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4장 5


 

제 14 장

5

 

서무과에서 쫓겨난 박종관은 동흥리 웅망산기슭에 있는 양천사의 어두운 암자에 누워 온종일 인생의 허무와 절망을 한탄하였다.

그 옛날 학생시절 방학때가 되면 식민지노예생활의 고민을 안고 잠시라도 속세와 인연을 끊고싶은 심정에서 찾아오군 하던 절간이다. 나라가 해방되였으나 슬픈 운명은 그에게 또다시 속세를 체념하고싶은 마음에서 이 적막한 인생의 은신처를 찾아오게 하였다.

리조중엽 효종 2년에 증축되여 불도를 정성껏 펴왔다는 이 양천사는 곰처럼 웅크리고앉은 웅망산기슭에 고삭은 기둥을 박고 추녀를 높이 든채 아직도 울긋불긋한 단청이 은은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지금은 시주하는 사람도 적고 주지도 없어 주인없는 정각처럼 되였지만 단청에 새겨진 련꽃이며 기둥사이마다 새겨진 구름무늬들이 퇴락한 색조나마 절의 이채를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마당은 쓸어본지 오랜듯 락엽이 마루밑에 거름무지처럼 쌓여있고 불상을 모신 법당에까지 해묵은 락엽이 굴러다니고있다.

불상밑에 비죽이 내민 벼짚오리들도 여며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가슴에 손을 얹고 주르르 앉아있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암자에 누워있는 종관은 해넘어가는 바위벼랑우를 올려다보고 긴 한숨을 쉬였다. 모든것을 잊으려고 하나 아픈 생각이 자꾸만 갈마들었다.

눈을 감으면 말할 때마다 입주변의 검은 수염이 부르르 떨리면서 그속에서 흰 이발이 유난스레 번뜩이는 군당비서의 얼굴이 나타났다.

《당신은 철직이요! 당신은 서만호의 아들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데 그와의 관계에서 자백할것이 있으면 솔직히 자백하기를 바라오. 며칠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테니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종관은 이런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서무과 사무실을 나와 곧장 이리로 찾아왔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장난것 같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부지중 창규의 서글서글하게 웃고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종관이, 이젠 그런 어정쩡한 머리로는 살수 없네. 정신을 차리구 건국에 뛰여들라구.》

하지만 그의 말대로는 안되였다. 자기가 찾던 정신적안정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말았다.

보다 더 우의를 가지고 대하던쪽에서 이글거리는 화로불을 자기의 얼굴에 뒤집어 씌웠다.

자기가 걷던 평탄한 길은 그 어데도 보이지 않는다. 종관은 눈물이 얼른거려 목을 꼬았다. 옛중학시절에 외우던 그 누군가의 시조 한수가 떠올랐다.

 

하나 둘 세 기러기 서남북 나뉘여서

주야로 울어예니 무리잃은 소리로다

언제면 상림추풍에 일행귀를 하리오

 

왜놈학생들에게서 모욕을 받고 얼음장같은 하숙방에 누워서 읊조리던 시조였다. 그때에는 모욕적인 식민지학창생활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 시조를 노래처럼 읊었다. 그런데 해방된 오늘에 와서도 무리잃은 외기러기신세가 되였으니 결국 자기는 숙명적으로 그렇게밖에는 달리 될수 없는 존재인것만 같았다.

종관이 이런 슬픈 생각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어둠속에서 발자국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왔다.

허리가 굽은 늙은 중이였다. 산속에서 나물을 캐며 살아간다는 싸리발같은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한 로승은 목탁을 두드리며 《수리수리마 수리수리사바하 관세음보살 나미아미타불-》 하고 념불을 외우더니 종관에게 다가왔다.

《내가 방금 마을에 내려갔다왔는데 종관씨의 댁에서 무슨 변고가 난것 같소이다. 댁의 춘부장이 공산당의 성화에 못이겨 논밭을 한평도 남기지 않고 내놓았다는 소리가 있수다. 어서 내려가 보시오이다.》

박종관은 벌떡 일어섰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이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얼마후 그는 길가에서부터 뻗어들어간 두거지우로 맥을 잃고 걸어들어갔다. 자를 대고 그은듯 곧추 뻗은 논두렁은 파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작은 오솔길같이 보였다. 갈구랑달이 나무가지우에 높다랗게 걸려있었다.

그는 긴숨을 내쉬며 논두렁을 따라 걸었다. 박종관은 양아버지가 살붙이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던 자기 소유의 논밭들을 한평도 남기지 않고 몽땅 내놓았다니?···

너무도 놀라운 일이였다. 아버지는 이 금덩이같은 땅을 다 내놓고 어떻게 하겠다는것인가? 양아버지는 땅문서를 바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것인가?

