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5장 5


 

제 15 장

5

 

조순근은 숨이 턱에 닿아 뛰였다. 총을 꼬나들고 앞서 달리는 보안서원들의 발걸음을 미처 따라가기가 급했다. 목갑총을 멘 보안서장이 앞서 뛰며 대원들더러 빨리 따르라고 했다. 20여명의 대원들이 그를 따라 뛰다가 육고집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에서부터 두갈래로 갈라졌다. 한패는 뒤로 우회해서 포위를 하려는것이였다. 조순근은 그냥 골목길을 따라 두주먹을 부르쥐고 뛰였다. 목에서 겨불내가 났다. 육고집앞에 거의 다달았을 때였다. 강아지가 맞받아 달려나오며 왈왈 짖어대였다. 골목길옆에 있는 집들에서 발구름소리와 개짖는 소리에 놀라 하나둘 불을 켜고 밖을 내다보았다.

《집을 포위하고 들어가시오!》

보안서장이 권총을 뽑아들고 지휘를 했다. 서원들이 대문을 박차고 육고집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방안엔 다른 징조가 없었다. 텅 비여있었다. 조순근이 뒤따라 대문가로 들어서려는데 발바리가 낑낑거리며 바지가랭이를 물어당겼다.

《가만 이게 발바리가 아니냐.》

조순근은 물었던 바지가랭이를 놓고 달려가는 발바리를 쳐다보았다. 개는 골목길 도랑창으로 내려가 낑낑 우는 소리를 내였다. 조순근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 개가 우는쪽을 다가갔다.

《아니?》

물이 없는 도랑창에 사람이 머리를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발바리가 그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팔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낑낑 울었다. 머리에 진흙이 흠뻑 묻어있었다. 방문을 여닫는 불빛에 이그러진 얼굴이 언뜻 비쳤다.

《아니, 이사람, 흥묵이!-》

조순근은 흥묵을 끌어안으며 소리질렀다.

《정신 차리라구, 정신차려.》

조순근은 힘을 주어 흔들어대였으나 기척을 안했다. 보안서원들이 달려내려왔다.

《방안으로 들여갑시다.》

군보안서장 강성덕이 말했다. 조순근은 팔과 다리가 늘어져내리는 흥묵을 안아들고 비척비척 육고집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눕혀놓은 흥묵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얼굴과 두루마기에 흙과 피가 한벌 덮이고 버선도 없는 맨발바람이였다. 조순근은 울먹거리며 두루마기를 벗기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흥묵이, 눈 좀 뜨라구. 어쩌자구 이래 엉?》

조순근이 한참 흔들어대였으나 숨소리조차 안들리였다. 한 보안서원이 소랭이에 수건을 담아가지고 올라왔다. 조순근은 물묻힌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여보게 흥묵이, 이러지 말구 눈을 좀 뜨게 응.》

흥묵이가 입술을 파들거리며 눈을 떴다.

《가··· 가··· 갔어유···》

《누가?》

《서··· 서강이··· 다··· 다홍치마···》

《음, 그놈새끼가 이렇게 하구 달아났구나. 서장어른, 그놈들이 다홍치마네 술집에 갔다는 소린가봐요.》

《녜, 정동무, 달려가서 적정을 알리구 창규동지를 빨리 데리고 오우.》

강성덕이 보안서원을 불러 소곤소곤 지시를 주었다. 지시를 받은 서원이 급하게 뛰여나갔다.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강성덕이 옆에 선 한 대원에게 새 물을 떠오라고 소랭이를 내보내였다. 소랭이에 뻘건 피물이 담겨있었다. 그리고는 일어서 회대에 걸린 옷가지들을 걷어내려 둘둘 말았다.

그걸 흥묵이가 베고 누운 목침을 빼고 베개삼아 밀어넣어주었다. 머리가 움직이자 흥묵이가 눈을 떴다.

《서··· 성님··· 나··· 이··· 이젠···》

흥묵은 이 말 한마디를 힘겹게 했다.

