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6장 3


 

제 16 장

3

 

은거해있던 무장테로단은 일망타진되였다. 강진건은 뿌듯한 긍지와 안도감으로 해서 오히려 현훈증이 일어나며 발걸음이 잘되지 않았다.

강진건은 이 기쁜 소식을 장군님께 어서 보고드리고싶어 군당비서실로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마침 평남도일대의 농촌마을들을 돌아보고 집무실에서 사업하시는 참이였다.

강진건은 정중히 문안인사를 올리고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승리의 보고를 올리였다.

《수고했습니다. 정말 수고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거기에 가서 큰일을 막아냈습니다》

송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장군님의 정다운 목소리에 강진건은 눈굽이 젖어들어 잠시 전화기만 붙들고 서있었다.

《이번엔 상한 동무가 없습니까?》

《보안서원 한 동무가 경상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밖에는 별로 불상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결국은 신당리농민 한명이 희생되였군요. 그 농민을 생각하면 참 분합니다. 땅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장군님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뚝 끊어졌다. 희생된 농민을 생각하시는지 한동안 수화기에서는 유도음 흐르는 소리만이 가늘게 들려왔다.

《강선생님!》

한참만에 부르는 장군님의 목소리는 퍼그나 갈리시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나쁜놈들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던 그 부농말입니다.》

《무사합니다. 치료를 잘 시켰더니 아무 일없습니다. 부농의 아들도 다시 서무과에 들어와서 일을 잘합니다. 그 동문 벌써 여러번 군중앞에 나서서 토지개혁이 얼마나 정당한 인도주의적인 개혁이고 공산당안에 기여든 종파놈들이 얼마나 나쁜놈들인가를 말하며 훌륭한 선동연설을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 동무가 우리 당을 믿고 옳게 살아가도록 잘 이끌어줘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따뜻이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뢰단〉이라는 그 반동무장단원들에 대해서도 일률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그속에는 반동놈들의 기만에 넘어가서 그런짓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들도 좋은 사람이 되도록 잘 교양해야 합니다.》

강진건은 전류를 타고 흘러오는 사랑의 음파가 온몸의 피부와 혈관속으로 따뜻이 스며드는것 같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런분을 수령으로 모신 우리 인민이 얼마나 행복한가싶었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을 다시 부르시였다.

《거기 서분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재령강에서 만났던 처녀종이 생각나겠지요? 그 애의 남동생을 찾았습니다.》

《예?!》

강진건은 무엇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앞으로 재령강 빨래터에서 눈물지으며 구슬픈 재령강의 노래를 부르던 처녀의 얼굴이 밟혀왔다. 여태 반동무장단놈들과 접전을 하느라 까맣게 잊어버리고있었던 처녀다.

《강선생님, 그런데 그 애의 부모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방랑을 하다 로상에서 굶어죽었습니다. 황해도와 평남도 접경의 어느 들판에서 그 애 부모들의 눈을 감겨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걸 알게 되였습니다. 서분이 동생 막동이도 지주집 꼴머슴을 하며 이만저만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원래 조순근농민이 서분이를 딸처럼 생각하고있으니 그 집에서 서분이 오랍누이가 함께 살도록 해줍시다. 서분이는 제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고 그 애는 학교를 다니게 하고···》

강진건은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멍청히 서있었다. 그제야 그는 서분이와 대복이 실종된 사실을 생각하게 된것이였다. 언제인가 그런 말을 얼핏 들었댔으나 여태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지금 막동이를 찾아놓고 서분이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계시는것이였다.

이름도 없는 서분이의 오랍동생을 찾느라니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가싶었다. 바다가의 넓은 백사장에 떨어진 한알의 보석을 찾는것과도 같이 힘들고 어려웠을것이다. 그럴수록 강진건은 그들에 대하여 너무도 무관심했다는 생각에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강선생님, 이제는 그 서만호지주를 빨리 청산하고 서분이처럼 그 집에서 고역을 치르던 모든 머슴들과 종들을 해방시킵시다. 지금 다른데서는 벌써 머슴들이 집과 땅을 받고 새 생활을 시작하고있는데 거기서는 반동놈들의 준동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참 그곳 지주의 아들놈이 이번에도 반동음모의 주모자로 나섰다는데 그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진건은 반사적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번에 반동무장단을 일망타진해버렸는데 분하게도 주모자인 서강이 한놈만은 놓쳐버린것이였다.

그놈은 참으로 못된짓을 너무도 많이 한 놈이였다.

《그놈을 놓쳐버렸다?》

강진건의 보고를 듣고나신 장군님의 목소리는 무중 높아졌다. 그리고 갑자기 무슨 예감이라도 드는듯 서분이의 안부를 서둘러 물으시였다.

《그 애가 지주집에 아직 그냥 있습니까?》

강진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복이, 서분이들이 실종된 사실을 말씀드리였다.