《숙청》이다, 《타도》다 하는 때에 자기스스로 그 풍파속에 몸을 던지고 어데로 밀려가겠다는걸가.

박종관은 상서롭지 못한 소식을 듣고 자기네 논을 걸어가려니 양아버지슬하에서 자라나던 어릴 때 생각이 났다. 그는 여섯살때부터 양부앞에 앉아 한문공부를 했다. 마을에 서당이 있긴 했지만 가르쳐주는 훈장이 괘가 센 사람이여서 쩍하면 아이들의 종아리를 친다고 양부는 아들이 종아리를 맞을가봐 서당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양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천자, 무제시, 당시 그리고는 훌쩍 수준을 높여 사략, 주역을 읽었다. 그걸 열한살때까지 읽다가 학교로 들어갔는데 그 한문을 읽으면서 양아버지한테서 단 한번 종아리를 맞았다. 사략 초권의 첫줄에 《천황씨는 이 목덕으로 왕하여》라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읽을 때 목덕이라는 말을 목데기라고도 읽고 목침이라고도 읽자 아버지는 글자를 안보고 허망글을 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 글을 읽는게 글자를 들여다보며 정신을 들여 읽지 않고 이말저말 허튼소리를 해. 나무목자 큰덕자인데 뭐 뭐 목데기야? 목침이야? 그게 나무를 덕삼아가지고 왕이 됐다는 소린데 베고자는 목침이야, 목데기야?》

아버지는 대노해서 구석에 다듬어다 세운 싸리몽치를 들었다.

《이놈! 일어서 다리 걷어라!》

종관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일어서 다리를 걷어올렸다.

양아버지는 싸리매채로 종아리를 한 댓개 후려갈겼다.

《애고고···》

종관은 주저앉으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밤이였다. 종관은 그래도 아버지곁을 떠나서는 잠들수가 없어서 그의 이불아래에 기여들어갔다. 매를 맞은 일이 아니꼬와 한동안 잠못들고 부시럭대는데 아버지는 슬그머니 손을 뻗쳐 자기의 장딴지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종관은 종주먹을 부르쥐고 아버지의 가슴팍을 쾅쾅 내질렀다.

《아버지 미워 씨.-》

《흐흐, 그래서는 못써.》

아버지는 이렇게 한마디하며 엉뎅이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는 오늘까지 자기의 귀중한 양아들에게 욕한마디 안하고 매 한대 안때리고 살아왔다. 자기가 집을 떠나 도시에 나가 중학공부를 할 때는 아버지가 망태속에 과실을 따서 지고 오기도 했다.

《돈이나 보내줄가 하다가 그래도 내가 가꾼 실과인데 맛보라구 가져왔다.》

이러며 망태채로 내밀어주었다. 종관은 그때 땀을 철철 흘리며 망태를 지고 찾아오던 양아버지의 텁수룩한 얼굴이 그려지기도 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것은 아닐가. 그러나 양아버지의 사랑에 비하면 자기는 여태 너무 매정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저리였다. 엊그제도 서만호의 땅을 샀다는 말을 듣고 양아버지에게 얼마나 아픈 말을 했던지 모른다. 그것이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었다.

종관은 소유토지의 전부를 내다바친 양아버지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의 그것은 애국적인 소행인가 반발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모든것을 체념하고 살아가려는 새로운 정신변화가 일어났는가? 도무지 가늠할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태였다.

아버지의 생각은 어쨌든간에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객관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것이였다. 실지로 토지소유증서와 서만호에게서 사기로 한 그 매매계약서의 토지까지 합치면 5정보이상의 땅을 가진 청산지주로 된다.

양아버지는 《숙청》의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들이밀었다.

(흥, 그러고보면 계급이라는것도 하루아침에 우습게 변하는군.)

박종관은 눈앞에 다가오는 불길한 운명의 그림자를 예감하면서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는 꿈속을 헤매는것 같은 정신으로 늙은 배나무 한그루가 마주보이는 집쪽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짚었다. 집앞에 오니 방마다 불이 환히 켜지고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누구인지 울음을 우는 소리도 들렸다.

박종관은 대문을 넘어서며 가슴이 철렁했다. 누군지 부엌문밖에 나와 서서 쿨적거리고있었다. 안해였다.

《왜 그래? 청승맞게.》

안해의 우는 꼴에 화가 나고 불안스러워 욕부터 나갔다. 안해는 부은 눈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말을 못하고 끅끅 흐느끼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아버진 계시오?》

《아버님은··· 저.》

《아, 말을 해야 알지. 범한테 쫓기는것처럼 떨지만 말구.》 종관은 답답한듯 꽥 소리쳤다.

