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4장 2


 

제 14 장

2

 

이날 유사천은 자기 방에 군당 선전부장과 군농조위원장 그리고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들을 불러다놓고 토지개혁법령집행과 관련한 군내 청산자들의 명단을 알려주었다. 청산대상자수자가 엄청나게 뛰여올라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일별한 유사천은 군의 특수한 실정으로부터 상급간부들의 지시에 의해 적지 않은 부유농민들까지 청산이주시키기로 했다고 력설하였다.

《그런데 김창규조직부장동지는 다섯정보이하의 토지를 가지고있는 부유농민을 청산이주시키는 현상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벌써 몇번이나 저에게 강조했는데요.》

군농조위원장이 불안스러운 마음때문에 가뜩이나 작은 몸을 오그라뜨리고 서서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러자 유사천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꾸지람을 주었다.

《동문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릴 하고있소? 동무도 경을 치고싶어 그래?··· 조직부장에 대해선 지금 상급에서 심중한 론의가 있소. 그사람은 제자리에 있게 될것 같지 않아. 박병칠의 아들 박종관을 오늘 정식으로 서무과에서 내쫓았는데 동무도 떨떨한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계급투쟁을 방해해나서면 제자리에 앉아있지 못할줄 아시오!》

방안의 분위기는 삼엄해졌다. 유사천은 얼굴이 푸르딩딩해서 계속 뇌까렸다.

《이번 토지개혁은 우리 프로레타리아트가 농촌에서 자기의 계급적, 정치적지배권을 확립하는 투쟁이란 말이요. 계급투쟁은 무자비해야 하오. 설사 일부 부농이 잘못 걸려들어 피해를 좀 본들 어떻단말이요. 부농은 아무때든 청산해야 할 꿀라크요.》

유사천은 수염이 부르르한 턱을 떨며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코밑수염도 인젠 가위질을 안해서 웃입술을 아주 덮었다. 그 검은 수염속에서 말을 할 때마다 박속같은 흰 이발이 번쩍거렸다.

《비서동지, 지금 일부 마을들에서는 농민들이 개인감정때문에도 숙청하겠다고 제기되는 대상이 적지 않습니다. 그대로 다치다가는 부농은 물론 일부 소작을 준 중농들까지도 피해를 당하고 숙청을 면할수 없게 됩니다.》

얼굴이 긴 선전부장이 안타까운듯 턱을 추켜들고 말했다. 유사천은 목을 끄덕이며 껄껄거렸다.

《동무, 토지개혁법령은 바로 농민의 의사를 대변한 법이라는걸 모르오? 농민이 들고일어나는데 무엇때문에 마다하겠소. 누가 자기들의 원쑤인가 하는건 농민들이 더 잘아오. 우린 농민들의 이 혁명적진출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 권리가 없소.》

《그러다가 그들이 지주의 편에 붙어서 소동이라도 일구면 토지개혁이 난관에 봉착할수 있지 않을가요.》

말이 무거운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당신들은 무산혁명의 전투적세례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요. 그래 대답해보시오. 계급투쟁에서 중간이라는게 있을수 있소? 지주편에 가붙으면 붙었지 그게 뭐가 무섭소. 우리한테 보안대가 없소, 무장이 없소? 안되겠소. 동무들을 믿다간··· 지금처럼 농민들의 기세가 좋을 때 착취계급을 단숨에 몰아내야 하오. 쇠가 단김에··· 이미 말한바가 있지만 이제부터는 〈토지개혁실시위원회〉를 내오고 군당이 직접 권한을 행사하겠소.》

《네에?》

사람들이 눈을 흡뜨며 놀래였다.

유사천은 주먹을 부르쥐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입안에서 신음소리같은 괴로운 소리를 씹어삼키였다. 군농조위원장이 그런것을 내오자면 도에 다시 문의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턱을 떨면서 의견을 또 제기하자 그는 더욱 화를 냈다.

《동문 말하면 들을게지 번마다 무슨 의견이요? 그래 이 유사천이가 혼자서 이런 거사를 하는줄 아오? 상급과도 전화로 이야기가 있었소. 그러니 걱정말구 시키는대로 하시오.》

이렇게 그루를 박은 유사천은 토지개혁을 통해 계급의 원쑤들을 깨끗이 청산해야 된다고 하면서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던 날에 함흥학생사건을 조종하다가 실패한 서만호의 아들이 이 지구로 갈수 있다는 통보를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였다.

