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6장 4


 

제 16 장

4

 

일망무제한 옥토가 바라보이는 오봉산기슭의 나지막한 언덕에 봉분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마른 잔디를 한벌 덮은 봉분앞에는 《고 애토 리흥묵》이라고 쓴 비목이 꽂혀있는데 이름도 모를 산새 한마리가 고인의 령혼을 위로하는듯 곡진하게 우짖으며 산기슭을 날아옜다.

조순근은 봉분앞에서 찬이슬을 맞으며 하루밤을 지새웠다. 해가 떠오르자 산기슭을 하얗게 덮었던 안개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옥토벌을 옆에 끼고 들어앉은 신당리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였다. 스무나무가 설레이는 마을길을 지나 저쪽에 흥묵이네 이영집도 까뭇하게 내다보이였다.

조순근은 어제저녁에 널을 묻고 흥묵이네 가족들과 함께 성묘를 한 다음에도 좀처럼 슬픔이 가라앉지 않아서 온밤 혼자 앉아있었다. 비목에 새긴 《애토》라는 별호는 땅을 사랑한 흥묵의 마음과 평시의 소원을 담아서 마을사람들이 지은것이였다. 지금 흥묵의 안해는 졸지에 남편을 잃고 상심하여 집안에 누워있고 아들 영길은 원쑤놈들을 복수하겠다고 보안서원들을 따라 읍으로 갔다. 어제밤에는 분명 읍에서 무장테로단과의 접전이 벌어졌을텐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조순근은 날이 밝아오면서부터 반동무장단과의 접전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그는 반동무장단과 큰 싸움을 벌리는 일에 지장이 될가봐 여직 지주집에 갇혀있는 서분이에 대한 말을 누구에게도 입밖에 내지 않고 참아오는터였다. 그래서 서분이가 지주집에 갇혀있다는것을 알고있는 사람은 죽은 흥묵이와 조순근당자밖에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왕벌의 대문짝을 패고 들어가서 흥묵의 복수도 하고 애들도 구원하고싶었지만 반동무장단과 전투를 벌리는 이 기간에 분별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안되겠기에 어금이를 깨물며 참고있는것이다. 그러느라니 그는 가슴속이 다 타서 재먼지로 되는것 같았다. 어쩌면 악귀같은 지주집놈들이 서분이를 이미 죽여버렸을것 같은 끔찍한 생각이 자꾸 갈마들어 몸서리가 쳐지며 머리끝이 곤두섰다.

이틀째나 굶다싶이하며 지낸 조순근은 얼마후 요기도 하고 소식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을로 들어갔다. 마침 장춘하네 집앞에 이르렀을 때 총을 멘 영길이가 비지땀을 흘리며 마주 달려내려오고있었다. 그는 조순근을 보자 우뚝 멎어섰으나 숨이 턱에 닿아 미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순근은 그의 허둥거리고 다급해하는 모습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눈을 치떴다.

《어찌된 일이냐?》

《아저씨, 저 서···서강이놈이···》

《서강이놈이 어쨌어?···》

조순근은 괜히 가슴이 철렁해져서 영길의 팔소매를 붙들고 다우쳐 물었다.

《무장테로단놈들은 다 요정냈는데 글쎄 그 서강이놈이 빠져나갔어요. 그놈을 놓쳤어요.》

《뭐 그놈을 놓쳐?!···》

조순근은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놈 열놈을 놓쳐도 그놈은 어떻게 하나 잡아서 온 재령벌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릉지처참을 해야 해.》

조순근은 주먹을 떨며 부르짖었다.

《그래서 몽땅 떨쳐나서 그놈을 수색하고있는데 방금 매부가 와서 자위대원들을 데리구 빨리 지주집으로 가라지 않아요.》

《판이 이렇게 됐는데 그놈이 제 죽자구 집으로 왔을가? 아무튼 서만호놈이래두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지.》

조순근은 불이 이는 눈으로 지주집을 노려보았다.

