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2장 1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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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께서는 탁상우에 무덕무덕 쟁겨있는 책더미들을 괴로운 마음으로 한참 지켜보시였다. 그것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지난날 안창호, 김구 등 민족운동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관여해온 송신일목사의 책들이였다. 대부분이 마태복음이요 마고복음이요 하는 성서들이 아니면 순교자들의 고난에 찬 생애를 기록한 전기들이였다. 그런가하면 19세기말 20세기초에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이른바 《조선에 예수 그리스도의 혜광》을 비쳤다고 하는 아펜젤러며 헐버어트같은 미국인 목사, 선교사들의 《업적》을 찬탄한 목침같은 책들도 있었다. 또한 탁상에는 송신일목사의 저서도 몇권 있었다.

송신일목사의 인생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있는 그 많은 책들은 아주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이날 아침 장군님의 집무실에 들어오게 되였다. 결국 그것도 토지문제와 관련하여 생겨난 사건이였다.

요즘 송목사의 집에는 날마다 땅마지기나 가지고있는 교인들과 각처 유지들이 모여들어 토지문제를 놓고 의논들을 하였다. 공산당의 결정에 의해 소작료를 3.7제로 하고 나아가서는 지주의 땅을 모두 농군들에게 노나준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해진 지주들도 많이 찾아왔다. 그만큼 송신일은 명망이 높은 목사였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선과 박애와 만민평등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기에 마땅히 3.7제를 해야 하며 가난한 농군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권고하였다.

그러나 보안서사람들은 날마다 비단바지저고리나 값진 양복들을 입은자들이 뻔질나게 찾아드는 그 목사의 집을 의심하게 되였다. 그들은 송목사를 공산당의 결정을 반대하는 어떤 반동단체의 주모자로 점을 찍고 어느날 불시에 가택수색을 했다. 한편 그를 데려다 수일째 심문을 하고 의심쩍은 책들을 모조리 걷어갔었다.

이날 아침에야 그런 일이 있은것을 알게 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보증으로 송신일목사를 석방시키도록 하고 압수한 책들을 집무실로 가져오게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목사가 나쁜일에 관계할 사람이 아니란것을 너무도 잘 알고계셨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시절에 이미 송신일목사를 만나보신적이 있었다. 1927년 2월에 안창호가 길림에 와서 수백명 군중을 모아놓고 독립운동의 방략을 력설하는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동행했던 송신일목사는 조선의 성자로 일컫는 그 민족주의거두가 한 중학생으로부터 반박질문을 받고 무안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 소년중학생이 바로 장군님이시였다. 송신일은 그후 만주경찰에 체포된 안창호를 구출하기 위해 장군님께서 학생들을 규합하여 석방운동을 벌리는것을 보고희세의 소년영웅, 소년천재를 발견했다면서 부러 시간을 내서 그이를 찾아갔던것이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에게 이렇게 말씀했었다.

《저는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분들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력설하는 독립운동방략에는 본의아니게 민족의 운명을 위험에로 이끌어가는 자학적인것이 있기에 무례한줄 알면서도 반박질문을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애국의 가슴이 불같이 뜨겁건만 옳은 방도를 찾지 못해 걸음마다 좌절과 실의를 당하는 그들이 참으로 가여우시였다. 그이께선 그때 벌써 그들의 쓰라린 번민과 눈물을 누구보다도 잘 리해하시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더욱 그들을 잊을수 없었고 조국에 개선하자 여러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송신일목사를 새나라 민주건설에 내세워주시였던것이다. 그러나 장군님의 그 깊은 뜻, 송신일목사의 그런 과거사를 알고있는 사람은 별반 없었다.

문득 탁상에서 전화종이 울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생각을 중단하고 송수화기를 집어드시였다. 멀리 황해도에서 오는 전화였다. 그전에 황해도농민들의 비참상을 서면으로 보고했던 바로 그 파견원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리고있었다. 그는 조만식이 《서도빈농협의회》를 조직하였기때문에 지금 도내의 일부 지역에서 빈농대표들이 평양으로 떠나고있다고 보고하였다.

