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3장 1


 

제 3 장

1

 

벌써 동녘이 밝아오고있었다. 밤새도록 지름길을 걸어온 조순근은 오봉산기슭의 펑퍼짐한 솔밭속으로 들어섰다. 평생 설음을 안고 밟고다닌 숲이였으나 지금 그의 가슴은 끝없는 기쁨에 설레이고있었다. 머지않아 대복이, 서분이들이 종살이를 면하게 된다는 굳은 믿음을 안고 돌아오기 때문이였다. 그는 평양을 떠나 어제 늦저녁에 신환포나루에 도착했지만 급한 마음에 쉬지 않고 그냥 밤길을 걸었다. 기쁜 소식을 안해와 아이들에게 빨리 알려주고싶었다.

조순근은 새삼스레 숲을 돌아보았다. 낮에는 흰두루미가 깃을 치며 날아오르고 밤에는 수리부엉이들이 우는 이 울창한 솔숲을 등지고 지주집이 천하를 굽어보며 위엄있게 앉아있는것이다. 지주집은 아흔아홉간의 큰 기와집이였다. 왕의 궁궐이 아니고서는 100간을 지을수 없다고 해서 한간없는 100간을 지었다. 집둘레로는 오봉산 깨바위돌로 키높은 담장을 쌓고 담장꼭대기에는 전부 질기와를 입혔다. 바깥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으로 종의 방, 머슴군들의 방, 마구간지기의 방들이 주런이 늘어서있고 큰 사랑채가 외따로 나가앉았다. 사랑채앞을 지나 중대문을 열고 들어가야 수십개의 방을 가진 안채가 있다. 청기와를 인 높은 용마루에서 내려오는 기와곬이 날카롭게 올려다보인다. 지붕들의 네귀 추녀마루가 날짐승들의 날개처럼 들려서 금시 룡궁과 같은 대궐이 푸른하늘로 날아갈듯하고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들은 무시로 불어오는 솔바람에 처량한 소리를 낸다. 대문밖에는 머지 않은곳에 운동장도 펼쳐져있다. 서울과 일본출입을 하는 서만호의 아들 서강이 집에 들릴 때면 정구를 치던곳이다. 서강이뿐만아니라 지주집에 찾아오는 도나 군의 유지들, 경찰관들도 술이 거나해서는 곧잘 운동장으로 나와 정구채를 손에 쥐군 했다. 운동장옆에 널벽과 양철지붕을 인 정미소가 있다. 받아들이는 소작미가 산더미같아 거기에서는 1년내내 쌀을 찧는 기계소리가 와르릉거린다. 정미소옆 련못가운데는 돌각담을 만들고 돌각담우에 옛장수같은 조각도 화강석을 다듬어세웠다. 더운 계절이면 련못에 하얀 련꽃이 한벌 덮이고 금붕어들이 물우로 추석추석 뜀박질을 한다. 조순근의 부자가 대를 이어 머슴살이를 하는 서만호지주집은 바로 그런 집이였다.

사랑하는 아들의 고역살이가 벌어지는 지주집 고대광실을 그려보며 시적시적 걸어오는동안 어느새 그 아흔아홉간집 솟을대문앞에 이르렀다. 우뚝 솟게 지붕을 씌운 바깥대문이 반쯤 열려있는데 벌써 그안에서 맨 적삼바람의 일군들이 허둥거리며 뛰여다녔다. 누덕누덕한 홑적삼을 걸친 더꺼머리 총각머슴하나가 댑싸리비를 들고 저쪽 중대문앞으로 걸어간다. 대복이였다. 조순근은 감히 대문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아들을 지켜보고있었다. 6년전에 이 솟을대문안으로 끌고 들어올적에는 조막덩이같던 소년이 이제는 어깨가 벌어지고 두다리가 실한 열여덟살의 대장부가 되였다. 키는 아버지만큼이나 후리후리해지고 목대가 성큼했다. 번듯한 이마에 눈섭이 진하고 코등이 덩실하게 솟은게 사내다왔다. 그러나 두볼이 아직도 애리애리해서 애호박같이 여린맛이 나는 아들이였다.

대복은 중대문을 활짝 열어젖히더니 안마당에서부터 활활 내쓸기 시작했다. 물을 뿌리고 빡빡 비질을 하는데도 석비레흙을 돌처럼 다진 마당이여서 비끝에 흙먼지 한점 묻어나지 않았다.

