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4장 1


 

제 1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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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들판길을 급하게 걸어가는 군당조직부장 김창규는 기다려오던 토지혁명의 불길이 드디여 여기 재령벌로도 파죽지세로 번져오고있음을 가슴뻐근하게 느끼고있었다.

그는 지금 동흥리로 급히 와달라는 그곳 농조의 련락을 받고 고향마을로 가고있었다. 무슨 일로 급히 부르는지 딱히 알수 없었으나 십중팔구 거기서도 농민들의 비극의 력사를 종식짓는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15리길을 단숨에 걸어 동흥리에 다달았다.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드리운 축동을 지나 들어간 김창규는 밭이랑 건너 저쪽 둔덕밑에 오두막 한채가 눈에 띄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집마을과 떨어진 외딴뜸에 낡은 철새둥지처럼 금시 바람에 흩어버릴듯이 앉아있는 고삭은 오두막-그것이 바로 창규의 쓰라린 어린시절이 흘러간 옛고향집이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승에서는 살수가 없어 서슬을 마시고 저승으로 가버린 눈물의 집이였다.

창규는 봄눈이 녹아서 진득진득해진 밭이랑의 젖은 땅을 밟으며 오두막앞으로 걸어갔다. 헐벗은 야산기슭에 간신히 붙어있는 제비둥지같은 오두막가까이에 이르자 주변의 여기저기에서 웃동이 잘리운 썩은 나무뿌리들이 바라보이고 두엄냄새같은 시크무레한 짚썩은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창규는 또다시 굳어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괴괴한 정적속에 도가집처럼 서있는 옛집을 바라보았다.

고삭은 나무기둥에 얹힌 시꺼멓게 썩은 곱새가 산발한 녀인의 머리칼처럼 흐트러져서 바람에 흐느적거리였다. 말이 집이지 나래장을 쌓아놓은 거적더미 한가지였다. 그래도 얼마전까지만은 이 외대마구리집을 보금자리로 삼고 어느 늙은 내외가 살았었는데 더는 거접할수가 없어 이사를 갔는지 휑뎅그렁하게 비여있었다. 창규는 신발을 신은채로 맨봉당인 방으로 들어가 코구멍만큼씩한 부엌과 방안을 돌아보았다. 갈비뼈같이 울근불근 내놓인 연목이며 나무기둥을 쓸어만지는 창규의 눈에는 멀건 미음이 돌았다. 가슴을 허비는 추억의 쪽문이 열리면서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김창규는 머리속으로 자꾸 갈마드는 괴로운 추억을 떨어버리려고 오두막에서 시선을 떼고 돌아섰다. 그러나 몇발자국 가지 못해서 《싹뿔아!》하고 자기를 부르며 어머니가 뛰쳐나오는것 같은 환각에 몸을 떨면서 다시 오두막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가버린 어머니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김창규는 텅 비여버린 집에서 퍼그나 시간을 지체하고 농조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가 마당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10여명의 농군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작은 아버지 김재경이도 그속에 있었다.

《왜 인제 오나? 기다리기에 지쳤네.》

재경이 조갈이 든 입술을 혀끝으로 추기며 창규의 늦은 걸음을 탓했다. 모두들 자기를 초조히 기다린것 같은 표정이였다.

《그런데 왜들 이렇게 모였습니까? 오늘 무슨 일이 있습니까?》

김창규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왜들 모이다니? 우린 송상환을 들이치겠네. 오늘은 자네 부모들 원쑤도 갚고 자네 원쑤도 갚는날이네. 오늘 송상환이 몰아낼 때 저 박병칠이도 함께 들어내려네. 그걸 나와보라구 우리가 불렀어··· 누구보다도 임자가 그걸 봐야지.》

김재경이 두눈을 슴벅거리며 조카에게 말했다.

《저기 뒤집마당에 물바가지에 깨알붙듯 가뜩 모여앉았네. 모두 송상환이, 박병칠이 두들겨팰 방맹이들을 하나씩 만들어들고.》

농민들이 김창규에게 방망이를 흔들어보였다. 김창규는 그들의 손에 쥐여진 나무방망이를 쳐다보며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방망이라기보다 각자목 토막친것들이다.

