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5장 4


 

제 15 장

4

 

조순근은 터밭머리에서 개바자말뚝을 하나 뽑았다. 옹지가 우둘투둘한 참나무 말뚝이였다. 그는 말뚝이 짧아서 지팽이처럼 짚지는 못하고 말뚝중간을 거머쥐고 비발치듯 걸었다. 그는 마을앞 야산비탈을 단숨에 넘었다. 눈섭같은 달이 벌써 오봉산너머로 떨어져서 사방이 그믐밤처럼 캄캄하였다. 그는 장서방에게서 들은 말을 리자위대에 알리고 읍으로 가는 길이였다. 마침 장춘하는 면토지개혁실행위원회에 올라가서 조순근이 혼자서 빈 농조사무실을 지키고있다가 끔찍한 소리를 전해들었던것이다. 그의 예감에는 놈들이 꼭 읍으로 갔을것만 같았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장서방을 통해서 서만호의 아들놈이 왔다는것을 알았다. 말을 들어보니 서강이가 집에 나타난 그밤에 아들이 없어졌었다. 서분이도 서강이가 오자 어디론가 심부름을 갔다고 하는데 여직까지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조순근은 어쩐지 대복이와 서분이가 서강의 검은 손에 붙잡혀 이미 잘못됐거나 아니면 형언할수 없는 고초를 겪고있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그 애들이 없는 이 세상을 생각하면 금시 까무라쳐 쓰러질것 같았다. 사실 서만호의 아들이 기여들었다면 그게 만만치 않은놈의 새끼다. 그놈이 해방직후부터 미국놈의 자동차를 타고 거들먹거렸는데 이번엔 이렇게 소문도 없이 기여들어 흉계를 꾸미는걸 보면 제애비 살릴 무슨 큰 꿍꿍이를 벌리자는 잡도리가 분명했다. 그가 야산굽이를 내려 벌판길로 들어서는데 앞에서 술취한 사람의 건드러진 타령이 들려왔다.

 

하 하늘은 밤괭이 눈처럼 청청한데

겨 겪은 신고 흘린 눈물

땅이 알랴 하 하늘이 알랴

 

고요한 밤길이여서 흥타령이지만 목소리가 챙챙했다. 조순근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거머쥐였던 말뚝을 내리였다.

(허, 또 술을 먹었군 )

흥묵이였다. 오늘아침 딸이 읍에 온다고 내려가더니 한밤 자지도 않고 올라오는것이다. 발바리가 앞서 뛰여오며 왈왈 짖어대였다.

《허허, 곰같은 사람이 마주온다 했더니 서 성님이유?》

흥묵은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짖어대는 발바리를 밀어던졌다.

《달구지 끌고 내려가는놈들 못봤나?》

조순근은 참나무말뚝을 짚으며 한참 서서 숨을 돌렸다. 급한 걸음에 수건 쓴 머리밑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개미 한마리 어 얼씬하지 않았어유. 서 성님, 술 먹었다구 나무라지 마시우. 난 죽어두 이젠 원이 없어유. 춘하성님이 나한텐 장구배미 차례질거라구 하지 않어유. 그거 내가 가져두 일없갔시꺄?》

《일은 무슨 일, 집난이가 왔나?》

조순근은 초조하고 급한속에서도 물어보았다.

《와 왔어유. 제길, 떡돌같은 외손주녀석 내 목마타구 타령하라구 하지 않시꺄. 허허, 그놈 끼고 엉덩판 두드려주구 올라오다가 장구배미에 누워서 노 논두렁 베구 한잠 자다가 깨났어유··· 서 성님, 한대 태워유. 집난이가 줍디다.》

흥묵은 두루마기자락을 제끼고 조끼주머니에서 권연갑을 꺼내 조순근에게 내밀었다.

