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3장 2


 

제 13 장

2

 

아침해빛은 풋솜같이 떠도는 안개무더기를 휘저어놓고 사그라뜨리며 대지를 따뜻이 애무하고있었다. 흩어진 안개무더기도 살랑거리는 바람에 실려 서서히 산기슭으로 몰려갔다. 머리에서 날새들이 날아일어나 금빛처럼 쏟아져내리는 해빛속으로 자맥질해가고있다. 《꾸엉, 꾸엉》 이따금 마을 뒤산에서 장꿩의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치며 메아리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마을뒤 비탈밭에서 지평선까지 아스라하게 뻗어나간 논벌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계시였다. 뒤에서 강진건이 이곳 농조위원장과 제강소에서 온 면 실행위원을 데리고 조용히 걸었다. 이들은 오늘 아침 뜻밖에 장군님께서 자기 마을에 오시여 농촌위원회를 조직하는 일을 봐주시겠다는 바람에 몸둘바를 몰라하다가 그냥 뒤따라 밭으로 나왔다. 농민총회를 준비해야 했으나 당하는 일이 너무도 꿈만 같아 그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마음이 흥청거려 제먼저 따라나선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평양 가까운 군에서 제일 먼저 파견원들이 내려가고 리에도 실행위원들이 닿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이 갈촌마을로 오시였었다. 평양에서 100리되나마나한 거리에 있는 마을이여서 아침에 집무실에서 간단한 회의도 하나 끝내고 나오시였다. 이 마지막실천단위에서 일을 마무리하는것을 보고싶으시였다.

함흥사건이 수습된후 전국적으로 큰 편향은 별로 제기되지 않아서 이제는 토지분여를 위한 실무적인 사업을 계획대로 3월말일전으로 끝내는 일이 남아있었을뿐이였다.

비탈을 내려 바둑판같이 펼쳐진 논배미들가운데로 들어간 장군님께서는 미소어린 눈길로 땅을 살펴보다가 괭이로 찍어보시였다. 일매지게 검은 찰흙인데 채 녹지 않아서 뼈다귀같이 꿋꿋했다. 땅거죽만 녹고 속에는 아직 얼음이 들어박혀있는것 같았다. 보기만 하여도 걸어보이는 그 검은 찰흙에 물기가 내배여 끈적끈적 발에 묻어나기도 한다. 가을에 갈아엎은 논고랑에는 손바닥같은 눈얼음이 붙어있는데 괭이로 두드리면 밑은 궁근 항아리속처럼 풍풍 빠져들어간다. 땅속에서 촐랑촐랑 얼음물 녹아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것을 보면 분명 봄이 찾아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어쩌면 봄이란 제스스로 오는것이 아니라 바로 이 농토가 봄을 끌어당겨오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아니면 겨우내 땅속에 묻혀있다가 근면한 농민들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머리를 쳐드는지도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물기배인 차지고 끈기있는 흙을 한덩이 집어드시였다. 손에 흙찌가 묻는것도 아랑곳없이 꾹꾹 다져도 보고 부스러뜨려도 보시였다. 그 한줌 흙에 농민들의 깊은 사연이, 그들의 운명과 인생이 담겨져있는것 같아 무심할수가 없으시였다.

땅에 봄이 오는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봄이 오면 이렇듯 얼음이 녹고 땅이 풀리고 그러면 이 땅에 씨앗이 떨어진다.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사랑이 깊은 이 거무스레한 땅은 자기 품에 떨어진 씨앗을 애기처럼 흙포단으로 포근히 감싸안고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서 이쁘장한 낟알의 잎새를 피워올린다. 그다음은 잎새를 다독이며 온 여름 해빛과 바람과 비를 불러 줄기와 가지를 자래우고 무르익는 가을을 재촉한다. 그래서 종당에는 이삭을 뽑아올리고 열매를 익히는것이니 땅은 참으로 오곡백과를 안아키우는 어머니이다.

생명의 모체인 땅, 그 선량하고 부드럽고 사랑깊은 어머니땅앞에서 누구도 악한짓을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 세세년년 이 땅은 권력과 총검을 휘두르는자들의 발밑에 짓밟혀 피의 참극이 어느 하루도 그쳐진 날이 없었다. 땅의 력사는 피의 력사였다.

놀부와 같은 패악한 지주들의 치부욕으로 이 땅에는 농민들의 쓰라린 눈물과 더운피가 뿌려졌다. 그렇게 장구한 슬픔의 력사가 기록된 이 땅우에 바야흐로 농군의 설음을 영원히 가셔버릴 환희로운 새봄이 찾아오고있는것이다. 땅을 위하여 피흘리고 눈물뿌린 농군들 그리고 우리의 유명무명의 렬사들의 념원이 화창한 봄날의 꽃으로 피여날 때가 왔다.