《저 아버님은···》

안해는 말끝을 여물구지 못한채 얼굴을 싸고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종관은 불에 덴 사람처럼 흠칫 놀라며 문을 열어제끼였다.

《음, 애아버지가 오는군.》

방안에 앉았던 사람들이 종관이 들어서자 우실우실 일어서며 자리를 내주었다. 종관은 그들과 인사도 나눌새 없이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양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 옆에 한씨가 앉아서 눈물을 씻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배추속같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은게 산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종관이 양어머니를 돌아보자 한씨는 대답대신 코물을 들이키며 곡성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한 농민이 한숨처럼 중얼거리였다.

《령감이 무슨 억울한 일이 있었는지 저 배나무에··· 소름이 끼쳐서 말을 할수가 없구만. 거 이불깃을 내리구 목을 보게.》

종관은 급히 이불깃을 제끼고 양아버지의 턱밑을 살펴보았다.

《이런···》

종관은 손을 멈추고 눈을 흡떴다. 울대뼈 좌우로 퍼렇게 멍이 지고 살껍질이 벗겨졌는데 피가 내배였다. 바줄로 목을 졸라매였던 자리다.

《누가 이랬습니까? 누가?》

《누군 누구겠나. 제가 독을 먹고 그랬지.》

마을농민 하나가 이불깃을 도로 덮어주며 대답했다.

종관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서 양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한씨가 울음을 진정하고 양아버지의 신상에 벌어졌던 자초지종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불행은 이날 아침에 별안간 찾아왔었다. 방금 박병칠로인이 조반을 먹고 돌아앉았을 때 군당비서라는 사람이 대문안으로 들어왔다. 턱수염이 부르르한 그 사람은 처음에 인사를 깍듯이 하고 로인이 권하는 담배도 무랍없이 한대 받아 피웠다. 그러던 사람이 불시에 낯빛을 변하더니 이 집에서 과거에 군당조직부장 김창규를 머슴으로 부려먹은 사실이 있는가고 따지였다. 그리고 왜 그를 내쫓았는가, 어린것을 실컷 부려먹고 그의 삼촌에게서 밥값은 왜 또 받았는가고 하면서 얼굴이 수수떡처럼 되여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서만호의 땅을 사게 됐다는 매매계약서를 내놓으라고 하더니 《당신은 이미 청산대상으로 결정되였소. 당신은 서만호와 결탁을 한 사람이니 우리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소. 당신의 양아들 박종관이와도 우리는 함께 혁명을 할수 없기때문에 서무과에서 내보냈소.》 하고 뇌까리고는 인사도 없이 표연히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군당사람이 돌아가자 박병칠은 기절하듯 구들에 나가 군드러졌다.

《이젠 망했구나! 땅 내놓고 쫓겨가서 어떻게 산단말인고!》

그는 두주먹이 터져서 피가 나도록 구들바닥을 두드렸다.

그렇게 한참 울고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앉아 방안이 뽀얗게 담배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농짝을 열고 밑에서 토지소유증서를 꺼내더니 계약서와 함께 구들바닥에 나란히 펴놓았다. 그것들을 한줄한줄 읽어보고난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분연히 일어섰다. 옻칠을 한 나무곽에 문서들을 차곡차곡 넣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의복도 깨끗한것을 차려입고 동구밖을 향해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 유유히 걸어갔다.

퍼그나 시간이 걸려 저녁녘에야 집으로 돌아온 로인은 사랑방에 홀로 앉아 또다시 담배를 피웠다. 로인의 얼굴에는 그전에 항용 떠돌던 초조와 번민의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무엇인가 이 세상에 대해 방심하는듯 한 평온한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그는 날이 어슬어슬해오는 때에야 저녁상을 받았다.

《얘, 인동이도 좀 안아내오구 술이 있으면 두어보께 내다다구.》

박병칠은 밥상을 들고 들어온 며느리에게 일렀다.

《아버님, 저녁을 잡수셔야죠. 인동인 왜 안아내오겠어요.》

《한번 안아보고싶어서 그런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별스럽게 구는것 같아서 씨죽이 웃으며 돌아서 들어갔다. 얼마 안있어 며느리는 술주전자와 함께 박종관의 아들 인동이를 안아들고 나왔다.

《어이구, 이놈 저녁을 먹었느냐?》

박병칠은 아이를 안아다가 엉뎅이를 뚝덕뚝덕 두드려주었다.

《응.》

아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무르팍우에서 발을 구르면서 할아버지의 검은 턱수염을 쥐여당겼다.

