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3장 3


 

제 13 장

3

 

농민총회를 앞두고 넓은 마당에 모여앉은 갈촌마을 사람들은 토방에 장석 두장을 깔아놓고 장군님을 모시였다. 백발이 성성한 마을로인들은 하늘이 내신 장군님을 금방석에 모시진 못해도 토방에 멍석을 깔아모시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농조위원장과 면 실행위원들을 꾸짖으며 펄펄 뛰였다. 그러는것을 장군님께서 일없다고 그들을 진정시키시였다.

농민총회는 아주 엄숙하고 숭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였다. 조직성이 부족한 농민들이지만 장군님을 모셨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종횡으로 줄을 맞춰 정숙하게 앉아서 숨소리마저 죽이고있었다.

처음 농조위원장이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일어섰다.

《여러분, 우리 갈촌마을 농민들은 평남도에서두 제일 못살고 천대받던 농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토지개혁법령을 집행하기 위한 농민총회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국사에 바쁘신 몸이지만 우리 갈촌마을 농민들을 위해서 만사를 젖히시고 험지를 밟아 이렇게 찾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을 대표해서 장군님께 삼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바입니다.》

농조위원장이 장군님쪽으로 돌아서서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자 만장이 눈물머금은 감격한 얼굴로 박수갈채를 하며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그만하라고 손짓을 몇번 거듭해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어 제강소에서 온 실행위원이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토지개혁법령을 내려읽었다.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에, 우리가 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한번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제1조 북조선토지개혁은 력사적 또는 경제적 필요성으로 된다.

토지개혁의 과업은 일본인토지소유와 조선인지주들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페하는데 있으며 토지리용권은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있다. 북조선에서의 농업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은 농민의 개인소유인 농민경리에 의거한다.

제2조 몰수되여 농민소유로 넘어가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단체의 소유지.

ㄴ. 조선민족의 반역자, 조선인민의 리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관에 적극 협력한자의 소유지와 일제의 압박밑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자들의 소유지.

제3조 몰수하여 무상으로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 토지는 다음과 같다.

ㄱ. 한 농호에서 5정보이상 가지고있는 조선인지주의 소유지.

ㄴ. 자기가 경작하지 않고 모두 소작주는 소유자의 토지.

ㄷ. 면적에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소작주는 모든 토지.

ㄹ. 5정보이상을 가지고있는 성당, 승원 기타 종교단체의 소유지.

···》

 

실행위원이 법령 제5조를 읽으면서 앞의 제2조, 제3조에 의하여 몰수한 토지는 모두 무상으로 농민의 영원한 소유로 넘긴다고 하자 앉았던 농민들이 또 우르르 일어나 박수를 쳤다. 법령 17조까지 다 읽고난 그는 계속해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결정한 《토지개혁법령에 대한 세칙》을 내려읽었다. 바로 이 세칙이 농촌위원회의 임무를 규정한것이였다. 그는 어떤 조목은 두번씩 곱읽으며 알아듣게 설명도 가해내려갔다.

《그러니까 농촌위원회는 법령 제2조와 3조에 의하여 몰수될 일체 토지를 조사하며 또 건물, 농구, 축력, 종곡, 관개시설과 과수원 등도 급속히 조사장악하고 상세히 기록한 다음 몰수전까지 완전히 보관하겠다는 증서를 받고 지주에게 임치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 중요한것은 빈고농들의 수를 장악하고 그들의 소유지, 인구수, 년령 등을 조사하는것입니다.》

세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이어 농촌위원회위원선거로 들어갔다. 실행위원은 위원으로 뽑을만 한 사람들을 제기하라고 하였다. 한 농민이 일어나서 이름을 찍어대였다.

《장인수, 녜 좋습니다. 또 제기하십시오.》

실행위원이 목책에 추천된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으며 재촉하였다. 그러자 또 한 농민이 일어나서 두사람을 찍어대며 그들을 위원으로 뽑아달라고 했다. 실행위원은 손에 든 목책에다 또 받아썼다.

《또 제기하십시오. 우리 동네에서는 일곱명을 뽑을 계획입니다.》

《그럼 저 박근팔이두 적합하다고 봅니다.》

한 농민이 약간 주저하는 기색으로 일어서서 말하고는 얼른 앉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농민들이 아우성치듯 소리쳤다.