장군님께서는 눈물겨운 심정으로 손에 쥔 한줌의 흙을 보고 또 보시였다. 옆에 서있는 강진건이도 장군님의 그 심중을 읽는듯 깊은 생각에 서있었다. 그는 이 흙을 한줌 들고가지 못해 감옥벽을 치며 울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강진건은 장군님의 뒤를 따라 논두렁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말로 말씀을 드렸다.

《장군님, 제가 토지개혁을 끝내면 동만에 한번 갔다올가 합니다.》

《동만에요?》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시였다.

《예, 김선생님의 묘소를 찾아뵈옵고 이 흙도 가지고가서 놓아드릴 생각입니다. 그리구 아주 조국으루 모셔올 준비두···》

《참, 선생님도 지금 그럴 겨를이 있습니까. 우리가 새 나라를 다 세운 다음에 모셔와도 저의 아버님은 욕하시지 않을겝니다.》

장군님께서는 논두렁길을 곧추 걸어나가며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그래두 난 사정이 좀 다릅니다.》

강진건은 장군님의 뒤를 바싹 따르며 간청을 드렸다.

《제가 왜 선생님의 심정을 모르겠습니까.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제가 자식으로서 아버님유훈대로 할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수굿하고 서있는 강진건을 그윽한 눈매로 지켜보시였다. 그러느라니 괴로운 추억이 일어나시였다. 지금은 낮아진 무송의 산기슭, 한갈피 떼장밑에 누워계실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시였다. 생전에 그리도 일구월심 바라시던 조국광복이 성취된것을 알고나계시는지···

장군님께서는 추연히 고개를 들고 동북쪽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아버님은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그러나 강선생님과 같은 아버님의 친우가 살아계시니 정말 기쁩니다. 그래서 더욱 선생님이 귀중하게 생각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정겨운 눈으로 강진건을 바라보시였다. 어느덧 강진건의 눈에는 이슬이 어려있었다.

《선생님, 토지개혁을 끝내면 함북에 있는 선생님의 가족들을 다 데려와야겠습니다. 아들, 며느리도, 손자도···》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논두렁을 넘어서시였다.

그리고 농조위원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금년날씨가 어떻습니까?》

《예, 올봄엔 농사가 한절수 앞서려는지 우수전에 벌써 비가 한줄금 잘 내렸습니다.》

농조위원장이 장군님께서 드신 괭이를 황급히 받아들며 말씀올렸다.

《논에는 물이 장수라는데, 세월도 알아주는가보군요.》

장군님께서 허리를 짚고서서 벌판을 둘러보시였다. 이 벌판으로 땅을 받은 농민들이 우야- 하고 소리치며 달려나오는 광경을 상상해보시였다. 그날은 가까와오고있으나 아직은 앞에 있었다. 토지개혁법령으로 모든것이 해결된것은 아니였다. 빨리 땅을 나눠주어서 농민들이 지경마다 패말을 박고 땅의 주인이 되였다고 세상에 대고 웨쳐대는것을 보아야 만시름이 풀릴것 같으시였다.

《농촌위원회를 조직한다는데 어서 가봅시다.》

장군님께서는 해빛이 란사되는 시내물을 다시 건너 큰 돌배나무 서있는 집앞으로 가시였다. 마당에는 농민들이 벌써 적지 않게 모여와있었다. 집앞에 어설프게 쳐놓았던 수수바자를 걷어버려 안마당 바깥마당이 없게 된 넓은 마당에는 사람들이 편안히 앉을수 있도록 벼짚을 한벌 깔아놓았다.

《판을 아주 크게 벌렸구만. 이만한 회의장이면 몇동네도 들어앉겠소.》

장군님께서 호탕한 음성으로 말씀하며 마당으로 들어가시자 그곳에 모여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누구인가 두손을 추켜올리며 《김일성장군 만세!》, 《토지개혁 만세!》 하고 웨치자 삽시에 마당안은 만세의 환호로 들끓었다. 낡은 삼베옷에 초신을 신은 중늙은이 하나가 사람들을 비집고 나오더니 장군님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였다.

《장군님! 우리 농군들에게 땅을 주도록 법령을 내리신 장군님, 정말 고맙소이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거 무얼 어러십니까?》

장군님께서는 땅바닥에 엎디여있는 늙은이를 잡아 일으키시였다.

《장군님, 우리 농군들은 토지개혁법령을 받구 요즘 내내 춤을 추며 돌아갑니다.

지금도 한바탕 춤을 추다가 무슨 토지를 노누는 회합을 한다기에 왔소이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이 험지를 찾아주시니···》

늙은이는 너덜너덜한 옷소매로 눈굽을 닦았다. 하나같이 헐벗고 굶주려온 모습이였다. 그러나 땅을 받게 된다는 희망으로 한껏 밝아진 얼굴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무어라 이름할수 없는 애틋한 련민에 가슴이 젖어들어 그들모두를 안아주는 심정으로 곽지같은 농민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였다. 농민들은 한뉘 호미자루밖에 잡아보지 못했던 자기들의 손으로 장군님의 손을 잡아보게 된 꿈같은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해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장군님, 이젠 방안에 들어가셔야 하겠습니다.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점심을?···》

농조위원장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놀라는 표정으로 강진건을 돌아보시였다. 부엌에서는 아낙네들이 모여들어 들락날락했다. 함지에 무엇인가 가득 담아 들여가기도 하고 담아내오기도 했다.

