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2장 4


 

제 2 장

4

 

대동군안의 농촌마을들을 돌아보고오신 장군님께서는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김책, 강진건이들과 함께 집무실로 돌아오시였다.

그이의 책상우에는 여러가지 문건들이 무드기 쌓여있었는데 한쪽 옆에 조만식의 《서도빈농협의회결정서》사본과 소작세칙 그리고 1943년 11월 6일부 《매일신보》가 놓여있었다.

김책이 가져다놓은 문건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창가에 서서 책상우에 쌓여있는 문건들을 거느즉이 넘겨다보다가 맞은편 의자들에 나란히 앉아있는 김책, 강진건이들에게 시선을 옮기시였다. 그러자 문득 그이께서는 어느 한 량심적인 변호사의 회고담이 생각나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 변호사는 자기의 과거 변호사생활을 돌이켜볼 때 별로 떳떳하게 추억할만한것이 없지만 그래도 두가지 법정사건만은 후날 사람들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회고할수 있노라고 말했다. 그 하나가 청년혁명가 김책을 변호해준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섯개 독립단을 통합한 《광정단》의 군사부장 강진건을 도와 감형시켜준것이였다. 량심적인 한 변호사의 인생에 자랑을 새겨준 그 두사람이 지금 장군님앞에 앉아있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 강진건을 처음 보신것은 아득한 어린시절 저 팔도구에서였다. 짙은 눈섭과 우람한 몸집에 목갑총을 차고 김형직선생님을 찾아왔던 그때의 강진건은 기골이 장대한 호걸남아의 풍채를 가진 사람으로서 장군님의 어린 넋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었다. 그보다도 더욱 잊혀지지 않는것은 그렇게 덩저리 큰 사나이가 아버님앞에 엎드려 애원하던 목소리였다.

《선생님! 현황은 간악한 일제와 맞서 싸울 독립군의 존망이 우려되는 극단한 형세인줄 압니다. 무리한 요구인줄 알면서도 흩어지는 독립군대오를 바이 묶어세울 힘이 없고 초조와 불안이 심중에 차고넘쳐 선생님의 교훈과 시행을 받고저 찾아왔으니 적절한 조처와 훈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렇게 되여 강진건은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반목질시하던 장백의 다섯개 독립단을 하나의 《광정단》으로 통합하여 군사부장의 중책을 맡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1923년 여름에 체포되여 김형직선생님의 구명운동을 통해 량심적인 한 변호사의 변호를 받은바가 있었던것이다.

그때로부터 해방이 되는 날까지 20여년 세월 옥중생활을 하다가 인생말년에 이렇게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온 강진건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첫날부터 강진건을 찾기 위해 여러 대원들을 사처에 띄웠는데 마침 청진지구에서 공작을 하던 안길이 그의 행처를 알아내였다.

25년전 팔도구에서 보셨던 그 기골이 장대하던 호걸남아에 비하면 오늘 저기에 앉아있는 강진건은 얼마나 늙고 쇠잔해졌는가. 스스로도 이제는 성쌓고 남은돌이라고 탄식하고있는 로인이였다. 그럼에도 장군님께서 그를 찾아내여 인생의 황혼길에 들어선 그 때늦음을 가리지 않고 농촌혁명의 지도자로 키워주시려 함은 그의 젊은 시절의 꿈을 기억하고계셨기때문이였다. 그전날 강진건은 김형직선생님앞에서 자기에게는 두가지 필생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나라를 독립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농민들을 개명시키는것이라 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불우한 사나이였고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였던 그가 그러한 꿈을 가지고있은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책상을 마주하고 서서 김책이 가져다놓은 문건들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쳐드시였다.

《저 〈매일신보〉는 왜 가져왔습니까?》

《예- 장군님께서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아서··· 그게 바로 조만식이 일제시기에 쓴 글입니다.》

김책이 일어나서 장군님곁으로 다가섰다.