그 다음엔 또 잠에 취한 사람처럼 눈을 소릇이 감았다.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야. 눈을 뜨게. 어서 눈을!···》

조순근은 겁이 난 소리로 흥묵의 손을 쥐고 흔들었다. 흥묵은 힘겨웁게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한참만에 눈을 다시 뜬 그는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서··· 성님, 우리 차··· 창규?》

창규가 무사한가고 묻는 소리였다.

《엉. 아무일 없어. 그런데 이사람은 왜 아직 안나타나?》

《이제 올겝니다. 아저씨,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강성덕이 눈물을 머금으며 흥묵의 늘어져있는 한손을 힘있게 잡았다. 흥묵은 또 눈을 감았다. 이때 밖에서 발바리 짖는 소리가 나고 이마에 땀이 번들거리는 창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뒤에 한 서원이 따라들어왔다.

《어떻소?》

《방금 눈을 떴댔는데 또 혼수상태입니다.》

창규는 장인의 이마전에 들어앉으며 이마를 짚어보고 손을 쥐여보고했다.

《아버님, 제가 왔습니다. 눈을 좀 뜨십시오.》

차거운 손길이 이마에 닿자 아주 감겨버린것 같던 흥묵의 눈섭이 천천히 올라갔다. 흥묵은 안개낀것 같은 눈으로 창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를 알아보았는지 창규의 손을 가슴에 끌어다놓고 쓸었다. 두눈구석에서 물기가 미음돌았다.

《서··· 성님··· 성님이 내대신 저 창규··· 잔치를···》

《무슨 말인지 똑똑히 하라구··· 창규 잔치를?》

《다시··· 내대신··· 성님이···》

《아버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창규는 잔치소리가 나오자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서··· 성님···》

흥묵은 또 조순근을 부르며 잔치라는 말을 되뇌이였다. 조순근은 힘들게 숨을 톺아올리는 흥묵의 어깨를 좀 높여주었다.

《아버니임, 이렇게 그냥 가면 안됩니다.》

창규의 소리에 흥묵은 실눈을 지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다 알겠다. 잔치를 해주겠어. 그래 이렇게 헤여지자니? 응, 흥묵이.》

흥묵을 내려다보며 목메여 떠듬거리는 조순근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비방울처럼 떨어져내렸다. 무슨 의미에서인지 흥묵은 눈을 끔뻑이며 입귀를 자주 실룩거렸다. 한참만에 그의 입에서 분명치 못한 음절들이 흘러나왔다.

《애들··· 서 서분일 ··· 꼭··· 이··· 이젠··· 마··· 말이···》

이제는 말이 안된다는 안타까운 표정이였다. 혀가 굳어져 마디마디 힘겹게 짜내는 그 소리에서 서분이를 꼭 살려내라는 간절한 부탁을 알게 되자 조순근은 더욱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벌써 죽음의 그림자가 흥묵의 얼굴에 내려덮이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흥묵은 창규를 보자 갑자기 눈빛이 또렷해지며 두팔을 허우적거리였다. 창규는 장인의 눈에서 마지막으로 내뿜는 생명의 빛을 일별하고 피에 젖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허우적거리던 흥묵의 팔이 창규의 목을 휘감아다가 그의 얼굴을 자기 볼에 대였다. 두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미끄러져내렸다. 창규는 자기 목을 조이던 팔이 늘어져내리는바람에 얼굴을 들었다. 흥묵은 이미 머리를 옆으로 늘어뜨리고 숨을 거두었던것이다.

《자알 가게-》

조순근은 한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흥묵의 눈을 감겨주었다.

《아버니임!-》

창규가 오열을 터뜨리며 후들거리는 손으로 장인의 얼굴을 어루만지였다.

방안에 들어와 서있던 보안서원들이 천천히 모자를 벗고 시신을 향해 고개들을 숙이였다.

