다. 그 편지가 정무총감앞에까지 갔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뢰물이 은을 냈는지 편지가 은을 냈는지 아들은 학도병의 올가미에서 벗어났으며 서만호자신은 뜻밖에도 《애국자》로 소문이 나게 되였다. 편지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내용이 와전되여 학병제도일반을 반대하여 정무총감에게 직접 항의를 들이댄 인물로 평가되였던것이다.

서만호에게 이런 래력이 있는것은 정말 다행이였다. 이것으로 해방된 지금 서만호는 자신을 《애국지주》로 부르게 되였고 또 주위에서도 그렇게 부르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은 어떠냐?》

서만호는 살이 핑핑한 아들의 얼굴을 고쳐 쳐다보며 물었다.

《서울도 좀 복잡하긴 합니다만 별로 큰일이 없습니다. 미군이 진주하고있는데 무슨 큰일이 생길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개를 펴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북조선에 넘어와보니 못된 공산당바람이 세상을 무서운 풍파속에 몰아넣었습니다.》

《그게 나같은 지주를 죽이는 바람이다.》

《아버지, 죽기는 왜 죽겠습니까. 북조선이 서울과 떨어진 무슨 딴 나라인줄 압니까? 종당에는 서울명령이 북조선을 휘여잡는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알고는 있다. 그러나 사태가 각박해지니 그런 생각이 자꾸 달아나버리는구나. 요샌 이 동리놈들이 무슨 농민조합이란걸 내오더니 소작료를 3.7제로 갖다내면서 사람의 목을 죄이누나. 앞으로는 또 땅을 빼앗아낸다구 지랄을 부린다. 이런 분통이 터질 노릇이 어데 있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토지개혁은 못합니다. 여기 공산당이 제아무리 날치며 땅을 빼앗아 농민들한테 나누어준다 해도 서울에 중앙정부만 나오면 순식간에 땅은 도루 지주의 소유로 돌아옵니다.》

《나도 그걸 믿는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언제 서느냐?》

《미국에서는 중앙정부를 세워주겠다는데 공산당바람이 그걸 방해하고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미군정청의 엘리오트고문님이랑 만났는데 하지각하와 아놀드각하께서도 여간 걱정하지 않는답니다. 토지개혁과 같은 그런 짓들을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서만호는 아들의 말이 그대로 힘이 되여 온몸의 피를 끓여주는듯 했다. 하지, 아놀드 얼마나 어마어마한 이름들인가. 아들이 바로 그들과 련계하고있다니 당장 걷어쥘 언턱이 생기는것 같은 느낌이 온다.

《말만 들어도 일만시름이 다 녹아내리는것 같다. 나도 이제부터는 중앙정부가 설 날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만 않겠다. 그래서 얼마전에 조만식령감이 평양공산당과 대처해서 무슨 당을 하나 내온다기에 자금을 한 1만원 보내주었다.》

《저두 들었습니다. 참 잘하셨어요. 조만식선생이 민주당을 결당했어요. 벌써 당원이 몇십만으로 불어난다고 합니다. 이제 북조선에서 공산당보다 더 세력이 크게 자랄것 같아요.》

《듣자니 평남도에선 조만식령감이 정권을 쥐고있어서 공산당이 마구 갈개치지 못한다구 하더라. 그래 언제 떠나겠니?》

《오늘저녁 묵구 래일 오전에 들어서면 돼요. 아버지의 일이 걱정스러워서 미군정청에 사연을 말하고 잠시 들렸어요. 엘리오트선생도 아버님께 문안을 하고가라고 하더군요.》

《엘리오트목사가? 응, 그 어른두 이젠 서울에 다시 왔구나.》

서만호는 엘리오트를 해방전에 평양에서 몇번 만나본적이 있었다. 서만호는 조만식과 친교를 가지면서 자주 례배당에도 드나들었는데 그때 엘리오트와도 알게 되고 그 줄로 서강을 미국에도 다녀오게 할수 있었다.

《그 어른도 고맙구나. 네가 잠시라도 들려서 모든걸 다 알려주니 힘이 생긴다. 가만···》

서만호는 말을 중단하며 미닫이를 좌르르 열고 덧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 대돌아래를 휘둘러살폈다.