《이사람, 왜 말이 없나?》

농민들은 김창규의 덤덤히 서있는 모습이 이상스러워 재촉했다.

《그새 송상환의 움직임이 어떻습니까?》

김창규는 삼촌을 돌아보며 물었다.

《움직임이야 뻔하지. 토지개혁법령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냥 앙탈을 부리지. 그건 그렇구 요즘 그놈이 밤마다 까마귀알 물어다 감추듯 곡식을 어디론가 실어내가고있는것 같네. 그래서 우선 저놈의 토지문서와 재산을 몰수하려는거네··· 면에서두 송상환인 원래 친일파이기때문에 이미 숙청해버려야 할놈이라고 하네.》

김재경은 눈앞에 송상환지주가 서있는것처럼 말을 하면서도 주먹을 움켜쥐고 우들우들 떨었다.

《송상환인 그렇다치구 박병칠인 왜 숙청하겠다구 떠듭니까?》

《아니, 자넨 무슨 소릴 하나? 그놈이 서만호한테서 땅을 샀어. 계약서에 아주 맞도장까지 찍구 금년부턴 땅을 부친다는데 이게 지주가 아니란말인가. 둘러치나 메여치나 그놈은 이젠 지주야 지주!》

김재경은 발끈 성이 나서 부르짖었다. 조카가 박병칠을 두둔해나서는것이 마음에 안들었던것이다. 박병칠이 어떤놈인가. 부모잃고 한지에 나선 열살짜리 조카를 데려다 죽도록 부려먹고도 공밥먹었다고 삼촌인 자기에게서 쌀 열말을 받아낸 심보고약한놈이다.

《그런데 그 계약서를 본 사람이 있습니까?》

《보나마나지.》

삼촌은 침을 퉤 뱉으며 이마살을 찡그렸다.

《박병칠농민문제는 아직 다치지 마십시오. 내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송상환이는 농조에서 결심한대로 하십시오. 토지문서를 빼앗아내는것두 내는것이지만 량곡을 빼돌리지 못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고간에 있는 량곡을 전부 내다가 조합원들이 가려쌓겠네.》

농민들이 뿌루퉁해 서있는 김재경의 눈치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그대루 두고 다치지 않겠다는 보관증에 도장을 받아내십시오. 앞으로 그놈을 이주시키니까 구태여 옮겨쌓느라고 하지 말고 종곡, 부림소, 농기구같은것들도 다 등록하고 손대지 않겠다는 도장만 받으십시오.》

《그럼 치자! 제기랄, 아주 죽이진 못해두 한절반 초죽음을 시켜야지. 상판대기가 꽹과리같은놈!》

농민들이 웅성거리며 헤쳐갔다. 삼촌은 무슨 눈물인지 팔소매로 뿍 씻어던지며 언짢은 눈길로 조카를 흘겨보았다.

농민들이 헤쳐가자 김창규는 마을가운데 있는 박병칠의 우물정자 기와집을 향해 걸어갔다. 슬프고 괴로운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그 집을 찾아가는 김창규의 마음은 자못 무거웠다. 그러지 않아 어제저녁에 그는 박병칠의 문제로 군당비서와 의견상대립이 생겨 날카로운 언쟁을 하였다.

유사천은 박병칠을 청산대상자로 선정하였으나 김창규가 반대하기때문에 그를 자기 방에 불러다놓고 열을 올리였다.

《부장동무는 그 집에서 머슴을 살았다는게 사실이요?》

유사천은 10여장이나 되는 김창규의 자서전뭉치까지 들고와서 사나운 눈찌로 쏘아보았다.

《내가 왜 이 소리를 묻는가. 리해가 안된단말이요. 동무가 자기의 계급적처지를 벌써 망각했는가. 솔직히 말하시오. 어떤 다른 목적이 있는가. 요즘 도에서도 동무의 우경적행동에 대한 보고를 받고 아주 불쾌해했소. 솔직히 말하면 동무를 이색분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오. 그걸 알고나 있소?》

유사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쩍 벌리였다.