영길은 곧 자위대원들이 대기하고있는 장춘하네 집으로 달려갔다. 조순근이도 길목에 있는 어느 한 집에 들어가 쇠스랑 한개를 집어들고나왔다.

쇠스랑자루를 휘두르며 서만호네 집을 향해 달려가는 조순근의 머리에선 대복이와 서분이에 대한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애들이 정말 살아있을가? 죽었을가?)

흑호놈에게서 불길한 소식을 들은 때부터 무시로 겹쳐오던 그 불안과 초조감은 극도에 이르러 온몸의 피를 말리우는것 같았다. 제발 죽지 않고 살아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기원을 걸음마다 외우며 그는 내처 달리였다.

조순근이 솔숲을 지나 련못가를 돌아서 지주집 대문앞에 이르자 말승냥이같은 두마리의 개가 버티고 서서 으르렁거리였다. 지주집에서 벌써 무슨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솟을대문을 안으로 잠그고 문턱짬으로 고삐를 빼서 개를 대문밖에 내놓은것이다. 어느 놈이 대문안에서 고삐를 쥐고있는듯 사나운 두마리의 세빠드는 붉은 이몸과 날카로운 흰 이발을 드러내고 달려나오다가는 고삐에 끌려 뒤로 물러나군 하였다.

조순근은 대문앞으로 더 접근하지 못하고 쇠스랑으로 개의 대갈통을 노리며 서있는데 별안간 와아-하는 함성이 등뒤에서 터져올랐다. 쇠스랑, 괭이, 도끼, 낫 등속의 쟁기를 든 수많은 농민군중이 리자위대원들과 함께 지주집으로 몰려오고있었다.

《서만호를 때려엎자!》

농민들은 고함을 지르며 빗장을 지른 대문짝을 도끼와 괭이로 조겨대기 시작했다.

서만호집을 들이친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부녀자들까지 밀려나왔다. 방안에 누워서 괴로운 심회를 하던 흥묵의 안해와 조순근의 안해도 머리에 수건을 동인채 허둥거리며 달려나왔다. 기실 서만호에 대한 이 마을녀인들의 원한은 하늘에 사무쳐있는것이다. 그네들의 아버지와 남편과 오빠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이 아흔아홉간 대가에 눌리여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으며 죽어갔던가.

바로 이때 강진건의 일행이 많은 군중들이 운집해있는 지주집대문앞으로 급하게 들이닥쳤다.

김창규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대문앞 돌계단우에 올라서서 군중들을 향해 손을 쳐들었다.

《여러분, 조용하시오. 떠들지 말구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들을 여기로 모이게 한것은 단지 지주놈을 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빨리 대복이, 서분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애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김창규는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목구멍으로 메여올라 기침을 깇었다. 군중들은 술렁거리였다.

《여러분, 우리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대복이, 서분이를 찾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장군님의 그런 사랑을 받고사는 해방된 새 조선의 농민들입니다.》

그는 계속하여 장군님께서 온 나라의 정사를 맡아보는 그 바쁘신 가운데도 이 나라 방방곡곡을 뒤져서 서분이의 남동생 막동이를 찾아주신 이야기를 하였다. 뜻밖의 소식을 들은 농민군중은 고마움에 눈물을 지으면서 술렁거리였다. 군중들속에 가슴을 움켜쥐고 서있던 조순근은 북받쳐오르는 감격의 오열을 참아내지 못하고 어깨를 떨기 시작하였다.

《장군님!》

어디에선가 한 녀인이 땅바닥에 엎드리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대복이 어머니였다. 그는 땅바닥에 두손을 짚고 머리를 깊이 수그리며 전신을 떨었다.

《장군님··· 장군님··· 장군님!》

대복이 어머니는 그저 이렇게 뇌이며 장군님을 부를뿐이였다. 마침내 조순근이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흙을 허비면서 소리내여 울었다.