《이보라구, 이러고있을새 없어. 왕벌의 아들놈이 지금 총을 걷어싣구 어디로 갔네. 읍으루 내려간것 같네.》

《읍으루? 그럼 그놈새끼가 집에 와 있었시꺄?》

흥묵은 담배갑을 걷어넣으며 놀라서 소리질렀다. 대번에 술이 깨여난것처럼 풀어졌던 눈알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런가보네. 이놈들이 무슨 란을 일구려나봐.》

《옳수다. 창규두 무슨 심상찮은 일이 있다구 술은 조금 마시구 올라가라구 하면서 또 군당으로 나갔어유. 읍으루 도루 가자유.》

《임잔 올라가 쉬게. 밤두 깊었는데.》

《아, 아니. 성님은 내가 술밖에 생각이 없는놈인줄 알았시꺄.》

흥묵은 조순근의 팔을 끼고 제쪽에서 먼저 걸음을 재촉하였다. 발바리도 낑낑거리며 곁묻어 따라갔다. 그들이 손을 맞잡고 읍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언덕에 올라섰을 때였다. 앞에서 덜컹거리는 달구지소리가 들려왔다. 조순근은 그 소리에 불현듯 어떤 예감을 받고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정말 어둠속으로 굴러오는것은 빈 달구지였다. 키가 꺽실한 사나이가 캡을 삐뚤서하게 쓴채 소멍에를 붙들고 지척지척 걸어왔다.

《이랴, 낄낄.》

앞에서 무슨 기척을 느끼자 그 사람은 일부러스럽게 소모는 소리를 내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틀림없이 서만호네 흑호놈이였다. 그 불량배 싸움군이 밤중에 달구지를 몰고다닌다는 사실이 모든것을 능히 짐작하게 하였다.

(만났구나!)

조순근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발이 우드득 갈렸다. 조순근은 말뚝을 때리기 좋게 거머쥐였다.

《영길 애비, 저게 흑호놈일세. 총을 싣고 갔던게 분명해.》

《어 어쩔가유? 저게 힘이 장산데.》

《장사문 어때. 저놈한테서 총실어다 부린델 알아내야 해. 이 개지 붙잡게. 이건 왜 그림자처럼 달구다니나.》

《놔둬유. 그래두 그게 날 제일 따르는데··· 외손주한테 가지구 놀라구 떼버리구 올가 하는데두 자꾸 따라와서 데리구 왔어유.》

흥묵은 발바리를 끌어안아 두루마기자락에 감싸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마음을 다잡으며 달구지 올라오는 앞으로 마주 걸어내려갔다.

《아, 아니 이게 누군가? 흑호로구만··· 어디 갔다와?》

흥묵이가 우뚝 서며 먼저 놀란체를 했다.

《그런데 이밤중에 당신들은 어딜 가우?》

흑호는 앞에 마주오는 조순근이를 보자 눈을 부라리였다.

《나? 나 읍에 볼일이 있어서 가네. 그런데 달구지를 끌고 어데 갔다와?》

흥묵이 입으로 일부러 술내를 풍기며 말했다.

《예, 나도 읍에 좀 볼일이 있어서 갔댔수.》

《볼일? 무슨 볼일이 있었댔나?》

《챠, 이거 왜 이렇게 갈개. 아무 볼일이면 어떻단말이야. 비키우. 달구지길을 막지 말구.》

흑호는 주먹으로 소대가리를 치며 달구지를 내몰았다.

《못간다. 너 총 싣구 읍에 갔댔지? 그걸 어데다 부려놓고 오니? 그걸 대라! 대지 않구는 못가.》

조순근이 말뚝을 거머쥐고 흥묵을 비켜세웠다.

《허허 이게? 당신이 그걸 알아선 뭘할테요. 당신 쏘아죽이자고 하는건 아니니 길을 내우.》

흑호는 조순근이 떡 버티고서서 길을 내주려 하지 않자 얼리려들었다.

《그걸 안대군 여길 지나가지 못한다.》

조순근은 다가들어 소의 멍에를 잡았다.

