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4장 3


 

제 14 장

3

 

서만호는 요새 내내 불안속에서 전전긍긍한 날을 보내고있었다. 고택이 평양에서 피신해 내려와 재령벌의 토지개혁을 파탄시키겠다고 하기에 박기동이와 손을 잡게 해주었는데 그게 어떤 수를 쓰자는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고택이에게 싸움을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물으면 《참의나리께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가 남의 팔매에 밤이나 주으면 된다.》는 희떠운 소리를 했다. 서만호는 모든게 불안스러웠다. 평양에 있는 조만식을 크게 믿어댔는데 그도 이젠 정계에서 종적을 감춘것 같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민주당 상층에 앉아 독판치기를 하던 조만식은 턱밑에서 들고일어나 당내 투쟁이 벌어지는통에 하루아침에 파직되고 지금 민주당도 공산당과 발맞추어 토지개혁을 적극 지지해나선다는것이였다.

그런데도 서만호의 집으로는 군내의 지주들이 뻗닿게 모여들었다. 군내의 지주들뿐만아니라 곁군의 지주들도 서만호한테 가야 앞이 틔여질 소리를 듣는다고 자꾸 모여들었다.

바깥대문기둥에 내다맨 개들은 쉴짬이 없이 짖어댔다. 아무놈이고 다가오는놈이 있으면 악악하며 덤벼들었다. 그래서 어떤 땐 마름이 달려나가 몰아주기도 했다.

서만호의 집에 왔다가 경을 치고 돌아간 다리부러진 송상환이도 바로 그 잃어버렸던 나귀를 타고 또 찾아왔다. 이번엔 마름이 견마를 들고왔다. 그는 마름한테 업혀서 서만호의 방으로 들어섰다.

《참의나리, 난 인젠 망했습니다. 저 빨갱이 소작인새끼들이 달려들어서 내 토지문서를 죄다 빼앗아내다 마을가운데 쌓아놓고 불을 써댔습니다. 땅문서를 잃어버렸으니 인제 땅을 어데 가서 찾겠습니까. 참의나리는 아직도 아흔아홉간짜리 대가가 그대로 덩실하게 남아있는데 내 우물정자기와집은 벌써 녹았습니다. 아, 안되는놈은 뒤로 자빠져두 코만 깨지는구나.》

송상환은 부목을 댄 한쪽 다리갱이를 방바닥에 뻗치고 앉아서 주먹을 치며 엉엉 소리를 내여 울었다.

《아니, 그래 거긴 벌써 지주의 땅을 빼앗아내기 시작했단말이요?》

서만호가 거뭇하게 질린 얼굴을 송상환에게 바싹 가져다대고 물었다.

《땅 빼앗아낼놈들은 인제 군과 면에서 내려온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놈들은 그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다리부러진 나를 습격해 들어와 땅문서를 빼앗아냈지요. 금고를 다 털리웠습니다. 인제야 서울에 중앙정부가 선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땅문서를 다 잃어버렸는데 무얼 내대며 땅을 도루 찾겠습니까. 아이구, 아이구 송상환이 망했다.》

절망에 빠진 송상환은 체면도 모르고 더 큰소리로 울었다. 그가 구들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소리에 서만호네 아흔아홉간 대가가 들썩했다. 서만호는 멸망의 운명이 검은 그림자를 이끌고 각일각 자기집 솟을대문안으로 다가오는것 같았다.

(무슨 망할 징조인가. 초상난 집 같군.)

바깥마당에서 장작을 나르던 장서방은 사랑방에서 대성통곡하는 송상환이 바로 다름아닌 서만호같은 생각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졌다. 대복이가 나가게 되자 장작을 패고 열두아궁에 불을 때는 일이 다 장서방에게 넘어왔다. 대복이는 거의 매일밤 개구멍밑에 와서 서분이와 속닥거리였다. 대복은 이따금 자기를 만나서도 가슴이 열리는 시원한 소리를 한마디씩 해주군 하였다.