《학도병진출을 호소하는 격려문이지요?··· 나는 43년 그 당시에 이 글을 읽었댔습니다.···》

《그랬습니까? 저는 오늘 아침에 처음 읽어보고 좀 놀랐습니다.》

김책은 장군님께서 조만식의 친일격려문을 이미 알고계시면서도 여태 그에 대하여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그를 대해주신데 대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놀랐을겝니다. 오늘은 새 조선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두고봅시다. 같이 일해보느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매일신보》를 밀어제끼고 빈농협의회 결정서사본을 집어드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 명의로 된 소작세칙을 읽으실 때까지 기다리고 서있었다.

《김책동문 이 결정서와 세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장군님께서는 그것들을 다 읽고나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러자 강진건이 책상앞으로 걸어나와서 두 문건을 한손에 거머쥐였다. 얼핏 보면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 명의로 된 소작세칙은 공산당에서 제시한 3.7제결정을 정권기관의 명의로, 시책화한듯 한 인상을 주고있다. 빈농대표들의 모임에서 채택한 결정에 의거하여 세칙을 작성하였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였기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 세칙을 깊이 따지고보면 지주에게 유리하게 만든 점이 많았다. 김책은 거기서 조만식의 위선적인것을 느끼며 불쾌감을 가졌는데 《매일신보》격려문까지 보고는 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짙어졌다.

신문을 들어다 다시 보는 김책의 귀전에는 수백명의 젊은 조선청년들을 향해 웨치는 조만식의 열기띤 목소리가 쟁쟁히 울리는듯 했다.

《대동아전쟁은 바야흐로 나날이 처참가렬하여가고있다. 얼마전에 대본영발표로 알게 된 〈부겐빌〉도 근해 해공전의 전과같은것은 과연 통쾌무쌍한 일대 쾌사라 할수 있다. 허나 총후를 지키는 우리 국민은 이 혁혁한 황군전과를 다만 통쾌하다고만 생각하고있을 때는 아니다. 더구나 명년부터는 우리 반도에도 영광의 징병제가 실시될것이니 어느 누구보다도 국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전문이상 학교에서 고등학문안에서 배우고있는 청년학생들로서 어찌 이 광영을 앞두고 그대로 안한이 있을것인가···》

이것이 바로 《학도에게 고한다.》(일사보국 나갈 길은 하나다)라는 제명으로 조만식이 세상에 웨친 긴 격려문의 서두이다. 격려문은 자자구구가 너무도 친일적이여서 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어안이 벙벙해지도록 아연케 만드는것이다.

민족의 넋을 지키는 애국자로 자처하는 그, 그러다가는 문득 격려문을 써서 조선청년학도들을 일본군의 대포밥으로 내몬 사람, 소작세칙에 3.7제라는 조항을 박아넣고 빈농민들을 맞아들여 련민의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친일지주들의 악행을 곁들어주는 그, 참으로 조만식은 요지경속에 비치는 그림처럼 조화스러운 사람이여서 대중할수 없는 인물이였다.

김책은 장군님께 그와 같은 자기의 생각을 다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자못 심각해지시였다. 그이께서 며칠동안 강서 대동군쪽을 돌아본데 의하더라도 소작료를 3.7제로 문 농민들이 얼마 되지 않고 거의나 재래의 비률로 물었다. 일부 3.7제로 낸 농민들조차도 소작료를 종래대로 고쳐물라고 을러메는 지주들앞에서 전전긍긍하고있었다.

《조만식이 소집한 빈농협의회는 지금도 하고있는가요?》

《소집한 당일 오전에 끝났습니다.》

《한나절동안에···〈빈농협의회〉라면 세기적인 빈궁을 구제하는 문제가 론의되여야 하겠는데 한나절동안에 끝났단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믿어지지 않아 강진건이 들고있는 소작세칙을 다시 받아쥐고 국한문으로 된 글줄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나가시였다. 두어번 더 훑어보고 그이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이 창문쪽에 눈을 주시였다. 어둠이 짙은 창밖으로는 별들이 희미하게 내다보이였다.