《이게 제 정신이야? 물본 미친개처럼 왜 지랄이야?》

흑호는 말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손에 들었던 소고삐를 들어 후려쳤다. 그바람에 고삐가 조순근의 목덜미를 때렸다. 목에서 지끈 소리가 났다. 그러자 조순근은 말뚝을 추켜들어 흑호의 머리통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평생 치고 받기를 해온 직업적인 싸움군인 흑호놈은 내려치는 조순근의 몽둥이를 날쌔게 피하였다. 그바람에 조순근은 달구지 앞채를 헛때리고 비칠거렸다. 순간 흑호는 소고삐를 내던지고 조순근의 멱을 틀어쥐며 번개처럼 들이받았다. 조순근은 벌써 말뚝을 놓쳐버리고 멱살을 들리운채 흑호놈의 이마와 주먹에 여러번 면상을 얻어맞았다. 턱뼈가 부서져나가는것 같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잘못하다간 비밀이고 뭐고 흑호놈한테 숨주머니가 결단날것 같았다. 흥묵은 싸움이 붙자 허둥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자기힘으로 두사람의 싸움에 끼여들어야 아무 맥도 쓸것 같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순근이 흑호에게 깔려넘어가는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순근을 타고앉으려는 흑호의 목을 그러안고 뒤로 제꼈다. 그러나 흑호의 옆손질에 가슴을 얻어맞고 숨을 못쉬였다. 어느새 달구지가 밑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달구지가 있던 자리에 조순근이 쥐고 온 말뚝이 눈에 띄였다. 흥묵은 그 말뚝을 움켜쥐고 조순근의 배에 올라탄 흑호를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서너대끝에 흑호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아이쿠!》 소리를 질렀다. 조순근이 머리를 감싸쥐는 흑호를 밀어던지며 일어나 깔고앉았다.

《죽여라, 이놈의 새낄 죽여라! 왕벌한테 붙어서 갖은 악행을 다하며 살던놈의 새끼! 네놈두 사람새끼냐!》

그러나 흑호는 만만치 않았다. 그도 정신을 차리자 조순근의 밑에서 자꾸 주먹질을 했다. 조순근은 관자노리가 얼얼하게 몇개 주어맞았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거리기도 했다. 순간 조순근은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면상을 두어개 후려쳤다.

《아이구!》

그는 얼굴을 싸쥐며 길바닥에 늘어지고말았다. 조순근은 두손으로 허우적거리는 놈의 목을 눌렀다.

《이놈의 새끼, 총을 어데다 실어갔는냐? 대라, 그걸 대면 살려주고 대지 않으면 아주 죽여버리겠어.》

《가만, 나 숨···》

흑호는 숨을 할딱할딱하며 애원을 했다.

《그럼 실어다 부리운델 대겠어?》

《대, 대마···》

그런데 공손히 응하는척하던놈이 별안간 용을 쓰며 조순근을 메치려고 밑에서 몸을 비틀었다. 그 서슬에 조순근은 그자의 배우에서 튕겨나 저발쯤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되여 위험이 다시 조성되였으나 흥묵이가 흑호놈의 면상을 말뚝으로 내리갈겨서 그놈은 일어서지 못하고 얼굴을 싸쥐며 곱드러졌다. 그러자 조순근이 엎어진놈을 올라타고 꺾쇠같은 손으로 목덜미를 내리눌렀다. 흥묵은 그놈의 장딴지를 사정없이 연방 내리쳤다. 아무리 싸움에 이골이 난 놈이라도 면상과 뒤통수를 여러번 얻어맞고 목을 눌리우게 되자 입을 벌리며 늘어졌다.

《이 쌍놈의 새끼!··· 똑똑히 대라! 총을 둔데가 어디냐? 헷딴데를 댔다간 아주 꾹 눌러죽인다.》

《대··· 대주마···》

흑호놈은 밑에서 꿈트럭거리며 신음소리로 응했다.

《어데냐?》

《우··· 우시장.》

《우시장 어디냐?》

《유··· 육고집.》

흑호는 땅바닥에 코를 박은채 계속 몸을 꿈트럭거렸으나 이제는 맥을 추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순근은 흑호의 목덜미를 쥐여 들어 일구었다. 흥묵은 그래도 미타해서 말뚝으로 그놈의 오금뼈를 몇개 더 들이쳤다.

《아이쿠··· 제발··· 이젠···》

흑호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서 손을 비비였다. 코피가 터져서 흑호의 얼굴은 피와 모래로 매닥질되였다.