《현실은 이렇소. 토지개혁은 어차피 날카로운 계급투쟁을 동반하게 마련이요. 서만호의 아들놈이 이렇게 준동을 하고있기때문에 그자와 소위 죽마고우라고 하는 박종관을 철직시키는것이고 서만호와 결탁되여있는 박병칠이 같은자들을 발가벗겨 축출하자는거요, 그런데 이런 계급투쟁을 반대하는자는 도대체 누구의편인가?··· 두말이 필요없소. 박동무! 어서 군당청사에 〈토지개혁실시위원회〉라는 간판을 하나 크게 잘 밀어다가 내거시오.》

유사천은 바른팔을 문쪽으로 힘있게 내뻗치면서 명령조로 지시를 주고는 머리를 휘저었다. 그의 눈은 시뻘겋게 달이 올라서 금시 무슨 일을 칠것 같은 기상이였다.

그는 이윽고 방안사람들이 모두 보란듯이 보안서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에 나가있던 김창규가 전화를 받았다.

유사천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프리였다.

《동문 어떻게 거기 가있소? 보안서장이 없소? 바꾸시오.》

유사천은 보안서장이 나오자 성급하게 물었다.

《무슨 다른 정황이 없소? 없단말이지. 좌우간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치시오. 그 서강이놈은 틀림없이 재령벌에 기여들게요. 특히 서만호의 집을 은밀히 잘 감시하게 하고 송상환, 박병칠을 비롯해서 서만호와 가까이 지내는 모든 집들에 감시를 붙이시오. 동정이 필요없소. 원쑤를 조금이라도 돕는자는 쳐갈기시오! 그리구 선전차로 쓰게 자동차를 한대 군당에 보내시오.》

유사천은 요즘 어떻게나 소리를 치며 다니는지 한껏 목이 갈려서 송화기에서는 그의 말소리보다도 쉭쉭하는 바람소리가 더 크게 울리였다.

그의 말대로 계급적원쑤들이 단말마적인 발악을 하고있는것은 사실이였다. 이날 저녁 읍에 있는 《다홍치마》네 술집 뒤고방에서는 한때 그 녀자를 첩으로 데리고 살던 지주 박기동이와 평양에서 테로를 지휘하다가 도망쳐 내려온 고택이 마주앉아서 밀담을 벌리였다. 평양에서 일을 일구다가 실패한 고택은 뒤에 미행이 따르는것 같은 눈치가 보이자 함께 올라가던 한상배조차도 떼버리고 밤차를 타고 도망쳐 내려왔다. 그는 서만호의 품에 붙어서 무슨 일이라도 좀 해주고 나가야 후에라도 서강이 자기를 반갑게 맞이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재령벌로 다시 내려온것이다. 그는 서강을 무시할수 없는 큰 존재로 보고있었다.

그는 서강이가 군정청으로 드나들며 여러번 하지를 만나보았다는것도 알고있었고 또 군정청대북정보과와 손을 잡고 휘하에 자기들만이 아닌 솜씨있는 테로군들을 규합해놓았다는것도 알고있었다. 어쨌든 서강은 미군정청에 발을 붙이고 한몫 단단히 해낼 인물이 틀림없었다. 이런 서강이에게 잘 보이고 신임을 얻는다는것은 자기 장래에 아주 중요한 일이였다. 그래서 고택은 부랴부랴 재령벌로 내려오는 길로 서만호와 쑥덕공론을 벌리고 재령벌에서 서만호 다음 차례나 가는 지주 박기동이와 련계를 맺었다. 서만호의 마름과 박기동이의 마름이 량쪽으로 북나들듯 돌고 뛰고 해서 결국 《다홍치마》네 뒤고방을 비밀둥지로 만들어놓았다. 이 테로분자는 여기서도 몇놈 죽여없애야 한다는 주장이였다. 그러면 숱한 놈들이 다 겁을 집어먹고 뒤로 움츠러들게 되여 대세를 기울어지게 만들수 있다는것이다.