김창규도 연설을 하면서 군중과 어울려 같이 울었다.

김창규가 연설을 마치자 보안서장이 불쑥 나서서 허공에 주먹을 뻗치면서 구호를 부르듯 웨쳤다.

《어서 지주집을 차지하고 대복이, 서분이를 찾아냅시다.》

그러자 군중이 우야 소리치며 지주집 대문앞으로 밀려갔다.

시우쇠가 촘촘히 박힌 널대문은 빗장을 꽉 물려놔서 어깨로 밀고 발로 차도 끄떡하지 않았다. 그러자 농민들은 들고있던 쟁기로 대문을 까부시기 시작했다.

조순근은 쇠스랑으로 대문을 쾅쾅 내리찍었다. 두꺼운 참나무널은 마를대로 말라서 오히려 쇠스랑끝이 낚시처럼 구부러지였다.

청년들 10여명이 어깨를 들이대고 어이샤 어이샤 하며 힘을 모아서 밀었다. 돌고삐가 빠졌는지 수장목이 떨어졌는지 몇번 움씰거리던 문짝 하나가 떨어져나갔다. 사람들은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사태를 일구며 대문안으로 마구 밀려들어갔다. 밀려들어가다가 언뜻 보니 《호신병》들이 여기저기 서있다가 행랑채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놈들은 행랑채 뒤로 가서 모두 담장으로 올리붙었다. 이것을 본 한 자위대원이 그놈들을 잡으려고 부리나케 바깥대문으로 돌아나왔으나 그사이에 벌써 그놈들은 죄다 담장을 넘어 오봉산으로 올리기였다. 어떻게 빠르게 기는지 나무밑을 기여 가는 꿩을 련상시키였다. 자위대원이 공포를 쏘며 추격하자 몇놈이 손을 들고 주저앉았다.

한편 바깥채마당으로 몰려들어간 군중은 사랑문앞에 성을 쌓고 고함을 질렀다.

《서만호, 이놈 나오라! 서분이, 대복이를 내놓아라!》

분노한 군중들이 연방 소리를 쳤으나 사랑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왕벌이 이놈 나서라! 문열고 나오너라!》

《네가 한당대 잘 처먹구 순편히 죽을줄 아느냐? 여기 신당리 농사군들이 다 왔다. 오늘 결판을 지어보자!》

자위대원들은 총을 겨누고 곤봉을 틀어쥐였다. 쇠스랑, 도끼, 낫, 걸이대들이 창검처럼 머리우로 올라갔다. 그래도 기척이 없자 조순근이 대돌을 디디며 사랑마루우로 성큼 올라섰다.

《이놈!》

그는 서만호의 사랑방문을 젖뜨리고 문안에 있는 미닫이도 열어제끼였다. 문틀이 깨여져나갈듯 와지끈 소리를 냈다. 그러나 서만호는 없었다. 문이 열려 굴속같이 된 금고가 나딩굴고 방안엔 무슨 문서책, 옷가지따위가 널렸다. 조순근은 방안으로 성큼 들어서며 월미의 방문을 활 열어제끼였다. 그 방도 란가가 되였다. 월미가 이고 도망을 치자고 꿍져놓았던듯싶은 무슨 옷보따리같은 큰 보퉁이 하나가 방안에 딩굴었다. 줄이 끊어져나간 가야금, 바스라진 경대, 세간이 온통 란장판으로 되였다.

《이놈이 어디루 가 뒈졌어?》

조순근은 월미의 방에서 뒤로 통하는 문을 발길로 걷어찼다. 거기에도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아니?!···》

어두컴컴한 방안에 곰같은것이 웅크리고앉아있었다. 방안이 훤해져서야 사람이 앉아있다는것이 알려졌다.