《그런 판무식쟁이를 위원으로 뽑아가지고 무슨 법령집행을 해? 그건 가갸거겨도 모르는 사람이야.》

《옳수다. 하늘천 따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땅을 노나주겠소?》

《가만가만 이거 좀 조용합시다.》

농조위원장이 떠들어대는 농민들을 제지시키였다.

《그 박근팔이란 농민이 지금 여기에 왔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농조위원장을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왔습니다.》

《어떤 농민이요?》

《일생동안 머슴살이를 해온 농민입니다. 바로 우리가 땅을 빼앗아낼 그 지주의 집에서도 여러해동안 머슴을 살았습니다.》

《한평생을 머슴살이를 했다··· 땅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농민의 심정을 더 잘 알아줍니다. 그래 박근팔농민이 어느 분입니까?》

장군님께서 좌중을 내려다보며 물으시였다.

토목바지저고리를 입은 한 농민이 바로 마당한가운데서 일어섰다. 손에 곰방대와 쌈지를 쥐였는데 그 손을 앞에 모아붙이고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박근팔농민은 지금 나이가 몇살입니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예, 갓 쉰이옵네다.》

박근팔은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대답을 올렸다.

《그래, 언제부터 머슴살이를 했습니까?》

《예, 열세살부터 이날 이때까지 머슴을 살았습네다.》

《그러지 말고 얼굴을 쳐들고 여기를 한번 보십시오.》

그제야 박근팔이 얼굴을 쳐들며 장군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글자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가로 금을 쭉 건너그으며 물으시였다.

《저, 그건 하나라는 자우다.》

《하하하, 옳습니다.》

장군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마당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여기 땅의 필지별 토질이 어떻다는걸 알수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또 물으시였다.

《장군님, 그건 손금보듯 알수 있습네다.》

《어느 밭엔 어느 곡식을 심으면 잘되고 또 어느 밭엔 무슨 곡식을 심으면 잘될수 있다는걸 알고있단말이지요?》

《그거야 뭐 삼사십년동안 발바닥이 닳게 밟아친 땅인데 모르겠소이까.》

《옳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박근팔농민을 무식하다고만 하는데 이분처럼 농사물정, 땅물계에 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사람을 농촌위원으로 뽑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아주 적당하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일자도 알겠다. 필지별 토질도 알겠다, 그만하면 자격이 없겠습니까?》

《옳습니다.》

《장군님말씀이 지당합니다.》

농민들이 이구석저구석에서 떠들며 일어났다. 그들은 장군님의 호탕한 성품에 이끌려 자기들도 한번 롱이 되는 말씀이라도 올리고싶어 가슴들을 들썩거렸다.

《여러분, 내가 왜 박근팔농민을 좋다고 하는가, 이걸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식정도로 말하면 저 농민은 거의 문맹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작 안다는것이 한일자이니까요.》

농민들은 그 말씀에 또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선거된 위원들을 다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일것입니다. 농조위원장동무, 그렇지 않습니까?》

《녜, 지식이라는게 국문해득이나 할가말가할 정도입니다.》

농조위원장이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대답을 올렸다.

《보십시오. 지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기준을 가지고 농촌위원을 뽑자면 힘이 들것입니다. 지식보다도 중요한건 지주의 땅을 뺏아내는 투쟁을 누가 끝까지 견결히 해나갈 각오가 되여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이건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지주에게서 제일 착취를 많이 당한 사람만이 가질수 있습니다. 지식은 돈을 내고 배우면 되였지만 이런건 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합니다. 박근팔농민은 지주땅을 빼앗아낼 자신이 있습니까?》

《녜, 해내겠습니다. 전 일생을 지주한테 다 빼앗긴놈입니다.》

박근팔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주먹을 부르쥐였다.