대복은 티검불을 몇오리 몰며 중대문을 건너 넓은 사랑앞마당으로 나왔다.

사랑대돌우에는 앞코숭이가 유리알같이 알른거리는 가죽구두들이 여러컬레 되는대로 덧놓여있었다.

서만호가 요즘 전답을 돌아본다더니 아마 어제저녁에 올가을추수와 리해관계가 있는 손님들을 청한것 같았다.

지주가 전답을 돌아보는 날은 하나의 명절과도 같아서 그 전날 초저녁에는 의례히 살찐 소한마리를 까눕혀 놓고 한마당 손님들이 둘러앉아 숯불이 타는 풍로에 고기구이를 하며 청주를 마시였다. 그래서 그날에는 마당쇠나 머슴, 안종들이 더욱 들볶이며 잠을 못잤다.

지금도 대청아래에서부터 풍기는 고기기름전내와 술내가 문밖에 서있는 조순근의 코를 찔렀다.

대복은 널린 구두들을 쌍쌍이 짝을 지어 옮겨놓다가 백고무신 한컬레가 대돌아래 떨어진것을 보고는 먼지를 털어 가운데자리에 놓고 다른것들은 옆으로 동안이 뜨게 드텨놓았다.

이윽고 허리굽은 늙은 머슴이 푸른 비로도천으로 현란하게 단장을 한 인력거를 끌고 사랑대청아래로 어기정어기정 걸어왔다.

《대복아, 작은 마님이 뼈국물을 우린걸 한사발 보내왔느니라, 가서 마셔라.》

로인은 인력거를 세워놓고 대복의 잔등을 밀었다. 이때 사랑문이 벌컥 열리더니 비단바지저고리를 입은 몸집 비대한 서만호가 웬 양복쟁이와 함께 대청으로 나왔다.

《저 인력거에 앉게.》

서만호는 마당에 놓여있는 인력거를 가리키며 양복쟁이에게 말하고나서 허리를 구붓하고 서있는 장서방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장령감, 이분을 읍에까지 모셔드리게, 급히 가야 할 분이니 부지런히 끌어야겠네. 젊은 아이들을 시켰으면 좋겠지만 그놈들이 끄는 인력거를 타면 엉뎅이가 깨지는것 같으니 어디 시키겠나. 그래두 인력거는 장령감이 살살 몰지.》

조순근은 장서방이 인력거채를 어깨에 메는것을 보고 몸을 피해 저쪽 담장옆으로 꺾어돌아갔다.

얼마후 서만호가 인력거를 앞세우고 양복쟁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대문밖으로 걸어나왔다.

《내 당초에 읍에단 량곡을 한톨도 팔구싶은 생각이 없네. 해주나 서울루 다 뽑을 작정이였네. 전번 장날 읍내놈들이 날 친일파라고 주먹을 뻗쳐올린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분기가 이네.》

《아, 그건 무식한 철도로동군들이 한것인데 참의어른은 괜히 읍사람들을 욕합네다그려··· 허허》

호강스럽게 인력거에 올라앉은 양복쟁이는 서만호를 구슬리듯이 껄껄 웃었다. 보매 그는 읍에 있는 량곡도매상같았다.

《임자두 아다싶이 내가 그날 뭐 군수를 하고싶어서 연설을 했나. 임자네들이 한사코 등을 밀어서 그랬던거지. 한데 알구보니 날 친일파로 몰도록 철도로동자들을 휘동한놈이 글쎄 전에 내 집에서 밥을 얻어먹다가 숱한 빚을 남겨놓구 야밤도주한놈이더란 말일세. 김창규라구, 여기 흥묵이라는 작인의 딸을 채가지고 도망친 천하 고약한 도둑놈일세. 그런 도둑놈이 군공산당에 높은 벼슬자리를 해가지고 왔다니 기막힌 노릇이 아닌가.》

서만호는 인력거를 보내고나서도 심란한 얼굴빛을 하고 그냥 대문앞에서 서성거리며 벌판길을 내다보았다. 그는 동서남북으로 끝간데없이 펼쳐진 자기의 백리전답을 돌아보려고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순편치 못한 모양이였다. 조금 지나 잘룩한 허리에 흑갈색 긴 치마를 휘감은 젊은 녀자가 대문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서만호는 생각에서 깨여난듯 천천히 몸을 돌리였다.