《김책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이것이 농민본위의 세칙이라고 한다는데 실지로는 지주본위의 시책이 되고말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애써 감정을 누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선 첫 조항부터 봅시다. 소작제를 물납제로 한다고 했는데 금납제가 허용되여야 농민들은 화목이나 삯일, 벼림질같은데서 얻는 수입으로 소작료의 일부를 충당하고 일정한 량의 알곡을 보장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마저 빼앗고 지주로 하여금 량곡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시장에서 쌀가격을 통한 2중의 치부를 할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소작료지불에서 정조형태를 허용한것은 더욱 지주의 리익만을 생각한것입니다. 다 아시지만 타조는 수확량에서 계약한 비률에 의해서 소작료를 내는것이지만 정조는 수확량에는 관계없이 언제나 처음 고정된 량을 바치게 함으로써 농민에게 무제한한 착취를 강요합니다. 지주는 정조의 방법으로 농민에게 소작지를 빌려줄 때에 그 토지의 최고수확고를 기준하여 소작료납부량을 고정하기때문에 농민이 아무리 토지를 안고 신고해도 손해만을 보게 되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밖에 금비대, 종곡대, 수세 등을 농민에게 부담시킨것이라든가 농민이 응당 가져야 할 곡초마저 일부밖에 차지하지 못하게 한것을 비롯해서 모든 조항이 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해부해보면 지주에게만 리롭게 된 규정이라고 하시였다.

《더 설명할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3.7제를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재래의 방법도 무방하다고 한것을 보시오. 이것이 바로 빛좋게 앞에다 3.7제를 내걸었지만 뒤에다는 얼마든지 3.7제를 못하게 할수 있는 큰 구멍을 내놓은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문서장을 뒤집어엎으며 일어서시였다.

서글서글하던 그이의 눈에 어두운 시름의 그늘이 어리였다. 그이께서는 숨을 몰아쉬며 창문이 있는 벽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무거운 공기가 마치 서서히 그이의 뒤를 따라가는것만 같았다.

강진건이 주먹으로 무릎을 내리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거 듣고보니 정말 괘씸합니다. 두루마기령감태기가 10년묵은 구미여우같습니다. 그게 바루 농민들의 무지를 리용해서 교묘하게 지주편을 들어주는게 아닙니까. 그 령감자체가 부농이니···》

벌써 강진건의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불거져 풀떡거리였다. 성미가 급하고 대가 곧은 독립군출신의 그 로인은 비록 몸은 로쇠하고 병약해져서도 불같은 한창나이때의 성미는 그냥 남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의 흥분을 눅잦히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시였다.

《강선생님, 그렇다고 그저 덧대놓고 욕해서는 안됩니다. 왜 이러한 소작세칙을 내놓게 되였겠는가 하는데 대해서 우리가 좀더 심사숙고해봐야 합니다. 좋게 해석하면 소작인들의 생활을 잘 알지 못한데로부터 본의아니게 그와 같은 지주본위의 세칙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강선생이 말한것처럼 고의적으로 채 각성되지 못한 농민들을 우롱하여 지주계급의 리익을 교묘하게 합리화한 행위로 볼수도 있습니다. 첫번째 경우라면 우리가 잘 깨우쳐주면 되겠지만 두번째 경우일 때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장군님께서는 창턱에 놓인 주전자에서 물을 한고뿌 부으면서 생각해보시였다. 만약 조만식이 실지로 그렇듯 교활하게 3.7제세칙을 내놓고 지주계급의 리익을 합리화한 인간이라면 정치모략가라 할수 있다. 조국에 개선하신 첫시기부터 많은 동무들이 평남도에 우익적인 정권기관이 존재하는데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였지만 그이께서는 그를 배척하지만 말고 좋은 영향을 주어보라고 하시였다.

이제 며칠 안있으면 조만식을 당수로 하는 민주당이 발족하게 된다.