《네놈이 여기 있었구나. 이, 이놈아!》

조순근이 달려들어 서만호의 멱살을 들어일구었다. 문서보따리를 아이품듯 하고 앉아있던 서만호는 식은땀이 좔좔 흐르는 머리를 들고 반항없이 일어섰다. 어떻게 된 일인지 띠가 풀어져 겉바지가 흘러내렸다. 뒤따라 들어온 농민이 그가 부둥켜안고있는 보따리를 빼앗았다. 그러자 성난 두꺼비처럼 배가죽을 풀덕거리던 서만호는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조순근을 뿌리치고 농민에게 달려들어 보따리를 빼앗았다. 한아름되는놈이 발광하며 돌아가자 한둘의 힘으로는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그건 못가져간다. 내 목숨은 빼앗아두 내 땅문서는 못다친다. 이 무도한놈들아!》

눈덕이 핑핑한 서만호가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말승냥이 울부짖듯 째지게 소리를 질렀다.

《뭐 내 땅? 이 이리같은놈아, 그게 네 땅이라구? 네놈이 그 땅에다 땀 한방울 흘린적이 있어? 그리고 이 손모가지로 호미 한번 쥐고 놀려본적이 있게 제땅이야?》

조순근이 문서보따리를 쥔 서만호의 손목을 비틀며 부르짖었다. 그리고 대복이, 서분이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난 모른다. 이건 안된다. 이건 내 땅문서다. 어어이구, 땅 빼앗긴다. 집안에 누구 없느냐-》

조순근이 죽은아이 싸놓은것 같은 보따리를 빼앗아내자 서만호는 벽에 태를 치며 넘어갔다. 이어 농민들이 좁은 방으로 달려들어와 서만호를 짓밟았다. 이마며 얼굴이며 배며 마구 짚신신은 발로 쾅쾅 짓밟고 들이차고 했다. 처음에는 몇번 그 발길질을 막겠다고 허우적거리던 서만호는 더 반항을 못하고 네활개를 벌리며 멱찔린 돼지처럼 늘어졌다. 시퍼렇게 질린 입으로는 게거품이 부글부글 괴여나왔다.

사실 서만호는 이날 새벽에 은밀히 집에 기여들어온 서강이와 함께 도망치려고 했다. 그래서 금고속의 돈이란 돈은 다 꺼내서 보에 싸고 딴 궤속에 있는 토지문서, 무슨 채용증 같은것도 꺼내서 또 한보퉁이 쌌다. 서강은 보퉁이 두개를 달구지에 내다싣고 아버지더러 타라고 하고는 안방에 들어가 제 에미를 업어내왔다.

《얘야, 서강아. 어디로 가는거냐?》

《어머니, 서울로 갑시다. 서울로 가야 살아요.》

《이 집은 어떻게 하구?》

《이 집에선 이젠 못살아요. 여기서 살다간 공산당한테 죽어요.》

《그럼 가자. 아들이 아들이구나.》

에미는 등에 업혀나오며 아들의 어깨팍을 차닥차닥 두드려주기도 했다.

달구지 있는데로 나오니 기미를 알아차린 월미가 벌써 제옷고리짝을 내다 달구지에 싣고있었다.

《아니, 요 에무나이, 너두 서울루 가? 내 령감 빼앗아가지구 그만치 살았으면 됐지 또 서울로 따라가 살겠다구?》

서강이 자기 에미를 달구지우에 내려놓자 에미는 령감곁에 바싹 다가앉으며 월미의 고리짝을 훌쩍 밀어던졌다. 밑에 서있는 서강이가 또 땅바닥에 떨어진 고리짝을 뒤발질해서 차던졌다. 달구지곁에 가서 고리짝을 올려놓고 자기도 달구지에 타려고 어물거리던 월미는 굴러난 고리짝에 가서 몸을 쓰러뜨리며 애고 소리를 질렀다.