《장군님, 변변치 못하지만 저희들의 성의오니 들어주십시오.》

농조위원장이 두손을 배허벅에 대고 말씀드렸다.

《언제 점심 먹을새가 있겠소, 농민들이 모여오는데.》

《장군님, 회의를 12시가 넘어서 한다고 했는데 농민들이 앞질러 모여오고있습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토지개혁지원을 나온 평양학원학생이 말씀올렸다.

《장군님, 거절하시면 이 동무들이 섭섭해합니다. 장군님 오셨다고 이 동무들이 몽땅 떨쳐나서 점심차비를 한것 같습니다.》

강진건이 장군님을 앞세워드리며 정지문을 열었다. 장군님께서는 하는수없이 토방에 올라서시였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어 점심상이 올라왔다. 점심상은 장군님과 강진건의 상이 네모배기 소반이고 그밖에는 모두 둥글상이였다. 콩나물이 한접시씩 놓이고 김이 피여오르는 닭고기국도 올라왔다. 소반들에는 깍지를 까밝힌 닭알들도 놓이고 모두부도 놓여있다.

《장군님, 술을 좀 가져오랍니까? 술도 있습니다.》

《그건 두었다 토지개혁이 끝나면 마시시오.》

장군님께서 말씀하시자 농조위원장은 부엌에 대고 술주전자는 올려보내지 말라고 눈짓을 했다.

《장군님, 죄송스럽습니다. 식상이 변변치 못해서···》

《변변치 못한게 아니라 너무 지나친 대접을 받소. 무엇때문에 닭까지 잡소.》

장군님께서는 닭고기가 무드기 담긴 국사발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몇술 뜨시였다. 농촌집에서 흰쌀밥을 하고 닭을 잡는것은 귀한 손님이나 올 때에 하는 대접이다. 그것도 농량이나 푼푼한 집에서··· 언제 우리 농촌의 모든 농가들이 이런 륭숭한 대접을 해서 손님을 기쁘게 할가, 아니 래년부터는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는 세월이 분명 올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장군님께서는 오늘 이 농촌집 노전방에서 받는 식사가 더욱 뜻깊은 느낌이 드시였다.

《밥맛이 구수하구만··· 이게 3.7제 밥이겠소, 허허.》

장군님께서는 몇숟갈 뜨고나서 풀기가 많은 쌀밥을 내려다보며 웃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3.7제를 해서 겉곡을 보관했다가 얼마전에 찧은것입니다.》

농조위원장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정중히 말씀올렸다.

《아, 그래서 이렇게 기름기가 돌고 구수한게로구만. 허허··· 농조위원장동무, 3.7제 밥이 이렇게 맛있는걸 보면 올가을에 제 땅에서 거둔 벼로 지은 밥은 더 꿀맛이겠구만!》

《아무렴, 그렇습지요. 장군님께서 올가을에 꼭 다시 와주십시오. 그땐 우리가 제땅 농살 잘 지어 천석군만석군이 돼서 떡치고 소두 잡겠습니다.》

농조위원장이 물기어린 눈을 슴벅이면서 소청을 드리였다.

《오겠소, 꼭 오겠소. 온 동네가 모여서 제땅에서 난 쌀로 큼직하게 잔치를 차리시오. 그런데 소는 잡지 마오. 소를 잡겠다면 난 안오겠소. 허허허.》

장군님의 말씀에 방안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장군님, 그땐 햇곡으로 독한것두 좀 고아놓겠습니다.》

《가만, 농조위원장동무가 아까부터 술소리를 자꾸 하는걸 보니 술을 꽤 하는 모양이구만.》

《장군님, 알고보니 농조위원장은 한때 광산에서 돌을 캐면서 술을 배웠는데 술독을 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답니다.》

제강소로동청년이 웃음을 지으며 롱말을 했다.

《그렇다? 그러구보니 대단한 술고래하고 마주앉았구만. 술을 마실 때는 마셔야지요. 그러나 술을 독으로 퍼마시는건 백해무익하오. 더구나 오늘처럼 회의를 조직해놓고 술마시자는 소릴 해선 안되고···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농조위원장앞으로 찬그릇과 모두부를 넘겨놓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 무흠하고 소탈하게 대해주시여 방안에는 활기가 넘쳐흘렀다. 조심스러워하던 농군들이 어느덧 어려움을 잊고 자유스럽게 수저를 놀렸다. 부엌에 대고 큰소리로 덧국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부엌에서는 녀인들이 흰 김이 문문 풍겨오르는 뜨끈한 국그릇을 연방 올려보냈다. 장군님을 모신 이 소박한 《농민오찬회》는 이 마을이 생긴이래 처음 있어보는 가장 경사스러운 명절과도 같은것이였다.