《그래 육고집에 가져다부리웠단말이지?》

《예··· 나한테서 들었단 말은 어데 가서 옮기지 마시우. 방금 거기다 부리워놓구 오는길이우.》

《그 걱정은 말아라. 그리구 그 총으루 어쩐다더냐?》

조순근은 바른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몽둥이로 대가리를 부셔버리겠다고 을러멨다.

《예, 그건 별루 들은 소리가 없는데 뭐 군당조직부장이랑 몇사람 없애버린다구 도련님이 벼룹디다.》

《뭐뭐? 내 사우를 죽여? 똑똑히 말해.》

흥묵은 몸을 흠칫 떨며 흑호의 멱살을 쥐였다.

《아 아니, 하는 소리겠죠. 죽이기야 누굴 죽이겠수.》

흑호는 사납게 덤벼드는 그가 또 몽둥이질을 할가봐 겁을 먹고 말을 돌렸다.

《그놈을 이젠 놔두게. 우린 이러구 있을새가 없어··· 넌 어서 네 갈데로 가!》

조순근은 흑호의 잔등을 걷어차고 흥묵의 손을 잡아끌었다.

《대복이 아버지. 나 좀 봅시다.》

흑호는 일어나서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자는 다리가 부러졌는지 한쪽다리를 질질 끌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뭐냐? 어서 말해!》

《제발 부탁인데 나한테 들었다는 말을 옮기지 말아주시우. 그걸 주인집 도련님이 알면 난 죽수. 날 앞으로도 살려주기만 하겠다면 비밀 하나를 더 알려주겠수.》

흑호는 팔소매로 코피를 닦으면서 울먹거리였다.

《네놈이 지난날 잘못을 빌구 서만호의 개짓을 안하겠다구만 한다면 왜 용설 못하겠느냐? 용서를 받구 못받구 하는건 네게 달렸어. 그래 비밀이란게 뭐냐?》

《그 집 서분이가 어찌됐는지 아슈?》

《뭐?!··· 우리 서분이?》

조순근은 눈을 치뜨며 흑호에게 다가들었다.

《서분이가 심부름을 갔다는건 거짓말이우. 주인나으리집에서 하는 말을 몰래 엿듣는 눈치가 생겨서 도련님이···》

《그래 그놈이 서분일 어쨌느냐?》

조순근은 불길한 예감으로 마음이 다급해져서 저도모르게 흑호의 멱살을 틀어쥐였다.

《너무 놀랄건 없수다. 집안에 갇혀서 못나올뿐이웨다.》

《그래 대복이는? 그 애두 그놈들이 어쨌지?》

조순근은 흑호의 멱살을 더 힘껏 틀어쥐고 따지였다. 흑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목을 건덩거리며 겁먹은 소리를 했다.

《대복인 모르겠소. 정말 그 애는 모르겠수.》

《엑끼, 악착스러운놈들!》

조순근은 흑호의 멱살을 틀어쥐였던 손을 내뿌리고 돌아섰다.

《흥묵이 이사람, 어서 읍으로 가자우.》

이렇게 재촉하는 조순근의 눈에서는 퍼런 불이 이글거렸다. 그는 달리다싶이 급하게 앞서걸었다.

《서··· 성님 좀 서유!··· 서분이가 갇혔다는데 어딜 간다는거유.》

《어찌겠어. 이쪽 일이 더 급하지 않어. 빨리 알려야지 숱한 사람이 죽게 된단말야.》

《읍엔 내가 알릴테니 성님은 어서 되짚어가서 서분일 내와유. 왕벌이 혼자 있을 때··· 대복이두 그놈들한테 붙들리운것 같아유. 알고보니 대복이가 서분이하고 내통하면서 왕벌네 비밀을 알아냈더군요. 그러다 붙들리운것 같기두 해유.》

흥묵은 조순근의 팔을 끌며 기어이 돌려세우려고 하였다. 조순근은 흥묵에게 팔을 붙들린채 잠시 서있었다. 캄캄한 방안에 매맞고 늘어진 서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서만호의 심복들이 금시 서분이를 죽이려고 시퍼런 단검을 빼들고 다가드는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살붙이인 대복이, 생각만 해도 애처로운 서분이. 그러나 조순근은 물러설수가 없었다. 그는 흥묵의 손을 붙잡고 울음이 섞인 말을 하였다.