《여보 령감, 나를 내버리고 가요? 그렇게 정붙이고 살다가 나를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가요? 애고 원통해라··· 날 살려요. 령감!》

월미는 고리짝을 두드리며 서만호에게 애원하였다. 서만호는 땅바닥에 치마폭을 깔고 통곡하는 젊은 첩을 가엾이 내려다보았다. 그의 흰눈섭밑 붉은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괴여오르더니 유들유들한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옆에 대기하고 서있던 마름도 쿨쩍거리면서 달구지를 몰았다. 뒤에서 월미의 통곡소리가 더 처량하게 울려왔다.

《여보, 령감!-》

《얘 서강아, 저걸 아주 없애버리지 못하구 가겠니? 궁상스럽구나.》

에미가 서강을 보고 눈짓을 했다. 그러지 않아도 밉게 보아온 더러운년인데 떠나는 순간에 발악을 하는것이 듣기가 역했다. 서강이 권총을 뽑아들고 돌아섰다.

《이놈아, 너 어쩌자구 그러니?》

서만호가 달구지우에서 발을 굴렀다. 서강은 애비의 소리는 들은체도 않고 월미에게로 다가갔다.

《야, 이놈! 그만두지 못하겠니?》

서만호가 달구지우에서 기여내리며 고함을 질렀다. 서강은 애비가 그러자 권총을 도로 집어넣으며 침을 퉤 받고 돌아섰다.

《더러운년!》

《너희들이나 가거라. 난 못가겠다.》

서만호는 달구지우에서 보퉁이들을 끌어내려 안았다. 그는 벌써 제정신이 아니였다. 보퉁이들을 안은 그의 눈에 뿌연 안개가 끼는듯 하더니 흰자위가 유난스레 드러났다. 달구지에서 물러나는 그의 걸음이 비틀비틀했다.

《아버지, 왜 이래요? 여기 있단 다 죽어요!》

《죽어두 좋다. 집과 땅을 그대루 두군 암만해두 못가겠다. 너나 네 에밀 데리구 가거라··· 아, 선산에 천변재화가 왔는데 내 어딜간단말이냐.》

서만호는 고개를 들고 솔숲너머 산언덕을 바라보았다. 서분이가 정화수를 길러다니던 그 언덕길 너머에 아흔아홉간대가의 길복을 대대손손 지켜준 선산이 있는것이다.

《저 선산에 뻗쳤다는 령기는 어찌되고 집안이 이 모양 되느냐!》

서만호는 사랑마루로 달려올라가 기둥에 머리를 지끈 들이받았다. 두어번 기둥을 들이받은 서만호는 뒤골을 메치며 마루에 기절해 넘어졌다. 그의 손에서 보퉁이 두개가 빠져 대돌밑으로 디그르르 굴러내렸다. 서강이 마루우에 올라가 기절해넘어진 애비를 흔들며 정신차리라고 소리치는데 달구지우에서 또 째지는것 같은 새된 고함이 일어났다.

《저년이 저걸 가지구 뛴다!》

어느새 월미가 대돌밑으로 굴러내린 보퉁이 하나를 끌어안고 련못가쪽으로 내뛰였다. 돈보따리였다. 서강의 에미는 그것을 붙잡으라고 소리를 치는것이였다. 서강은 제 에미의 소리는 들은체도 않고 기절해넘어진 애비를 들어일구려고 했다.

《아, 아이구- 나 죽는다.》

달구지우에 있던 서강의 에미가 두부물자루같은 덩저리를 땅에 메치며 비명을 올렸다. 돈보따리 안고 뛰는년을 잡겠다고 온전치 못한 몸뚱이를 놀리다가 굴러떨어진것이다.

《아니, 그깐 돈이 뭐게 그러우. 죽느냐 사느냐 하는판에.》

서강은 혀를 찔 갈기며 에미쪽을 흘겨보았다. 그러고나서 애비를 둘쳐업고 퇴마루를 간신히 기여내렸다. 물독같은 비게덩어리를 업고보니 허리펴고 일어설 기운도 없다. 낑낑 갑자르며 한두걸음 내짚던 그는 그만 대돌을 헛짚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애비는 밑둥잘리운 통나무같이 나동그라지고 서강은 대번에 코밀이를 해서 코끝에 선지피가 빨갛게 내배였다.