《손님들 조반차비가 다 됐나?》

《네에- 그런데 물길러 간 애가 오지 않아 그러잖아요. 조반전에 당신 정화수 마셔야죠.··· 원 계집애두, 궁뎅이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왜 그리 늘어빠지는지···》

얼굴이 매츤한 그 녀자는 서만호의 턱밑에 바투 다가들며 종알거리였다. 지주집에서 작은 마님으로 불리우는 서만호의 젊은 애첩이였다. 한해전부터 본댁이 앓아눕게 되자 아흔아흡간《대궐》의 음식범절을 지휘하게 된 그 녀자의 얼굴에는 왕후라도 된것 같은 오연한 기상이 넘치고있었다.

《정화수는 무에 꿨다먹은 정화수야. 쓸데없는 미신이지. 괜히 어린아를 고생만 시키면서···》

서만호는 얼굴을 찌뿌둥하고 시답잖게 내뱉았다.

《아유, 참의어르신님이 언제부터 자비심 많은 성인현자가 되셨을가? 그런걸 왜 6년동안 마셨어요. 호참···》

그 녀자는 애교있게 눈을 할기죽하며 늙은 남편을 치떠보고 말을 잇대였다.

《그리구 그 정화수놀음은 누가 시작한거게 칭원일가? 밤낮 무당소경을 끌어들이며 궁상을 떨더니 저렇게 옥체만강하시지···》

그것은 본댁을 시샘하는 독설이였다. 마침 그때 어깨박죽을 흠씬 적신 서분이가 오솔길을 걸어나오고있었다. 밝아오는 새벽빛을 안은채 물동이를 이고 푸르른 솔밭속을 걸어나오는 서분이의 모습은 시내가의 물망초처럼 청초해보였다.

《아니 왜 그리 늦어? 너 물길러 다니며 정말 잡것들하구 사설질을 하는게 안야?》

첩의 독기어린 눈총이 새벽추위에 파리해진 서분이의 얼굴에 들이박히였다.

《곧장 걸어왔세요. 마님》

괄세를 받고 욕을 먹는데 습관이 된 서분이는 그렇게 한마디 발명하고는 총총히 솟을대문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대문밖에 있던 두사람마저 다 없어졌을 때 조순근은 담벽을 돌아나왔다.

그는 떳떳이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지주의 눈을 피해 숨어돌아가는 자신이 못나고 치사스럽게 생각되여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주의 눈이 두려워 한참 대문앞에서 발볌거리다가 마당안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머슴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대복이 거처하는 머슴방에는 누구도 없었다. 문득 아까 대복이가 장서방과 이야기하다가 중대문안으로 뛰여들어가던 생각이 떠올라 중대문을 빠끔히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조순근은 의외의 광경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지주의 첩이 주방칸 문지방을 가로타고 서서 정화수를 마시는지 놋사발을 기울이고있는데 그앞에 대복이 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어디 말좀 해봐! 사내녀석이 녀자들만 있는 안채에 왜 드나들어? 흉물같은 녀석.》

그 녀자는 입안에 기울였던 놋사발을 내려놓기 바쁘게 가시눈을 하고 대복을 쏘아보며 앙칼진 소리로 따지였다.

《목이 말라서 물을 좀 얻자구 왔댔어요.》

《목이 말라서? 아니 바깥마당에 구멍우물이 큰게 있는데 안채에 들어와서 물을 얻자는건 뭐냐? ··· 오, 너두 정화술 마시고싶어 서분이한테 그리 살틀하냐? 어서 마셔라. 얘 서분아-》

그 녀자는 부엌쪽을 향해 새되게 소리를 질렀다.

《마님, 왜 그러세요?》

서분이 부엌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얘, 물 한바가지 떠오너라. 큰바가지루.》

얼마후에 서분이 영문도 모르고 속이 움푹하게 깊은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자, 옜다 마셔!》

지주의 첩은 손을 뻗쳐 바가지를 내밀었다. 대복은 한참 망설이다가 녀자가 하도 표독스럽게 재촉하여 몇발자국 걸어나가서 손을 내밀었다. 바가지가생이에 대복의 손이 와닿는 순간 첩년은 팔을 휘둘러 대복의 머리우에 물바가지를 들씌웠다.

《엣 치거워···》

조순군은 아들의 비명소리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뒤걸음을 치며 눈을 꾹 감았다.

그후 조순근은 자기가 어떻게 대문을 걸어나왔던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네년놈들, 언제까지 이처럼 시악을 떠나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