흥묵을 지켜보는 조순근은 슬픔을 참을수가 없었다. 결국 흥묵이도 그전날의 아버지들처럼 한창 살수 있는 나이에 비명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전날의 선친들보다는 비할수 없이 값있고 장하게 죽었지만 토지개혁으로 이제 곧 땅을 받게 되는 크나큰 기쁨을 눈앞에 두고 간것이 더욱 원통하였다. 저세상으로 가면서도 유언으로 외운 잔치! 그것은 땅없는 흥묵의 가슴에 고랑처럼 패웠던 마음의 상처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욱 땅에 대한 갈망이 컸던 흥묵이였다. 아, 한번 가면 다시 올수 없는것이 여기 이승의 땅이란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저 흥묵이가 원쑤의 총부리앞에 스스로 가슴을 내댔던가.

조순근은 어쩐지 그전날 자기가 돌려주었던 바로 그 총으로 놈들이 흥묵이를 죽인것만 같아 더욱 뼈가 저려났다. 어리석었던 지난 일들이 자꾸만 떠오르며 슬픔보다도 자기에 대한 원망과 후회가 더 절절하였다.

얼마후 달구지가 오고 뒤따라서 강진건이 달려왔다. 조순근이 흥묵의 시신을 안아 달구지우에 조심히 눕히였다.

《창규동무두 따라가야 하지 않겠소?》

강진건이 어깨가 처져내린 창규의 등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다.

《일없습니다. 일을 끝내고 내려가렵니다.》

창규는 이러며 달구지우에 누운 시신앞에 가서 다시 장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장인의 얼굴은 편안히 잠든것 같은 표정이였다. 뭔가 일생의 시름을 푼것 같은 회심어린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그런 얼굴을 보니 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아무리 못된 세월에 있었던 일이라도 자기가 장인에게 너무도 큰 죄를 지었다는 가슴아픈 생각에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장인은 자기가 모르고있던 너무도 많은 좋은 점을 가지고있었고 자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니고있었다.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창규는 저도모르게 부르짖었다.

달구지는 떠나갔다. 창규는 강진건이와 함께 읍거리 벗어나는 곳까지 따라갔다. 달구지뒤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 한마리가 뒤묻어갔다.

《위원장동지, 이젠 돌아가십시다.》

멀리 사라지는 달구지를 말없이 바라보던 창규가 돌아서며 말했다.

강진건은 걸음을 멈추고 창규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거리는 인적하나 찾아볼수 없게 괴괴하였다. 서켠 하늘에 찌불써하게 걸린 쪼각달이 차거운 빛을 땅우에 던지고있었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열리며 밤새 덮어놓았던 검은 장막을 밀어내고있었다. 아직 새벽바람은 코끝이 짜릿하게 차거웠다. 거리옆으로 촘촘히 늘어선 추녀낮은 집들에서는 어느새 반디불같은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창규동무,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말이요.》

김창규는 강진건의 말소리에 자기 생각에서 깨여났다. 강진건이 아직도 자기의 어깨우에 손을 얹고있었다. 강진건은 멀리 산마루에 걸린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였다. 별들도 산마루에 국자처럼 가로걸려 창백한 빛을 눈물처럼 흘리고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군농맹회의에 참가했는데 농민들이 지주하고 사이를 좋게 하겠다고 개를 잡아간다 소를 잡아다 바친다 하구 눈이 딱 감기는 짓들을 했소. 그래 난 속으로 언제 바지저고리같은 우리 농민이 각성을 해서 혁명을 해낼가 하고 개탄을 했소. 내가 이런 한심한 생각을 장군님께까지 비쳤댔다오. 그때 내가 무엇을 몰랐는가. 명장에는 약졸이 없고 근실한 농군에겐 나쁜 땅이 없듯이 위대한 령수에겐 부실한 백성이 없다는걸 몰랐소. 나를 포함해서 지난날 제노라 하는 사람들이 다 이 민족의 렬등성과 백성의 무지를 개탄하였고 그래서 나라를 광복할수 없는것처럼 말하였는데 그건 결국 서툰 무당 마당 나무리는 격이였소.