《비서동무, 나는 오직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법령대로만 모든걸 집행하려고 했을따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5정보이하의 토지를 가지고있는 박병칠로인과 같은 부농을 청산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문에 그를 청산할수 없다는건데 의심스러울게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말하지요. 지주도 아닌 부농을 한사코 숙청하고싶어하는 비서동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김창규의 목소리도 어지간히 높아졌다. 기실 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군당비서의 좌경적행동이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여보! 5정보의 토지를 가지고있지 않아도 반동친일파는 숙청하게 돼있소. 박병칠은 서만호와 공모결탁하여 공산당을 뒤집어엎으려는놈이요. 자, 보시오. 그놈은 서만호같은 악질지주를 애국자라고 두둔했소. 난 이것이 반동집단의 도전이라고 보오.》

유사천은 책상우에 놓인 종이장들을 들어 흔들며 부르짖었다. 최근에 서만호는 군내유지들과 부유한 농민들을 꼬드겨 자기를 애국적인 공로자로 보증하는 문서를 만들어 군인민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유사천은 서만호를 애국지주로 보증한 그 사람들을 모두 숙청해야겠다고 주장하고있는데 박병칠로인은 그 첫자리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색불순분자인 박종관을 아직도 서무과에 그냥 앉혀놓고있는게 황당한 일이요. 그자는 가차없이 들어내야 하오. 그래 이런 반동가족을 보호해나서는 당신의 목적이 도대체 뭐요? 우리가 당신을 의심하지 않게 됐는가?》

《박종관도 위험분자가 아닙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잘압니다. 어쨌든 비서동무 독단으로 지주가 아닌 부유농민들을 숙청하는건 토지개혁법령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토지개혁법령을 마음대로 비뚤어놓는다면 난 공산당원으로서 용서치 않겠습니다.》

김창규는 단호히 선언조로 말하고 비서실을 표연히 걸어나왔다.

어제일을 생각하며 박병칠의 집으로 다가가는 김창규의 생각은 한층더 번거로와졌다. 아닌게 아니라 자기가 무엇때문에 박병칠로인을 두둔해나서고 감싸주는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걸핏하면 호통을 치고 주먹을 들던 그의 심술바르지 않은 행패질을 잊을수가 없었다. 그가 재력이 모자라 땅을 더 가지지 못했지 그 심보사나운 마음이야 지주와 다를바가 있었는가.

김창규는 집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바람에 시름없이 흐느적거리는 배나무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수십년을 자란 그 늙은 배나무에도 그의 어릴적 슬픈 추억이 깃들어있는것이다. 저녁이면 거기에 주인집 염소를 매놓고 앉아 돌아간 부모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이제는 배나무가 고목이 되여 풍성하던 가지들이 앙상해졌다. 걷어내리지 못한 외양간지붕우의 박넌출은 기와에 그물을 씌워놓은것 같이 덮여있다. 박줄이 덮여야 복이 온다고 그때도 걷어내리지 못하게 해서 온동삼 거미줄처럼 기와곬을 결박하고있었다.

아릿한 추억은 가슴을 긁었다. 축동뒤에 있는 오막살이와 더불어 자기의 눈물겨운 유년시절이 슴배인 대문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자니 더욱 가슴이 저려났다.

《아니, 이게 싹뿔이?··· 아이구, 내 무슨 새빠진 소리를,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가 반백인 박병칠의 처 한씨가 김창규를 보자 치마자락을 휩싸며 달려나왔다. 김창규는 머리를 약간 숙이며 웃는낯으로 다가갔다.

《그새 주인어른이랑 다 무고한지요?》

《그럼요. 여보, 재경아주반네 조카가 왔어요.》

한씨는 고무신 신은 발로 잽싸게 토방으로 뛰여올라가며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녀인도 늙긴 했지만 잔소리 많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누가 왔다구?···》

흰 헝겊오리로 머리를 동인 박병칠이 지게문을 열며 마당을 내다보았다.

