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5장 2


 

제 15 장

2

 

면농민조합사무실에서 리에 내려갈 실행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창규는 난데없이 들려오는 자동차소리에 머리를 돌려 문밖을 내다보았다.

유리미닫이너머로 연두빛방수포를 씌운 풍차 한대가 마당으로 달려들어오는것이 보였다. 차가 멎자 중절모를 쓴 체격이 우람한 사람이 유사천이와 함께 문을 열고 내려섰다. 등이 구불고 입술이 두툼한 환갑나이의 낯이 익은 사람이였다.

《아니? 저분이···》

김창규는 손에 쥐였던 수첩을 접으며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방안에 숨막히게 배겨앉았던 사람들도 우실거리며 일어나 길을 내주었다.

《농맹위원장동지, 저 동무가 우리 조직부장입니다 》

김창규가 나오는것을 보고 유사천이 강진건에게 말하였다.

《알고있소.》

강진건은 머리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다시 만나니 반갑소 》

강진건은 창규의 두툴두툴한 손을 잡아쥐였다.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오는길이요.》

《부장동무, 위원장동지를 모시고 신당리로 가야겠소.》

뒤에 섰던 유사천이 초조한 표정으로 김창규에게 손짓했다.

《신당리에요?》

《하던 일에 지장이 없겠소?》

강진건이 문밖에 나와서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김창규에게 물었다. 문밖에는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와 성쌓듯 몰켜서서 무슨 일인가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있었다.

얼마후 강진건이와 함께 유사천, 김창규들을 태운 풍차는 신당리로 들어가는 넓은 신작로길로 나섰다. 차가 달리는 길옆에는 다복다복 누게막같은 집들이 앉아있고 이따금 왜기와를 인 벽돌집들도 서있었다. 지금 유사천은 무언지 모를 불안에 잠겨 앞좌석에 앉은 강진건의 표정을 은근히 살피였다. 오늘아침 뜻밖에 달려든 강진건은 그와 인사를 나누자 군내형편을 이것저것 몇마디 물어보았다.

말하는 눈치를 보니 이곳 정세가 어떻다는걸 이미 손금보듯 다 알고 내려온것 같았다. 말수가 적은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위임에 의하여 황해도에 시찰을 왔다고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는 함께 나가 농민들을 만나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유사천은 급하게 그를 따라나왔지만 바늘방석을 밑에 고인것처럼 몸이 저려들었다. 신당리로 가자는것부터가 불안하고 께름하였다.

더구나 유사천은 자기가 작성한 신당리청산이주자명단을 보고 강진건이 몹시 불쾌해하면서 대뜸 오기섭을 꾸짖은 일이 심상치 않게 생각되였다.

강진건의 말에 의하면 오기섭이 황해도에 와서는 늘 좌경적인 발언을 하였지만 평북도에 가서는 지주를 타지방으로 내쫓으면 그들을 고농으로 전락시켜 농촌에 새로운 착취관계를 형성시킨다며 궤변을 떨었다는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기섭은 우익반동들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무슨 사상적인 일가견을 가졌거나 주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탐위적인 목적을 위해서 제멋대로 《리론》을 만들어내고 당의 토지정책을 시비해나서기때문이라는것이다.

유사천은 강진건의 그 말에 몸이 저려나는것을 애써 감추었다.

그는 자기가 하늘처럼 믿고있었던 사람들의 신상에 어떤 무서운 위험이 몰려온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게 웬 사람들이요?》

강진건이 창밖을 내다보며 묻는 소리에 유사천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달구지를 둘러싸고 길녘을 무리져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였다.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누비저고리를 입은 모양새가 농민들 같았다. 그속에 총대를 멘 청년 하나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 청년은 어깨가 으쓱해서 팔을 휘저으며 걸어가는데 한 농민이 그에게 연방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더니 뒤에서 따라오는 농민들을 가지 못하게 멈춰세웠다.

강진건은 총을 멘 청년과 농민들의 움직임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차를 세우게 하였다. 차에서 내리면서 옆을 돌아보니 벽체가 높다란 큰 건물 하나가 눈에 띄였다. 농민들은 거기서 나온것 같았다. 그 건물의 널대문앞에 농민들 몇이 나와서서 총멘 청년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불안스럽게 바라보고있었다. 강진건은 수군거리고있는 농민들에게로 마주갔다.

농민들이 서있는 건물은 정미소였다. 안에서 우릉우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고 안개같은 먼지가 뽀얗게 떠서 대문밖으로 연기처럼 밀려나왔다. 쌀겨가루가 건물의 안팎에 눈내리듯 앉아있다. 농민들의 눈섭우에도 흰눈같은것이 다복히 쌓여 고양이눈섭같이 되였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하오?》

강진건은 농민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불안스럽게 서로들 수군거리고있던 농민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양복차림의 일행을 보고 당황해하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예, 저희들은 벼를 찧으려···》

한 농민이 저고리자락을 쥐고 머밋거렸다.

《저앞에 끌려가는 농민들은 무슨 일때문에 저러오?》

《저 사람들은 벼를 찧어가려고 왔댔는데 갑자기 보안서에서 나와서···》

농민은 말끝을 채 여물구지 못했다.