《제길, 잘은 돼간다. 이러다가 언제 빠지는가?》

서강은 달구지채를 메고서서 새김질을 하는 둥글소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가 어리석은짓을 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겐 못간다.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저 늙은것들을 쳐싣고 여드레팔십리걸음을 하는 짐승을 끌고가다가는 다 녹는다. 보안서원들이 오죽이나 잘 따라오겠는가.)

그는 동그라진채 기신없는 애비와 달구지밑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에미쪽을 멀거니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얘, 서강아 뭘하구있냐? 날 어서 부축해다구. 저 쌍 월미년 잡아야겠다.》

에미는 헐떡거리며 간신히 비틀어짜는 소리를 내질렀다.

(하는수 없다. 나라도 살아야 한다. 다 몰살되면 누가 이 원쑤를 갚아줄테냐. 나라도 살아서 가문의 원한을 기어코 풀어야 한다. 젠장!)

서강은 강심을 먹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에미곁을 씽 스쳐 달려나갔다.

《얘 서강아, 어딜 가?》

에미가 눈이 퉁사발같이 되여 덴겁한 소리를 했다.

《어머니, 할수 없어요.》

《할수 없다니, 뭘 할수 없단말이냐?》

에미는 벌써 뭔가 눈치를 챈 모양인지 겁먹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를 끌구는 못가요. 다 죽어요 》

《아버지? 그럼 얘야, 나만이라두 데리고 가야 한다. 나만이라도!》

《어머니, 며칠만 기다려줘요. 내 나갔다 다시 올테니.》

《얘 이놈아, 그땐 이 에민 이 세상에 없는 몸이 돼!》

《걱정마세요. 내 꼭 와요.》

《에미애비 다 버리구 혼자 살겠단말이구나. 이, 이 불효막심···》

서강은 짐승같이 울부짖는 에미의 욕지거리를 등뒤로 들으면서 피눈물을 머금고 오봉산비탈로 내달렸다.···

군중이 밀려들어와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젠 없어진 서분이를 찾아내야 했다. 그 애가 어느 방에 갇혀 아주 죽은것만 같아 사람들은 눈에 달이 올라서 뛰였다. 사람들은 행랑채고 어디고 방이란 방은 다 문을 열어보았다. 그들은 중대문을 넘어가 안채로 들어갔다. 조순근은 서분이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것 같은 무서운 생각에 허둥거리며 행랑채의 이 문 저 문을 열어보았다. 어느새 대복이 어머니도 따라와서 행랑채의 방들을 서캐훑듯이 샅샅이 뒤져나갔다. 그러던 그는 퇴마루에 맥을 놓고 주저앉아 주먹으로 무릎을 치며 곡성을 터뜨렸다.

《아이구, 너희들이 죽은가보구나! 대복아! 서분아!》

안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조순근은 마지막 행랑채 문고리를 쥐였다. 그 방에마저 아이들이 없으면 모든것이 끝장이라고 생각되였다. 문득 조순근의 눈앞에 서강이놈이 서분이의 시체를 끌어다가 련못에 처넣는 무서운 환각이 떠올랐다. 그놈이 결국 그런짓을 하고 뒤가 저리여서 몰래 제혼자 도망친것이 아닌가?

조순근은 마지막 행랑채문을 쥐고 오래도록 서있었다. 어쩐지 그 마지막문을 선뜻 열수가 없었다. 조순근은 눈을 감고 서분이가 있기를 하늘에 빌면서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언뜻 눈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는것 같았다. 그는 방안으로 뛰여들어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부엌바닥에 녀인들 넷이 어깨들을 붙이고 몽켜앉아있었다. 그들은 지주집 부엌데기들이였다. 이 순박한 녀인들은 서만호를 공양한 죄로 자기들도 벌을 받아야 되는것으로 생각하고 공포에 떨고있었다.