그가 앞으로 어떤 색채를 띠고 정치무대에 나서겠는지 아직은 딱히 가늠할수 없었다. 혹자는 조만식을 과찬하고 혹자는 애국애민의 허울을 쓴 위선적인 정치모략가로 혹평한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김책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 소작세칙에 대한 빈농들의 반향은 어떻습니까?》

《농민들이 모두 어깨를 들썩거리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조만식을 무슨 하느님처럼 생각하면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골몰하고있던 김책이 고개를 쳐들고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럴테지요. 어쨌든 3.7제를 한다, 농민들을 정사에 부른다 하는데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장군님.》

강진건이 조급하게 다시 일어섰다.

《전 워낙 조만식의 그 말총모자가 역겹습니다. 도섭이지요. 도섭··· 그 령감은 아마 60평생에 밥한끼 굶어본적이 없을겝니다. 당장 취소시킵시다.》

강진건은 떡메같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격을 터뜨렸다.

《강선생, 우리에겐 아직 중앙적인 정권이 없습니다. 우린 이제 겨우 자기의 당을 창건했을뿐입니다. 그러나 이 소작세칙은 비록 지방적인것이기는 하지마는 정권기관의 명목으로 채택한것입니다. 문제는 인민들자신이, 농민들자신이 그 세칙이 지주본위의 세칙이라는것을 인정하고 취소할것을 요구해나서야 합니다.》

《장군님! 그러니 농군들이 언제야 그걸 다 깨닫게 되겠습니까.》

강진건은 한결 목소리를 가라앉히였으나 여전히 개탄조였다.

《정말 우리 농민들이 무지하구 순박해서 야단입니다.··· 제가 옛말 한마디 하겠습니다. 한일합방후에 제가 의병을 따라다닐 때였습니다.》

강진건은 성급하게 말을 떼놓았으나 인차 이어대지 못하고 머밋거리였다. 중요한 론의를 하던 마당에서 실없는 얘기를 불쑥 꺼낸것 같아서였다.

《어서 하십시오.》

장군님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재촉하시자 강진건은 말을 이었다.

《그때 왜놈을 등에 업은 우리 마을 표창근이란 지주놈이 강진건을 잡겠다고 소란을 일구었습니다. 그놈은 우리 강씨 가문엔 소작도 주지 않아서 모두 굶을 지경이 됐지요.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어느날 밤 몰래 마을로 들어가서 20여호가 넘는 강씨일가를 모아놓고 야밤도주하자고 선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6촌형벌되는 형님네집을 비롯해서 예닐곱집은 표가놈한테 진 묵은 빚이 있기때문에 못가겠다는겁니다. 자 이런 답답한 인생이 어데 있겠습니까? 욕을 하고 구슬리고 별 사설을 다해서 타일러도 영 젬벽이지요. 그래 할수없이 가겠다고 나서는 집들만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렇게 되여 가게 된것이 장백현 덕수라는 지방이였다. 포수들이나 이따금 지나다니는 무인지경이였는데 강씨네가 짐을 풀고 정착한 다음부터 인총이 차츰 불어나고 황무지개간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번창해져서 대덕수, 소덕수로 갈라지게 되였다. 덕수마을에 정착한 강씨네는 한 이태 농사를 잘 지어 살림이 좀 나아지게 되였다. 그렇게 되자 강씨일가에선 못데리고온 친척들을 마저 데려오자고 의논을 하였다.