《좋습니다. 바로 저것입니다. 저 주먹을 틀어쥐고 지주와 싸우는것이 토지개혁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박근팔농민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저 박근팔농민을 보니 내가 먼저번 만나본 황해도 재령벌에 있는 조순근이라는 농민이 생각납니다. 그 농민도 대대로 머슴살이를 해온 순박하고 부지런한 농민입니다. 그런데 그 농민이 3.7제 투쟁때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어떤 간부가 농조에서 그를 내쫓았댔습니다. 그래 우리는 첫술에 배가 부르겠는가, 배우지 못한 농민이 토지혁명을 하다가 실수할수도 있는건데 그런 농민을 내쫓으면 되겠는가고 엄하게 비판했습니다. 실지 조순근농민은 그후 모든 농민들의 앞장에 서서 열성적으로 일을 잘하고있습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가? 그것은 저 박근팔농민도 옆에서 잘 도와주면 조순근농민처럼 누구보다도 견결하게 여러분들, 농민들을 위해서 투쟁할수 있다고 확신하기때문입니다.》

농민들은 모두가 생각깊은 표정을 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선거가 끝나자 한 농민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님, 한가지 말씀을 올려도 좋겠습니까? 꼭 가르치심을 받았으면 하는 문제입니다.》

구두솔같은 수염이 입언저리와 귀밑을 한벌 뒤덮은 텁석부리 중년농군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거북하게 두손을 맞잡고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인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이제는 땅이 영낙없이 우리 농민들앞으로 넘어오겠는데 지주는 어떻게 하랍니까?》

그의 느닷없는 질문에 마당에 앉은 농민들이 몸을 뒤척이며 술렁거렸다. 순간 장군님의 얼굴에도 한줄기 파문이 지나갔다. 지주의 처리문제는 수천년세월을 거쳐 굳어진 땅과 농민과 지주의 그 비극적인 삼각관계를 종식시키는 중요한 운명적문제의 하나인것이다. 그래서 이미 토지개혁법령 세칙들에 지주의 처리문제를 명백히 밝혔지만 장군님께서는 론의에 붙이시였다.

《아주 중요한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오늘 동리 농민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기회에 토론해봅시다. 지주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먼저 의견들을 말씀해보십시오.》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문제를 제기했던 텁석부리 농군자신이 배허벅에 손을 가져다대고 의견을 내놓았다.

《장군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마을 백지주는 왜정때 왜놈의 밀정노릇을 한 놈입니다. 때문에 죄상을 문초해서 감옥에 넣던지 발가벗겨서 알몸뚱이로 내쫓아야 합니다.》

《밀정노릇을 했다는게 사실입니까?》

《예, 왜정말기에 이놈은 옷차림도 왜놈관리들처럼 〈국민복〉 차림을 하고 그놈들과 어울려다니며 공출도 협력하고 징병기피자들도 숨은곳을 알아내여 고해바쳤습니다.》

농민은 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음··· 그다음, 또 죄상이 있으면 다른 농민들도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앉은 농민들을 주욱 둘러보시였다. 얼른 일어서는 농민이 없었다.

《공출을 협력했다, 징병기피자들을 고해바쳤다 하는데 그것때문에 피해를 본 농민은 몇명이나 됩니까?》

장군님께서는 옆에 앉은 농조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농조위원장은 농민들이 일어서 대답을 올리지 못하는것이 섭섭한지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을 올렸다.

《왜놈들이 공출조사를 나왔을 때 백지주가 그들을 제집에 류숙시키면서 밥을 먹인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고 징병기피자를 밀고했다는 말은 있는데 정확히 누가 어떻게 밀고를 당했는지 구체적인건 지금 알아보는중입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당장 밀정이라고 하긴 곤난하군요. 밥이나 해먹이고 잠이나 재워주었다고 문제삼을순 없고, 또 밀고한 죄도 지금 알아보는중이라니 당장 발가벗겨서 내쫓아서야 안되지요.》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며 텁석부리농군을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지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딘가 조심스러워하며 굳어지는것 같은 좌중의 분위기를 일별하고 서슴없이 솔직한 생각들을 내놓으라고 하시였다.

《장군님, 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떨는지.》

한 농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쭈물쭈물하며 겨우 입을 떼였다.

《저 토지법령에는 지주를 타군으로 이주시키라고 했는데 저, 백지주로 말하면 저,···》

《일없습니다. 우리도 여러분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야 법령집행을 바로해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지주는 말이 지주지 다른 지주들처럼 악한 사람은 아닙니다.》

농민이 말을 마치고 송구해하며 앉았다.

