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5장 3


 

제 15 장

3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 강진건의 칼날같은 질문이 팽팽한 공기를 째며 방안을 즈릉즈릉 울렸다. 자기자리를 강진건에게 내주고 창밑 가죽쏘파에 몸을 파묻은 유사천은 한손을 이마에 고인채 마루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누가 법령을 제마음대로 해석하라는 권한을 주었소? 왜 얼토당토않은 새끼법령을 만들어 이 혼란을 일으키는가? 엉!》

강진건은 시종 선자리에서 유사천의 비법행위를 꾸짖었다. 그의 눈빛이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비로 쓸듯이 훑었다.

《어디 솔직히 이 자리에서 말해보시오. 유사천동문 어째서 부유 중농까지 청산이주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댔는가? 그걸 좀 말해보오.》

강진건의 웅글은 목소리에 유사천은 몸을 흠칫 떨었다. 강진건이 어서 대답하라고 독촉하였다.

유사천은 겨우 얼굴을 들었다.

《제가 너무 극단을 부렸습니다. 그것은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심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결국 그런 좌경적인 행동을 하게 됐습니다.》

류창하게 열변을 토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유사천의 목소리는 몇끼굶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맥이 빠지고 토막토막 끊어졌다.

《뭐?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심때문에?》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미인 강진건은 솟구치는 격분을 이기지 못해 움켜쥔 주먹을 공중에서 떨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유사천의 이마에서 진땀이 뿌질뿌질 내돋혀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이 시뻘겋게 익어버렸다.

《내 당신의 정첼 모르구 온줄 아는가? 동무들, 모두 알아두시오. 이사람은 해방이 되자 중앙기관에 들어앉은 종파놈들의 바지가랭이에 붙어서 출세를 꿈꾸어온 사람이요. 그래서 토지법령을 고의적으로 비뚤어놓는 악행을 했습니다. 토지법령을 비뚤어놓으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강진건은 목이 타들어 책상우에 놓인 주전자물을 따르어마시고 계속하였다.

《목적은 공산당을 따르는 우리 인민의 마음의 기둥을 뽑아버리고 제놈들이 모든 권력을 다 쥐여보려는 그 더러운 야욕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무도한놈들인가!

우리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토지법령을 네놈들이 감히 비뚤어놓을수 있다구 생각했는가?》

강진건의 말을 듣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저마끔 벌떡벌떡 일어나서 유사천을 당장 들어내라고 소리쳤다. 방안을 울리는 분노의 함성에 기가 질려 호랑이앞에 나앉은 강아지처럼 유사천의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였다.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방안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못이겨 유사천은 끝내 두다리를 후들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을 하며 문쪽으로 걸어가다가 피뜩 돌아섰다. 인생의 림종을 직감한 그는 무엇인가를 애원하고싶고 말하고싶었다.

그러나 그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지 못하고 막연하여 맥없이 다시 돌아섰다.

김창규도 그때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방 한쪽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유사천이때문에 받은 재령벌농민들의 고통과 당에 끼친 손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동무들!》

창규는 강진건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는 이곳 군당비서자리에 틀고앉았던 유사천의 죄행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게 됩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든 장군님의 뜻과 어긋나는 지시를 할 때에는 받아물지 말고 날카로운 사상투쟁을 해야 된다는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조직부장 김창규동무와 신당리농촌위원회 위원장 조순근동무는 아주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동무들이 있기때문에 안팎의 원쑤들이 아무리 준동을 하여도 우리는 장군님의 토지정책을 잘 지켜내고있는것입니다.》

강진건이 이렇게 말하자 모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방구석에 앉아있는 창규에게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있는 김창규의 눈에서는 이슬기가 번쩍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을 위해, 당을 위해, 인민을 위해 충실하리라!)

김창규는 얼음이 풀리는 재령강기슭에서 만나뵈웠던 그리운 장군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였다.

회의를 끝내면서 강진건은 김일성장군님의 신임에 의해 김창규가 이곳 군당비서로 사업하게 되였다는것을 전하였다.