《알고있소. 그 협의회에서 무엇이 어떻게 토론되겠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빈농민들을 위해 협의회를 조직했다니 다행이요. 그건 그렇구, 동무가 량심적인 자산가들에게 호소해서 얼마간의 량식과 고기를 양평마을에 보냈다는데 그후 상태가 어떻소?》

《많이들 회복되고있습니다.》

《마음이 좀 놓이누만. 그러나 내가 늘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한것이요··· 문제는 농민질곡의 근본병을 빼버리는거요. 가을철이 되였으니 이미 지시한대로 농민들속에서 소작료 3.7제투쟁을 벌리도록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마치고나서 보자기를 꺼내여 책을 싸기 시작하시였다. 책보자기가 네개나 만들어졌다.

장군님께서는 늦은 저녁에 그 책보자기들을 가지고 송신일목사를 찾아가시였다. 그의 집은 선교리 유측에 있었다. 고색창연한 불교식건축물을 련상시키는 낡은 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번까지 세번째로 이 집에 오신다.

그이께서는 승용차를 대문밖에 세워놓고 주인을 부르시였다. 한참만에 문이 열리더니 쎄라복을 입은 예쁘장한 처녀가 마루에 나왔다. 지난해에 고녀를 졸업한 송목사의 딸 숙영이였다. 그 처녀는 바람소리 소연한 마당에 장군님께서 서계시는것을 보고 금시 주저앉을것처럼 놀랐다.

《응, 숙영이로구나. 아버지 계시냐?》

장군님께서 마루앞으로 걸어가시였다. 처녀가 미처 대답을 올리기전에 그이의 독특한 음성을 들은듯 송신일내외가 마루로 뛰쳐나왔다.

《장군님!···》

송신일은 외마디로 부르짖고는 비칠거리며 기둥을 짚었다. 너무도 감격하여 목사는 몸이 굳어지고 입이 얼어붙은 모양이였다. 환갑을 눈앞에 둔 갱핏한 몸에 하얀 은테안경을 낀 늙은이였다. 얼굴빛이 창백하고 코날이 날카로와 얼핏 보면 몹시도 차고 급한 신경질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는 비할데없이 온화하고 침착한 로인이였다.

젊은 운전수가 압수당했던 목사의 책들을 마루에 가져다놓는것을 보자 불시에 두 모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송선생님, 이런 불상사가 생겼으면 벌써 우리에게 알려야 했을게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도 마음이 격해져서 말씀하시였다.

《국사에 바쁘신 장군님께서 이 불민한 사람을 걱정해서···》

송목사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고 부들거리는 손으로 기둥만 쓸어만지였다. 그는 장군님을 웃방에 모시고나서야 마음을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씀을 여쭈었다.

《실은 저도 보안서원이 저의 등을 밀 때 처음엔 〈나는 장군님의 안중에 있는 목사다.〉 하고 호령하고싶었습니다. 허나 어찌 무엄하게 장군님의 존함을 함부로 팔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집사람에게도 끔쩍 그런 말을 못하게 했습지요. 제가 비록 나쁜짓을 한바는 없지만 제 머리에서 좋지 못한 냄새가 났기에 그 사람들이 저를 혐의자로 보았겠지요. 그래서 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송신일은 무안한듯 고개를 수그리였다. 무저항과 자아반성, 종교적참회는 그에게 있어서 타성적인것 같았다.

《선생님, 너무 그렇게 생각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추연한 표정으로 맞은편 벽을 바라보시였다. 거기에는 사랑《애》자로 꽃테두리를 하고 안창호의 필적을 새긴 폭넓은 족자가 걸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소리내여 족자의 붓글을 읽으시였다.

죽더라도 동포끼리는 무저항주의를 쓰자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자, 동포끼리만은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오직 사랑하자.

도산 안 창 호

송신일목사는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저 설교를 아직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는것인가. 그전날 안창호들은 길림에 와서도 매개인이 자아수양을 하여 동포끼리는 단합을 위해 악도 악으로 대하지 말고 사랑하자고 했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그 말속에 동포의 단합과 사랑을 호소하는 좋은 측면이 있지만 악을 사랑으로 대하라는 설교는 아주 해로운것이라고 하시였다.

《그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리완용이와 같은 매국노 민족반역자들까지도 사랑으로 용납하라는 설교가 아니겠습니까?》

장군님의 이 단순한 질문에 그들은 한숨만 쉬였다. 아마도 안창호들은 민족의 단합과 사랑을 갈망하던나머지 저렇게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른다.

《가택수색을 할 때 그 사람들이 저 족자를 보군 무슨 말이 없었는가요?》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아주 야단을 했습니다.》

아래방에서 숙영이 대답하였다.