《아니 그 애들이?》.

놀라시는 장군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크게 울리였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강진건은 두손으로 붙들어쥔 송수화기에 마치 근심에 잠긴 장군님의 영상이 비쳐오는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찾기위해 무슨 대책을 세웠습니까?》

《장군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반동무장단놈들과 접전을 하느라 그 애들한테 미처 생각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서강이놈을 붙들기 위해 보안서, 자위대원들은 물론 온 동네가 떨쳐나섰습니다.》

《대복이, 서분이를 빨리 찾아야 합니다 》

강진건은 무거운 자책을 느끼며 잠자코 서있었다.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그 애들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구원해야 합니다. 온 동네가 대복이, 서분이를 찾게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대복이, 서분이들이 실종된것은 분명 악질지주놈의 작간일것이라고 하면서 우선 지주집을 뒤지고 알아보라고 하시였다.

《강선생, 생각해보십시오. 수천년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공상으로만 생각해온 토지혁명을 우리 대에 실현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종살이를 해온 대복이와 서분이는 토지혁명이 가져다준 행복을 마음껏 향유하여야 할 새세대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잃어버리고 토지혁명을 한들 그게 무슨 기쁨이겠습니까. 조순근농민이 땅을 받은들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땅이란 무엇입니까? 무엇때문에 땅이 귀중합니까?》

《장군님! 알겠습니다. 꼭 그 애들을 찾아내겠습니다.》

강진건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무연한 대지가 깊은 의미를 띠고 가슴에 확 안겨왔다. 나라를 잃고 헤매이던 그 시절에 이 땅의 흙 한줌이 왜 그리도 귀중히 생각되였던지 그제야 명백히 알게 되는것 같았다.

강진건은 얼마후 차를 만속으로 몰아 김창규들이 있는곳으로 갔다.

《위원장동지, 장군님께 보고를 올렸습니까?》

두눈에 피발이 선 보안서장이 먼저 성급하게 물었다.

《그렇소, 다들 어서 차에 오르시오.》

강진건은 앉은 자리에서 뒤문을 열어주었다.

차는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젖빛 장막을 뚫고 신당리로 질주하였다.

《동무들, 우리가 이번에 큰 실책을 했소. 실종된 대복이, 서분일 감감 잊어버리고있었거든··· 이제부터 모든 력량을 그 애들을 찾는데 돌립시다. 보안서장동무, 곧 그렇게 지시하시오.》

《그럼 서강이놈은 어떻게 합니까? 우선 그놈을 붙들어야지요.》

보안서장이 벌떡 일어서다가 머리가 풍에 닿는바람에 도로 앉았다.

《그놈을 붙들어 군안의 농민들앞에서 회술레를 시켜야 합니다. 안그렇습니까?》

보안서장은 옆에 앉은 김창규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아직도 불이 펄펄 일고있었다.

《그애들부터 살려내야 하오.》

《위원장동지, 그놈을 붙잡는건 이 고장 전체 농민들의 소원입니다. 얼마나 못된짓을 한 놈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런놈에게까지 어떤 양보를 한다면, 그건 계급성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안서장의 관자노리에서 퍼런 피줄이 펄떡거리였다. 그는 그 악착한 원쑤놈을 자기 손으로 붙잡아서 앙갚음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다른 일도 할수 없을것 같았다.

《서장동무! 원쑤를 치는것만 계급성이고 자기 계급을 구원하는건 계급성이 아니요? 원쑤를 치는것도 자기 계급을 지키기 위해서겠지? 서장동문 서강이놈을 미워할줄은 아는데 대복이, 서분이들을 사랑할줄은 왜 모르오? 서강이놈이야 제 졸개를 다 잃어버리고 죽은 목숨이나 같소. 어딜 가두 그런놈은 제명에 못죽소.》

강진건은 노여운 표정으로 보안서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결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 정확히 말하겠소. 그애들을 구원하라는건 장군님의 의도요. 장군님께선 아마 이제부터 식사도 안하고 소식을 기다리실게요. 장군님께서는 서장동무의 누이동생이 실종됐다고 해도 바로 그렇게 걱정하실게요. 장군님은 바로 그런분이시오. 그걸 알아야 하오. 그분께선 사랑, 그것이 바루 혁명이라구 하셨소. 총을 쥐고있는 서장동문 특히 그 말씀을 명심해야 하오.》

보안서장은 몸을 꿈틀하며 무릎우에 얹어놓았던 주먹을 슬며시 풀어버렸다.

놀라서인지 차가 들추어서인지 앉은자리에서 자꾸 엉덩방아를 찧었다.

보안서장은 고개를 돌려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차창으로는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들판이 날아지나갔다.

《우리는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합시다. 그것이 장군님의 뜻이요.》

강진건의 조용한 목소리가 다시금 보안서장의 가슴을 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