《왜 그럽니까? 아버지.》

《혹시 고놈이 엿듣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놈이라니요?》

《아까 나무를 패던 대복이란 종놈말이다. 허허. 글쎄 고놈의 애비가 평양에 가서 조만식선생한테 제 애새끼들을 좀 내놓게 해달라구 청원을 하구 오지 않았니. 원 소가 웃다 꾸레미가 터질 노릇이지.》

《애비 이름이 뭔데요?》

《조순근이라고 너도 알겠는데 우리 집에서 머슴을 살던··· 조만식선생두 어이가 없었던지 나한테 편지를 보내왔는데 웬만하면 사정을 좀 봐주는게 어떤가구 했더라.》

《알만하군요. 그런데 동향은 어떤가요?》

《다른놈들과 꼭 같지. 그놈두 농민조합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하하. 아니 그따위들이 농민조합에 들어가면 갔지 눈이 개발바닥같은것들인데 아버지두 참.》

《아무것두 모르는것들을 휘동해서 세상을 뒤집어보겠다는게 공산당정치가 아니냐. 난 그 박종관이놈 말듣구 군수로 나가려다가 빈농패당이 너무 세차게 굴어서 침을 뱉구 돌아서구 말았다.》

《박종관이요? 그게 동흥리 박병칠의 양아들 아니예요.》

《옳다. 그게 무슨 군위원회에서 서무를 맡아본다나. 요새 그놈이 성출때문에 여기 신당리에 와있느니라. 허허.》

서만호는 입이 쓰거운지 가래를 돋구어올려 타구에 뱉았다.

《아버지, 종관이를 불러주십시오. 단단히 침을 놓아야겠어요. 그리구 3.7제두 못하게 하겠어요. 조만식선생이 3.7제결정을 내렸다는걸 알고계세요?》

《봤네. 그 편지속에 한장 넣어보냈더군. 괘씸한 노릇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을 돌봐달라구 자금이랑 보냈는데 정치를 그렇게 해?》

《아버님 그런게 아닙니다. 그 세칙을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거기에 구멍수가 있습니다.》

《난 모르겠다. 거기에 무슨 구멍수가 있겠니. 죽을 구멍수밖에 안보이더라.》

《그건 내 오늘밤에 자세히 알려드리지요.》

이때 대복이가 몸이 풀메뚜기같은 운전수를 앞세우고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서만호는 그제야 운전수손님을 모셔오라고 내보냈던 일이 생각났다.

《이 정신봐라. 심부름을 시켜놓구선 공연히··· 널 만난 기쁨에 운전수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있었구나.》

손님을 맞으려고 일어서는 서만호를 서강이 제지시켰다.

《앉아계셔요. 나보다도 나이두 어리구 또 내 아래사람인데요.》

서강은 앉은 자리에서 운전수에게 서만호를 소개했다. 자동차를 정비한 모양 걸레로 손에 묻은 기름을 닦으며 대문안에 들어선 운전수는 모자를 쓴채로 서만호에게 고개를 끄덕했다. 운전수는 서강이보다 몸이 체소하지만 눈길 돌아가는 품이 보통이 아니겠다고 서만호는 생각했다. 아무렴 운전수일망정 그런 기관에 머저리야 채용했을텐가.

《수고하네. 올라오게.》

서만호는 아들이 시키는대로 점잖게 인사를 받고나서 대복이를 불렀다. 그는 장서방을 데리고 못으로 가서 잉어를 큰놈으로 열놈만 잡아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는 서강이에게 안채에 들어가 에미랑 만나보라고 했다.

《어머니병은 어떻습니까? 차도가 좀 없습니까?》

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차도가 뭐냐. 아무래도 금년안으로 무슨 일이 날것만 같다.》

서강은 마루에 나가 구두를 신고 안채쪽으로 향했다.

서강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머니는 타구를 끌어당겨안고 가래침을 톺아뱉다가 두눈이 덩둘해서 쳐다보았다.

《네가 누구냐?》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아, 아니 강이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꿈이냐 생시냐?》

어머니는 타구를 밀어내놓으며 량팔을 벌렸다. 그러더니 마주 앉은 아들을 꽉 그러당겨안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립던 아들의 잔등을 두드렸다.

《네가 1년전에 왔다간 다음에는 처음 보는구나.》

해방되기전에 서강은 학병을 피해다니느라고 집에도 자주 못들렸다.

《어머니, 몸이 말이 아니군요. 그래 약은 계속 잡수십니까?》

《먹질 않구. 장 네생각이였는데 이렇게 나타났구나. 평양에 와있다면서 왜 이제야 왔냐. 에미는 네 생각에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있는데···》

《저도 어머니생각을 늘 하면서도 맡은 일이 중해서 그만 오늘에야 왔습니다.》

서강은 어머니를 부축해서 자리에 눕혔다. 에미는 반가운 정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팔목쥔 손을 내내 우들우들 떨었다.

《이런, 몸도 더 좋아졌구나. 네 아버지보다도 더 실하구나. 이런 팔이랑 목덜미랑··· 으으으.》

어머니는 소리를 내여 울기까지 했다. 그는 욱 기침이 올라와 자리에서 도로 일어났다.

《나 나 타구···》

서강은 타구를 제 에미입에 대주었다. 한참 톺아올리더니 큰 가래덩이를 하나 뱉아버렸다.