《보안서에서? 벼를 찧으러 온 농민들을 무슨 일로 보안서에서 데려가오.》

《저, 그런데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지요?》

《아, 나말이요? 난 농맹위원장이요.》

강진건은 고개를 들고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그제야 약간 안심이 되였는지 농민들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사실 저 사람들은 동흥리에서 온 중농들인데 벼를 찧으러 온것이 아니고 맡겼던 벼가마니들을 도루 찾으러 온 사람들이올시다. 거기에 신당리사람도 한사람 같이 왔는데 요새 누구보다도 떠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지요. 우리같이 땅없는 사람들은 38°선이 39°선이 된다는 소리때문에 좀 께름한 생각은 있지만 저 사람들이야 공산당에서 이번 토지개혁때 땅을 아주 뗄것 같으니까 청산을 맞을 땐 맞더라도 량곡만은 가져다 어떻게 하자는거지요.》

농민은 무겁게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는 궁금해하는 강진건의 눈빛을 보며 말을 계속했다.

《저 사람들이 벼를 찾으러 왔으면 가만히 있다가 찾아가지고 가면 좋았을건데 공산당에서 하는 정책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느니, 빈농민한테는 땅을 주면서 이미 땅가진 사람은 무슨 원쑤진 일이 있어 타도하겠다고 소란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수다를 떨다가 지나가던 보안서원한테 걸렸지요. 그 사람이 처음엔 류언비어 류포죄라구 덮어놓구 우리까지 끌고가자고 하다가 벼가마니 찾으러 온 사람들이 진짜 반혁명이라면서 그들만 끌고갔지요. 마침 신당리농촌위원회 위원장 조순근이 달려와 자기 마을에서 온 사람을 내끌며 장군님말씀도 못믿고 벼가마니를 찾아가지고 뛸 생각인가고 벼락치는 소리를 합디다. 그런데 보안서원이 맡아나서서 박승을 지우겠다고 하자 또 이번엔 조순근이 그와 티각태각하다가 저렇게 끌려갑지요.》

《박승을 지운다?》

강진건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뒤에 서있는 유사천은 공연히 바지가랭이속에서 오금살을 떨었다.

《그런데 간부어른,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38선이 39°선이 되면 토지를 분여받았다가도 도루 게워놓아야겠지요?》

농민 하나가 허연 눈섭을 끔벅거리며 강진건에게 물었다.

《그런 소리를 누가 하오? 눈섭을 좀 닦소.》

농민은 저고리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죽이 벗겨져라 문대였다.

《사실 이건 내 혼자생각도 아니웨다. 지금 면내 작인들이 그 소문을 듣고 다 풀이 죽어있습지요. 땅을 도루 내놓을바에야 안받았던것만 못하지 않은가, 땅을 받는다면 어차피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서 나눠가지겠는데 그것들이 미국군대가 들어오면 제땅 뺏았던 작인들을 그냥두자고 할텐가, 이러며 마가을 사시나무 떨듯 해요.》

농민의 말을 듣는 동안 강진건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누구든 들으면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일소에 붙일 소문을 농민들은 진짜로 믿고있는것이다.

《알겠소. 내 오늘 정확히 말하면 38°선이 39°선 된다는 말은 반동놈들이 지어내서 돌리는 헛소문이요. 그러니 당신들은 절대 그런 소문에 마음이 흔들려선 안되오. 공산당이 언제 농민들을 속인적이 있소. 작년에 3.7제도 공산당에서 내놓은 시책인데 당신들은 그 덕을 보지 않았소. 중농들의 땅을 빼앗는다 어쩐다 하는것도 마찬가지요. 당신들 말처럼 땅없는 사람들에게 땅을 노나주는것이 공산당의 시책인데 이왕 제땅 가지고 제손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의 땅을 왜 빼앗겠소. 공산당이 우리편인가 아닌가 하고 의심부터 앞세우면 결국 당신들자신이 속는다는걸 알아야 하오. 공산당은 언제나 밭갈고 씨뿌리는 농민들의 편이라는걸 의심해선 안되오. 이걸 당신들도 똑똑히 새겨들어야겠지만 다른 농민들에게도 잘 해설을 하시오. 이건 김일성장군님을 직접 모시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대답이요. 알겠소?》

《예?!》

강진건의 말에 농민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들은 강진건이 처음 농맹위원장이라는 말에 도에서쯤 내려온 간부로만 짐작하고있었던것이다. 강진건은 그들과 말을 끝낸 다음 차에 올라 보안서원에게 끌려간 농민들을 따라갔다.

풍차가 앞서가는 농민들과 가까와질수록 유사천의 낯빛은 점점 침울해졌다. 앞에서는 농민들 대여섯명이 포도청에 끌려가는 죄인들처럼 고개를 떨구고 가는데 보안서원은 이젠 아주 죄인 호송하듯 뒤에서 총대를 받들어쥐고 따라간다. 그 순간 유사천은 류언비어 류포자들을 엄격히 단속하고 체포하라는 지시를 주었던 생각을 하고 눈을 지리감았다.