《예, 접니다. 옛날 싹뿔입니다.》

김창규는 토방앞으로 갔다.

《뭐, 싹뿔이? 아니 그럼 군당에서 일보는 조카가?》

박병칠은 문고리를 잡고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 편치 않은가요?》

김창규는 조카요 뭐요 하며 늙은 내외가 가살을 떠는것이 오히려 낯간지럽고 지어 불쾌하기까지 하였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토방우에 걸터앉았다.

한씨가 황급히 다가와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팔소매를 끌었다.

《전 일이 바빠서 여기서 잠간 이야기하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찾아주니 반갑네.》

박병칠은 비대한 몸을 일으켜 토방으로 나왔다.

《다른게 아니고 아저씨가 서만호한테서 땅을 넘겨받았다는게 사실입니까? 종관동무는 잘 모르고있던데.》

박병칠은 벌써 짐작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장죽에 담배를 쑤셔담았다.

《그 애가 잘 모를수 있지, 부자간에두 말을 다하고 사는건 아니니까. 그러나 내 조카하구는 오래간만이지만 좀 털어놓구 이야길 해야겠네.》

그는 장죽을 몇모금 빨았다.

《이야길 하십시오.》

《난 여기 농조사람들처럼 남의 땅을 공짜루 뺏아가지는건 반대네. 자네 삼촌이랑은 옛날 일이 가슴에 얹혀서 날 추방한다 어쩐다 하는 말을 돌리며 못살게 구네만 난 마음만은 결백한 사람이라는걸 알아주게. 옛날 일이야 어찌겠나. 세월이 그런땐데.》

박병칠은 혀를 차며 장죽을 내저었다.

《그래 땅을 얼마나 넘겨받았습니까? 대금 청산두 끝났습니까?》

《천둥지기로 금년초에 두어정보 받았네. 계약은 했는데 대금청산은 관청에서 승인을 받은 다음 하자구 아직 미루고있지.》

《그러니까 새루 산 땅까지 합치면 아저씨 토지가 다섯정보가 넘겠군요.》

김창규는 토지개혁을 앞두고도 정신없이 땅을 걷어들이는 늙은이의 욕심에 아연해졌다.

한정없는 그 물욕이 스스로 부농으로부터 청산지주로 《승격》시키는 미련한짓을 하게 만들고있었다. 창규는 자기의 어린시절을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채워준 이 부농이 청산을 당하든말든 당장 침을 뱉고 돌아가고싶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하나의 부귀와 향락만을 생각하는 이런 령감을 도와주자고 어린시절의 눈물로 얼룩진 이 마당으로 들어섰단말인가. 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천대와 멸시를 당하던 과거의 값을 톡톡히 받아내고싶었다. 《박병칠은 다섯정보이상의 땅을 가진 지주이다.》 하고 말할수 있는 근거도 생기였다. 그러나 량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더구나 공산당원으로서 그렇게는 할수 없는것이였다. 그것은 벼랑턱에 서있는 로인을 발길로 차버리는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가슴에 옭맺힌 원한은 있으나 로인에게 손을 내밀어 벼랑으로부터 안전한 평원으로 이끌어가야 했다. 박병칠은 결코 서만호나 송상환이같은 지주놈들과 한계렬의 사람이 아닌것이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창규자신이 잘 알고있었다. 개인감정을 초월하는 도량과 깨끗한 량심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거기에까지 도달한다는것은 실상 쉬운 일이 아닌것이다.

창규는 긴 숨을 내쉬고 박병칠로인을 근엄하게 내려다보았다.

《아저씨, 법령엔 다섯정보가 넘으면 빼앗게 되여있습니다. 지금 가지고있는 땅만 해도 너무 많은데 또 사들인단말입니까?》

《그럼 날 청산하겠다는건가?》

박병칠은 불현 어성을 높이였다.