《그래 몇사람 힘으로 그런 거사를 해낼수 있을것 같소?》

얼굴이 불그데데한 박기동이 긴 낯짝을 꿋꿋이 세우고 앉아서 물었다. 그는 서만호같이 살은 찌지 못하고 관지뼈가 솟았는데 두눈이 개구리눈처럼 툭 불거져나온것이 몹시 의뭉스러워보였다. 봄이 다 되였건만 명주바지저고리에 털댄 갖저고리를 입고 의젓이 앉아있었다. 갖저고리속 비단조끼우에 드리운 금시계줄이 유난히 번쩍거린다.

《아니 그럼 사람을 죽이는데 백만장졸을 동원해가지고야 죽이는줄 아시우. 그건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방법이요. 어떤놈이고 죽여버리려면 혼자힘으로 단병접전을 해야 하오. 하나 대 하나면 된단말이요. 사람의 숨주머니를 끊는 일이란 그저 여길 결단내면 되오.》

고택은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낚시처럼 갈구리를 해가지고 제목줄대밑을 찍어당기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저 중요한건 챤스를 잘 보는거요.》

《챤스라는게 뭐요?》

《기회를 잘 노려야 한다는거요. 그러니까 마름들을 동원시켜서 우리가 죽이려는놈들이 어디로 어떻게 다니는가 그것도 살피고 그놈들을 찔러넘길 때 소동을 피울놈들은 곁에 붙어있지 않는가 그런것도 살펴야 한단말이요. 그놈들도 지금 칼물고 뜀뛰기를 하는 때니까.》

《그래 군당조직부장이나 신당리 조순근이, 동흥리 김재경이 같은자들이나 살해해치워가지고 토지개혁을 눌러낼수 있을것 같소? 내 생각엔 몇놈 더 죽여야 한다고 보오.》

박기동은 부어놓은 술 한잔을 죽 들이키고 빈 잔을 땅 소리가 나게 술상우에 놓았다.

이때였다. 맞은켠 잡화가게가 있는 거리쪽에서 나팔소리, 북소리가 울리며 토지개혁선전차가 올라오고있었다. 그 소리에 박기동은 깜짝 놀라며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거리로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무슨 일인가싶어 눈들이 퀭해서 선전차가 오는쪽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만재한 화물자동차는 붉은기를 적재함 네귀에 꽂고 그 둘레에 무슨 구호인지 큼직하게 쓴 붉은 천을 치마처럼 드리웠다.

적재함에 빼곡이 들어앉은 사람들은 모두 악사들이였다. 차우에서는 연방 무엇인가를 규탄하는 높은 웨침소리가 터져나왔다. 자동차가 점점 가까와오자 좁은 거리를 들썩하게 구호를 웨치고 연설을 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였다. 입주변에 시꺼먼 수염이 한벌 뒤덮인 사람이 악사들앞에 서서 주먹을 휘두르고있었다.

《우리앞에 혁명이 왔다. 바로 토지혁명이다. 혁명에 궐기하라! 저 간악무도한 지주, 자본가를 박멸하라. 로동자는 망치를 메고 농민은 호미와 괭이를 들고 궐기하라. 혁명에 나서라!》

《궐기하라》, 《나서라》소리는 쌍으로 울리기도 한다.

《반혁명에 무자비하라! 로동자, 농민들! 자본의 철쇄를 끊어버리고 자신을 해방하라. 토지를 빼앗으라, 수탈자를 수탈하라. 착취계급의 토지는 벌써 그의것이 아니라고 선포되였다. 모든 무산자들은 굴하지 말고 그들의 수중에서 토지를 빼앗고 그의 착취기반을 허물어버리라. 타도하라! 농촌의 모든 부르죠아지들을 타도하라!》

《빌어먹을놈들, 지랄을 부리는군. 저놈이 연설 잘한다는 그 최폴인지 개폴인지 하는놈이요. 저것도 이번에 없애버려야 하오. 저게 바로 군당비서와 단짝이요···》

술을 마시던 박기동은 술잔을 든 손을 우들우들 떨었다. 고택은 눈에 독기가 올라서 문가운데 붙인 창경사이로 다가오는 선전차를 내다보았다.

《남의 로력으로 농사짓는 농촌의 모든 부르죠아지들, 유산계급은 매일, 매 시각 수판알을 튕기며 자본주의를 낳고 부르죠아제도를 꿈꾸고있다. 유산계급을 타도하라. 혁명에 총 궐기하라.》

《엥이, 죽일놈의 새끼들!》

고택은 더 듣기가 역스러운지 돌아앉으며 술잔에 술을 가득 붓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듯 소리나게 들이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