《흥묵이, 난 그 애들이 없으면 살지 못할 사람이야. 그러나 저놈들을 그냥 두고 내가 돌아서면 대복이같은 숱한 젊은이들이, 창규같은 끌끌한 공산당원들이 죽게 돼. 결국 그렇게 되면 그 애들두 못살아. 육고집에두 가구 창규한테두 알리구 사방에 손을 써야겠는데 내가 가면 임자 혼자서 어찌겠다는건가.》

조순근은 더 의논할 필요도 없다는듯 흥묵의 팔을 끼고 읍으로 내달렸다. 그는 어둠속을 내달리면서 자기는 육고집에 먼저 가서 망을 볼테니 흥묵이더러 창규에게 빨리 알리라고 말하였다.

《서 성님, 육고집엔 내가 갈테니 걸음이 빠른 성님이 보안설 거쳐 창규한테 가시유.》

《그럴가?》

조순근은 보안서며 창규네 집이 육고집보다 훨씬 먼곳에 있기때문에 자기가 가는것이 옳을상싶었다. 얼마후 읍거리 초입에서 두사람은 갈라졌다.

흥묵은 육고집으로 들어가는 으슥한 골목길을 달리였다. 술기운이 가셔지면서 추위가 스며들어서인지 몸이 우들우들 떨리였다. 어둠속을 급히 밟아가는 그의 발자국소리가 유난스레 정적을 흔들었다. 흥묵은 어쩌면 그 발자국소리가 놈들의 귀에 미칠것만 같아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따라온 발바리가 앞에서 타박거리며 뛰여갔다. 흥묵은 개가 가는길을 따라 어림짐작으로 육고집가는 길로 들어섰다. 골목이 거의 끝나는곳에 들어서자 널바자로 둘러쌓인 육고집마당이 보였다. 방안의 불빛이 뙤창으로 뿌옇게 비치였다. 마당에 사람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흥묵은 길옆으로 비켜서 발소리를 죽이며 뛰여갔다. 목이 넘는 널바자밑에 다가가기 바쁘게 마당에서 얼른거리던 서너놈이 우실거리며 걸어나왔다.

대문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놈들이 손수레를 끌어내오고있었다. 손수레가 대문턱을 넘지 못해 놈들이 모두 달라붙어 낑낑 힘을 썼다. 가마니에 싼 각자목같은것을 잔뜩 올려쌓아서 좀처럼 들어내지 못했다.

(아차, 한발 늦었구나.)

흥묵은 불빛이 없는 서켠쪽 널바자밑에 앉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달구진 왜 돌려보내서 고생스럽게 옮겨싣고 옮겨가구 해.》

한놈이 기운이 진한듯 투덜거리였다.

《정신빠진소리, 달구지에 총을 싣구 시내복판으로 나 잡아가시오 하고 들어가? 힘들어두 손수레에 싣구 소리없이 새여들어가야지.》

《어디에 실어가게?》

《쓸데없는 수작들을 말아, 날이 밝겠다.》

한놈이 손수레바퀴를 들어올리며 누구에겐가 욱박질렀다. 흥묵은 그만 손맥이 풀렸다. 이젠 조순근이 아무리 빨리 가서 사람들을 데려와도 저놈들보다 늦어지기 마련인것이다. 저놈들이 분명 저기에 총을 싣고 시내복판에 들어가 사람잡이를 시작할텐데 이걸 막아내는 수가 있는가. 그는 두리두리한 창규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며 오싹 몸을 떨었다. 저것들이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저 총만 여길 빠지지 못하면 우리 창규는 무사해진다. 오직 사위를 살려야 한다는 그 하나의 일념은 흥묵에게 어떤 다른 타산을 할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흥묵은 어둠속에서 주먹을 부르쥐며 일어섰다.