《서분이가 분명 죽었구나!》

조순근은 절망에 차서 중얼거리며 녀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칼과 흐리멍텅해진 눈을 보고 녀인들은 더욱 겁에 질려 구석쪽으로 몰려가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이때 영길이 달려와서 서분이 있는데를 알아냈다고 하였다.

《서분일 고간에 가두었대요.》

《뭐라구?!》

조순근은 용수철에서 튀여나듯 후닥닥 뛰쳐일어났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냈느냐?》

조순근은 영길을 따라 달려가며 물었다.

《성배놈을 붙잡았어요.》

조순근이 안채마당을 지나자 벌써 숱한 사람들이 서분이를 가둔 《감방》앞에 모여있었다. 누구인가 쇠스랑뒤등으로 고간자물쇠를 내리조기고있었다. 얼마후에야 자물쇠는 손가락같이 굵은 대못들을 물고 편철채로 절라당 떨어졌다. 조순근은 사람들을 헤치고 문안으로 들어섰다. 찬바람이 씽 불어오면서 역한 피비린내가 확 풍기였다. 그는 어둑시그레한 고간 한구석에서 시체같은것을 언뜻 띠여보고 얼어붙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찢어진 몽당치마를 걸친 서분이가 선지피 엉켜붙은 머리태를 풀어헤치고 눅눅한 흙바닥에 엎어져있었다. 이때 숱한 농군들과 함께 묻어들어온 대복이 어머니가 어푸러지며 서분이를 그러안았다.

《서분아!··· 얘 서분아!》

대복이 어머니는 땅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서분이를 무릎에 안았으나 처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눈을 감은채 백랍같이 핼쑥한 얼굴을 젖히고 대답이 없었다. 시꺼멓게 피가 죽어 박등같이 부어오른 한쪽 팔이 녀인의 무릎옆에서 건등거렸다.

《서분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팔이 부러지고 온통 피멍이 들구··· 어느놈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단말이냐? 서분아, 서분아, 어서 눈을 떠라.》

대복이 어머니는 넉두리를 하며 서분의 얼굴에 볼을 비비였다. 조순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분이앞에 다가왔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껄껄한 손바닥으로 처녀의 얼굴을 쓸어만지였다.

《서분아! 천하 용해빠지구 어질디어진 너에게 무슨 죄가 있다구··· 어서 눈을 뜨거라. 네가 눈을 떠야 막동이두 보구···》

조순근은 서분이의 눈언저리를 어루만지였다. 설음에 겨워 울다가 굳어졌는지 말라터진 처녀의 입술은 샐그러졌고 역겨운 이 세상을 보지 않으려는듯 살눈섭이 무겁게 내리덮인채 까딱없었다.

《서분아, 어서 눈을 뜨거라! 네가 죽으문 안된다.》

조순근은 안해의 무릎에 안긴 서분이를 안타까이 잡아흔들었다. 한쪽에서는 녀인들이 서분이의 손과 발을 주무르고 미간을 비비였다. 얼어붙은것 같던 서분이의 속눈섭이 차츰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코끝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흘러나왔다.

《됐어요. 애가 죽진 않았어요. 손끝에두 온기가 돌구 맥이 뛔요.》

서분이의 몸을 주물고있던 어느 한 녀인이 생명의 불꽃을 발견하고 환성을 지르듯이 말하였다. 그러자 숱한 사람들의 입에서 안도의 더운 숨이 확 뿜어나왔다.

《여보, 그 애를 방으로 들여가자우.》

조순근은 서분이를 안아서 주방칸에 들여다눕혔다. 녀인들이 대문쪽에 있는 부엌에 불을 지펴 구들을 덥히였다.

보안서 추격조들을 따라 오봉산쪽으로 갔던 강진건이 지주집으로 돌아온것은 바로 이때였다.