《차를 세우오.》

강진건이 농민들이 길옆으로 비켜서는것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바람으로 총을 메고있는 보안서원에게로 갔다.

《동무, 총대를 거두시오.》

《아니, 아바인 누구요?》

청년은 학각이 너덜거리는 모자를 밀어올리며 만만치 않은 눈찌로 쏘아붙였다. 그러자 김창규가 달려가 청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당신은 또 뭐요?》

창규의 얼굴을 모르는 청년같았다.

《동무, 그 총대를 내리시오.》

강진건이 엄하게 소리쳤다. 청년은 앞뒤에 선 낯모를 사람들을 흘겨보며 총을 걸어메였다.

《난 지금 반동요언을 돌리는놈들을 검속하라는 군당비서의 명령을 집행하고있소.》

《동무, 그만하지 못하겠소.》

유사천이 청년의 앞으로 다가가며 꽥 소리쳤다. 그제야 청년은 비실비실 뒤걸음을 쳤다.

《이게 조순근동무구만.》

강진건이 웃으며 농민들속에 있는 조순근을 바라보았다.

《아니? 전번 장군님 오셨을 때···》

조순근은 한걸음 나서며 꾸벅 절을 했다.

《그래 신당리에선 일이 잘되오?》

강진건이 조순근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었다.

《예, 이젠···》

조순근은 공연히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그날 장군님앞에서 망녕을 부린 서씨농민들의 일을 두고 묻는것만 같았다. 그는 강진건이와 인사를 나눈 다음 유사천에게도 공손히 허리를 굽히였다.

《그런데 아저씬 어떻게 여길 왔어요?》

김창규가 조순근에게 다가서며 조용히 물었다.

《글쎄, 기가 막혀서, 저 시라소니같은 강필수가 벼를 찾아가지구 어딜 뛸 생각을 한다나. 우리 사람들은 요새 뛰뛰한 소문이 돌긴 해두 누구 하나 꿈쩍을 안하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땅떼울가봐 시라소니짓을 하지 않나. 그래 아침에 뒤따라왔는데 또 보안서원한테 잘못 걸려가지고 죄인취급을 받더군. 그 보안서원이 똑똑은 한데 요지부동이야. 죄가 없다는데두 끌구가서 기어이 문초를 해봐야겠다질 않나. 그래 말리다 못해 이렇게 뒤따라가던 참일세. 허허허.》

《강필수농민이 누구요?》

강진건이 달구지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강필수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옆에 섰던 다른 농민들도 움이 질려 얼굴을 못들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보안서원은 물러갔지만 자기들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것은 사실이기때문이다. 차타고 나타난 높은 사람들이 더 무섭게 벌을 내릴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필수라구 누군가말이요?》

《예, 저올시다.》

강필수는 다시 재촉해서야 겨우 입을 떼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래 가면 어디루 갈 생각이였소?》

《저··· 저···》

《필수 이사람, 겁먹지 말구 말씀올리라구. 바쁜 걸음을 멈추고 물어보시는데. 소문두 소문이려니와 알구보니 서만호란놈이 뒤에서 되게 쑤시닥질을 했더군요 》

조순근이 그의 옆에 가서 옆구리를 쥐여지르며 말했다.

《저 가산정리를 해가지구 인천에 있는 처가에 갈가 하구···》

《인천에?》

《예.》

강진건은 머리를 들고 후- 한숨을 쉬였다.

문득 떠나오기전날 당을 따르는 인민들이 마음의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은 그래 토지개혁법령을 읽어보았소?》

강진건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거기에 당신같은 중농의 땅을 뗀다는 조항이 있었소?》

《별루 그런건···》

《허허허, 그것 보오. 그걸 믿어야지 소문을 믿어서야 되우. 그건 장군님께서 직접 공포하신 나라의 법령인데 이소리 저소리 돌아가는 소리를 듣구 남조선으로 갈 생각을 해?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요? 돌아가오. 조순근동무가 오죽 안타까왔으면 저렇게 달려다니겠소.》

《그럼 저같은건 안다친다는 말씀이신지요?》

《이사람, 자넨 의심이 병이야. 서만술이랑은 제 땅이 없어서 가만있나. 서만호란놈이 발붙일데가 없으니까 자네같은 얼뜨기들을 들쑤셔보자는거야.》

조순근이 옆에서 핀잔섞인 말을 했다.

《옳소, 공산당의 계급정책이 바로 그렇소. 빈농민들두 당신처럼 땅을 타가지구 함께 희희락락 농사를 짓겠는데 오죽 좋소.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좋은 세월에 농사를 지어야지 가긴 어디루 간단말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강필수는 연신 허리를 굽석거리며 머리가 땅에 닿게 절을 했다. 그리고는 떨어지는 눈물을 두손으로 막으며 달구지뒤에 가앉아 울었다. 옆에 섰던 농민들도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틀었다.

강진건은 그제야 좀 안심이 된듯 조순근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사천은 이야기판에 끼울 생각을 못하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들판만 내다보았다. 그에게는 강진건의 침묵자체가 호된 질책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