《아바이, 토지개혁법령이 내렸어요. 이제 왕벌이 땅내놓구 쫓겨가면 아바이두 땅타가지구 잘살게 된대요.》

《왕벌이 쉬이 쫓겨갈가?》

《제놈이 쫓겨안가구 견뎌요. 아바이, 그런데 서강이 오지 않나 잘 살펴요. 오기만 하면 인차 알리라요.》

《그건 왜?》

《그럴 일이 있어요.》

대복이의 말대로 서만호네 집안이 망해가는게 틀림이 없었다. 서울 작은댁이 자기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서만호의 금고열쇠 감춘곳을 대달라고 조르는것을 보면 그것도 들고 뛸 심산인것 같았다. 서울서 왔다는 고택이 읍에서 올라만 오면 월미와 구석에서 소근닥질을 했다. 더러운 룡마루가 무너지려니 그 밑에선 별의별 침뱉을 추잡한 생활이 딩굴었다. 장서방은 도끼모태가 놓여있는 곳으로 나왔다.

한참 대성통곡을 하고난 송상환은 별로 앞이 열릴 신통한 말을 못들었는지 어깨가 처져가지고 사랑마루로 나섰다. 견마를 들고 온 마름이 대돌로 뛰여올라가 등을 돌려대고 송상환을 업었다. 마름은 비척비척하면서 대돌로 내려와 바깥대문으로 나갔다.

해가 훨씬 기울어졌을 때 대문밖 기둥에 매놓은 개들이 으악으악 소리를 내며 짖어댔다.

《또 오는군.》

장작을 패던 장서방은 중얼거리며 도끼를 쥔채 허리를 폈다. 그런데 짖어대던 개들은 가뭇 소리가 없고 바깥대문으로 검은색안경에 코트를 걸친 신사가 쑥 들어섰다.

그렇게 그악스레 짖어대던 개들이 꼬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신사를 따라 대문문턱안으로 들어왔다. 개는 꼬리를 젓다 말고 신사의 코트자락을 물어당기며 낑낑 우는 소리를 냈다.

(아니 저게 서강이 아니야?!)

제애비 비슷하게 약간 고불거리고 넘어간 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고 민머리로 들어서니 색안경을 걸었어도 쉽게 알려졌다. 사랑마루앞으로 올라간 서강은 퇴마루구석에 단장을 세우고 조용히 미닫이를 밀어제끼며 발을 넘겨놓았다. 서만호는 찾아드는 손님이 많아 인제야 점심을 먹은다음 밥상을 돌려놓고 앉아서 무슨 장부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두눈이 덩둘해서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을 쳐다보았다. 서강은 색안경을 벗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서만호는 팔을 벌리며 일어섰다.

《네가 어떻게 나타났느냐?》

서만호는 아들의 두손목을 꽉 그러잡으며 바깥대문에 매여놓은 개가 반가운 정으로 우는 소리를 하는것만큼이나 울음소리를 내였다.

《아버지, 복잡한때에 여기 앉아서 얼마나 마음을 썩이고있습니까?》

《고맙다. 난 너를 다시 못보구 이 풍파속에 말려들어 죽는가 했다. 그런데 자동차두 없이 걸어왔느냐? 차림이 왜 그러냐?》

《녜, 그저 그렇게 되였어요. 더 묻지 마십시오. 공산당과 하는 싸움이 그렇게 쉽지만 않아요.》

서강은 행색이 초라했다. 함흥에서 여기까지 숨어오느라고 기차도 온전히 못타고 평양까지 겨우 와서는 내처 걸어왔다. 그래서 옷이라는게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둥글던 볼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관지뼈가 두드러졌다.

《이젠 죽어야지 별수가 없는가부다. 저 땅 빼앗기구 살아선 뭘하겠니?》

서만호는 아들의 초라한 몰골을 보자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내가 왜 여길 온줄 알아요. 우리가 공산당한테 져요? 아버지, 내가 보낸 보약은 받으셨어요?》

《그 자유의 신이란 상표를 붙인 보약말이냐? 받았다.》

《그 약을 쓰십시오. 그게 미국에서 새로 조제된 보약인데 지금 군정청고관들도 그 약을 쓰고있습니다. 그 약을 쓰면 백년장수는 문제없어요.》

《쓰마.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서만호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주근주근 눌렀다.

《그래 어디서 오는 길이냐?》

《예, 얼마간 서울에 나가있다가 또 들어왔습니다.》

서강은 거짓말을 했다. 함흥쪽을 돌아온다는 말은 일체 입밖에 내여선 안되였던것이다.