《어이구, 인제 숨이 나오는구나. 내가 이런 기침이 날 때엔 꼭 죽을것만 같다.》

《그래 기침약은 잡수셔요?》

《먹지 않구. 달여서 자꾸 먹지. 그래 재산상속을 하자고 왔니?》

서강은 소리내여 웃었다.

《재산상속을 해가지고 어서 이 집을 틀어쥐고 앉아라. 저, 저 사랑방년이 다 뽑아내서 어디다 도깨비 돌각담쌓듯 하는것 같다. 저걸 귀신의 조화처럼 벼락쳐 죽일수는 없니?》

《글쎄 자리에 누우십시오. 인젠 기침도 멎은것 같은데···》

서강은 또 어머니를 자리에 눕혔다. 그리고는 송낙처럼 어지럽게 덮인 머리도 쓸어넘겨주었다.

한시간나마 어머니의 방에서 지체한 서강은 바깥채로 다시 나오다가 중대문가에서 서울첩 월미를 만났다.

《아이구 도련님이 오셨네. 이게 얼마만이예요. 그런데 왜 벌써 나오세요. 좀 더 위로해드리지 않구···》

월미는 지어낸 아양을 떨며 반가와했다. 서강은 대꾸하지 않고 도끼눈으로 흘겨보며 지나쳤다. 그리고는 목이 터지게 가래침을 돋구어 뱉었다.

(기름쥐같은년!)

서강에게 있어서 월미는 더러운 녀자였다. 일제때에 어느해인가 서강은 일본 동경에 가서 영어를 공부하다가 여름방학이 되여 서울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아버지도 중추원참의운동을 하며 총독부정무총감을 만나려고 어느 려관에서 한달나마 대기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려관하인은 그날밤이 아버지가 장가드는 날이라면서 방으로 들어갈수 없다고 하였다.

《아니, 장가라니?》

《색시를 1만 5천원이나 주고 데려다 장가를 드오. 지금 색시가 와있소.》

서강은 밸이 울컥 치밀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는 하인을 밀어던지고 계단을 뚜걱거리며 올라갔다. 아버지가 들어있다는 방의 문을 여니 정말 발길을 넘겨놓지 못할 광경이 벌어져있었다. 선풍기가 빙빙 돌아가는 한옆에 아버지와 젊은 녀자가 앉아있었다. 젊은 녀자는 트레머리를 하고 량어깨가 내놓인 잠옷을 입었는데 그 어깨를 아버지가 포옹하고 앉아있었다. 서강은 너무 급해서 절만 굽석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보라구. 장가드는날 밤이래두.》

하인령감이 2층에까지 따라올라와 흐드득거리며 웃었다. 서강은 돌아서며 하인령감의 귀뺨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걸어서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그뒤 알고보니 그 녀자의 이름은 월미라고 했다. 그의 에미는 리왕조의 궁녀퇴물이라고도 하고 무슨 기생퇴물이라고도 했다. 녀자는 월미 하나를 낳아 키워서 고녀까지 졸업을 시켰다.

바로 이렇게 초대면을 한 서강은 월미에 대해서 목을 짓눌러 죽이고싶은 증오감을 가지고있었다. 고녀졸업생을 돈 1만5천원을 던져서 사오는 아버지도 더럽긴 하지만 그런 녀자가 자기보다 30살이나 나이를 더 먹은 인간의 품에 몸을 던진다는게 더 역스러웠고 구역이 치밀었다.

서강이 사랑채앞으로 나오니 운전수는 마루에 앉아 시누런 배를 어석어석 씹고 서만호는 뒤짐을 지고 대문밖에 서서 자동차를 바라보고있었다.

《집의 아버님은 저 자동차가 아주 좋답니다.》 운전수가 턱짓으로 서만호쪽을 가리켰다.

《자동차도 좋지만 이 자동차앞에 띄운 기발이 더 좋다는거네.》

서만호는 자동차의 미국기발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 들어가십시다. 들어가서 얘기나 또 합시다.》

《오냐. 그런데 누구한테 시켜서 저 자동차를 지키게 해야 하지 않을가. 못된놈들이 나타나 저 기발이라도 뽑아버리는 날엔···》

서만호는 곁에 다가와선 서강이를 돌아보며 초조해서 말했다.

《아버지, 그렇게는 못합니다. 저걸 다치는 날엔 국제법에 걸립니다.》

《하긴 그렇지. 공산당도 국제법은 지켜야 하니까. 음. 어서 들어가자. 이젠 준비가 거의 됐겠는데 오래간만에 만난 부자상봉연을 베풀자.》

서만호는 얼굴이 활짝 핀 해바라기같이 되여 호기있게 아들을 앞세우고 사랑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지금 아들을 만난것이 아니라 자기 세상을 다시 만난듯 한 기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