바로 이 시각에 신당리 서만호의 집에서는 불개미둥지를 쑤셔놓은것 같은 은밀한 소동이 일어났다. 《호신병》들이 서강의 지휘밑에 달구지를 련못가쪽에 세워놓고 창고의 무기를 내다실었다. 서강은 집안의 머슴들조차 방에서 못나오게 단속을 하면서 총을 나르는 《호신병》과 마름을 주시하였다. 지주놈의 심복들은 기침도 크게 못깇고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총을 한아름씩 가마니짝에 싸서 날라내갔는데 긴장한 그들의 얼굴에는 강한 흥분이 비껴있었다. 서강은 장총과 탄약통들을 모두 내가게 하고는 제가 직접 삽을 들고 창고에 들어가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다부지게 삽질을 했다. 얼마 안있어 삽끝에 궤짝 맞찧는 소리가 났다.

《음, 있군 》

그는 삽을 던지고 끙끙 힘을 쓰며 상자를 안아올렸다. 그 상자 곁에 탄약통이 둘 있었다.

《이걸 빨리 내다실어!》

서강이 소리쳤다. 마름들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총들어간 궤짝과 탄약상자를 받아서 안아내갔다.

얼마후 무기실은 달구지는 딩겅딩겅 방울소리를 울리며 어둠이 내린 련못가를 에돌아 읍을 향해 떠났다.

《가만, 그 방울을 떼라.》

서강이 달구지를 세우며 말했다.

《예?》

마름이 무슨 소린지 몰라 서강을 돌아보았다.

《방울을 떼란말이다.》

서강이 단장으로 소의 턱주가리밑을 가리켰다. 그제야 마름은 머리를 끄덕이며 방울을 풀어서 련못에 내던졌다. 마름이 소잔등에 채찍을 얹자 방울을 떼운 황소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달구지를 내끌었다.

《아니, 저것들이 어딜 가는가?》

달구지에 무기를 싣고 떠나가는것을 문구멍으로 내다보고앉아있던 장서방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 자기는 오늘저녁 서만호가 마을에 내려가 달성서씨네 동향을 살피고 올라오라고 하기에 여적 내려가있다가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을줄은 몰랐다. 그는 바깥대문밖에서 《호신병》들이 무언지 달구지에 절칵절칵 내다 싣는걸 보고는 심상치 않아서 여태 방안에 숨어앉아 문구멍으로 내다보았었다. 서강의 지휘밑에 총과 탄약상자를 들어내다 달구지에 싣는다는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널뛰듯 하였다. 그런데 벌써 무기실은 달구지가 떠난것이다.

장서방은 어찌할바를 모르고 방안을 왔다갔다 하였다. 하는짓을 보면 틀림없이 서강이놈이 무슨 란동을 벌리려는것 같은데 이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궁리가 나지 않았다.

《게 장서방이 있나?》

사랑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만호의 목소리만 나면 녜예-하고 즉각에 대답하는것이 하나의 타성으로 된 장서방이였지만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니, 이 소죽은 귀신같은게 마을에 내려보낸지가 언젠데 아직도 오질 않았나?》

사랑문이 벌컥 열리는것 같았다. 금시 서만호가 단장을 휘두르며 자기방으로 찾아올것만 같아 간이 콩알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문밖이 조용했다. 이때 장서방은 서만호에게서 된 꾸중을 받는 한이 있어도 당장 조순근을 찾아가서 지금 벌어진 일을 알려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마을에 무슨 변고가 생길지 모를 위태로운 시각에 자기같은 늙은게 꾸중을 받은들 어떻고 설사 죽은들 어떠하랴 하는 비장한 생각이 그를 문밖으로 떠밀었다.

장서방은 어둠속을 더듬어 조용히 대문밖을 나섰다. 머슴살이 수십년에 서만호의 눈을 그렇게 속여보기는 처음이여서 장서방은 자기의 그 발걸음이 어쩐지 기이하게 생각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