《보약을 가지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다는것도 모르고 들어왔니?》

《예, 다 알고있어요. 아버지한테만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

《가만···》

서만호가 갑자기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아들의 말을 제지시키며 미닫이를 한쪽옆으로 주르르 밀어놓고 덧문을 열어제꼈다. 서분이가 약물사발을 들고 서있다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서만호가 마시는 약을 짜서 들고왔다가 방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잠시 엿듣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요즘 서만호는 어찌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내는지 귀신처럼 그 기미를 알아차린것이다.

《이년! 무슨 말을 엿들었지?》

《엿들은게 없세요.》

서분이는 약사발을 문안에 들여놓으며 공손히 대꾸하였다.

《엿들은게 없어? 요즘 네년의 눈치가 수상하다구 모두들 말하는데 엿들은게 없어? 약을 달여왔으면 왜 제꺽 들어오지 못하구 밖에서 얼음물을 만들고있어? 엉.》

서만호는 약그릇을 입에 대보다가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사발채로 내던지였다. 사발이 대돌밑에 떨어지며 깨졌다. 그러자 안마당에서 월미의 호추알같은 소리가 들리였다.

《야 요년! 엿듣지 않았다는게 뭐냐. 문앞에 서서 한참 귀를 기울이고있는걸 보았는데 엿듣지 않았어. 요 죽일년!》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안채에서 나와 중대문을 넘어서던 월미가 사랑방문앞에 귀를 기울이고 서있는 서분이를 띠여보았던것이다. 지금 고택이와 함께 도주계획을 하며 서만호의 금고열쇠를 노리고있는 월미는 남편의 토라진 심정을 바로잡아세우려고 애쓰던 판인데 그의 편을 들어 기를 올리기 안성맞춤으로 되였다. 서분이는 아무 대꾸를 못하고 돌아서 내려오며 깨진 사금파리를 주어모았다.

《요년이 밤마다 대복이새끼하구 소근닥거린다오. 요전번날도 내가 변소에 갔다오는데 개구멍밖에 둘이 붙어앉아서 이 집안얘길 했어요. 내가 죄다 들었어요.》

월미는 그들이 만나는걸 한번 피끗 띠여본것밖에 없는데 부쩍 열이 올라 종알대였다.

《저년을 그저.》

노기가 오른 서만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님, 그까짓거 놔두십시오.》

서강이 사나운 눈매로 서분을 피끗 스쳐보고는 애비의 팔목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

서분이가 물러나자 서만호는 긴 한숨을 내쉬였다.

《이젠 이렇게 종년까지 믿을수 없을만치 세상이 흉흉해졌다. 보아하니 이 마을놈들도 내 땅을 뺏아 노나가질 차비를 하는것 같다.》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산당이 아무리 악착스러워두 제마음대루는 못해요.》

《그래두 저것들이 오늘밤이라두 달려드는날엔 난 손털고 나앉아 알거지가 되고만다. 무슨 죄를 만나 내 대에 와서 집안이 이 꼴이 되는지.》

《아버지, 그래서 내가 오지 않았어요.》

《고맙다. 자식이 아니고야 이 난국에 그 먼길을 왔다갔다 하겠니.》

서만호는 얼마간 마음이 놓이는지 장서방더러 술상을 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서강은 일어서서 이때까지 입고 앉아있던 코트를 벗어걸었다. 그리고는 사랑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향집마당안에 무어라고 딱히 말할수 없는 처량하고 어수선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환락의 웃음이 젊은 가슴을 부풀게 하던 집, 그 집에서 향유하던 모든 권리와 즐거움이 하나둘 바람에 흩어져나가는것 같은 상실감에 서강은 저도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는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머리를 저으면서 양복웃저고리를 벗어제꼈다. 식모들이 주안상을 차려들고 들어왔다. 서만호는 구리주전자에 들어있는 약주를 한잔 부어서 서강이앞에 내밀었다.

《한잔 마셔라!》

마치 싸움터로 나가는 아들을 고무하는듯 한 페부를 찌르는 비장한 목소리였다.

《원 아버님두···》

서강은 구리주전자를 빼앗아 애비의 잔에다 술을 부었다. 서강이 이러는 바람에 서만호는 눈물이 글썽해지며 한잔의 술을 무겁에 쳐들고 천천히 들이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