《이놈, 버르장머리가 없이, 이 수염 시꺼먼 얼굴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해해.》

애가 캐득거렸다. 며느리도 상곁에 서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왜 저렇게 시아버지가 오늘저녁엔 별스럽게 구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님, 어서 진지 드세요 》

며느리는 아들을 받아들고 나왔다. 며느리가 나가자 박병칠은 큰 놋바리보깨를 열었다. 보깨에 꼭지가 달린 큰 놋바리인데 밥을 덩그렇게 담았다. 그는 밥은 먹지 않고 주전자를 가져다 보깨에 술을 넘치게 따르었다. 그걸 입에 대기바쁘게 꿀덕꿀덕 단숨에 마시였다. 그리고는 또 한보깨 따르었다. 그것도 입을 떼지 않고 다 마셔버렸다. 그다음에야 저가락으로 짠지쪽 한쪽을 들어서 입에 넣어 깨물었다. 저가락을 놓고 밥바리보깨를 덮은 그는 상내가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그자리에서 움쑥 일어섰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사랑마루로 나섰다. 날이 코를 베여가도 모르게 새까맣게 어두웠다. 그는 발자욱소리를 죽이며 대문간쪽으로 들어가 소외양간쪽벽을 어루쓸었다.

거기에 소를 밭에 내다매군하는 긴 바줄타래가 걸려있었다. 그 바줄타래를 걸머메고 바깥마당으로 걸어나온 그는 또 담장쪽으로 가서 긴 장대 하나를 들고나왔다. 그는 배나무의 웃초리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휘- 이젠 되였다 》

그는 이런 순간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독심으로 모태우에 올라서 바줄끝의 올가미를 자기 목에 걸었다. 그는 기와집을 한번 휘둘러보고 자기 땅이 있는쪽도 내다보았다. 어두움이 내려 벌은 캄캄한데 그 어두움우에 또 안개가 서려있다. 두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종관아, 용서해라. 죄는 죄대로 가는가보다. 난 왕벌이 땅을 주면서 너를 내세워 자길 애국지사로 소문을 내달라는 말에 속아 그 땅을 사구 보증서에 지장두 찍어주었다. 그놈이 날 이렇게 제놈 망하는 날 같이 망하게 하려는줄을 모르구··· 그리구 창규야, 너두 날 용서해라.

난··· 난··· 정말 네앞에 죽을 죄를 졌다. 그래서 내 죄를 이렇게 씻으려고 한다.》

그는 밟고 서있던 도끼모태를 발길질로 밀어던졌다. 몸이 허궁 들려서 디룽디룽 돌아갔다.

(이젠 가는구나.)

사지가 쭉 뻗어내렸다. 바줄이 걸린 늙은 배나무가지는 육중한 무게를 느끼는지 어둠속에서 몸부림을 치듯 앙상한 가지들을 서로 부딪치며 세차게 흔들었다. 바로 이때 박병칠의 집을 찾아오던 김창규가 그 놀라운 광경을 발견하고 로인을 구원하게 되였다.

《그래두 하늘이 도왔지··· 재경아주버니네 조카가 아니였더면··· 어어이구 기가 막혀라.》

한씨가 무릎을 두드리며 넉두리를 하였다.

박종관은 벌떡 일어서서 고개를 쳐들고 방안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창규 그 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해쓱하게 질린 종관의 두눈에서 무서운 불꽃이 튕기고있었다.

《의원을 데리러 갔어요 》

안해가 울먹이며 대꾸하였다.

《의원··· 무엇때문에?··· 그러자고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안긴단말인가?》

박종관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마을 늙은이가 종관을 진정시키였다.

《여보게, 그런게 아니네. 창규 그 사람은 임자네를 청산이주시키지 않는다고 했네. 임자 아버지한테도 부치던 땅을 그대로 주고 농사를 짓게 한다는거네. 그게 바루 장군님의 뜻이라는걸 알려주자구 임자네 집을 찾아오다가 아버지를 살려낸걸세. 저걸 보라구. 임자 아버지가 면인민위원회에 내다바쳤던 문서들두 그 사람이 저렇게 도루 다 가지고 왔네.》

옻칠을 한 나무곽이 누워있는 박병칠의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모두들 그러는데 창규 그 사람이 임자 아버지를 다치지 않게 하려구 군당비서하구두 여러번 대두리싸움을 했다구 그러데. 임자네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으로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임자네 온 일가는 그 사람한테 엎드려 절을 해야 되네.》

누구인가 늙은이의 말에 동을 달며 하는 소리였다. 박종관은 비칠거리다가 바람벽에 손을 짚고 눈을 지리감았다. 그의 눈앞으로 김창규와 유사천의 얼굴이 엇갈리며 지나갔다. 같은 두 공산당원의 모양이 왜 이렇게도 다른것인가.

박종관은 갑자기 설음이 북받쳐올라 조용히 누워있는 아버지의 이불옆에 엎드리였다.

그 순간 숨이 진것 같던 박병칠로인의 피기없는 량볼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