놈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다홍치만지 검정치만지 술집은 왜 시내 한가운데다 차려놔가지구.》

《허허, 술이야 그런데가 잘 팔리지 이런 뒤골목이 좋을가. 오히려 좋게 됐지. 〈등하불명〉이라구 시내복판 보안서 코밑이 더 안전해!》

갑자기 덜커덕 하는 소리에 흥묵은 흠칫 놀랐다.

손수레바퀴가 대문턱을 넘어선것이다. 손수레군들이 대문밖을 지나 골목으로 나서려고 할 때 흥묵이 불쑥 다가서며 헛기침을 하였다.

《누구요?!》

맨앞에서 끌고나오던놈이 허리를 펴며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가 육고집이 옳시꺄?》

흥묵이가 마주 걸어가며 말을 걸었다.

《그렇소.》

손수레옆에 섰던놈이 불빛을 등에 지고 나오며 송곳같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서강이였다. 그의 손은 벌써 겨드랑이밑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권총이 뽑기 좋게 걸려있었다.

《나 괴기 살라구 왔어유.》

《괴기?》

《녜예. 제사에 쓸라구.》

한놈이 서강의 옆에 다가와 그의 귀에다 뭐라고 소곤거렸다.

순간 서강의 눈빛이 번쩍했다.

《당신이 신당리에 사오?》

서강이 입술을 감빨며 다가섰다.

《그 그렇시다. 가만 이게 참의어른네 도련님이 아니웨꺄?》

《그렇소. 고길 사겠으면 들어가보우. 우리두 고길 가져가는 길이요.》

서강은 뒤놈들에게 어서 가자고 눈짓을 했다. 앞채를 배에 건 놈이 힘을 쓰자 손수레가 굴러나왔다.

《가 가만 도련님은 신당리로 올라가셔유?》

흥묵이가 슬며시 골목길을 막아나서며 또 말을 걸었다.

《그건 왜?》

《좀 있다 괴기사고 나두 함께 갑시다유. 어두워서 어디 혼자 가기가···》

흥묵은 손수레앞채를 잡으며 사정하듯 말했다. 손수레를 끌던 놈이 그를 밀쳤으나 그는 꾹 버티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그는 손수레에 달려들어 덮어놓은 가마니를 벗겨보았다. 불빛에 총신들이 번쩍거렸다. 그 순간 서강이 흥묵의 팔을 잡아 나꾸채였다.

흥묵은 몇걸음 비틀거렸다.

(애빈 작인들 피땀을 뽑아내더니 네놈은 사람잡이를 하는구나.)

흥묵은 눈에서 불이 일기 시작했다.

《이 이걸 끌구 못간다. 내 사우는 못죽여!》

흥묵은 손수레앞채를 당기며 고함을 질렀다. 서강이 뒤에 선 놈에게 눈을 껌벅했다. 그러자 몸이 다부진놈이 씽 달려나오며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놈은 권총손잡이로 흥묵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어 어억···》

흥묵이가 손수레 앞채를 배에 걸고 어푸러졌다.

《야, 빨리 가자.》

서강이 흥묵의 뒤덜미를 잡아일으키며 손짓했다. 이때였다. 머리를 드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 흥묵이가 손수레바퀴를 잡고 뒤로 몸을 번쩍 제꼈다. 초인간적인 힘이였다. 바퀴에서 뚝하고 쇠못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젊은놈이 또 달려들어 구두발로 흥묵의 바퀴잡은 손을 내려찍었다. 눈을 감은 흥묵은 더욱 으스러지게 바퀴를 거머쥐였다. 손수레가 흥묵의쪽으로 쏠리며 총들이 흘러내렸다. 그놈은 한손으로 흥묵의 머리를 움켜쥐고 권총손잡이로 지끈지끈 족쳤다. 그의 권총잡은 손에 피와 머리칼이 묻어올라왔다.

《모 못죽인다아!》

흥묵의 입에서 피섞인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바퀴를 쥐였던 손은 벌써 처져내렸다. 흥묵이가 몸을 비틀며 늘어지자 젊은놈은 피묻은 손을 가마니에 대고 문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