《예, 그런가요?》

장군님께서는 어서 또 말해보라는 뜻으로 농민들을 바라보시였다.

《저두, 그럼 한마디···》

한 농민이 일어섰다. 그도 이젠 엎지른 물이니 장군님께 솔직한 말씀을 올리는것이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곰방대 쥔 손을 앞에 모두고 허리를 굽히였다.

《저, 우리 마을엔 두어정보 되는 과수원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백지주의 소유이지만, 이건 그가 우리 동리아이들이 사과맛을 모른다고 돈을 내여 야산을 개간해서 일군것인데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면 백지주는 저장했던 사과를 꺼내서 작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몇알씩 맛을 보라고 주군 합니다. 야학두 세워주었구 공의두 하나 데려오겠다구 발벗구나서 뛰여다닌적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백지주가 이번 법령에 의하여 땅을 순순히 내놓겠다고 하는 이상 마을에서 쫓아내기까지는 하지 않는게 어떻겠는가고 요새 공론을 하던 참입니다.》

《아니 저 사람이?···》

《농조위원장동무, 가만 있소.》

옆에서 농조위원장이 풀떡거리며 소리치려고 하자 강진건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리였다.

《그다음엔 또 백지주를 좋게 보는 점이 없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황송해하는 몸가짐으로 그냥 서있는 농민에게 물으시였다.

《예, 그다음 별로 다른건 없는데 자빠진데다 발길질을 하면 너무한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럼 이젠 제가 한가지 묻겠습니다. 이제 법령집행을 하면 그 백지주라는 사람이 땅도 과수원도 다 내놓고 여러분들과 처지가 같아지겠는데 그가 여기서 여러분들처럼 봄 , 여름, 가을 땀흘리며 농사를 지어서 자기의 처자권속을 먹이겠다고 할수 있을가요?》

농민은 엉거주춤해서 대답을 못했다. 이때 처음 일어났던 수염부르르한 농민이 또 일어났다.

《장군님, 제가 한마디 더 해도 일없겠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이자 저 사람이 과수원소리를 했는데 그건 사실입니다. 허지만 그놈은 참새목에 굴레씌울 놈입니다. 우린 섣달 그믐날 사과다섯알 얻어먹는 재미로 그 과수원을 대가없이 그저 개간해주었습니다. 옹근 1년동안 나무뿌리를 캐내고 돌각담을 쌓아주고 나무모를 옮겨준 값이 고작해서 사과 다섯알입니다. 그다음 여기 우리 동리에서 쪽박을 차고 떠나간 사람이 없는건···》

《됐습니다. 다 알만합니다. 앉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손을 들어 만류하시였다. 수염부르르한 농민은 자리에 앉으며 백지주를 좋다고 말하던 농민쪽에 등을 돌려대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러분들속에 지주를 정작 내쫓자니 좀 섭섭한 생각이 드는분들이 있는것 같은데 내가 옛말하나 하겠습니다. 이 옛말은 호랑이가 사람처럼 말도 하고 담배피우던 옛날옛적 이야기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빙긋이 웃으며 옛말을 시작하시였다. 농민들은 눈을 번쩍 뜨고 장군님께서 갑자기 무슨 옛말을 하실가 하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그 옛날에는 짐승이란 짐승은 모두 산과 들에서만 널려져 살았다. 사람의 손에는 쟁기밖에 든것이 없었고 농사를 지어서도 등짐으로 나를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농부가 산과 들에 널려있는 뭇짐승들을 모두 불러다놓고 자기 집 일을 도울 의논을 했다.

농부는 먼저 덩지가 제일 큰 코끼리부터 살펴보았다.

그러나 코끼리는 풀만 먹는 순한 짐승이기는 하지만 덩지가 너무 커서 합당치 못하다고 돌려보냈다. 그다음 호랑이를 이모저모 살펴보고나서도 날고기만 먹는 사나운 짐승이기때문에 털가죽만 벗겨놓고 산으로 도로 가라고 하였다.

호랑이는 제 가죽을 벗겨놓으라는 말에 따웅 하고 혼비백산해서 울바자를 차고 숲속으로 달아났다. 곰도 약재로 열을 내놓고 가라는 바람에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며 산으로 갔다.