《아버지를 노려보면서 〈당신네 예수쟁이들은 교활하게도 저런 빛좋은 말로 착취계급을 옹호해주고있소. 지주놈들이 소작인들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동포끼리는 무저항주의를 하자고 한단 말요.〉하구 발길로 내찼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압수해가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행동이 좀 란폭하기는 했지만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장군님께서는 당돌하게도 아버지편역을 들지 않는 숙영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나도 그들이 그 말만은 옳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저와 같은 설교로는 이 나라를 구원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은지 오랠게다. 다만 안창호선생을 잊지 못해 저 족자를 걸어놓고 있을게다. 그렇지요?》

장군님께서는 송신일목사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줄곧 고개를 수그리고있는 그의 얼굴엔 회의의 그늘이 짙게 비껴있었다.

송신일은 무엇인가 망설이듯 주밋거리며 머리를 쳐들었다.

《장군님, 저는 이번 세례를 거쳐 정치운동에서의 좌절과 실패는 저의 숙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심중해지시였다.

《한평생 하늘을 믿으며 정치운동을 해온 제가 정말 무신론자인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국사를 같이 볼수 있을가요? 저는 이제와서 부쩍 그런 의심이 듭니다. 사실 지난날 상해림정지도층만 보아도 거의나 다 같은 신자들이였음에도 옥신각신하고 지어 칼부림까지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앉아계시였다. 바로 그때문에 도산 안창호가 동포끼리는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자고, 오직 사랑하자고 했던가?

송신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를 심문한 그 젊은이는 종교와 공산주의는 수화상극이라고 했습니다. 전자는 유신론자요, 후자는 무신론자이기에 불상용적이라는겁니다.》

송신일의 목소리는 갑자기 떨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숙영에게 물으시였다.

《그래 너는 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전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더러 목사를 그만두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와 결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전 앞으로 공청에 들겠어요.》

숙영은 울어버릴듯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찌프리였다.

《아버진 그렇겐 할수 없을게다. 어떻게 수십년동안 믿어온 신앙을 버릴수 있겠느냐.》

《버릴수 있습니다. 아버지에겐 신앙보다도 장군님이 더 귀중합니다. 아버진 벌써 장군님의 개선연설의 한대목을 따서 족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게 완성되면 제가 저 족자를 버리겠습니다.》

《아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안창호선생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다 돌아가신분들이냐.》

장군님께서는 어쩐지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아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말씀하시였다.

《너의 아버지는 조선독립을 위해 조선의 하늘을 믿은 목사이다. 너의 아버지는 인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선량한 애국자이며 인도주의자이다. 나는 이것을 귀중히 생각한다.》

장군님께서는 아래방 길마리에 놓여있는 책보자기들을 가리키며 계속하시였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는 그전날 조선에 와서 성서를 퍼뜨린 저 헐버어트나 뮈텔같은 침략의 길잡이들처럼 원쑤들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에는 동의할수 없다. 아버지도 일본침략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아버지는 한평생 조선의 하늘을 믿었고 조선과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아버지와 왜 혁명을 함께 할수 없겠느냐.》

장군님께서는 문득 터져나오는 정씨의 흐느낌소리를 듣고 말씀을 끊으시였다. 숙영이도 얼굴을 손수건에 파묻고 어깨를 들먹거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눈길을 높이 드시였다.

《일부 사람들이 이번에 아버지를 욕되게 한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공산주의수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기때문이다. 숙영아, 나는 이제 아버지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렇게도 념원했던 모든것을 실현해보련다. 하늘이 아니라 이 조선땅에 천당을 꾸려보겠다.》

녀인들의 흐느낌소리는 더욱 커졌다. 송신일목사는 감격에 겨워서인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기원하며 기도를 드리는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채 까딱없었다.

그날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목사와 나라의 교육사업과 농촌문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시였다. 그이께서는 해방전부터 민족교육과 농민계몽에 관심이 많았던 송목사에게 교육선전부문의 중책을 맡기도록 이미 내정하고 그의 집을 방문하셨던것이다.

이튿날 송신일목사는 교육간부명단을 작성하는 도중에 뜻밖에도 조만식으로부터 《서도빈농협의회》의 지도성원으로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초청장에는 장차 민주당 주요석에서 사업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요청이 부언되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