《억울하네. 임잔 내가 산 땅이 어떤 땅인지 다 알지? 그건 우리 아버지때 서만호한테 속히워서 떼웠던 땅이야. 사실 그걸 공짜로 넘겨받아도 누구도 할말이 없을거네. 제땅을 제가 찾는데두 죄가 되나. 난 그런것두 돈주고 사려네. 그래두 죄가 돼? 이 동네사람들은 그 땅 래력을 몰라.》

《아무리 그렇더래두 그걸 혼자힘으로 다루어낼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옛날처럼 머슴과 소작인을 둘수 없습니다. 제 땅은 제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누구는 편안히 앉아서도 배불리 먹고 누구는 피땀을 흘리며 일하고도 배를 곯아야 하는 그런 불공평을 없애기 위해 토지개혁을 하는것입니다.》

《아니, 제땅 제 재산을 가지구 먹는데 그게 무슨 죄란말인가? 돈을 주구 땅을 샀는데 뭐가 잘못됐다고 이리 야단인가.》

창규는 그 소리에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가 부치지도 못할 땅을 사가지구 소작을 주겠다는 말씀같은데 그렇게 되면 아저씬 이번 토지개혁에서 용서를 받을수 없습니다.》

《아, 아니 그럼 내가 저 사람들 말대로 청산을 맞고 이 마을에서 못살아?》

박병칠은 몸을 우뚤거리며 소름이 끼친 얼굴로 김창규를 마주보았다.

《그렇게 될지두 모르지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만 잘살겠다고 하면 인민이 그걸 용서하지 않습니다.》

김창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규의 소리에 박병칠은 그만 척추가 부러진 사람처럼 무르팍에 턱을 떨구었다. 한씨가 대문밖까지 따라나오며 안타깝게 사정을 했다.

《옛날일을 욕하라구. 허욕에 패가하는줄 모르구 이날이때까지 살다보니 령감이 저렇게 우둔해졌다우. 그까짓 땅 두어정보가 뭐가 돼서 우리가 청산을 맞겠나. 그걸 내던지겠소. 그러니···》

한씨는 저고리고름을 들어 눈굽을 훔치며 코멘 소리로 애원했다.

《그만하십시오. 현재까지 소작을 준 일은 없으니까 토론을 해보지요.》

창규는 길녘으로 따라나서는 녀인을 일각대문안으로 들여보내고 긴 숨을 후우-내쉬였다. 어쩐지 박병칠이라는 늙은 의원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렇게 리성과 감정이 서로 맞부딪치면서 창규를 괴롭히는것이였다.

그는 땀을 씻으며 앞길목으로 걸어나왔다. 축동을 넘어서자 송상환의 집쪽에서 함성이 터져오르고 총소리가 울리였다. 창규는 걸음을 멈추고 마을언덕에 높이 앉아있는 지주집을 바라보았다.

집주위에 농민들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송상환이 벌써 이런 일이 있을걸 짐작하고 대문을 닫아걸었는지 문을 열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대문을 조겨대는 도끼질소리가 들려왔다. 농민들은 그러다가 우야 소리를 지르며 집주위의 담장을 뛰여넘어가기 시작했다. 담장우에 벌떡 일어서 《송상환이 이놈!》 하고 고함을 지르는 농민도 있었다.

분명 지주의 세상은 끝장나고있었다. 창규는 이상하게도 설음이 북받치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저승의 지주는 마음이 후할것이라며 아버지, 어머니가 서슬을 마시고 군드러지던 쓰라린 과거의 영상이 지주집 지붕에 비끼는것 같았다. 그네들은 지주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수 없었기에 저승에 가서도 소작인의 신세를 면할수 없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셔서 이 광경을 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김창규는 밭이랑옆에 무릎을 꿇고 흙 한줌을 움켜쥔채 저 건너 고향집 오두막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마을에 울리는 저 소릴 듣습니까. 장군님의 은덕으로 농군들이 땅의 주인으로 되는 새 세상을 보십니까.》

하늘에서 불어내리는 부드러운 봄바람이 무릎을 꿇고앉아있는 창규의 머리를 어머니의 손길마냥 끊임없이 애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