강진건이 웬일인지 현훈증이 일어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손수건을 꺼내며 처녀의 머리맡으로 다가앉았다.

《나쁜놈들!》

그는 손수건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서분이의 머리칼과 얼굴에 엉켜붙은 피딱지들을 훔쳐내였다. 한쪽에서는 녀인들이 더운물을 들여다가 서분이의 발과 손을 씻어주었다.

얼마후에 서분이는 혼수상태에서 깨여났다. 그는 자기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늙은이를 어정쩡히 올려다보다가 그 누구를 찾는듯 방안을 둘러보았다.

《서분아, 나 여기 있다.》

강진건의 뒤에 앉아있던 조순근이 앞으로 나앉으며 퉁퉁 부어오른 서분이의 손을 잡았다.

《대복이 아버지-》

《오냐 서분아, 지금 네 얼굴을 닦아주는분이 누구신줄 알겠느냐?》

서분이는 다시 강진건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두눈귀로 주르르 눈물을 굴리였다.

《장군님 오셨을 때 같이 오셨던···》

《네가 나를 알아보았구나··· 장군님께서 널 살려내라고 해서 내가 이렇게 왔다. 서분아!》

강진건은 눈시울이 붉어져 머리를 끄덕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요?》

서분이는 갑자기 놀라면서 눈이 커지더니 격정이 북받쳐올라서인지 울어버릴듯이 입귀를 실그러뜨리며 강진건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 손에서 열기가 느껴지였다.

《그렇단다. 서분아, 네가 어떻게 살아났는가를 한평생 잊어서는 안돼. 장군님께서 널 얼마나···》

강진건은 뜨거운것이 메여올라 눈을 꾹 감았다. 한동안 그의 목에서 울대뼈가 세차게 오르내리였다. 그는 이 어린 처녀앞에서 오열을 터뜨릴것만 같아 지게문을 열고 밖으로 얼굴을 돌리였다.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총총하였다. 넓고도 높은 밤하늘에 가득찬 별들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듯 유난히도 물기를 띠고 반짝이였다. 이때 김창규가 나타나서 방금 사과움에서 대복을 찾아냈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조순근은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벌떡 일어났다.

《사랑채에 눕혔어요. 그애도 상처가 심합니다.》

《됐소. 됐소. 이젠 시름을 놓게 됐소.··· 그러니 그놈은 대복이두 잡아놓구 모르는척했구만. 악독한놈!··· 자, 이젠 애들을 병원으로 싣고갑시다.》

강진건은 무릎을 짚고 일어나서 같이 따라온 한 보안서원에게 차를 불러오게 하였다. 얼마후에 적재함에 풍을 친 풀색자동차가 대문앞에 도착하였다. 보안서원들이 대복이와 서분이를 이불채로 감싸들어서 짚을 깐 짐칸에 눕히였다.

김창규, 보안서장들이 보안서원들과 함께 짐칸에 올라서 나란히 누운 대복이와 서분이의 머리맡에 앉았다. 자동차가 전조등을 켜며 경적을 울리자 강진건이 운전칸문앞에 서서 마을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여러분들, 안녕히 계시오. 이제는 이 신당리에 지주가 없어졌습니다. 래일부터 이 아흔아홉간 집을 농조와 농촌위원회의 사무실로 쓰시오. 빨리 토지를 분여하고 땅에 씨를 묻으시오!》

《고맙소이다!》

마치 약속이나 한듯 늙은 농군들이 소리를 모아 답례하였다. 자동차는 다시금 경적을 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퀴자국을 떼였다.

조순근은 담벽에 손을 짚고 자동차불빛이 곧추 내비치는 마을길을 내다보았다. 수천년세월 농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들판길, 수난의 그 땅에 희망찬 력사의 새 길을 다지면서 자동차는 멀어져갔다. 하늘도 땅도 어둠에 잠겨있었으나 조순근은 모든것이 밝고 눈부신 불빛으로 바라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