보시오. 우리 농민들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애국렬사가 뭐 따로 있겠소. 동무의 장인이 바로 애국렬사요. 이런 농민들이 수천수만으로 생겨났으니 우리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 창규동무, 장인이 돌아갔다구 너무 슬퍼하지 마오. 그는 재령벌 농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살아있을거요.》

《위원장동지!···》

김창규는 가슴이 후더워났다. 강진건의 말은 마디마디에 새로운 뜻이 담겨진 처음 듣는 말이면서도 낯설음이 없이 진실하고 친근하고 그리고 뜨겁게 안겨왔다.

강진건은 몇발자국 걸음을 옮기다가 웬일인지 비척거리더니 길가에 서있는 백양나무등허리에 손을 짚었다.

《위원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아까운 농군을 하나 잃었소. 이 사실을 장군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오. 동문 장군님께서 우리 농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게요··· 토지분배를 앞두고 농민 한사람이 희생됐다고 하면 그이께선 잠을 못이루실게요. 우리 장군님은 그런분이요.》

강진건의 목소리는 오열에 떨리였다. 그는 나무등허리를 어루만지며 멀리 평양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전에 창규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했건만 오히려 자신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있었다.

강진건은 일찌기 한 농민을 이렇게 사랑해본적이 없었다. 흥묵이란 농군을 평시에 인상깊게 기억해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기 살붙이를 잃어버린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괴로와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문득 강진건은 《사랑하십시오. 혁명은 사랑입니다.》 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신비롭구나! 인간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이 나무껍질같이 터실터실한 내 가슴에도 이젠 심어졌단말인가.)

강진건은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기였다. 달구지에 실려간 농군의 시신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려 발을 헛디디였다.

(내 오늘은 독립군대장의 본때를 보이겠다. 이 반동놈들을 내손으로 요정을 낼테다.)

강진건의 슬픔은 격분으로 번지였다. 그러자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빠르게 옮겨지였다. 그는 창규와 함께 《다홍치마》네 술집으로 달려갔다. 술집주변에는 새벽소동에 깨여난 주민들이 모여있을뿐 보안서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술집을 감시하는 한 자위대원의 말을 들으니 반동놈들이 보안서원들의 기습이 있기전에 무기를 하나씩 나눠가지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는것이다.

강진건은 좀더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창규와 군당청사로 찾아갔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수직을 서던 젊은 사람이 달려나와 강진건에게 급한 소리를 하였다.

《위원장동지! 방금 김일성장군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뭐요? 장군님께서···》

《녜, 장군님께서는 위원장동지의 건강상태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다음에 이곳 형편을 물어보시기에 방금전에 반동놈들과 싸우다가 신당리농민 하나가 희생되였다고 말씀올렸더니···》

젊은이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수그리였다. 강진건은 인두로 지지우는듯 가슴이 따갑고 쓰라려서 한참이나 손을 주물며 서있었다.

《다른 말씀은 더 없었소?》

《예, 장군님께선 이제 또 시간을 타서 전화를 거시겠다고 하시며 흥묵농민의 가족들을 잘 위로해주고 다시는 인명피해가 없도록 주의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진건선생은 나이도 많고 감옥살이 할 때 몸에 상처도 많이 받은분이니 무리하지 않도록 옆에서들 잘 돌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강진건은 오래도록 못박힌듯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이슬이 내리는지 누기에 찬 쌀쌀한 바람이 쉼없이 불어왔다. 그러나 강진건의 온몸은 화로불곁에 서있는듯 후덥기만 하였다.

그는 한참만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벌써 동녘에서 희멀겋게 어둠이 벗겨지고있었다.

《비서동무, 참으로 생각이 깊어지는 새벽이요··· 우리 빨리 반동무장단을 일망타진하구 장군님께 보고를 올립시다.》

그때 희멀건 동녘하늘에서 장검의 일격처럼 한가닥의 섬광이 번쩍 눈을 부시더니 꾸르릉 꾸르릉 머리우에서 거대한 쇠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이 해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봄우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