《그래서 일가 사람 하나가 리원으로 다시 나갔는데 얼마나 우직스러운 사람들인가 보십시오. 장백에서 잘 산다는 말에 귀가 번쩍해진 사람들이 어쨌는지 아십니까. 글쎄 지주한테 몰려가서 자기들이 장백에 가서 농사를 짓겠는데 한해후에 돈을 마련해가지고 와서 빚을 물면 안되겠는가구 대돌밑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을 했다지 않습니까. 그바람에 표가란놈이 왜놈경찰에 고해바쳐서 데리러나간 사람까지 류치장에 갇혔습니다. 얼마후에 경찰서에선 가족들이 안나오면 그 사람을 재판에 넘겨 감옥밥을 먹이겠다는 통지가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어찌겠습니까. 사람부터 살려야겠으니 두세집이 짐을 꾸려가지구 도루 리원땅으로 나가고말았습지요. 난 그때 목갑총을 메구 독립군을 하면서도 조선독립이란 꿈같은 일이구나 하는 허망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앉아계시였다. 그것은 처음 들으시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강진건은 그 옛날 목갑총을 차고 김형직선생님을 찾아 팔도구에 왔을 때에 바로 그 덕수마을 이야기를 하며 조선농민을 개명하려는것이 필생의 뜻이라 했었다. 그러나 강진건은 장군님께서 아주 어리신 때여서 그 이야기를 기억할수 없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자주 이야기하시는 우리 4촌제수인 염보배네가 장백에 들어간것두 바로 그때였습니다. 제가 그때 25살이였는데 이런 한심한 농군들이 우리 나라에 태반이나 되는데 무슨 수로 나라를 찾겠는가 하구 눈물을 뿌리며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지금도 농군들이 조만식을 하느님처럼 여긴다니 그때의 우리 강씨집안 촌무지렁이들이나 별반 다른게 없는것 같습니다. 과연 이 농군들을 언제가야 그리고 어떻게 개명시키겠는지···》

강진건은 실망한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장군님께서는 크게 웃으며 침체된 기분을 일변시키시였다.

《허허··· 강선생이 왜 이렇게 허무주의에 빠졌습니까? 물론 우리 농민들이 개명하지 못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지, 그자체가 농민들의 천성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운 당과 앞으로 세울 정권이, 농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들을 위해 투쟁한다면 우리의 농민들은 슬기롭고 힘있고 개명한 땅의 주인으로 력사무대에 등장할것입니다. 안그렇소, 김책동무?》

《그렇습니다, 장군님.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했다면 애당초 농촌혁명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농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데 모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책은 명쾌한 웃음을 띠고 20대의 청년처럼 씩씩하게 대답을 올렸다.

《옳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달된 결론입니다. 그것이 선차적인 문제입니다. 강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그게 바루 개명시키는거지요. 허허··· 신심을 가집시다···. 참, 황해도 당간부훈련반 졸업생들을 농촌군에도 더러 파견했습니까?》

《예, 이번 1개월반 졸업생들중에서 한 20명 선발해서 농촌군들에 파견했습니다.》

《20개군에 각기 한명씩 보냈어도 큰 성과입니다. 다들 제 몫을 할만하던가요?》

《녜, 아직 수준은 어리지만 결의들은 좋습니다. 대체로 농촌과 연고관계가 있는 동무들을 선발했는데 재령벌이 고향인 한 청년이 자기 고향엔 안가겠다고 해서 좀 시간을 끌다가 설복해서 보냈습니다.》

김책은 목책을 들여다보고 그의 이름이 김창규라고 했다.

《자기 고향엘 안간다?》

《사실은 고향에서 어렸을 때 량부모를 원통하게 잃고 머슴살이를 하다가 제철소에 와서 로동하는 동무인데 고향에서 떠나올 때 남의 집 외동딸을 채가지고 온 일때문에 좀···》

《그런 동무가 있습니까? 머슴살이를 하던 동무가 남의 집 외동딸을 채가지고 왔다니 거기에 무슨 가슴아픈 사연이 있을것 같습니다. 재령벌에서 머슴살이를 한 동무라면 더욱 가야지요.》

장군님께서는 창문가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듯 조용히 서계시였다. 창너머멀리 밤하늘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알릴듯말듯 들려왔다. 어째선지 장군님께서는 그 곡진한 밤새의 울음소리가 지난세월에 사무쳤던 호곡소리의 여운처럼 들리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