농부는 힘세고 부지런하고 먹기도 풀만 먹는 순한 소와 말 그리고 개, 양, 고양이, 닭, 오리 같은 짐승들만 마음에 들어 집에 두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시냥이라는 짐승이 남았다. 시냥은 성질이 포악하고 욕심많은놈이여서 농부는 대뜸 호령을 했다.

《너는 산에서도 약한 짐승만 잡아먹고 성질이 사납다고 하는데 실없는놈하고 의논할 생각 없다. 산짐승들도 널 좋아안하니 살아있을 필요가 있느냐.》

그 소리를 듣자 시냥은 모로 쓰러지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때 어진 양이 농부앞으로 다가와서 《시냥이 저렇게 슬피우는걸 보니 불쌍하오이다. 그러니 죽이지 말고 살려서 리로운 일을 시키면 더 좋을줄로 아오이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였다. 그러자 시냥도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부터는 어진 짐승을 잡아먹지 않고 양처럼 풀만 먹으면서 리로운 일만 할터이니 욕된 목숨 부지케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농부님, 시냥을 우리 양무리를 지키는 파수로 써주옵소서. 우리 양들은 너무 순해서 사나운 짐승의 피해를 막을 힘이 없지 않소이까.》

《음···》

농부는 양의 청이 그럴듯싶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시냥은 죽을 고비에서 겨우 살아남게 되였다. 이튿날부터 시냥은 양들과 어울려 돌아가며 파수를 봐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해준 양의 은혜가 고마와 자기도 양과 한형제가 되겠다는 뜻에서 이름을 《순양》이라고 고치였다.

농부는 이튿날부터 소를 데리고 밭에 나가 일을 했다. 그동안 개는 도적을 지키고 닭들은 시간을 알리고 알을 낳았다. 돼지도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고 고양이는 곡식창고를 수비했고 양들은 들에 나가 《순양》의 보호밑에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그러나 《순양》은 양들의 어진 동정으로 살아나긴 했으나 그들처럼 한우리에서 풀만을 먹으며 산다는것은 죽기보다 별로 나은 점이 없었다. 참다 못해 어느날 밤에 양새끼 한마리를 잡아먹었다. 양의 고기를 씹고 피를 마시니 미칠것 같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솟구쳤다.

《에라 모르겠다. 죽을 땐 죽더라도 내 살던대로 살자, 한번 죽지 두번 죽겠니.》

이렇게 결심한 《순양》은 밤마다 닥치는대로 양새끼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종시 주인의 눈에 들키게 되였다. 그리하여 더는 집마을에 있을수 없게 된 《순양》은 인간세상에 다시는 안내려오겠다고 결심하고 산속으로 깊이깊이 도망쳤다. 도망가면서 《순양》이라던 이름도 제절로 집어던지고 언제나 지지않는 시냥으로 되겠다는 의미에서 이번엔 《승냥》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렇게 달아난 승냥이는 산속에서 노루, 토끼, 사슴, 산양같은 어질고 착한 짐승들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이가 없을 땐 인가에도 가만히 내려와 양들을 해치기도 했다. 이래서 승냥이는 사람이나 짐승에게 있어서 제일 쓸모도 없을뿐더러 잔인한 짐승으로 되고말았다.

《승냥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붙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짐승의 본래 이름이 시냥이였던것만은 사실입니다. 내가 이 옛말을 왜 하는고 하니 승냥이가 풀을 먹을수 없고 양과 같이 살수 없듯이 지주도 농민과 한 하늘밑에선 살수 없다는것입니다. 지주가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면 바로 양무리속에 들어간 시냥이처럼 농민들의 피땀을 짜먹던 지주의 본성이 살아나서 발광을 하게 된다는것입니다.》

농민들은 옛말 듣는 재미에 모두들 입을 벙글써하고 웃고만 있다가 장군님의 마지막 말씀에 그만 속이 뜨끔해졌다. 장군님곁에 앉은 농조위원장과 실행위원도 장군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토방앞으로 한걸음 나앉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래서 이번 법령에 지주를 이주시킬데 대한 문제를 박아넣은것입니다. 물론 지주에게 없는 죄명을 씌워서 옥살이를 시킨다든가 집에 불을 써대겠다는건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주를 여기 그냥 두어서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인차 지주의 땅을 나눠가지고 농사를 짓겠는데 지주가 그걸 보면 눈에서 불이 일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문만 열면 코앞에서 빼앗긴 제땅을 바라보겠는데 그것을 도로 찾을 생각을 한시각도 버리지 못할거야 뻔한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법령에선 지주를 제땅이 안보이는곳에 멀리 보내서 농사를 짓게 한것입니다. 이만하면 지주한테 살길을 열어주는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농민들이 모두 흥분되여 황홀한 눈길로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착한 지주라고 떠들던 농민들도 자기가 과연 얼마나 얼빠진 소리를 줴쳐댔는가 하는 자책이 가슴에 쿵 마쳐와 붉어진 얼굴을 숙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농민총회가 끝난뒤에도 선거된 농촌위원들을 방안에 모여앉히고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가르쳐주시였다.

《내가 오늘밤 여러분들과 함께 자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고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럴수 없습니다. 인젠 여러분들이 일을 짜고들어 잘해야 합니다.》

《예, 알았습니다.》

농조위원장이 수첩에 적다말고 일어서서 정중히 대답했다. 글자를 모르는 박근팔농민은 장군님말씀을 한마디도 흘릴세라 큰 눈을 슴벅이며 숨소리없이 앉아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알아야 할건 농촌위원회의 임무중에는 세칙에 밝혀져있지 않는 또 한가지 중요한 임무가 있다는것입니다.

그게 뭔고 하니 농민들의 머리를 깨우쳐주는것입니다. 황해도 재령벌이야기를 또 해야겠습니다. 내가 얼마전에 여기 앉은 위원장선생과 황해도 재령벌에 나간적이 있는데 그때 지주와 한문중을 이루고사는 농민들이 달려나와 지주를 치지 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토지개혁법령도 발포되기전이기때문에 몰라서 그럴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농조간부들과 함께 장시간 앉아서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나와서 또 그 비슷한 일을 당하고 보니 농민들을 각성시키는 일을 한시도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보았겠지만 우리 농민들은 어질고 순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게 우리 농민들의 좋은 품성이긴 하지만 계급투쟁을 하는데선 그렇게 마음이 종이장같이 엷어선 안됩니다. 이제야말로 농민들이 눈을 똑바로 떠야 합니다. 자기자신을 혁명해야 합니다. 인간혁명을 말입니다.》

《예?!··· 인간혁명!》

농조위원장은 충격적인 흥분한 목소리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외웠다. 장군님께서는 농조위원장의 얼굴을 이윽히 지켜보시였다. 아직은 농조위원장도 인간혁명이라는 그 네글자의 뜻을 다는 알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그것은 아주 넓고 깊은 뜻을 담고있는 아득히 먼 앞날, 공산주의사회에 가서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혁명이였다. 알고보면 그것은 참인간으로 살기 위한 생존의 요구였다. 그 혁명에서 끊임없이 인간적인것이 우러나오는것이다.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고상한 사랑도 아름다움도 지혜와 총명도 그리고 만물을 길들이는 위대한 힘도 그 혁명속에서 생겨나는것이였다. 모든 경륜적인 변혁에는 그것이 따라야 했으니 그래서 토지혁명도 그것없이는 할수 없는것이다.

(인간해방을 위한 인간혁명!)

장군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벌써 서쪽하늘에서 노을이 불타고있었다. 문득 장군님의 눈앞에 그랬세요 저랬세요 하며 혀아래소리로 재령강노래를 들려주던 서분이의 아련한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인간혁명을 동반하는 토지혁명은 그 섬약한 어린 처녀도 거인적인 녀성으로 자라게 할것 같으시였다.

얼마후 장군님께서는 마을을 떠나면서 농조위원장에게 서분이 부모들의 이름과 생활경위를 알려주고 혹시 그런 사람이 갈촌근처에는 없는지 알아보도록 부탁하시였다. 서분이를 알게 된 그때부터 장군님께서는 가시는곳마다에서 잊지 않고 그런 부탁을 하시였다. 그렇듯 서분이는 재령벌의 슬픈 력사와 더불어 장군님의 심처에 못으로 깊이 박혀진 처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